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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파타고니아의 지속가능 경영 전략

의류업체의 이색 캠페인 “멸종을 마주하다”
빠른 길보다 지구와 함께 가는 길 택하다

이방실 | 285호 (2019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파타고니아의 지속가능 경영전략

1. 해마다 매출액의 1%를 환경단체에 기부
: 전체 직원의 20% 이상으로 구성된 ‘후원금 위원회’ 60여 개를 구성, 1000개 이상의 풀뿌리 환경단체 지원. 조직원 주도의 후원 프로세스 통해 조직 사명(mission)을 내재화.

2. 사내 임팩트 투자펀드 통해 소셜벤처 생태계 활성화
: 인내 자본(patient capital) 역할하는 ‘틴셰드벤처(Tin Shed Ventures)’ 통해 투자기업과의 동반 성장 추구. 투자처들을 파타고니아의 공급망 파트너로 전환, 소셜임팩트 극대화 추구.

3. 식품사업 진출해 적극적인 기후변화 대응 모색
: 파타고니아 프로비전(Patagonia Provisions) 통해 연어, 육포, 맥주 등 다양한 상품 판매, 재생유기농업(regenerative organic agriculture) 확산에 기여.



“멸종을 마주하다(Facing Extinction).”

기후변화의 위협으로 전 세계가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경고하는 문구다. ‘비영리’ 환경단체의 계몽운동 홍보 문구로나 어울릴 법한 이 슬로건을 내세운 주인공은 특이하게도 ‘영리’ 기업. 바로 친환경 아웃도어 의류 브랜드로 유명한 파타고니아(Patagonia)다.

파타고니아는 사업 초창기부터 끊임없이 환경보호와 자연 보전 활동에 앞장서 온 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본사 위치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벤투라(Ventura). 해안을 끼고 있는 경관이 수려한 곳으로, 심지어 파타고니아 본사에서 400m 정도만 걸어가면 유명한 서핑 포인트(surfing point)가 있을 정도다. 파타고니아 직원들 중엔 이 같은 입지 조건을 적극 활용, 출근 전이나 점심시간을 이용해 서핑을 하고 오는 이들이 꽤 있다.

그저 날씨 좋고 살기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편안한 일상을 보낼 것만 같은 이들이지만 지난 9월19일 새롭게 론칭한 캠페인 슬로건에서도 느껴지듯 환경보호에 대한 파타고니아의 태도는 사뭇 공격적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류가 직면해 있는 기후변화의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이다(빈센트 스탠리 파타고니아 철학 디렉터·Vincent Stanley, Director of Patagonia Philosophy).” 실제로 캘리포니아 지역은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아 극심한 가뭄과 허리케인, 산불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기자가 파타고니아 본사 취재 차 방문했던 기간 중인 지난달 10일에도 LA 최북단 지역인 실마의 샌페르난도 계곡 근처에서 산불이 발생해 한동안 주변 도로가 차단됐었다.

대개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을 피부로 느끼며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는 주체는 민간 기업이라기보다는 일반 시민들이다. 단적인 예로 지난 9월20일부터 약 일주일간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된 ‘글로벌 기후 파업(global climate strike)’엔 청소년 활동가들(youth activists)과 시민 수백만 명이 참여했다.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 위해 등교와 출근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와 피켓을 든 것. 독특하게도 파타고니아는 이 운동에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멸종을 마주하다”라는 슬로건하에 전 세계 2500여 명의 파타고니아 직원이 하루 동안 사무실과 매장 문을 닫고 거리로 나가 각 나라 청소년 활동가들과 연대했다. 또한 이들 각각의 얼굴이 찍힌 사진 및 영상을 가지고 홍보물을 만들어 지면·옥외 광고, 파타고니아 웹사이트 및 소셜미디어 플랫폼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적극 알렸다. 전 세계 시민들을 대상으로 환경 위기에 맞서 싸워야 할 필요성과 기후변화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기후 문제와 관련한 파타고니아의 독특한 행보는 이뿐이 아니다.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로즈 마카리오(Rose Marcario)는 지난해 11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기업 감세 정책으로 절세한 1000만 달러를 “무책임한 세금 감면액(irresponsible tax cut)”이라 비난하며 “1000만 달러 전액을 대기·토양·수자원을 보호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헌신하는 전 세계 풀뿌리 환경 단체에 지원하겠다”고 밝혔다.1 책임을 다하는 기업(responsible company)이 되려면 응당 성장에 비례해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그 세금은 사회의 안녕과 건강을 위해 사용돼야 하는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외면함으로써 지구의 건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파타고니아가 지난해 새롭게 발표한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보면 더욱 흥미롭다. 마치 지구를 지키겠다고 나서는 슈퍼 히어로 군단 ‘어벤져스(Avengers)’나 된 듯 “우리는 우리의 터전, 지구를 되살리기 위해 사업을 한다(We’re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고 공공연히 선언했다.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기존 사명 선언문에도 환경 중시 철학이 반영돼 있었지만 새로운 사명은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환경운동에 대한 헌신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사업 초창기부터 환경을 최우선 순위에 둬 왔던 파타고니아는 최근 UN환경계획(UNEP)으로부터 환경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2019 지구환경대상(2019 Champions of the Earth Award)’의 ‘기업가 비전(Entrepreneurial Vision)’ 부문 수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민간 기업이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 손실 및 인간과 지구 건강의 위협에 어떻게 맞서 싸울 수 있는가에 대한 모범을 보였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환경보호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실천해 나가고 있는 파타고니아의 전략을 살펴보기 위해 동아비즈니스리뷰(DBR)가 미국 파타고니아 본사를 직접 방문했다. 임직원 인터뷰를 통해 환경을 중심에 두는 비즈니스를 영위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집중 분석했다.


