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고객센터
Top
검색버튼 메뉴버튼

SR2.Interview : 이승주 혁신신약살롱 창립자

“커뮤니티 확장의 핵심 동력…
확고한 목표 의식과 확실한 혜택”

백상경 | 369호 (2023년 05월 Issue 2)
SR2_1


Article at a Glance

대전 내 소수 신약 개발자 모임으로 출발한 혁신신약살롱은 온·오프라인 참여자가 7000여 명에 달하는 거대한 지식 교류의 장으로 발돋움했다. 혁신신약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들이 모여 가감 없이 지식을 나누고 서로 토론하는 오픈이노베이션 커뮤니티다. 공동 연구나 투자 연결, 유망 바이오 벤처기업 창업 등이 이뤄지며 경제적 성과도 창출하고 있다. 혁신신약살롱의 성공은 넥스트 라운드를 맞은 커뮤니티 업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버티컬 커뮤니티’의 힘이다. 제약·바이오 분야에서도 범위가 좁은 혁신신약에 집중해 강력한 소속감을 지닌 지식 공동체를 구축했다. 확고한 정체성과 목표 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고, 참여하면 고급 정보와 네트워크를 얻는다는 강력한 베니핏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 어지간한 병은 대부분 정복한 것 아니냐는 인류의 자신감을 비웃듯 코로나19는 3년 안팎의 긴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을 계속해서 위협했다. 이 기간 선진국 사이에서 펼쳐진 백신 개발 경쟁은 제약·바이오 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무엇보다 기존의 패스트 팔로어형 연구개발 구조를 퍼스트 무버형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여실히 깨닫게 했다. 여기서 주목을 받는 분야가 혁신신약1 이다. 개량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와 달리 세상에 없었던 약을 개발해 새로운 질병을 고치는 연구다.

바로 이 혁신신약 개발의 토대를 커뮤니티의 힘으로 세운 곳이 있다. 전국 각지의 혁신신약 개발자들이 모여 각자의 지식과 연구 성과를 가감 없이 나누고, 함께 머리를 맞대 새로운 지식을 고민하는 오픈 이노베이션 커뮤니티 ‘혁신신약살롱’이다.

2012년 대전 내 소수의 신약 개발자 모임으로 출발한 혁신신약살롱은 이제 업계 전반을 아우르는 수준의 거대한 커뮤니티로 거듭났다. 살롱의 온라인 활동 기반인 페이스북 그룹의 가입자는 약 7000명에 달한다. 지역별 오프라인 모임도 속속 늘어났다. 시발점이었던 대전은 물론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밀집한 판교와 오송, 대구, 송도, 서울, 동탄·광교 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서로의 논문과 임상 결과, 최신 뉴스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눈다. 서로 배우고 토론하면서 지식의 상승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물론 살롱에 참여한 사람들이 서로 의기투합해 공동 연구를 하거나 투자를 받아 유망한 바이오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사례까지 이어지고 있다. 직접 비즈니스를 지향하지는 않았지만 더 큰 틀에서 유·무형의 경제적 성과를 창출하는 플랫폼으로 변모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수많은 커뮤니티가 악전고투했지만 혁신신약살롱은 이 기간에도 온라인을 통해 활발히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팬데믹이 잦아든 지난해 서울과 동탄·광교 살롱을 열어 첫 오프라인 모임을 가지면서 지적 교류에 대한 구성원들의 뜨거운 열망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엔데믹, 투자 혹한기 시대 넥스트 라운드를 맞이한 커뮤니티 비즈니스 업계에 혁신신약살롱의 성공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가장 주목할 지점은 ‘버티컬 커뮤니티’의 힘이다. 혁신신약은 어떻게 보면 범위가 작다고 할 수 있는 주제다. 당장 제약·바이오 연구 자체가 제한적인 분야다. 그중에서도 혁신신약은 국내 연구 주축인 개량 신약이나 바이오시밀러에 비해 작은 범주다. 하지만 이러한 좁은 범위는 강력한 정체성으로 고스란히 환원됐다. ‘세상에 없던 약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강력한 목표 의식을 공유하는 만큼 더욱 단단하게 결속한 지식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

주제가 좁은 만큼 참여자들에겐 확실한 베니핏도 생겼다. 성실하게 참여하면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고급 정보와 네트워크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참여자의 규모를 늘리고 참여를 지속하는 중요한 동인으로 작용했다.

