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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novator’s Insight

10년 전 사양산업 만화, 웹툰으로 부활! 뜨거운 열정, 작가·회사·독자 共生을 찾다

정지영 | 189호 (2015년 1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김준구 네이버 웹툰&웹소설 Cell 이사는 지난해 <포브스>가 뽑은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차세대 리더 12에 선정됐다. 사양 산업으로 인식되던 만화 비즈니스에서 새로운 생태계를 구성하고 엄청난 수익을 창출해낸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 이사는 여러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신사업을 창출하며 웹툰 비즈니스의 지형을 바꿨다. 독자들은 무료로 웹툰을 즐길 수 있게 됐고, 만화 창작자들은 수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 구조가 됐다. 그는기존 성공 포인트에서 무엇을 얻으려하기보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사고를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야 혁신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진심으로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성공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회사에서 그는 가장 성공한만화 덕후(만화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로 불리기도 한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윤창민(단국대 중어중문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윤태호 작가의 <미생>은 가장 성공한 웹툰1 으로 꼽힌다. 작품성뿐만 아니라 상업적인 측면에서도 큰 수익을 올리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판매된 단행본만 220만 부, 웹툰 누적 조회 수는 약 11억 뷰에 달한다. 원고료 및 판권으로 벌어들인 수익만 수십억 원 단위다. 미생은 케이블 채널 tvN에서 드라마로 방영되기도 했다. 공중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고 시청률은 10.3%였다.

 

한때 사양산업으로 평가받던 만화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 출판 만화 시장 규모가 작아지면서 만화책과 만화 작가가 점점 줄어들고, 만화가가밥 굶는 직업으로 불리던 시장이 지금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 콘텐츠 사업으로 변모했다. 웹툰 시장은 1718억 원 규모이며 웹툰 산업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 유발액만 약 10조 원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있다.2 윤 작가를 비롯해 수많은 스타 웹툰 작가들이 배출됐으며, 유명 작가들의 연봉은 억 단위를 훌쩍 넘어섰다. 네이버에서는 웹툰 매출로 월 7000만 원 이상을 버는 작가도 나오고 있다. 다 죽어가던 시장에 새로운 생기가 돌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만화 비즈니스의 생태계를 바꾼 데는 김준구 네이버 웹툰&웹소설 Cell 이사의 공이 컸다. 그는 2000년대 초반 전통적인 만화산업이 인터넷의 저작권 위반으로 위협받는 상황에서 웹툰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만들었다. 여러 가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웹툰의 소비층을 넓히고 작가들이 작품 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그가 만들어낸 아이디어들은 현재 웹툰 시장의 보편적인 서비스로 자리를 잡았다. <포브스>도 이런 점을 눈여겨보고 김 이사를 지난해혁신적인 차세대 리더 12중 한 명으로 꼽았다.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성과를 인정해 네이버에서는 30대 중반인 그에게 아예 사업부 하나를 통째로 맡겼다. 그는 지금 웹툰과 웹소설을 비즈니스화하는 독립 사업부의 대표로 있다. 지인들은 그를 두고가장 성공한 만화 덕후(만화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하는 사람)’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 이사는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다. 만화를 좋아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본인의 경험을 반추해보니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라는 것이다.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웹툰의 글로벌 사업화를 위해 뛰고 있는 김 이사를 DBR이 만났다.

 

웹툰&웹소설 비즈니스를 담당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네이버에 입사해 개발 업무를 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만화 파트에서 업무를 하게 됐다. 처음에는 관련 분야의 전문가라기보다 만화를 좋아하는 팬의 입장으로 일을 시작했다. 평소 생각했던 것들을 실현해보면 어떨까 했다. 원래도 훈수를 두는 사람이 장기판을 더 잘 보지 않나. 그렇게 이 일을 하게 됐다. 유료 만화 서비스 만들고, 웹툰 만들고 하다 보니까 팀원이 계속 늘어났다. 독자도 늘고, 네이버에 작품을 내는 작가들도 많아지면서 팀 규모는 더욱 커졌다. 그러다 2015 2월 사내 벤처 개념인 CIC(Company-In-Company)로 독립하게 됐다.