DBR mini box I: 파타고니아 회사 개요


파타고니아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는 2013년 5월 파타고니아의 조직 체계를 재편했다. 그 결과 새롭게 출범한 지주회사 파타고니아웍스(Patagonia Works) 아래 의류 회사인 파타고니아(Patagonia Inc.), 식품 사업을 담당하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Patagonia Provisions), 서핑보드 업체인 플레처쉬나드디자인(Fletcher Chouinard Designs) 등 각각의 사업 회사가 있는 형태로 지배구조가 바뀌었다.

의류 회사인 파타고니아가 지금처럼 친환경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건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다. 무리한 확장 정책을 펼치다
1991년 위기에 봉착했고, 이는 쉬나드를 포함한 경영진이 파타고니아의 사업 목적과 존재 이유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 계기가 됐다. “우리는 최고의 제품을 만들되 불필요한 환경 피해를 유발하지 않으며, 환경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는 첫 번째 사명 선언문을 공식화하게 된 계기다.

이후 파타고니아는 1993년 플라스틱 빈 병을 재활용해 신칠라(인조 양모) 재킷을 만들어 내놓았고, 1996년엔 모든 면제품을 100%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면직물로 대체했다. 또한,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제품 재사용(reuse)과 수선(repair), 소비 감소(reduce)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전개했다.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중고 의류를 판매하기 시작했고, 네바다주 리노(Reno)에 있는 수선센터를 북미 최대 규모로 증설했으며, 신문에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라는 제하의 광고까지 내보내며 과도한 소비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2007년부터는 파타고니아가 사업을 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 물 사용 등을 통해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공급망 단계별로 꼼꼼히 추적해 기록하는 ‘발자국 기록(Footprint Chronicles)’ 활동도 펼치고 있다.



1.‘연간 매출액 1%’ 환경단체 기부금, 자선활동 아닌 비즈니스 모델

미국 캘리포니아주 벤투라에 본사를 둔 파타고니아는 1973년 설립됐다. 창업자는 암벽 등반가 겸 환경 운동가인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 1960년대 주한 미군 부대 소속 군인으로 잠시 한국에 있을 때도 틈만 나면 북한산 인수봉에 올랐던 산사나이다. 그가 북한산에 개발해 놓은 등반 코스 두 개는 아직도 ‘쉬나드 A길’ ‘쉬나드 B길’이라고 불린다.

전문 산악인답게 처음 쉬나드가 손을 댔던 사업 분야는 등산 장비였다. 1957년 쉬나드장비(Chouinard Equipment)라는 이름으로 암벽 등반용 쇠못인 강철 피톤(piton)을 만들어 팔았다. 그러다 피톤을 암벽에 박고 빼는 과정에서 산이 파괴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1971년 피톤 대신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2 을 할 수 있는 알루미늄 너트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등산복 장사가 이윤이 박한 등산 장비 사업을 보완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보고 1973년 파타고니아를 세우며 의류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세계적인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지만 파타고니아는 아직까지도 쉬나드 가족들 소유의 비상장 회사다. 베네핏코퍼레이션(benefit corporation)으로서 연간 사업보고서를 발간하긴 하지만 매출액과 영업이익에 대한 공식 발표는 없다. 하지만 회사에서 공개하는 다른 지표를 통해 파타고니아의 연간 매출액을 추산할 수는 있다. 바로 이들이 해마다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후원금액을 통해서다.



파타고니아는 ‘지구를 위한 1%(1% for the Planet)’3 를 만든 회사답게 해마다 매출액의 1%를 풀뿌리 환경단체에 기부해 오고 있다. 이미 2017년 회계연도(2016년 5월1일∼2017년 4월30일)부터 이 금액이 1000만 달러(약 115억 원)를 넘어섰다. 이를 역산해 보면 파타고니아의 연간 매출액 추정치는 약 10억 달러(약 1조1500억 원)다.

파타고니아는 이 돈을 ‘지구세(earth tax)’라고 부른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일으킨 환경오염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2018년 회계연도 기준 파타고니아의 지구세 수혜를 받은 환경 단체 수는 1082개. 지원하는 단체 수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대형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대신 지역 기반으로 활동하는 소규모 풀뿌리 환경단체에 지원하는 걸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처럼 매출액의 상당액을 비영리조직(NPO)에 기부하는 곳은 많다. 당장 지구를 위한 1%에 가입한 멤버 수만 따져도 현재 40여 개 국가에서 1400여 개가 넘는다. 하지만 파타고니아처럼 한 기업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환경 단체를 후원하는 곳은 흔치 않다. 지원하는 단체 수가 많으면 관리하는 입장에서 그만큼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파타고니아는 이런 ‘비효율적인 방식’을 수십 년째 고집하고 있다.

심지어 더 놀라운 사실은 이 후원금 지원 프로세스에 관여하는 파타고니아 직원들의 수다. 기본적으로 파타고니아는 직원들로 구성된 ‘후원금 위원회(grants council)’를 통해 지역·이슈·부서별로 지구세의 혜택을 받을 환경단체를 선정하는데, 2018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총 550명의 직원이 이 프로세스에 참여했다. 이는 18개 국가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파타고니아 전체 직원 수의 20%를 훌쩍 넘는 규모다. 2019년 10월 기준 파타고니아에 조성돼 있는 후원금 위원회 수는 63개에 달한다. 각 위원회는 10명 안팎의 인원으로 구성되며 모든 멤버는 직원 간 추천에 의해 결정된다. 통상 2년의 임기 동안 후원금 위원회 멤버로 뽑힌 직원들이 지원금 프로세스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은 연간 120시간(2016년 회계연도 기준)이다. 상당한 투자가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해 파타고니아 환경운동(Environmental Activism) 부문 부사장인 리사 파이크(Lisa Pike)는 “조직원들과 하나가 돼 기업 사명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비즈니스의 핵심”이라며 “지구세는 자선활동이 아닌 파타고니아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사업도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직원들과 기업의 사명을 일치시키는 것만큼 비즈니스에서 근간이 되는 건 없다는 설명이다.