혁신신약살롱은 그러면서도 구성원 개개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느슨한 운영, 아무리 유명한 석학이 와도 지정석 하나 내주지 않는 수평적인 구조를 유지하면서 커뮤니티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관심만 있다면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참여시키는 개방성 역시 커뮤니티가 커질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 창립자인 이승주 오름테라퓨틱 대표를 만나 혁신신약살롱의 역사와 성과, 성공 요인에 대해 들었다.

살롱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2012년 8월, 대전 유성구 전민동의 한 횟집에서 가진 모임이 시작이었다. 당시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의 아시아태평양 R&D 연구소장을 맡아 여러 대학과 연구소, 기업들을 다니며 혁신신약 전문가를 만났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느낀 건 예상 밖 ‘단절’이었다. 혁신신약이라는 도전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뛰고 있는데 정작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국내 혁신신약 연구의 중심지인 대전 안에 모두 함께 있었는데도 말이다. 모두 함께 만나면 분명히 시너지가 날 수 있다고 보고 일단 소수라도 모여서 교류를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연구자들의 지적 교류를 위한 모임을 추진했다. 첫 모임엔 약 10명 정도가 모였다. 비즈니스와는 아무 관련이 없고, 마치 북클럽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그때 적절한 주제를 선정해 한 사람이 논문이나 자기 연구 성과를 발표하면 그걸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어지는 뒤풀이 자리에선 맥주를 마시며 더 상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기본적인 틀은 살롱 규모가 커진 지금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름이 특이하다. 왜 살롱인가?

나름대로 깊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선 귀족 부인들인 ‘마담’이 자기 저택의 거실, 살롱을 열어 문인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미술가와 예술가를 모아 미술 전시회를 하거나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지식인이 모여서 교류하고 지식을 나누는 모임이 활발했다. 우리 모임의 성격이 완전히 똑같다고 보고 고민 끝에 살롱이란 이름을 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아내가 의심한다”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SR2_2


좀 더 폭넓은 주제를 정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참여자도 훨씬 많아지지 않았을까?

처음엔 바이오 업계 전문가들의 모임이니까 ‘바이오 살롱’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범위가 너무 넓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함께 도전하고 있는 세밀한 주제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혁신신약으로 범주를 좁혔다.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목표 분야다. 그땐 막연한 생각에 그렇게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좁은 분야에 집중한 덕에 커뮤니티가 발전하고 유지될 수 있는 강력한 동력이 생긴 것 같다. 세상에 없던 약을 개발하겠다는 공동의 목표와 연대 의식을 갖춘 전문가 집단으로 정체성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살롱을 지탱할 가장 중요한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모티브가 됐던 커뮤니티는 없었나?

분야는 좀 다르지만 코펜하겐학파가 모델이다. 양자역학의 아버지인 닐스 보어가 1918년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론 물리학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시작된 지식 커뮤니티다. 당시 양자역학의 연구가 본격화하던 시점이라 세계 곳곳의 물리학자들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최신 트렌드에 목마른 상황이었다. 그 갈증을 채워준 곳이 바로 닐스 보어의 연구소였다. ‘용감하고 즐겁게 정진하며, 친숙하고 활발한 구속 없는 연구 분위기를 조성한다’를 기본 정신으로 세계 곳곳에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막스 보른 같은 젊은 물리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활발하고 자유롭게 교류했다. 그 결과 양자역학의 표준 해석 중 하나인 ‘코펜하겐 해석’이 나왔다. 혁신신약살롱에서도 코펜하겐 해석처럼 위대한 성과가 나올지 모른다.

보다 직접적인 영감이 됐던 커뮤니티는 멘토처럼 생각했던 분이 만든 KASBP(재미한인제약인협회, Korean American Society in Biotech and Pharmaceuticals)의 ‘디너 앤드 런’이라는 행사였다. 문자 그대로 저녁 먹으면서 공부하는 자리다. 연구자들끼리 모여서 피자를 나눠 먹으면서 세미나도 듣고 토론을 하는 건데 지금도 계속 열리고 있다. 살롱의 콘셉트가 여기서 떠올랐다고 할 수도 있겠다.

최근에는 우리 회사 연구소가 위치한 미국 보스턴에서도 비슷한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보스턴의 바이오 벤처기업 대표 등 10여 명이 모여서 진행하는 ‘바이오테크 밋업(Meet up)’인데 맥줏집 하나를 잡아 다 같이 서서 맥주 한잔 정도 하면서 최신 비즈니스 동향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모임이다.

