국내 최초의 대학 부설 실패연구소인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교육 및 연구 문화를 만든다는 미션으로 2021년 설립됐다. 어려서부터 성공지향적 문화를 내면화해 온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실패의 가치를 인식시키고 행동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카이스트는 ‘포토보이스’ 방식을 활용해 학생들이 자신의 실패를 구체적으로 관찰하고 그 내용을 재구성해서 비슷한 상황의 동료들과 공유하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각자의 주관적인 경험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유용한 교훈을 발견해 냈다. 기업도 프로젝트 혹은 팀 단위로 구성원들이 일 과정의 경험을 회고하고 그로부터 시사점을 공유하는 모임을 정례화함으로써 실패로부터 배우는 문화를 구축할 수 있다.
KAIST, 실패연구소를 만들다
‘실패를 용인하고 실패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조직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카이스트(KAIST) 실패연구소는 지난 2021년 6월 설립 이후 실패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고 학생, 교수, 직원 등 학내 모든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패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다양한 교육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이광형 카이스트 17대 총장이 취임과 동시에 제안한 이 연구소에는 미래 50년을 준비하는 카이스트가 추격자(fast follower)가 아닌 선도자(first mover)를 양성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 연구의 기조를 바꾸겠다는 이 총장의 혁신 철학이 담겨 있다. 이 총장은 “새로운 도전에는 항상 실패 위험이 있고,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실패를 교훈을 주는 성공으로 해석하고, 실패에서 배우는 문화를 통해 구성원에 재도전의 용기를 주는 것을 실패연구소의 미션으로 내세웠다.
이전에도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실패 용인을 위한 캠페인이나 조직문화 개선의 시도가 있어 왔다. 하지만 대학 차원에서 ‘실패’의 문제를 다루는 정식 기구를 설립한 사례는 실패연구소가 최초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캠페인 사업 하나를 기획하는 것이 아닌 별도 조직을 만들어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방침은 그 자체로 혁신의 지향점에 대한 리더의 의지를 보여주는 선언으로 여겨졌다. 실패연구소가 본격적으로 간판을 달기 전부터 학내 여러 부처에서 기획하는 교육 및 연구 지원 사업에 ‘실패 용인’ ‘실패 극복’과 같은 단어가 이전보다 자주 언급되기 시작했다. 실패연구소를 만들겠다는 선언이 조직 곳곳에 스며들어 각 부처의 실무자들로 하여금 ‘실패’를 고민하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필자는 실패연구소 설립 첫해에 카이스트에 합류해 실패연구소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출범 이후 지난 3년여에 걸친 실패연구소의 활동과 시사점을 공유한다.
안혜정 vividynamic@kaist.ac.kr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
필자는 중앙대에서 사회 및 문화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사회문제에 관여하는 한국인의 가치관과 인식을 문화심리학적 관점에서 연구한다. 현재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연구조교수로 다양한 교육과 캠페인을 기획하며 실패에 관한 문화적 인식과 대처 역량을 연구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실패박람회 민간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