 

 

 

만화 시장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평소 만화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또 직접 서비스를 운영하다 느낀 점은 시장의 정체였다. 출판 시장이 식으면서 출판 만화를 만드는 작가의 수도 줄어들고, 만화 작가의 수가 감소했고, 자연스레 독자들은 만화에 발길을 끊었다. 당시 만화 시장에서는 활기를 찾기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라고 자문해 봤다. 당시 사람들은 P2P 사이트에서 무료로 만화를 다운받아 봤다. 기존 만화 사업자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했던 일은 P2P의 불법 공유를 어떻게든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법 다운로드를 제약하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P2P 사이트와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새로운 걸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핫하고 재미난 콘텐츠들이 자꾸 나와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작가들이 필요했다. 그래야 좋은 콘텐츠가 나오고, 독자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었다.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해 봤다. 첫 번째가 작가였다. 어찌됐든 좋은 콘텐츠가 있어야 이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런 아이디어를 갖고 웹툰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구체적으로 만화 시장을 살리기 위해 어떻게 했나.

 

만화 시장을 고려할 때 당장 필요한 건 단순히 만화를 디지털화해서 파는 것이 아니었다. 좋은 작가를 많이 양성해내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콘텐츠의 질을 높이고, 만화시장을 떠났던 사람들을 다시 불러와야 했다. 만화 창작자와 만화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플랫폼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것들을 새로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게도전만화. 처음부터 유명 작가들을 찾아다니며 작품을 부탁하는 걸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창의적인 사람들이 만화를 그리고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네이버라는 인터넷 포털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었다. 네이버 아이디를 가진 모든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웹툰을 올릴 수 있다.

 

이는 만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도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스스로 콘텐츠를 평가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오롯이 독자들이 작품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편집장인 나의 시각과 권한으로 작품이 메인에 소개될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도전만화에서 많은 리뷰 수를 가진 웹툰은베스트 도전이라는 코너로 옮겨갈 자격을 얻는다. 베스트 도전은 이미 일차적으로 독자의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 흥행성에 대한 최소한의 검증을 갖춘 셈이다. 그래서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이 코너를 살핀다. 재미난 웹툰과 실력 있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도전만화를 통해 활동한 사람은 최근까지 15만 명을 넘었다. 그중에 베스트 도전에 만화를 올린 사람은 1600명 이상이고, 이 가운데 175(2014 6월 기준)이 네이버의 정식 웹툰 작가로 등단했다.

 

 

 

 

‘요일만화제’도 네이버가 가장 먼저 시작했다. 독자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만화가 정확히 언제 나오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래서 매주 정해진 요일에 만화를 업데이트하는 요일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예를 들어노블레스라는 웹툰이 화요만화라면 매주 화요일 노블레스가 한 편씩 올라오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노블레스를 좋아하는 독자들은 화요일 새벽부터 만화가 올라오길 기다린다. 새벽 시간대에 요일만화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있는 것은 흔한 일이 됐다. 이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플랫폼을 만들었다면 그 다음은 타기팅이었다. 위축된 시장에서 기존 만화 독자만을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안 될 일이었다. 시장 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이를 키울 필요가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인식이 남아 있긴 하지만 예전에는 만화 독자들은 B급 문화를 소비하는 오타쿠로 여겨지곤 했다. 이런 인식을 타파하지 않으면 시장은 일정 수준 이상 성장할 수가 없다. 웹툰이 비즈니스가 되려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만화에 자연스레 접근할 수 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 기본적으로 작품의 종류를 다양화했다. 네이버만의 웹툰 매트릭스 구조를 만들었다. 연령, 성별, 웹툰 소재, 장르 등 여러 가지 요소를 기본으로 해서 여러 사람들의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매트릭스의 특정 공간이 비지 않도록 늘 신경 썼다. 이를 통해서 어떤 사람들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웹툰에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웹툰의 비즈니스 모델 변화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비용 부담을 줄이고 웹툰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완전 무료화는 아니었다. 여러 가지 프리미엄 서비스를 도입해서 유료 모델 제도를 도입했다. 그중 하나가 미리보기다. 예를 들어 작가가 이미 50화까지 그려놓은 만화가 있다고 생각하자. 독자는 다음 편이 아주 궁금하다. 이때 독자들은 비용을 지불하면 다음 호를 무료 독자들보다 먼저 볼 수 있다. 다음 호를 보기 위해 일주일을 기다리기 힘든 열혈 독자들은 미리보기에 돈 쓰는 걸 아끼지 않았다. 이 제도 역시 웹툰 시장의 보편적인 서비스가 됐다.