실제로 살롱 운영은 어떻게 이뤄지나?

페이스북에 개설한 온라인 그룹이 주요 활동 장소다. 이곳에서 서로 논문이나 임상 결과, 제약·바이오 업계의 뉴스를 포스팅하고, 서로 댓글을 달면서 의견을 나눈다. 비공개 그룹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비밀 모임 같은 것은 아니다. 가입에 별다른 제한은 없고 혁신신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현재 가입한 멤버는 약 7000명 정도다.

여기에 지역별로 열리는 오프라인 모임이 진행된다. 운영 방식은 테드엑스(TEDx)2 에서 영감을 받았다. 테드의 라이선스를 받으면 기본 규칙을 지킨다는 전제하에 지역별로 알아서 독립적으로 강연을 꾸릴 수 있다.

지역별 살롱을 주관하는 마담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은데?

마담들이 자신이 속한 지역 멤버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들어가며 주제를 정하고 강연자와 장소를 섭외한다. 스폰서의 도움을 받든, 소정의 참가비를 받든 비용도 알아서 조달한다. 그래서 다루는 주제나 모이는 사람들도 지역별 특성이 많이 반영된다. 대전은 연구자 비중이 높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연구 중심의 성향이 짙다. 판교의 경우는 투자자들의 참여가 많아서 비즈니스 측면이나 연구 생태계와 관련한 이야기가 좀 더 오가는 느낌이다. 일정이 확정되면 페이스북 그룹에 공지를 띄우고 참여 접수를 받는데 강요하거나 동원하는 경우는 없다.

마담들의 출신이나 성격은 각양각색이다. 바이오 벤처기업의 대표부터 시작해 벤처캐피털(VC) 같은 투자 관계자들도 있다. 원래부터 네트워킹을 좋아해 그 지역의 마당발을 자처하고 MBTI로 치면 전형적인 ‘E(외향)’ 성향이라 적극 나서는 분도 있고, 그저 학문적인 관심만으로 봉사하는 분들도 있다. 캐릭터는 모두 다르지만 결국 그 지역과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응축된 지식 교류 니즈 때문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고 보면 된다.

2019년에는 판교에서 전국 모임도 처음으로 진행했다. 전담 인력 하나 없이 느슨하게 ‘B급’으로 진행하려 했는데 결과적으론 잘 짜인 ‘A급’ 행사가 됐다. 전국의 살롱 마담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뛰면서 행사를 촘촘하게 준비한 결과다. 여기에 혁신신약 투자를 검토하거나 연구 인력 채용을 노리는 회사들이 몰려오면서 자연스럽게 행사가 성대하게 마무리됐다.

살롱에 참여하기 위한 다른 조건은 없나?

개방성이 커뮤니티의 힘이자 생명력이다. 혁신신약살롱은 특정 기업이나 스폰서에 의존하지 않는다. 회비도 뒤풀이에 쓸 1만 원 안팎뿐이다. 자발적으로 돈과 시간을 들이지만 그 이상의 부가가치를 얻어가니까 계속해서 사람들이 모인다. 페이스북 그룹 가입도 신청하면 다 받아준다. 올리는 글의 내용도 광고 목적이 지나친 수준만 아니면 딱히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이걸 회사에서 참석하라고 시키는 모임이었다면 이만큼 모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직이라도 한다면 바로 발길을 끊는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또 만약 특정 기업의 주도와 목적하에 추진됐어도 잘 이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지난해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전시회 ‘바이오 USA(2022 바이오 인터내셔널 컨벤션)’에서 있었던 일이다. 행사 시작 3일 전에 소위 ‘번개’를 쳤다. 행사 전날 한국 관계자들끼리 모여서 조촐하게 스탠딩 파티를 갖자고 말이다. 별다른 계획 없이 구글 시트에 온라인으로 참석 희망자 이름과 소속 정도만 적을 수 있게 해두고 링크를 여기저기 뿌렸다. 그랬더니 다음 날 참여자가 스무 명이 넘게 모였다. 그제야 얼른 레스토랑을 하나 빌렸다. 정작 번개 당일엔 2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려 하나의 행사처럼 됐다.

필요하면 오지 말라고 해도 모인다. 구성원들이 모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스스로 깨닫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자생력을 갖고 적극적인 참여가 이뤄지는 커뮤니티가 될 수 있다.

