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완 LG전자 사장(가운데)이 올해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전자 유통기업 셰이커 그룹 압둘라 아부나얀 회장(왼쪽), 전력회사 아쿠아파워 무함마드 아부나얀 회장과 함께 AI 데이터센터에 냉각 솔루션을 공급하는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LG전자 제공
인공지능(AI) 기술이 산업 지도를 바꾸고 있는 가운데, 그 기반이 되는 데이터센터의 열기를 식히는 ‘냉각 솔루션’이 핵심 후방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LG전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대형 미래도시 프로젝트 ‘네옴시티’의 AI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공급 파트너로 낙점되며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이는 단순한 수주 여부를 넘어 AI 시대의 인프라 경쟁에서 LG전자가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LG전자는 올해 9월 사우디 데이터 인프라 기업 데이터볼트, 전자 유통기업 셰이커 그룹, 전력사 아쿠아파워 등과 네옴시티의 첨단산업단지 ‘옥사곤’에 들어설 1.5GW(기가와트)급 AI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공급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조주완 LG전자 최고경영자(CEO·사장)는 “AI 후방 산업인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수출에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있다”며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칠러뿐만 아니라 종합 냉각 솔루션까지 공급하게 되면 사업 규모가 조 단위로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냉난방공조(HVAC) 사업 매출 20조 원 목표를 조기에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LG전자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열린 ‘데이터센터 월드 아시아 2025’에서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고 있는 액체 냉각 솔루션인 ‘냉각수 분배 장치(CDU)’를 선보였다. LG전자 제공
● 중장기 전략의 결실 이번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2년 전, 조 사장은 직접 사우디의 네옴시티 전시관을 방문해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중장기 전략을 구상했다. 사우디는 AI 산업을 국가 전략으로 삼고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조 사장은 이런 흐름을 선제적으로 읽고 올해 초부터 사업 기회를 모색해 왔다.
특히 2006년 사우디에 합작법인(JV)을 세운 이래로 20여 년간 중동 공조 및 가전 시장을 함께 개척해 온 현지 파트너 셰이커 그룹과의 깊은 신뢰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셰이커 그룹 경영진은 올해 초 마곡 LG사이언스파크를 방문해 LG전자의 고효율 공기·액체 냉각 기술 포트폴리오와 테스트 시설을 시찰하고 깊은 인상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셰이커 그룹 경영진이 자신들이 속한 아부나얀 가문 내 데이터볼트의 데이터센터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겠다고 제안하면서 논의가 급물살을 탔고, 대규모 협력으로 이어졌다. 조 사장은 올해 9월 사우디의 칼리드 알팔리흐 투자부 장관과 만나 냉각 솔루션 공급 등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번 협력은 LG전자가 중동 시장에서 AI 후방 산업의 핵심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성장은 데이터센터의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수많은 고성능 칩이 뿜어내는 막대한 열을 제어하지 못하면 AI 서비스 가동이 불가능하다. 냉각 설비가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성이 커진 이유다. 시장조사기업 마켓앤마켓은 2030년 AI 데이터센터 시장이 약 1300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는 등 냉각 솔루션 시장의 잠재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 비결은 기술력과 현지화 전략 LG전자의 자신감은 세계 최고 수준의 핵심 부품 기술력, 이른바 ‘코어테크’에서 나온다. 컴프레서, 모터, 펌프, 열교환기, 인버터 등 5대 핵심 부품을 직접 개발·생산하며 쌓아온 기술력은 높은 에너지 효율과 안정성을 자랑한다. 이미 국내외 원자력발전소와 다수의 데이터센터에 칠러를 공급하며 기술력을 검증받았다. 초대형 냉방기인 칠러로 데이터센터 룸 내부를 냉각하는 공기 냉각 방식은 물론이고 고발열 부품을 직접 식히는 액체 냉각 솔루션까지 완비해 고객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다. 액체 냉각 솔루션은 고발열 부품인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에 냉각판을 부착하고 냉각수를 흘려보내 직접 열을 식히는 방식으로, 공간을 적게 차지하면서 에너지 효율이 뛰어나 차세대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철저한 현지화 전략도 LG전자가 HVAC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한 비결이다. 연구개발(R&D)부터 생산, 판매, 유지보수까지 현지에서 해결한다. 전 세계 기후와 지역별 주거 환경 차이를 세밀하게 읽고 현지 맞춤형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현재 12개의 글로벌 생산 거점에서 HVAC 제품을 생산함으로써 물류 효율성을 높이고, 각 지역의 규제와 소비자 요구에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
● 고객 맞춤형 제품 개발 한국 미국 유럽 인도 등에 위치한 R&D 센터는 각 지역의 기후 특성과 주거 환경에 맞춘 제품을 개발한다. 예컨대 미국 알래스카, 노르웨이 오슬로, 중국 하얼빈 등 한랭 지역에는 히트펌프 연구를 위한 컨소시엄을 구축했다. 주거용 히트펌프를 포함한 HVAC 주요 제품을 테스트하며 극한의 환경에서의 난방 성능과 에너지 효율 등의 데이터를 수집해 제품 개발에 적용한다.
LG전자는 이번 MOU를 발판 삼아 중동 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영토 확장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미국 내 하이퍼스케일 데이터센터와 냉각 솔루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구글 등 빅테크와도 협력을 확대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에 냉각 솔루션 공급을 위한 인증 절차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미래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고객 맞춤형 솔루션을 테스트하기 위해 경기 평택 칠러 공장에 AI 데이터센터 전용 테스트베드를 구축했다. 또한 창원대에 약 500억 원을 투자해 2027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HVAC 연구센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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