많은 경우 기업이 환경단체 같은 NPO를 지원할 때는 CEO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는 특정 단체를 후원하거나 사회공헌 담당 부서 직원들끼리 논의해 몇몇 대형 단체에 지원금을 배분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이런 관행은 관리 측면에서 ‘효율적’이긴 하지만 사회공헌 활동이 대다수 조직원의 일상 업무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구조를 만든다.

파타고니아가 일하는 방식은 다르다. 평직원부터 관리자까지 직급과 부서를 막론하고 구성된 후원금 위원회 멤버들을 중심으로 모든 프로세스가 진행된다. 이를 통해 파타고니아는 회사가 추구하는 환경보호 미션이 전사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본 쉬나드의 조카로, 그와 함께 『리스판서블 컴퍼니, 파타고니아』를 공동 집필한 빈센트 스탠리가 “파타고니아 직원들은 환경운동, 제품개발, 재무회계 등 부서를 막론한 모두가 각자의 일상 업무에서 자연 보전과 환경보호를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늘 고민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유다.

후원금 위원회를 통한 환경단체 지원 방식은 파타고니아가 환경주의 DNA를 조직문화로 내재화시키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직원이 주축이 돼 자신이 열정을 갖고 있는 환경 이슈에 대해 직접 검토하고 관련자들과 직접 교류하는 방식이야말로 환경을 중시하는 파타고니아의 사명을 사원들이 잘 이해하고 실천해 나가도록 유도하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리사 파이크).” 파타고니아가 극도의 비효율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십여 개의 후원금 위원회를 운영하며 1000개가 넘는 환경단체를 지원하는 이유다.

이뿐 아니다. 파타고니아에선 직원들에게 환경운동을 적극 권장한다. 지난 9월 전사적 차원에서 회사 문을 닫고 거리로 나간 것과 같은 사례 외에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환경단체의 활동이나 관심 있는 환경 문제와 관련된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건 언제든지 용인된다. 심지어 비폭력 평화 시위를 하다 잡혀가면 회사에서 보석금을 대신 내 줄 정도다. 회사 업무에 지장을 줬다고 손가락질하기보다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신념에 헌신하는 용기에 기립 박수를 보낸다. 조직문화가 이렇다 보니 해마다 수백 명의 직원이 환경단체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 2018년 회계연도의 경우 총 547명의 직원이 1만7316시간 동안 각자 자신이 지지하는 환경단체의 봉사 활동에 참여했다. 스탠리는 “사명 선언문을 발표해 놓고 실제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많은 기업과 달리 파타고니아는 이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 왔다”며 “사명을 현실 비즈니스에서 구현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온 결과 지금과 같은 수준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DBR Mini Box ‘파타고니아 회사 개요’ 참고.)



2. 사내 임팩트 투자펀드 ‘틴셰드벤처’

1985년 이래 지금까지 총 1억 달러 넘게 풀뿌리 환경단체에 지원해 온 파타고니아는 6년 전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지구세라는 후원금을 통해 환경단체 생태계의 발전을 위해 힘써 온 데서 진일보해 ‘2000만 달러와 변화($20 Million and Change)’라는 사내 투자펀드를 만들어 환경 분야 소셜 벤처 생태계 활성화에 나서기로 한 것. 이 펀드는 2016년 투자 포트폴리오 규모가 2000만 달러를 훌쩍 넘어가게 되면서 틴셰드벤처(Tin Shed Ventures)로 명칭이 바뀌었다. 쉬나드의 초기 창업정신을 기리기 위해 이본 쉬나드가 등산용품을 만들던 공간인 함석(tin) 헛간(shed)에서 이름을 따 왔다.

틴셰드벤처는 지원 대상만 ‘비영리’ 환경단체에서 ‘영리’ 기업으로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 지구세와 같은 철학을 갖고 있다. 환경 위기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며 파타고니아와 같은 경영 철학을 공유하는 스타트업에 ‘인내 자본(patient capital)’ 역할을 해줌으로써 이들이 미션을 흔들림 없이 지켜가면서 규모 확대(scale-up, 스케일업)를 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목표다. 이를 통해, 환경운동뿐 아니라 비즈니스 역시 건강한 지구를 위한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엔진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포부다.

특히, 파타고니아는 틴셰드벤처 투자처들을 파타고니아의 협력사로 자사 공급망에 통합함으로써 소셜 벤처와 파타고니아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상생 모델을 추구한다. 이 과정에서 작은 스타트업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피벗(pivot)해 효과적으로 스케일업 전략을 추구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여들(Yerdle)과 부레오(Bureo)다.



1.여들

파타고니아는 지난 2013년 ‘고쳐서 오래오래 입으세요(Worn Wear)’라는 전사 캠페인을 시작했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자꾸 새 옷을 사지 말고 가급적 고쳐서 오래오래 입어 제품, 더 나아가 환경에 대해 책임감 있는 시민이 되도록 고객들에게 영감을 주자는 취지로 기획된 캠페인이다. 이즈음에 틴셰드벤처의 레이다망에 들어 온 스타트업이 바로 여들이다.