SR2_3


경쟁사 관계자가 참여할 수도 있는데 기탄없는 정보 공유가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기관을 뛰어넘는 교류는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출신 학교를 기준으로 한 동문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다. 너무 제한적이라고 생각했다. 학연은 물론 성별이나 나이, 직급 등을 모두 떠나 순수하게 서로 만나서 토론하고 배우는 모임이 돼야 발전이 있고, 발전이 있어야 커뮤니티의 생명력이 유지가 된다. 실제로 상당히 깊이 있는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되고 있는 점을 두고 외부에선 다들 의아해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선 혁신신약이라는 목표의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혁신신약 연구란 것은 제한된 몇 명이 상대 평가로 1등, 2등을 가르는 식의 내신 경쟁 시험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고시 공부 쪽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모두가 잠재적으로 경쟁하는 상태이긴 하지만 목표가 워낙 어렵다. 혼자서는 합격 허들을 넘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서로 돕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성공하고, 저 사람은 실패해야 한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 풀릴지, 안 풀릴지조차 모르는 난제를 풀고 있으니까 서로 도와서 좋은 결과를 내보자는 마인드가 커뮤니티 전반에 깔려 있다. 이 맥락에서 혁신신약 업계 자체가 여타 바이오산업 분야와 비교해 경쟁심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살롱 안에서 교류할 때 얻는 편익이 크기
때문에 다들 열심히 활동하는 것 같다.

그렇다. 범위가 좁은 혁신신약 업계에서 이미 비슷한 연구를 해본 사람의 노하우나 연구 실패·성공담을 솔직하게 듣는 것은 시험 전에 오답 노트나 족집게 강의를 듣는 것과 같다. 같은 혁신신약을 놓고 먼저 연구를 했다가 시행착오를 겪은 신약 개발자는 사실 후발주자에게 자신이 어떤 부분을 놓쳤는지, 어떤 부분이 가장 큰 암초인지를 알려줄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보 공유를 통해 향후 협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시너지가 매우 크기에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다. 아주 내밀한 회사 기밀을 얘기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하지만 살롱을 통한 경험 공유는 결국 구성원 본인의 연구에도 실질적인 도움으로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제 성과로 이어진 사례도 있나?

살롱을 통해 연구자와 창업자, 투자자가 의기투합해 실제로 바이오 벤처기업인 ‘큐로셀’을 세운 것을 들 수 있겠다. 2015년 미국에서 새로운 종류의 면역세포 치료제를 연구하던 김찬혁 당시 캘리포니아 생물의학연구소 수석연구원(현 카이스트 생명과학과 교수)이 대전에 왔는데 그때 진행하던 연구를 소개해 달라며 혁신신약살롱 대전의 강연자로 초대했다.

김 박사가 연구하던 항암제 관련 CAR-T(키메라 항원 수용체 T세포) 기술은 당시 뜨겁게 떠오르던 혁신신약 중 하나였다. 그 분야 전문가가 미국서 직접 오니까 서울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중 한 명이 판교의 한 병원에서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건수 큐로셀 대표다. 살롱이 끝나고 시간이 좀 지났을 때 김 대표가 따로 창업 의지를 밝히며 연락을 해왔다. 그래서 김 박사를 연결해줬고 2016년 큐로셀을 공동 창업했다. 큐로셀은 국내 최초의 CAR-T 치료제 개발사다. 지금은 지난해 프리(pre) IPO 펀딩을 마치고 임상 인력과 GMP 공장을 확충하면서 상장을 눈앞에 둘 정도로 제대로 성장했다. 실제로 큐로셀의 연구소를 가보면 오늘 우리가 한 연구로 환자 몇 명을 치료했다는 숫자가 계속 카운팅되고 있다. 연구자와 창업자가 살롱에서 만나 회사를 세우고 투자를 받는 것은 원래 목표했던 그림은 아니다. 하지만 모임을 통해 가장 이상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성과가 나온 셈이다.

SR2_4


조직을 매우 수평적으로 운영한다고 들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우리 살롱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게 있다. ‘의전’이다. 따로 인사말을 하거나 축사 같은 것도 없고, 지정 좌석도 존재하지 않는다. 굉장히 유명한 석학이 와도 테이블 구석이나 행사장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9년 오송 살롱 모임에 문재인 전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 한 번만 예외가 있었을 뿐이다.