 

네이버에서 만든 수익 배분 프로그램이 웹툰 업계에 정착되면서 작가들의 창작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기존 관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게 된 배경 및 성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달라.

 

웹툰 비즈니스를 통해서 나오는 여러 수익을 창작자들과 나누기 위해 PPS(Page Profit Share)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기존 출판시장에서는 단행본이 팔리는 수에 따라, 혹은 미리 일정 금액을 계약한 후 나중에 얼마의 인센티브를 받는 식이었다. PPS 시스템은 해당 웹툰의 클릭 수가 높아질수록 창작자가 갖는 이익도 자연스레 커지는 비즈니스 시스템이다. 단순히 웹툰의 클릭 수뿐만 아니라 2차 판매, PPL, 파생상품 판매 등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이 프로그램에 따라 배분한다.

 

PPS 프로그램의 핵심은 수익배분 형태 및 결정권을 작가가 갖도록 한 것이다. 미국, 일본 등 외국의 출판시장은 기본적으로 퍼블리싱하는 기업이 2차 사업권이나 일부 권리를 갖는 구조다. 그런데 우리가 이 구조를 바꿨다. 그리고 지금은 이 프로그램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네이버 입장에서는 좋은 작가의 작품을 계속 우리 플랫폼에서 연재할 수 있고, 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구조가 확립되니 2차 저작물이 많이 생기고 판권도 커졌다. 기존 이익 배분 구조를 따랐다면 건강한 생태계를 정립하는 것은 물론 지금만큼의 독자 수를 확보하는 일도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한다. PPS 프로그램을 통해 모두가 자신이 가장 잘하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작가는 창작에 집중하고 우리는 그것을 독자에게 소개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2차 사업과 관련한 부분에서도 기존처럼 퍼블리싱 업체가 다 맡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상 전문업체가 영상 사업화를 하고, 캐릭터 판매 전문업체가 캐릭터 사업을 하는 구조가 됐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시장이 많이 형성됐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커졌다. 웹툰 비즈니스가 단순히 웹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으로까지 영향력이 확대된 사례다.

 

 

 

단순히 작가의 인지도가 높다고 해서 수익을 많이 가져가는 구조가 아니다. 예전에는 유명한 정도에 따라 임의적으로 원고료가 정해졌다면 우리는 작가의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인 분석 도구를 개발했다. 실제로 이 작가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현재 얼마나 활약하고 있는지를 수치화하고 그것을 보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고안했다. 조회 수를 포함해 17개의 요소들을 계산해서 결과를 산출하고 있다. 기존에는 정성적으로 관리되던 것을 정량적인 평가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작가의 원고료를 올려줬더니 전화가 왔다. 작가가전 원고료를 안 올려줬으면 좋겠어요. 원고료가 올라가면 부담스러워요. 작품에 영향을 받을 것 같아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원고료를 올려달라고 해서 올려줄 수도 없지만 내려달라고 해서 내려줄 수도 없어요. 무조건 올려 받아요라고 했다. PPS 프로그램을 통해서 작가의 창작 환경이 개선되고 생태계가 더 견고해질 수 있었다.

 

웹툰 비즈니스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라고 강조했다. 개성과 주관이 뚜렷한 작가들 여럿과 일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원로 만화가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만약 200명의 작가가 있다면 그들이 가진 개성도 200가지다. 그들을 몇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단순화해서 일을 진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작가들은 한 명 한 명이 모두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통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작품이다. 이현세 선생님을 처음 만났을 때 선생님은 그냥대기업 담당자가 왔나보다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근데 선생님의 작품아마게돈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다보면 서로 공감대가 형성된다. 본인이 쓰신 만화인데도 아마게돈 엔딩 부분이 없다고 해서 내가 소장하고 있는 것을 드린 적이 있다. 이러면 선생님께서도, 이 친구가 정말 만화를 좋아하나보다고 해서 나를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개성이 뚜렷한 작가들과도 잘 협업할 수 있었던 비결은진짜 마음’ ‘진정성이란 의미다.