여들은 월마트와 사치&사치에서 각각 최고지속가능책임자(CSO)를 역임했던 앤디 루벤(Andy Ruben)과 애덤 웰바크(Adam Werbach), 집카 창립 멤버였던 칼 타시안(Carl Tashian) 등이 2012년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초창기 비즈니스 모델은 사용자 간 중고품 교환 플랫폼으로, 이베이와 페이스북이 혼합된 형태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회원 가입을 하면 사용자에게 여들 플랫폼에서만 쓸 수 있는 일종의 가상 화폐 ‘여들달러(Yerdle Dollars)’를 줘서 다른 사용자들이 플랫폼에 올려놓은 중고 물품을 살 수 있도록 했다. 실물 화폐로는 거래가 불가능한 구조여서 추가로 여들 달러를 확보하고 싶으면 자신이 더 이상 쓰지 않는 물품을 사진과 함께 등록해 다른 사람이 해당 상품을 사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2014년 틴셰드벤처는 중고 물품 재활용을 통해 낭비되는 자원을 절약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여들에 투자를 결정했다. 이어 파타고니아는 여들과 손잡고 그해 11월28일 블랙프라이데이를 겨냥한 특별 이벤트(Worn Wear Swap)를 진행했다. 미국 최대의 쇼핑 축제일을 맞아 대대적인 할인 프로모션을 벌이며 소비를 부추기는 여타 업체와 달리 과도한 소비에 제동을 거는 이벤트였다. 파타고니아 고객들이 보스턴, 시카고, 덴버, 뉴욕, 포틀랜드, 샌프란시스코, 산타모니카, 카디프 등 8개 지역 매장으로 입던 옷을 가지고 오면 다른 제품으로 바꿔 갈 수 있게 했다. 이때, 자신이 입던 옷과 바꿔 갈 만한 제품을 매장에서 찾지 못한 고객들에겐 여들 달러로 보상, 여들 플랫폼에서 원하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지역적 이유로 직접 매장에 오지 못하는 소비자들 역시 여들을 활용해 이벤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한 건 물론이다.

이후 파타고니아는 단순 일회성 이벤트를 넘어 지속적으로 중고품 거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여들과 긴밀히 협력했다. 이 과정에서 여들은 자체 브랜드로 직접 플랫폼을 운영하던 기존 사업 모델 대신, 다른 의류 업체들에 화이트 라벨(white label)4 방식으로 리커머스(recommerce)5 플랫폼을 제공하는 형태로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바꿨다. 이어 여들은 2017년부터 파타고니아의 ‘고쳐서 오래오래 입으세요’ 온라인 리커머스 플랫폼(wornwear.patagonia.com)을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보기엔 파타고니아에서 진행하는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실제 기술 지원과 프로그램 관리 및 물류 지원은 여들이 맡아 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입장에선 직접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물류창고를 운영해야 하는 부담 없이 고객들에게 리커머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여들과의 협력으로 파타고니아의 보상 판매 중고 제품 수는 1년 새(2017년 회계연도 vs. 2018년 회계연도) 무려 33배(2622벌 →8만5627벌)가 늘었다. 오래 입은 옷 한 벌을 매입해 되팔아서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와 물의 양이 옷 한 벌당 4.93㎏, 25리터라는 파타고니아의 발표를 감안하면, 늘어난 보상판매 결과 절약된 이산화탄소와 물의 양은 각각 409톤, 200만리터에 달한다. 두 회사 간 협력을 통해 명확한 소셜임팩트가 창출된 셈이다. 여들 역시 비즈니스 모델 전환을 계기로 사업 규모를 단숨에 확장해 나가는 데 성공했다. 현재 여들은 파타고니아 외 REI, 아일린피셔(Eileen Fisher) 등 다른 의류 기업들을 클라이언트로 확보하고 있다.



2. 부레오

부레오는 언스트앤영 컨설턴트 출신인 데이비드 스토버(David Stover, 현 부레오 CEO)와 보잉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던 케빈 아헨(Kevin Ahearn), 환경 컨설턴트 벤 키퍼스(Ben Kneppers) 등 세 명의 청년이 지난 2013년 세운 회사다. 창업자 모두 미국인이지만 사업은 칠레에서 시작했다.

맨 처음엔 플라스틱 폐어망(廢漁網)을 재활용해 스케이트보드 데크를 만들어 팔았다. 플라스틱 재활용을 통해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싶었던 창업자들은 수명을 다한 어망이 무분별하게 버려지면서 바다 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데 주목했고 칠레 어부들이 버린 어망을 리사이클링해 자체 브랜드(부레오) 제품을 만들어 파는 비즈니스 모델을 세웠다. 틴셰드벤처는 버려진 어망이라는 폐플라스틱 활용을 통해 순환경제 시스템 구축에 기여하는 부레오에 관심을 갖고 2014년 투자를 단행했다.

틴셰드벤처로부터의 투자 이후 부레오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수거되는 폐어망 규모에 비해 재활용 나일론으로 만든 스케이트보드 데크의 수요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사업 확대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레오가 자체 브랜드로 완제품을 만들어 일반 소비자들에게 파는 사업 모델에서 기업에 재활용 플라스틱 소재 ‘넷플러스(NetPlus)’를 공급하는 사업 모델로 전환한 이유다.

스토버는 “비즈니스 모델을 피벗하는 데 파타고니아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파타고니아는 스케일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레오 경영진과 틈만 나면 만나 부레오가 수거한 플라스틱 폐어망 소재를 활용해 만들 수 있는 파타고니아 제품이 무엇일지에 대해 긴밀히 논의했다. 부레오를 소재 공급 협력사로 파타고니아의 공급망 안에 끌어들일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댄 것. 그 결과 지난 2년간 부레오는 파타고니아에서 만드는 모자의 차양 부분 내장재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고 내년 1월 첫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부레오의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면서 부레오와 파타고니아 두 회사 간 관계도 더욱 긴밀해졌다. 틴셰드벤처가 부레오에 처음 투자했을 당시 파타고니아는 그저 미국 내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부레오의 스케이트보드 제품을 판매해 주는 유통 채널에 불과했다. 하지만 파타고니아 제품에 사용되는 원재료 개발 측면에서 협력을 도모하기 시작하면서 현재 두 회사는 공급망 파트너로서 동반 성장의 길을 걷고 있다. 스토버는 “대부분 벤처캐피털은 투자금 회수를 목적으로 하지만 틴셰드벤처는 어떻게 하면 사회에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 있는가를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기업과 함께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며 같이 성장하려는 틴셰드벤처가 없었다면 사업 확장에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부레오는 파타고니아 외에도 선글라스 업체인 코스타(Costa), 사무용 의자 제조업체인 휴먼스케일(Humanscale), 자건거 업체 트렉(Trek) 등 다양한 기업 고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창업 이래 2019년 9월까지 부레오가 수거한 누적 폐플라스틱 양은 515톤인데 올해에만 400톤을 수거했다. 완제품 개발이 아니라 소재 공급 업체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한 결과다. 실제 매출액도 전체의 80%가 B2B에서 창출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올해 목표 매출액은 약 100만 달러다.