살롱은 어떤 정규적 단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조합이나 협회와도 완전히 다르다. 그냥 ‘사람들의 지식 교류 모임’이다. 단지 혁신신약살롱이라는 이름과 브랜드만 존재할 뿐이다. 실체가 있다면 여기 참여하는 구성원들일 것이다.

그래서 애초에 한 번 모임을 할 때 몇 명이 와야 한다는 식의 KPI 자체가 없었다. 많이 오면 오는 대로 성황이라 좋고, 적으면 적은 대로 밀도 있는 토론이 가능하다. 뒤풀이 등의 비용도 여전히 십시일반으로 해결한다. 지원해주는 스폰서를 마다하지는 않지만 살롱의 가치를 훼손하면서까지 받지는 않는다.

전국적인 모임으로 확대되는 과정은 어땠나?

살롱에 대한 이야기가 업계에 퍼지면서 서울에서 투자자들까지 대전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2시간 넘는 거리를 오가는 참석자가 갈수록 늘어났다. 그러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테라퓨틱스 대표가 서울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내려오니까 판교에서도 살롱을 한번 열어 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해왔다. 그렇게 살롱의 또 다른 얼굴이 된 혁신신약살롱 판교가 2016년 출범했다. 서울에서 가까웠던 만큼 미디어나 투자자, 업계 관계자들의 접근성이 좋았고, 살롱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계기가 됐다.

판교를 시작으로 2018년 12월에는 오송, 2019년 3월 대구, 2019년 5월 송도에서 새롭게 살롱이 문을 열었다. 2021년엔 새롭게 등장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클럽하우스에서 ‘혁신신약살롱 클하’가 개설됐다. 혁신신약살롱이 탄생한 지 10년째인 지난해에는 서울, 동탄광교가 각각 첫 번째 모임을 갖기도 했다.

이 모임을 확고하게 유지하는 철칙이 있다면?

덩치가 커지는 과정에서 정체성을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 취지가 훼손되는 건 싫었다. 그래서 새로운 지역에서 살롱을 열겠다는 마담들에게 혁신신약살롱이라는 명칭을 무상으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한 페이지짜리 짤막한 사용 규칙 동의서를 받고 있다.

먼저, 살롱의 명칭을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게 한다. 경비 후원이나 입장료 명목으로 소정의 금품 지원을 받는 것은 허용하지만 받은 전액을 혁신신약 행사 비용으로 지출하도록 했다. 연말마다 회계 내역은 전국의 살롱 마담들과 공유하도록 한다. 같은 취지에서 살롱 명칭을 다른 단체와 병기하는 것이나 행사를 공동 개최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걸 위반할 경우 소명 절차를 거쳐 살롱의 명칭 사용 권한을 박탈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커뮤니티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혁신신약살롱을 만들 때부터 한결같이 갖고 있던 생각인데 역설적으로 비즈니스적인 구조가 아니라 커뮤니티 본연의 목표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본다. 우리 살롱도 지금 경제적 효과라고 볼 것들이 생겨나곤 있지만 비즈니스로 시작한 곳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는 모임이었다. 이 철학은 지금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혁신신약을 개발하는 게 인생의 소원 같은 사람들이 있다. 어마어마한 돈과 시간이 들고, 매우 어렵겠지만 그래도 꼭 한 번은 그 미답의 영역에 발을 내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 어려운 연구에 도움을 줄 사람들이 여기 모이다 보니 이들이 꼭 오고 싶은 모임이 된 것이다. 혁신신약살롱이 없어지는 날은 대한민국에 혁신신약을 개발하고 싶은 사람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때일 것이다. 본연의 가치가 없는 공간이라면 아무리 와달라고 사정을 해도 오지 않는 곳이 될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로 접근하더라도 마찬가지 아닐까.

앞으로 살롱을 어떻게 운영하고 싶은가?

우리 살롱의 강연자로 서는 분들 사이에선 ‘겁이 난다’는 얘기가 곧잘 나온다. 허술하게 준비했다간 다른 참여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공세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살롱의 중심에는 결국 지적 교류와 공부가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도 살롱의 기본 가치를 철저히 지키면서 더 활발한 토론이 일어나는 커뮤니티로 만들고 싶다. 혁신신약에 관심 있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지역에서 모임을 갖고, 온라인에서도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 이걸 통해 앞으로 공동 연구나 공동 창업이 더 많이 이뤄지고,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혁신신약이 쏟아져 나오길 바란다.
인기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