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산업이 안전성이라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했다. 전기차 충전 중 화재, 항공기 내 보조배터리 발화 등 사고가 잇따르며 화재에 안전한 배터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전기차·ESS·로봇·드론 등 전방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가운데 안전성 확보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로 떠올랐다.
업계는 기존의 인화성 액체 전해질을 고체로 대체한 전고체 배터리를 근본적 해법으로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에 따르면 전고체 배터리 시장은 2025년 약 2GWh(기가와트시)에서 2035년 500GWh 규모로 성장하고 금액 기준 약 7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가운데 국내 기술형 벤처기업 자인에너지㈜가 독자 개발한 ‘자기 소화성 고체 전해질’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자인에너지㈜가 개발한 전고체 고분자 전해질 및 전해액 제품군
20년 연구 축적된 고분자 고체 전해질 기술 자인에너지는 2022년 충북 청주 오창에 설립한 리튬 기반 차세대 배터리 소재 및 셀 기술 기업이다. 설립 시점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기술의 출발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자인 이주영 회장은 리튬 배터리용 고분자 고체 전해질과 전해질 첨가제 연구를 오랜 기간 이어왔으며 2014년 자인케미칼 설립을 통해 소재 사업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이주현 대표와 함께 고체 배터리 셀과 고체 전해질 소재 상용화를 위해 자인에너지를 출범시켰다. 20여 년간 축적된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자인에너지는 독자적인 전해질 원천 기술을 확보했다.
핵심은 음이온 수용체 기반 자기 소화성 고분자 고체 전해질 ‘Z-ARPE’ 기술이다. 이 소재는 고체 상태에서도 상온 기준 2∼4㎳/㎝ 수준의 이온전도도를 확보하면서 4.7V 이상의 전기화학적 안정성과 300도 이상의 고온 안정성을 동시에 구현했다. 화재 발생 시 불이 쉽게 확산되지 않고 스스로 소화되는 난연·자기 소화 특성도 갖췄다.
특히 액상 형태로 주입한 뒤 50∼60도에서 고체화되는 공정 특성 덕분에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제조 공정과의 호환성과 상용성도 높다. 현재 국내 등록 특허 6건, 해외 출원 15건을 보유하고 있다.
자인에너지㈜ 연구개발실 내부 전경
기존 생산 라인 활용… 비용과 공정 부담 최소화 현재 전고체 배터리 시장에서는 황화물계 전해질이 주류로 꼽힌다. 높은 이온전도도를 바탕으로 성능 면에서 강점을 갖지만 습기에 노출될 경우 독성 가스가 발생할 수 있고 전극과의 밀착도를 확보하기 위한 고압 공정이 필요해 제조 비용과 공정 복잡도가 높아진다.
자인에너지의 고분자 전해질 기술은 이러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고압 공정 없이도 안정적인 전극·전해질 간 계면 형성이 가능하며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생산 라인을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설비투자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다. 파우치형·원통형·각형 등 다양한 배터리 형태에 적용 가능해 활용 범위도 넓다.
자인에너지는 소재 공급에 그치지 않고 직접 셀을 제작해 기술을 검증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20㎃h(밀리암페어시)급 초박형 고체배터리 셀부터 50Ah(암페어시)급 대용량 셀까지 자체 시제품 구현을 완료했다. 20㎃h 초박형 셀은 150도 고온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작동을 확인했으며 5Ah급 고체배터리 셀은 못 관통 및 절단 시험에서도 발화 없이 작동을 유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한편 파일럿 인프라 수준에서도 안전성이 확보된 고체배터리 셀이 구현된 점은 고분자 고체 전해질 기술의 양산 적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전시회에 참가한 자인에너지 부스 전경
글로벌 테스트 진행… 공급망 진입 본격화 기술력에 대한 시장 반응도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 OEM 업체들이 자인에너지의 전해질과 셀에 대해 자체 비용으로 평가를 진행하며 기존 생산 공정과의 호환성을 직접 검증하고 있다. 수요 맞춤형 고체배터리 셀에 대한 요구도 늘어나며 생산 규모 확대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다.
자인에너지는 올해 20㎃h급 초박형 고체배터리 셀, 5Ah급 인체 밀착형 에너지 저장장치용 고안전성 고체배터리 셀, 8Ah급 소형 드론용 배터리 셀 제품 공급을 시작할 계획이다. 수주 물량을 기반으로 단계적으로 ㎿h(메가와트시) 규모의 공급 능력을 확보하고 이후 중대형 배터리 시장과 글로벌 전해질 소재 공급망으로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장기적으로는 2029∼2030년 IPO(기업공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소재 국산화와 상용화를 동시에 추진하며 국내 배터리 산업에서 기술 중소기업의 새로운 성장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가다.
“고분자 전해질 혁신으로 전고체 배터리 시대 선도”
이주현 자인에너지㈜ 대표 인터뷰
“글로벌 혁신 기업들도 처음부터 대기업이었던 경우는 없습니다. 대부분 작은 공간과 제한된 자원에서 시작해 기술과 제품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주현 대표는 자인에너지의 도전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 대기업 역시 창업주의 결단과 의지에서 출발했듯 실질적인 혁신은 작은 조직에서 더 빠르고 과감하게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다.
배터리 소재 분야는 대기업 중심의 공급망 구조가 강해 스타트업이 진입하기 쉽지 않다. 이 대표도 그 장벽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럼에도 그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중소기업이 규모의 경제로 대기업을 따라잡기는 어렵지만 차별화된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는 믿음이다. 자인에너지가 창업자 이주영 박사의 기술과 의지에서 출발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 대표가 내세우는 핵심 강점은 기존 리튬이온배터리 제조 라인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안전성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제조사 입장에서는 추가 설비 투자 없이 성능과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지금 자인에너지에 중요한 것은 기술을 시장에 선보이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틈새시장을 시작으로 고체배터리 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생산 규모·품질·가격 경쟁력을 점진적으로 갖춰 상용화를 완성해 나간다는 구상이다. “대한민국에서 개발된 원천 소재 기술로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강소기업이 되는 것, 그것이 자인에너지가 반드시 실현하고자 하는 방향입니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인기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