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IT사이언스팀 기자들이 IT, 과학, 우주, 바이오 분야 주목할만한 기술과 트렌드, 기업을 소개합니다. “이 회사 뭐길래?”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테크 기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 세상을 놀라게 한 아이디어부터 창업자의 요즘 고민까지, 궁금했던 그들의 모든 것을 파헤칩니다.
클레의 3D머신비전 기술이 사람 얼굴 내 400만개 지점에 대해 0.1mm 오차로 촬영한 화면. 클레 제공
로봇은 이제 피할 수 없는 미래다. 공장에서 자동차를 조립하는 로봇, 집에서 빨래를 접어주는 로봇, 병원에서 수술을 보조하는 로봇, 위험한 전장을 누비는 정찰·전투 로봇의 등장이 놀랍지 않은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이 로봇들은 얼마나 정확한 ‘눈’을 가졌을까. 사람을 100% 대체하려면 자동차 부품들을 정위치에 조립하고, 수술 부위를 오차 없이 조준해야 한다. 이같은 로봇의 ‘눈’이자 ‘시각지능’을 만드는 기업을 찾아봤다. 글로벌 시장에선 중국의 메크마인드로보틱스, 독일의 이스라비전, 노르웨이 지비드를 대표 주자로 꼽는다. 국내에선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연구교수 출신 이진한 대표가 2021년 창업한 ‘클레’가 약진하고 있다.
“사람을 소중히, 위험한 일은 로봇에게”
로봇의 ‘눈’을 만드는 ‘클레’의 핵심 모토다. 3D머신비전은 로봇이 사람처럼 환경을 인식하고 작업하게 만드는 ‘눈’ 역할을 하는 기술을 말한다. 단 1.9초만에 대상 장면 내 400만 개 지점에 대해 0.1밀리미터(mm)오차로 촬영하는 것이 클레가 한국과 일본 완성차 업체들을 공략한 기술력이다.
클레의 핵심 제품인 3차원 머신비전 카메라 코픽3D 시리즈는 최대 0.1mm 오차 수준의 고정밀 3D 측정 성능을 구현한다. 엔비디아의 병렬 처리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실시간 연산 능력을 확보해, 기존 2차원 머신비전으로는 불가능했던 정밀 조립 및 검사 공정의 완전 무인 자동화를 가능하게 했다. 별도의 고가 3D 센서 없이도 정밀한 입체 데이터를 추출하는 독자 기술은 산업적 혁신성이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같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현대차그룹의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HMGMA) 생산라인과 울산 전기차 신공장, 기아 멕시코?·슬로바키아 공장 등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 혼다, 도요타, 미쓰비시 자동차 등과는 현재 기술 실증 테스트를 진행중이다. 다음은 이진한 클레 대표와의 일문일답.
해외 완성차 공장에 설치된 클레의 3D 머신비전 카메라 모습. 클레 제공
왜 자동차 등 제조 공장에서 고도화된 3D머신비전 기술이 필요한가
기존 2D비전 기술은 평면적 정보에 한정돼 있어 복잡한 형상이나 깊이 인식이 필요한 작업에 한계가 명확했다. 조립 공정, 용접, 치수 검사, 외관 불량 검출 등 고난이도 작업의 자동화에는 3D인식이 필수적이다.
예전 공장을 보면 로봇이 비슷한 위치에 부품을 놔주면 사람이 정밀한 작업을 했다. 그런데 로봇으로 완전 자동화를 이루려면 ‘정위치’ 보장이 중요하다. 사람이 수작업으로 하듯이 정확한 위치에 차량용 유리를 붙여야 하기 때문에 오차가 거의 없어야 한다. 우리의 3차원 머신 비전 기술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함으로써 사람처럼 정확하게 차체에 유리를 붙이게 한다. 타이어의 경우 0.2 mm만 오차가 발생해도 끼울 수 없는 데, 우리 기술은 오차가 0.1mm라 이 조건을 충족한다.
사람의 손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나?
사람의 손에는 촉각이 있다. 저항이나 반발력도 느낀다. 이것을 그대로 로봇에 구현하는 것이 중요한데 갈 길이 멀다. 이 방법이 어렵다보니 3차원 머신 비전 기술로 정확히 찍어 필요한 위치를 고정밀 측정한 뒤 조립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일본 메이저 완성차 업체들과 성능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일본 시장 공략의 핵심 전략은 무엇인가
우리 기술은 경쟁 제품보다 압도적으로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본 고객들의 특징은 우리가 제시한 스펙을 하나하나 다 검증하는 데 있다. 일본 고객사가 전문 장비를 통해 직접 자체 검증한 결과 우리 제품은 오차율이 0.04mm, 중국의 한 경쟁사는 0.4mm가 나왔다. 우리 제품이 10배 더 뛰어나다는 성능이 나온 것이다.
일본 시장에서 발견한 가능성은 무엇인가
일본은 기술 대국이지만 공장 자동화에 있어서는 후발대다. 일본의 자동차 시장은 우리나라보다 3배 크지만, 공장 자동화율은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6배 높다. 로봇의 ‘눈’을 만드는 우리 입장에선 단순 계산해도 일본이 (한국 대비) 18배 이상의 시장인 것이다.
일본은 장인 정신을 중시하는 문화로 무인 자동화 도입이 지연됐다. 일본은 제조업 문화 자체가 장인의 영역이다. 최고의 전문가가 차를 조립해준다는 인식이 매우 강하다. 그런데 중국의 거센 추격을 받으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가격 경쟁력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인건비를 계속 높게 가져간다면 경쟁력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3D머신비전 기술력은 높지 못해 일본 완성차업체들이 한국의 클레와 중국 메크마인드를 놓고 테스트 중이다. 우리에겐 엄청난 기회인 셈이다. 또한 고령화 심화로 제조 인력이 부족한 점도 공장 내 로봇 도입을 앞당길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
이진한 클레 CEO. 클레 제공
로봇 강국인 중국의 압도적인 규모의 경제를 이길수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먼저 ‘공장 자동화’에 진심이었다. 중국보다 먼저 제조공장에서 로봇을 엄청나게 쓰기 시작했다. 그 데이터가 우리나라에 엄청난 자산으로 쌓여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갖춘 우리나라는 자동차 반도체 철강 조선업 등 주요 제조업 생산시설이 축적해온 양질의 제조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피지컬AI를 구현할 최전선인 셈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31일 이재명 대통령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를 접견한 자리에서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 회장은 당시 “현대차그룹은 다양한 모빌리티 솔루션과 부품, 완성차 제조 생태계를 통한 양질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피지컬 AI 개발뿐만 아니라 AI를 기반으로 한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이라고 했다.)
앞으로 도전할 분야는
가격경쟁력과 고효율, 안전 등을 위해 고위험 분야부터 로봇이 투입되고 있다. 자동차 다음은 물류 분야를 보고 있다. 자동차 제조공장에서 다루는건 규격과 틀이 정해진 정형화된 부품들이다.
그런데 물류 분야는 비정형의 세계다. 쿠팡 물류센터를 생각해보자. 쿠팡에서 오는 물건들은 비닐로 포장돼 있다. 로봇은 비정형인 비닐에 쌓인 물건들을 사람이 하듯 차곡차곡 배송 순서대로 계산해 쌓는 작업을 잘 하지 못한다. 이같은 비정형 작업들은 앞으로 도전해야 할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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