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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신속성, 유연성, 투명성의 지혜

김현진 | 392호 (2024년 5월 Issue 1)
2024년 4월 3일, 대만을 엄습한 7.2 규모의 강진 사태를 둘러싸고 흥미로운 현상이 목격됐습니다. 사고 관련 외신 보도 분석 결과, 가장 큰 연관 검색어가 ‘TSMC’였던 겁니다. TSMC는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로 인공지능(AI) 열풍에 수요가 급증한 엔디비아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글로벌 최첨단 칩의 80∼90%가량을 생산합니다. 내진 설계 덕에 웨이퍼 팹(fab·반도체 생산공장)이 사흘 만에 복구돼 큰 혼란이 빚어지진 않았지만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이 업체의 생산 기지가 파괴되고 연계된 공급망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쳤다면 그 여파는 어땠을까요. 블룸버그통신 등이 ‘TSMC 붕괴가 끼칠 영향은 세계 대공황 상황과 유사할 것’이라며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낸 것만 봐도 그 결과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대만 지진 사태는 공급망과 관련된 세계 경제계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딜로이트는 ‘글로벌 공급망 리질리언스’ 보고서에서 공급망 문제의 발생 원인 중 첫 번째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팬데믹을 꼽은 바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 봉쇄와 이를 통한 원재료 수급 불안, 물류 중단, 노동력 부족 현상이 연쇄적으로 다양한 충격파를 일으켰던 사실을 기억하실 겁니다. 공급망 이슈 발생 원인 두 번째로는 지정학적 문제(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미중 갈등 등), 세 번째로는 ESG 이슈(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대응 노력, 공정성 확보 등을 포함한 새로운 비용 인상 요인)가 지목됐습니다. 세 가지 요소 모두 이제 상시적 불안 요인으로 노출된 가운데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를 위한 기업, 각국 정부 등 이해관계자들의 대응책 마련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지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AI(인공지능) 기술 등 디지털 기술이 먼저 공급망 관리에 회복탄력성을 부여하기 위한 구원투수로 등장했습니다. AI 기반 공급망 관리는 경험이나 ‘감’이 아닌 대량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확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돕습니다. AI 기술을 사용해 수학적 모델을 만드는 최적 머신러닝 기술로 공급망 관리와 관련된 의사결정 지원 솔루션을 개발한 미국 샌타클래라대,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등 공동 연구진은 과거 많은 기업이 공급망 붕괴에 대비한 전략 개발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로 ‘예측 중심의 계획’이란 접근 방식을 지목합니다. 과거 데이터, 거시경제 전망, 주관적 판단 등의 정보로 수요를 예측하는 이 방식은 계획 과정에 참여하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목표가 달라질 경우 편향된 결정이 내려지는 등 비과학적 모순을 내포합니다. 예컨대 한 기업 내에서도 영업팀은 공급량이 모자라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요 예측치를 과다 추정하려 하고, 재고관리팀은 감가상각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예측치를 과소평가한다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지표 대신 ‘절충안’이라는 왜곡된 수치가 등장할 수 있습니다.

한편 AI가 이러한 오류를 막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기술이 사전에 위기를 완벽하게 감지해줄 유일한 ‘만능키’가 될 것으로 오해하는 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정학적 이슈부터 천재지변까지 최근까지 발생하는 일련의 사건들 중 어떤 것도 완전히 예견하기 힘들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에 기업들은 ‘완벽한 예측’이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위기를 재빨리 감지하는 위기 대응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이미 상황이 발생할 경우 신속하게 대응하는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이 결국 안정된 공급망 관리를 위한 지름길이라는 지혜를 익혀야 합니다.

공급망 위기는 앞으로도 무한 반복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전문가들마저 “‘적당히’가 아닌 ‘과하다’ 할 만큼 대비하는 게 맞다”고 조언하는 공급망 관리와 관련된 인사이트를 이번 스페셜 리포트에 빼곡히 담았습니다. 신속성, 유연성, 투명성이란 키워드가 공급망 관리의 목표이자 수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리스크 대응의 지혜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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