3.의류 업체가 연어·육포·맥주 파는 이유

틴셰드벤처의 투자 영역은 여들과 부레오 같은 폐자원 재활용 시스템 분야 외에 지속가능 소재 기술, 물 절약 솔루션, 신재생 에너지 인프라 등 다양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탄소 배출(carbon emission)과 연관돼 있는 분야로 투자처 대다수는 파타고니아의 공급망 협력사로 연결돼 있다. 특이한 건 틴셰드벤처의 주요 투자 영역 중 하나로 식품 산업, 좀 더 정확하게는 ‘재생유기농업(ROA, regenerative organic agriculture)’6 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다. 대체 의류 회사가 왜 식품과 농업에 관심을 갖는 걸까.

쉬나드는 “다른 어떤 곳보다 가장 긴박한 환경 위기에 직면해 있는 산업이 바로 식품”7 이라고 지적한다. 현대 기술의 발전 덕택에 농축수산물의 생산성은 높아졌지만 과도한 방목과 화학비료·항생제·살충제 과다 사용, 유전자변형작물 생산 등으로 인해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붕괴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저장 기술과 운송 수단의 발달로 사람과 음식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면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역시 커져 기후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파타고니아가 식품을 통해 환경을 되살리고자 노력하는 이유다.


1.연어

파타고니아가 식품업에 처음 뛰어든 건 지난 2012년. 연어로 만든 어포(salmon jerky)가 첫 상품이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스키나강(Skeena river)에서 토착 원주민인 퍼스트네이션(First Nations) 부족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포획한 야생 연어를 가지고 만든 어포였다. 당시 ‘파타고니아 프로비전 연어 프로젝트(Patagonia Provisions Salmon Project)’로 불렸던 이 실험을 위해 쉬나드는 약 130만 달러를 투자했고, 스키나강 근처에 연어 가공 공장을 세워 어포를 만들어 미국으로 들여와 파타고니아 매장에서 판매했다.

쉬나드는 연어 생태계를 복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수질 오염, 화학물질 사용, 기생충 감염 유발 등 많은 환경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많은 ‘양식 언어’가 아니라 개체 수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소규모로 잡힌 ‘야생 연어’에 대한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환경오염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 연어를 구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포획한 연어를 원한다면, 시장은 자연히 연어를 보호하는 방식으로 모든 공급망 프로세스가 바뀌게 될 것이라고 봤다. 이를 위해선 먼저 소비자들이 접할 수 있는 야생 연어 상품이 존재해야 한다고 보고 연어포를 팔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은 2013년 전사 조직 재편을 통해 독립된 회사로 출범해 식품 사업을 본격화했다. 견과류 및 마른 과일을 주재료로 만든 푸르트바(fruit bar), 말린 보리와 채소로 만든 수프 믹스(soup mix), 메밀·보리·귀리 등 각종 곡물을 주재료로 죽처럼 끓여 먹는 핫 시리얼(hot cereal), 야생에서 방목한 버펄로로 만든 육포(buffalo jerky) 등 어디에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영양 간식과 식사 대용품으로 품목을 점점 늘려갔다.



2. 버펄로 육포

현재 파타고니아가 판매하는 여러 식품 중 2015년 출시된 버펄로 육포는 틴셰드벤처가 2015년 ROA 확산 목적으로 투자한 축산업체 와일드아이디어버펄로(Wild Idea Buffalo Company)와 협력해 만드는 상품이다. 여기서 드는 한 가지 의문. 대체 버펄로 방목이 어떻게 ROA와 관련이 있다는 걸까? 비육장(肥育場, feedlot)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전통적인 방식과 와일드아이디어버펄로의 방목 방식을 비교해보면 쉽게 수긍이 간다.

대부분 축산 농가에선 비좁은 축사에 소들을 가둬놓고 유전자 변형 옥수수를 주재료로 삼는 사료를 먹여 인위적으로 살을 찌워 도축한다. 이는 비육장에 단일 재배 사료 작물을 공급하기 위해 많은 땅을 해마다 갈아야 한다는 뜻이며, 농장에서 수확한 작물을 화석연료를 태워 가며 축사로 운반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자체로 토양 건강에 해가 되고 탄소 배출을 일으키는 프로세스인 셈이다.

반면 버펄로는 북미 대륙에 인디언들이 살았을 때부터 드넓은 대초원 지대(Great Plains)를 무리 지어 활보하던 동물이다. 1491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전, 경작지라고는 전무했던 시절의 ‘건강한 땅’에 최적화된 동물인 셈이다. 방목이다 보니 땅을 해마다 갈아엎을 이유도 없고, 목초 외 다양한 풀과 꽃이 자라날 수 있다. 여기에 들소 똥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천연 비료 역할을 한다.

