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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왕 록펠러(J. D. Rockefeller)와 철도왕 밴더빌트(C. Vanderbilt)

250호 (2018년 6월 Issue 1)

박영택 박영택
박영택
- (현) 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과 교수
- 성균관대 산학협력단 단장
- 영국 맨체스터경영대학원 명예객원교수
- 중국 칭화대 경제관리대학 객원교수

ytpark@skku.edu
석유왕 록펠러(J. D. Rockefeller)와 철도왕 밴더빌트(C. Vanderbilt)

록펠러는 사업의 성공 여부가 물류비용을 얼마나 낮추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인수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운 후 철도왕으로 불리던 코넬리어스 밴더빌트(Cornelius Vanderbilt)에게 운송 독점권을 주는 대신 운임을 대폭 낮췄다. 록펠러의 생산능력이 밴더빌트의 수송능력을 넘어서자 그 틈새를 밴더빌트의 경쟁자 토머스 스콧(Thomas A. Scott)이 치고 들어왔다. 스콧이 운영하던 펜실베이니아 철도회사는 밴더빌트보다 더 좋은 조건을 록펠러에게 제시했다. 밴더빌트는 이러한 출혈경쟁이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고 보고 스콧을 설득해 공동으로 운임을 대폭 인상했다.

록펠러는 이러한 담합을 자신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사업의 명운을 건 건곤일척의 승부를 선택한다. 석유를 수송할 다른 대안을 찾기로 한 것. 만약 그 방법을 찾지 못하면 사업을 접어야 할 만큼 대체 수단을 찾는 것이 절박했다. 정유공장 내에서 기름이 파이프로 이동되는 것을 본 록펠러는 파이프를 이용해 장거리 수송을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충분한 양의 석유를 수송하기 위해 큰 직경의 송유관을 장장 640㎞나 연결했다. 송유관을 설치하기 전에는 철도가 미국의 최대 산업이었지만 전체 수송물량의 40%를 차지하던 록펠러의 물량이 사라지자 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진다. 철도왕 밴더빌트는 최고 부자 자리를 록펠러에게 넘겨주고 눈을 감았으며 스콧은 이후 재기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