 

작가를 관리하는 담당 직원은 작가의 첫 번째 팬이고, 친구고, 독자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다. 우리 팀에는 원칙이 있다. 작가랑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서로를 잘 이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원칙이다.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편안하게 얘기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인 관계가 맺어지면 서로 소통하는 것이 훨씬 편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도 작가를 이해할 수 있고, 작가 입장에서도 우리와 일하기 편해진다. 단순히 거래관계가 아니라 신뢰를 기반으로 한 동업자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한 담당자는 작가랑 밥을 먹기 위해 한 달에 두 번 지방 출장도 꾸준히 다녀오고 필요한 점이 없는지 수시로 체크한다. 작가의 스타일에 맞춰 그들이 최상의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우리의 일이다. 새벽까지 작가와 콘셉트 회의를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직원들은 모두 작가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것들이 결국 작가와의 공생관계를 만드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작가를 존중하는 만큼 작품을 내보낼 때도 그들의 의견을 가장 크게 반영한다. 출판만화 시절에는 책에 작품을 내보낼 때 편집자의 역할이 컸다. 편집자가 구체적인 지침으로 작가를 잘 이끌어주는 건 분명히 좋은 것이다.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50점짜리 작품을 70점까지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편집자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작품이 나오기 어려워진다. 결국 편집자들이 생각하는 틀 안에서 작가의 창의력이 갇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필요한 경우 우리가 조언해서 작품의 질을 끌어올리되 기본적으로 작가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식으로 일을 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업계의 변화를 선도했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고, 과감히 시도하고, 또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중요한 것은 버리는 것이다. 나는 기존 시장에서의 만화 사업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틀에서 사고하는 데 유리했다. 기존 틀에서 뭔가를 가져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이다. 기존 시장에서, 기존 방식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를 꾀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꾸준히 젊은 피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나는 지금 해외시장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리더로서 가장 어려운 일을 해내야 한다는 점, 웹툰 시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도 분명히 큰 이유다. 이에 더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기존 사업자인 나를 대체할 새로운 피를 수혈하기 위한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네이버에서 쌓아올린 성공 히스토리가 어떤 의미에서는 노하우와 전략이 되지만 반대로 따지면 혁신을 제약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후배들이 나의 성공 포인트에 맞춰 사고하다 보면 혁신을 하는 데 벽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후배들이 국내 웹툰 시장에서 계속 변화와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내가 국내 사업에 골몰하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주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글로벌 시장에 몰두하고 있다. 이제 한국 웹툰 시장에는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 후배들은 나보다 좀 더 새로운 시각, 창의적인 시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내가 했던 방식만이 정답이 아니다. 나의 노하우와 유용한 점을 받아들이되 그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에 없던 일들을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혁신은 과거의 것에서 시작되기보다는 이전의 것을 많이 버리는 데서 출발한다. 어떤 것이 가득 쌓여 있는 상태에서 뭔가를 하는 것도 좋지만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시도하려면 기존의 것이 적을수록 좋다.

 

또 이를 해내려면 빠져서 안 되는 것이 있다. 단순히 열심히, 최선을 다해야 어떤 일을 성공시키는 게 아니다. ‘정말로’ ‘진짜로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과거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혁신을 꾀하는 것도, 또 어떤 일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도, 모두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걸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이 혁신과 성공의 원천이 됐다.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고 해서 모든 일이 성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정말로 마음 깊은 곳에서 좋아하고 그것을 일로 느끼지 않는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어떤 일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진짜로 좋아하는 것과 단순히 좋아하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어떤 일을 그냥 좋아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까지, 혹은 주어진 일까지만 하고 만다. 기쁘게 그 일을 받아들이지만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좋아하면 거기에서 더 나아가게 된다. 진짜 좋아하는 게 어떤 거냐면, 나는 지난 10년 동안 하루에 4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다. 만화가 정말로 좋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 퇴근했을 때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했다. 어떤 인센티브나 보상을 바란 것도 아니었다. 사원 때부터 그랬다. 퇴근하면 자발적으로 작가를 만나러 다니곤 했다. 진짜 좋아하니까 이렇게 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진짜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그 일은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진짜 좋아해서 일을 하다 보면 정말로 효과가 있다. 편집장이 되고 나서도 일하는 방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업무 시간이 끝나면 또 다른 업무가 시작된다. 작가들을 찾아다니는 일이다. 작가들을 만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서로 소통하면서 작품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실행시켰지만 사실상 나 혼자서 한 것은 별로 없다. 모든 것은 작가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네이버가 업계 최초로 적용한 미리보기 유료화 서비스도 작가와 대화를 나누다 나온 아이디어였다.