물론 버펄로를 북미 대초원에서 ‘제대로’ 방목해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버펄로가 다 자랄 때까지 방목해 키우려면 2∼3년은 소요되기 때문에 목장주 입장에선 재정적 부담이 크다. 상당수 목장에서 8개월 정도만 지나면 송아지 상태로 비육장에 팔아버리는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대개 도축 시설이 비육장과 함께 붙어 있다는 점도 대부분의 버펄로가 비육장에 팔려가는 이유다. 이렇게 되면 결국 버펄로들은 일반 소처럼 사료를 먹고 뒤룩뒤룩 살이 찐 상태로 도축 시설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는 아무리 버펄로를 방목한다 한들 토양 건강을 회복시킨다는 관점에서 별 도움 될 게 없다는 뜻이다.

와일드아이디어버펄로는 이 점을 간파해 방목지인 대초원에서 버펄로를 직접 도축할 수 있는 트레일러 개발에 나섰다. 각종 기계 설비와 냉장 설비를 갖춘 트레일러 안에서 절단·박피 등 주요 공정을 진행함으로써 버펄로를 도축장으로 보낼 필요 없이 트레일러가 대평원을 돌아다니며 도축하는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한 것. 틴셰드벤처는 바로 이 과정에 투자를 진행, 와일드아이디어버펄로가 추구하는 이상적 방목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보탰다.

현재 와일드아이디어버펄로는 사우스다코다에서 버펄로 목장을 운영하며 100% 목초만을 먹여 버펄로를 키우고, 자체 개발한 이동식 도축 시스템을 통해 인도적인 방법으로 버펄로를 도축한다. 항생제나 호르몬 주사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 건 당연하다. 현재 이 회사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의 육포 제품 외에도 스테이크용 고기, 햄버거 패티, 소시지, 각종 훈제육 등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3.맥주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이 버펄로 육포 외에 ROA 장려를 목적으로 공들여 판매하고 있는 또 다른 상품이 있다. 바로 2016년 10월 오리곤주 포틀랜드 소재 양조 회사인 홉웍스어번브루어리(Hopworks Urban Brewery)와 손잡고 출시한 맥주다. 땅속으로 약 3m까지 길게 뿌리를 뻗어 내리는 다년생 개량 밀을 주원료로 사용했다는 취지에서 맥주 이름도 ‘롱루트(Long Root)’8 라고 지었다.



일반적인 밀은 단년생 작물이다. 이는 재배를 위해 해마다 밭을 갈아야 한다는 뜻으로, 표토 고갈, 토양 유실과 함께 대기 중에 방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반면 다년생 작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해마다 밭갈이를 할 필요가 없어 토양 침식은 물론 경운 작업에서 수반되는 탄소 배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뿌리도 몇 년 동안 땅에서 계속 자랄 수 있으니 토양을 건강하고 비옥하게 만드는 이로운 미생물을 번성시키는 데도 효과적이다. 미국 토지연구소(Land Institute)가 토양의 건강 회복을 위해 다년생 밀 품종 ‘컨자(Kernza)’를 개발하게 된 배경이다.

토지연구소에 따르면 컨자는 살충제 없이도 잘 자라고 뿌리를 통해 영양분이나 물을 모으는 기능이 뛰어나 생육에 필요로 하는 물이나 비료 사용량이 적다. 더욱이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 나가는 특성 덕택에 상당량의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격리(carbon sequestration)할 수 있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는 작물로 평가받는다. 이런 작물에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이 관심을 갖게 된 건 당연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품종이 개발된 지 꽤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컨자를 재배하는 농가는 거의 없었다. 상업화를 위한 여러 가지 제약 탓이었다. 일반적인 밀의 가장 큰 특징은 재배하는 데 기후 제약이 적다는 점이다. 반면 컨자는 미네소타주처럼 북미 지역 중에서도 서늘하고 추운 북쪽 지역에 적합하게 개량된 품종이라 따뜻하거나 비가 많은 지역에서 재배하기 어렵다. 알갱이 크기가 기존 밀알 크기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제분시설 장비는 모두 기존 밀알 크기에 맞춰져 있어서 그보다 훨씬 작은 컨자를 빻아 가루로 만들려면 새로운 장비 투자를 해야만 했다. 재배 농가도 많지 않고 판매처도 없는 상태에서 선투자에 나설 제분소는 없는 법. 컨자가 개발 후에도 상당 기간 시장의 빛을 보지 못한 채 토지연구소의 실험실에만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런 컨자의 상업화에 물꼬를 튼 게 바로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이다. 아직 상용화에 어려움이 많은 컨자를 원료로 맥주 신제품을 만들어 시장 개척에 나선 것. 전 세계에서 옥수수 다음으로 생산량이 많은 밀을 여러해살이 작물로 재배할 수 있다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신념하에 리스크를 떠안은 것이다.

현재 롱루트 맥주는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오리건 및 워싱턴 등 일부 지역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판매처는 홀푸드(Whole Foods Market), 굿어스내추럴푸드(Good Earth Natural Foods) 같은 식료품 매장과 지역 술집 등이다. 아직까지는 생산 규모가 소량이라 전국 단위 판매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컨자의 상업화 가능성을 입증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건 분명하다.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은 롱루트 맥주를 통해 단년생 작물 대비 다년생 작물의 가치를 계속 알리며 ROA 화두를 지속적으로 던진다는 계획이다.



마무리

스탠리는 “의류업과 식품업은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환경오염 산업”이라며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고 깨끗한 옷, 깨끗한 식품을 만드는 일이 깨끗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하나도 버거운 환경오염 산업을 두 개나 동시에 추진하면서 ‘지구 지킴이’로서의 사명을 다하는 일이 그만큼 어렵고 도전적이라는 걸 넌지시 내비친 말이다.

실제로 새롭게 진출한 식품업에서 파타고니아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가령, 파타고니아가 최초로 내놓은 식품인 연어로 만든 어포는 현재 판매가 중단된 상태로, 새로운 레서피를 만들기 위해 연구 중이다. 틴셰드벤처의 초창기 투자처 중 하나인 워싱턴주 소재 연어 가공업체 스위노미시 피시컴퍼니(Swinomish Fish Company)는 2016년 폐업했다.