 

한 작가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비즈니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유료화 모델에 대한 얘기였다. “지금 무료로 서비스하는 걸 갑자기 유료화하면 독자들은 저항할 것이다. 순순히 돈을 내지 않는다” “부가가치를 부여하고 그것이 수익과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작가가요즘 독자들이 메일을 보내는데, 한 페이지라도 먼저 보고 싶다는 연락이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하는 거다. 이 대화가 미리보기 모델의 시작이다.

 

일을 할 때 기본적으로 아이데이션(Ideation)을 한다. 거기에 통계적인 자료를 더해 논리적인 사고를 한다. 아이디어와 논리적인 사고가 더해져야 통찰력 있는 생각이 된다. 체화된 논리 없는 단순한 아이디어는 의미가 없다. 그런데 체화된 논리를 갖기 위해서는 일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필요하다. 좋아하지 않으면 깊이 팔 수 없고, 깊게 팔 수 없으면 무엇을 체화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서에 오는 사람을 뽑을 때도 가장 먼저 묻는 것이 만화에 대한 애정이다. “만화 좋아해라고 물었을 때 “yes”라는 답이 나와야만 우리 부서에서 일할 수 있다.

 

네이버 웹툰의 무료화 때문에웹툰은 무료라는 인식이 확대됐다는 비판이 있다.

 

예전에 만화를 보는 사람이 10만 명이었다고 하자. 이들이 만화방 가고, 만화책 사는 데 한 달에 만 원씩 썼다면 총 수익은 10억 원이다.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공짜로 만화를 본다. 하지만 독자 수는 1700만 명에 이른다. 이렇게 되니까 광고주들이 와서 광고시장이 형성됐다. 웹툰 캐릭터를 활용한 제2차 상품도 나오면서 기존에 없던 시장이 창출됐다. 윤태호 작가가 예전에 이런 말을 했다. “웹툰을 무료라고 인식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독자들이 돈을 내지 않을 뿐이다. 이 시장 안에서는 어마어마한 부가 창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웹툰 서비스가 무료라서 창작자가 돈을 못 벌면 문제지만 판이 커지면서 좋은 방향으로 계속 개선되고 있다. 이렇게 시장이 커지는 데는 네이버의 웹툰 무료화가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웹툰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새 비즈니스를 창출해서 일을 하는 만큼 어려운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즐거웠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어려웠던 기억들은 잊은 것 같다. 즐겁게 일하다 보니 처음 세웠던 계획들이 얼추 하나씩 실행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대리 때부터 일명 ‘12년 계획을 세웠다. 이 내용을 사람들한테 말하면 동료들은대리인데 꿈과 희망이 너무 크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곤 했다. 어쨌든 나는 어릴 때부터 만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계획이 분명했다. 12년 계획은 몇 가지 세부적인 단계로 나눠지는데 첫 번째 3년은 투자기다. 이 시기의 목표는 좋은 작품을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두 번째 3년은 성장기다. 투자기에서 만든 좋은 작품이 두터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는 시기다. 세 번째 3년은 성숙기다. 많은 웹툰 팬들이 생기고 작가들이 창작활동에만 몰두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되는 시기다. 마지막 3년은 전환기다. 내가 구성한 비즈니스 모델이 완성되는 단계이면서 동시에 또 다른 계획으로 넘어가기 위한 단계다. 운이 좋게도 12년 계획은 성공한 것 같다. 지금은 이걸 글로벌로 가져가려고 한다.

 

 

 

국내에서는 웹툰 비즈니스가 성공적으로 정착했지만 글로벌 비즈니스를 하려다 보니 돌발변수가 많은 건 사실이다. 예를 들면 국내에서는 네이버가 뭐하는 회사인지 따로 설명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해외에서 네이버 공모전을 한다고 하면이건 뭐지” “네이버는 뭐 하는 회사야라는 반응이 많다. 이런 반응들은 애초에 우리가 세웠던 계획에는 없는 이슈들이다. 불법 번역물 같은 여러 가지 문제들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슈가 닥쳤을 때 순발력 있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요즘 새삼 배우고 있다.

 

 

 

2015년 광저우 만화축제 네이버 웹툰관

 

기획자이면서 동시에 웹툰을 발굴하고 편집해 내보내는 편집장이기도 하다. 편집 작업을 할 때의 철학이 있는지.

 

아주 단순하다. ‘만화로 세상을 즐겁게 하자. 만약이 웹툰이 너무 재미있다고 하자.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보고 즐거워했으면 좋겠다. 독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 이게 가장 기본적인 철학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좋은 작품이 있어야 하고, 유용한 플랫폼이 있어야 하고, 작가의 창작 욕구를 유발할 수 있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만화는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여기에서 어떻게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했나.

 

어떤 시장에 정말로 관심이 있으면 본인의 기존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장에 관련해 존재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시선을 봐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우리는 지금도 독자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본다. 근데 이게 생각만큼 가벼운 게 아니다. 독자라고 해서 다 취향이 같은 게 아니다. 매니악한 독자도 있고, 캐쥬얼한 독자도 있고, 사생팬도 있다. 독자들의 여러 시각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나는 100명에게 80점의 만족도를 주기보다는 20명에게 120점의 만족도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작품을 연재했는데 100명이괜찮다고 하면 이 작품은 나중에 망한다. 독자가 10명도 안 남는다. 근데 100명 중에 30∼40명이 괜찮다를 넘어서최고예요!”라고 엄지를 치켜들면 이 작품은 되는 거다. 최고라고 한 독자들을 타기팅하면 성공한다. 이 사람들은 모두 이 작품의 열렬한 팬으로서 일반 독자들이 떠날 때도 끝까지 팬으로 남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이들은 독자 범위를 확대하는 데도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모두를 만족시키려 하지 말고 정확하게 타기팅하는 독자들에게 120점의 만족도를 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남녀노소 모두를 만족시키는 기능은 사실상 없다. 한 기능이 누구에게 120점의 만족도를 줄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듣자는 건 그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해서 모두를 만족시키자는 게 아니다. 여러 의견을 들음으로써 누가 우리에게 중요하고, 누가 우리의 타깃인지, 누구에게 무엇을 줘야 할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함이다.

 

 

 

네이버 웹툰 10년사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나는 한번도매출 얼마’ ‘독자 수 몇 명을 목표로 잡은 적이 없다. 우리의 모든 포커스는 작가에게 있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하면 수익적인 부분 등 나머지도 다 따라오게 돼 있다. 10년 전에는만화가라는 직업 자체가 존속할 수 있을까란 얘기가 있었다. 그때는 작가들에게만화가로 평생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을게라고 말했다. 그 뒤에는네이버에서 자리 잡으면 외제 차를 뽑을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만들어줄게’라고 했다. 그 다음 3년이 지나자네이버에서 자리 잡으면 집을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줄게라고 했다. 지금의 목표는 좀 더 크다. 글로벌로 나갔으니 목표는글로벌 웹툰에서 자리 잡으면 뽀대 나게 빌딩 하나 정도는 살 수 있도록 해줄게라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작가들이 창작활동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많다. 플랫폼이 자리 잡아야 하고, 현지에서 새로운 독자층도 형성해야 한다. 한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이 외국에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 현지화(Localization)해서 시장에 안착하는 게 중요하다. 이제는 새로운 계획을 실현시켜야 하는 시기가 왔다.

 

글로벌화를 넘어선 뒤의 계획이 하나 더 있는데 이건 비밀이다. 애초에 페이스 1, 2, 3라고 해서 세 가지 계획을 세웠다. 페이스 1은 앞에서 말한 12년 계획이다. 페이스 2는 글로벌화의 성공이다. 페이스 2가 성공하면 세 번째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 것 같다. 세 번째 계획에 대해서는 아직 이야기할 수 없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이다.

 

혁신과 변화에는 분야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일반론화해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직원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답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말하지만 나는 정말로 이 일을 사랑한다. 승진이나 인센티브는 나에게 큰 의미가 없다. 내가 얼마나 만화를 좋아하냐고? 지금 인터뷰하기 전까지 50시간 정도 잠을 못 잔 상황이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오늘도 자기 전에 웹툰을 볼 거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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