그럼에도 파타고니아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과 틴셰드라는 두 축을 통해 ROA를 확산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서 기울이고 있다. 파타고니아가 지난해 새로이 발표한 사명을 실현해 나가는 데 있어 ROA가 그만큼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스탠리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의 제품 개발 원칙은 소비자들이 뭘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현재 농업이 직면해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떤 제품이 필요한가부터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앞서 언급한 버펄로 육포와 롱루트 맥주 모두 이런 맥락에서 탄생된 제품들이다. 그는 “제품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는 접근은 정부나 NPO보다 기업이 정말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며 “비즈니스를 이용해 지구 환경을 되살리는 것이야말로 파타고니아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밝혔다.

현재 파타고니아는 유기농 생활용품 업체인 닥터브로너스(Dr. Bronner’s), 유기농업 연구기관인 로데일연구소(Rodale Institute) 등 ROA 확산에 뜻을 같이하는 기업 및 연구소들과 함께 재생유기농업연합(Regenerative Organic Alliance)을 결성하고 재생유기농업 인증(Regenerative Organic Certification) 기준을 개발 중에 있다. 현재 20여 개 농가 및 업체들을 대상으로 파일럿 테스트를 진행 중으로, 오는 2020년까지 객관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인증 기준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벤투라=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DBR mini box II : 파타고니아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특징
“화려한 네온사인 끄고, 소비자에게 안내등 역할을”


모든 브랜드는 발광(發光)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브랜드는 기껏해야 네온사인의 발광 정도로 그친다. 네온사인 정도의 빛을 내는 데 성공했을지라도 그 정도의 빛으로는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이상 이끌어내지 못한다. 도시의 사람들은 거리에서 쉴 새 없이 반짝거리는 브랜드들을 단지 시선을 자극하는 빛의 공해로 여길 뿐이다. 사람들이 브랜드의 발광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들이 빛을 발하는 목적이 대부분 자기 과시와 자기 주목에서 그치는 경쟁적 발광(發狂)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아서다. 이러한 브랜드의 발광 공해 속에 파타고니아는 사람들에게 특별히 사랑받고 주목받고 빛나는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파타고니아의 발광(發光) 활동은 매우 특별하다. 파타고니아는 자신을 비추기 위해 빛을 발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가 발하는 빛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곳을 비춘다. 그곳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어떤 세상이다. 그들이 발현하고 있는 빛은 사람들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떤 방법으로 그곳에 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안내등(guiding light)이다. 보통의 브랜드가 자신을 주목하라고 쉴 새 없이 깜박이는 네온사인과 같다면 파타고니아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와도 같다. 자원을 사용하기 때문에 환경을 파괴할 수 밖에 없는 소비자에게 더 나은 소비에 대한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에 대한 경쟁력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에게 어떤 매력과 장점, 특징이 있는지 자신의 경쟁력에 대해 말하는 대신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이고, 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앞으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현실은 어떠한지, 꿈꾸어야 할 세상은 어떤 세상인지, 그런 세상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오늘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외치며, 그러한 세상을 함께 만들자고, 그 여정을 함께 가자고 사람들을 초대한다. 파타고니아 브랜드는 브랜드 목적이 곧 브랜드 콘셉트가 되고, 마케팅 전략은 브랜드 목적을 실현하는 행동 지침이며, 크리에이티브는 브랜드 목적을 쉽게 소통하는 활동일 뿐이다. 브랜드 목적으로 모든 마케팅의 전략과 전술이 통합되고 독립된다.

전통적 마케팅의 모든 문법은 경쟁 이데올로기를 기반으로 한 규율이다. 경쟁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는 마케팅이란 영토의 전쟁이며, 커뮤니케이션이란 인식을 끌어내기 위한 주목 싸움이며, 브랜드란 마케팅 활동을 위해 필요한 상징과 기호의 도구로서만 기능한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내기 위한 필수 요건은 규모와 자원이다. 경쟁의 관점에서의 마케팅 활동은 항상 상대보다 더 크게 말해야 하고, 더 크게 보이게 해야 하고, 더 크게 경험되게 해야 하는 규모와 자원의 법칙에 의존한다. 그러나 현대 소비자, 특히 새로운 핵심 소비자 그룹인 다음 세대들은 규모의 전쟁에서의 핵심 가치인 ‘크기’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광고 대행사 하바스(Havas)가 2019년 초에 실행한 소비자 조사에 의하면 사람들은 시장의 브랜드 중 77%는 내일 당장 없어져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여기고 있다. 특히 밀레니얼세대들은 92%의 브랜드가 자신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대답했다. 결국, 경쟁의 관점에서만 기능하는 전통적 마케팅의 문법은 더 이상 소비자와 결속의 관계를 이뤄내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러한 ‘불임’의 마케팅 환경에서, 파타고니아가 브랜드로서 관계 구축에 성공하고 있는 이유는 브랜드의 핵심인 도전과 저항 정신에 있다. 시장은 주로 ‘선두 브랜드(leader brand)’와 리더를 따라잡고자 하는 ‘추종자 브랜드들(follower brands)’로 형성돼 있다. 선두가 되지 못한 브랜드들은 대부분 선두 브랜드를 흉내냄으로써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가끔 시장에는 선두 브랜드도 아니고 추종자 브랜드도 아닌, 그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독불장군’ 같은 그룹이 있다. 이들 브랜드는 선두 브랜드를 이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자신의 자기다움에만 관심이 있다. 이들이 저항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상대는 선두 브랜드가 아니라 현재의 선두 브랜드가 선두의 자리를 차지하는 구조, 소비자의 생각, 시장의 관습이다. 이러한 브랜드를 가리켜 ‘도전하는 브랜드(challenger brand)’라고 말할 수 있다.

도전하는 브랜드는 특별한 개념이 아니다. 브랜드가 탄생하는 존재의 이유는 세상의 결핍에 대한 문제 해결의 약속이다. 그 약속은 어떤 것에 대한 도전과 저항을 담고 있다. 그 도전과 저항을 위해 브랜드는 자기 독립을 위해 독립을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 저항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파타고니아는 도전하는 브랜드의 가장 확실한 모델이다.

2017년 12월 4일 밤, 파타고니아 웹사이트를 방문한 사람들은 파타고니아 제품들에 대한 소개 화면 대신 검은 바탕에 ‘대통령이 당신의 땅을 훔쳤습니다(The President Stole Your Land)’라는 도발적인 문구가 적힌 화면을 보게 됐다. 이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유타주 베어스이어스(Bears Ears) 국립공원 지정 면적을 축소하는 법안을 발의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캠페인이었다. 파타고니아는 이렇게 자신들의 존재 이유(환경보호)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그들의 마케팅 활동이 된다.

브랜드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태어난다. 마케팅이란 브랜드의 관계 구축을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마케팅의 전략과 실행, 즉 1) 브랜드의 핵심적인 특징을 정립해 상대방(소비자)에게 차별적으로 인식되게 하고, 2) 소비자가 그 브랜드를 선택하도록 만들기 위해 가치를 정립하고 제안하며, 3) 그 가치가 교환되는 활동을 촉진하는 일들의 궁극의 목표는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따라서 브랜드 마케팅 관점에서 볼 때 지속가능한 브랜드란 소비자와의 관계에서의 지속성이 핵심이다.

관계는 가치 교환의 거래로 시작되지만 관계의 지속성은 가치 교환의 거래 활동을 넘어 생각과 관점의 공감에 의해 구축되는 신뢰에 기반한 이성과 감정이 통합된 강렬한 관계, 즉, 거래의 관계를 넘어선 결속의 관계에까지 이른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일회적인 관계 구축에 그치고 지속적인 관계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과 사상의 교환과 공감에 이르지 못한 채 일차원적인 가치 교환을 바탕으로 한 거래의 관계에서 더 이상의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브랜드가 일회적인 관계라도 만들어내기 위해 매우 자극적인 활동들을 한다. 바이럴을 위해 제품과 관계없는 유흥적 요소를 접목하고, 제품의 혜택을 전달하기 위해 과장된 크리에이티브를 제작하며, 마이크로 타기팅, 프로그래머틱 미디어 운영 등 진화된 마케팅 기술 등을 통해 타깃 소비자들의 꽁무니를 끊임없이 쫓아다닌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현대화된 마케팅적인 기술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브랜드 마케팅 활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들의 생각과 사상에 대한 실천과 행동에 집중돼 있다.

파타고니아의 가장 대표적인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 캠페인을 살펴보자. 다음은 2011년 미국 최대 세일 기간인 블랙프라이데이에 뉴욕타임스에 게재한 해당 캠페인 광고 메시지다. “파타고니아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하고 싶기에, 이 세상이 우리 아이들이 살 만한 세상으로 남겨지기 위해, 오늘 우리는 다른 기업들의 비즈니스와 반대되는 일들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당신들이 보다 적게 사기를 바란다. 재킷이나 다른 물건을 구매할 때 좀 더 많은 생각을 깊이 하기를 원한다. 60%가 재활용된 이 폴리에스테르 점퍼는 높은 기준에 의해, 한 땀 한 땀 섬세하게 바느질됐다. 다른 제품보다 품질이 매우 견고하다고 자부한다. 따라서 당신이 구입한 이 옷은 다른 새 옷으로 바꿀 필요가 전혀 없다. 만약 해져서 정말 못 입겠다 싶으면 재활용해서 다시 새 옷처럼 입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 것이다. 이 재킷을 사는 것을 다시 생각하라.”

이 캠페인을 통해 파타고니아가 전달한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는 ‘환경보호를 위해 불필요한 옷을 사지 말 것’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고 주목을 이끌어내는 현란한 마케팅 기술은 찾아볼 수 없었다. 브랜드의 카피는 브랜드의 세계관과 사상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잔잔하게 말했을 뿐이다. 파타고니아의 브랜드 캠페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항상 브랜드 목적을 설명하는 활동이며, 자신들의 브랜드 목적에 함께 참여하라는 제안일 뿐이다. 이러한 브랜드 마케팅 활동에도 파타고니아는 이후 2년간 매출액이 40%나 늘었다. 브랜드 목적에 기반한 브랜드의 도전은 그 자체가 마케팅 활동이 될 수 있음을 파타고니아는 결과로 증명하고 있다.

자극적 마케팅 하나 없이 가장 ‘쿨’한 브랜드가 된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가 인터뷰를 통해 남긴 말 한마디가 현대의 마케팅을 위한 금언이 될 수 있다. “빨리 성장할수록 죽는다. 이러한 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결국 빠른 성장에 매달리는 마케팅이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한다.”


필자소개 김남호 나인후르츠미디어 대표 nhkim@9fruits.com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산업심리학을 전공했고 북텍사스대(University of North Texas)에서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코카콜라와 제일기획을 거쳐 현재 디지털 광고 대행사를 운영 중이다. 브랜드 기획부터 마케팅 전략, 디지털 마케팅, 데이터 마케팅, 크리에이티브 제작까지 넓은 마케팅 스펙트럼 경험에 기반한 브랜드 마케팅 컨설팅 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최근 ‘9.XL’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스타트업과 소셜 벤처들의 브랜드 구축을 돕는 목적 기반의 마케팅 액셀러레이팅에 주력하고 있다.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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