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n Case Study
Article at a Glance-HR,혁신
일본의 세라믹 관련 기기 등의 제조회사인 교세라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는 78세의 나이에 파산한 일본항공(JAL)의 키를 잡았다. 그는 이미 일본에서 존경 받는 경영인이었다. 자칫 그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경우 그의 명성에는 누가 될 뿐이다. 꼭 JAL의 경영을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이나모리는 JAL 임직원의 고용과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JAL의 키를 잡기로 했다. JAL에 합류한 그는 끈질긴 토론과 설득으로 엘리트와 관료주의가 팽배한 JAL 경영진의 의식을 바꿨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임직원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사원의 행복추구’를 위한 기업 이념까지 만들었다. 또 작은 단위의 부서까지 수지타산을 계산하는 ‘아메바 경영’ 방식을 도입해서 수익성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JAL은 파산의 아픔을 딛고 2년 반 만에 재상장이라는 놀라운 경영성과를 거두게 된다. |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에 이어 일본에서 3대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 교세라 명예회장. 78세의 나이에 ‘일본항공(JAL) 파산’이라는 불속으로 뛰어들어 또다시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파산을 신청한 관료적인 기업 JAL을 2년 반 만에 2000억 엔의 영업이익을 내는 우량기업으로 재생했다. 그는 창업과 재건을 동시에 성취했다. 이나모리는 자신의 경영 철학과 방법이 민간기업뿐만 아니라 공공기업에서도 통용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래서 JAL의 회생은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만년 적자에 허덕이는 한국의 공공기업에 소중한 교훈을 전해준다.
이나모리는 독특한 경영철학과 경영방식인 ‘아메바 경영’으로 교세라와 KDDI를 창업해서 대성공을 거뒀다. 그의 경영철학과 경영방식을 배우려는 중소기업 경영자 중심의 경영연구회인 ‘세이와주큐(盛和塾)’에는 일본은 물론 한국과 중국 등 전 세계에서 약 9000명의 경영자들이 모이고 있다. 이런 업적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훌륭한 경영자다. 그런데 78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JAL 재건에 도전해 크게 성공했다. 그것도 이전에는 경험한 적이 없는 항공업계에서 거둔 치적이다. 그는 일본능률협회가 뽑은 ‘이상적 경영자’로 4년째 1위를 지키고 있다. 그는 도대체 무슨 비법을 휘두른 것일까? 이나모리의 JAL 재생 과정을 세밀하게 관찰한다.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의 주요 업적
● 1959년 이나모리가 27세에 창업한 교토세라믹(현 교세라)은 시가총액 약 2조 엔의 대기업으로 성장. ● 통신자유화로 1984년에 설립한 제2전전기획(현재 KDDI)은 현재 시가총액 약 4조5000억 엔의 거대통신회사로 성장. ● 2010년 파산한 일본항공(JAL)의 회장에 취임해 2차 파산이 우려되는 가운데 약 2년 반 만에 재상장에 성공. ● 일본은 물론 한국과 미국, 중국, 브라질 등에서 그의 경영철학을 배우려는 경영연구회인 세이와쥬큐(盛和塾)에 약 9000명이 모이고 있으며 그의 경영 이념을 적용시켜 성공한 중소기업의 사례는 수없이 많다. |
우려에도 불구하고 파산한 JAL을 맡다
이나모리는 하토야마 전 일본 수상이 이나모리에게 JAL 회장 취임 요청을 몇 번이나 했지만 거절했다. 나이도 많았고 항공업계에 대해서는 잘 몰랐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가족은 물론 연구회 제자들도 “지금까지의 업적을 말년에 훼손시킬지도 모른다”며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3가지 대의를 생각하고 결국 수락했다. 첫째는 일본 경제를 위해서다. 종업원 5만 명에 매출도 2조 엔 정도인 일본의 대표적인 기업 JAL이 파산하면 침체된 일본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둘째는 남아 있는 사원들을 위해서다. 회생 계획이 세워지면 JAL 임직원 중 약 1만6000명은 퇴사한다. 하지만 3만여 명의 고용은 지킬 수 있다. 사회적 의의가 크다. 그는 수락 일성으로 기자들에게 “사원의 행복을 위해서 취임했다”고 말했다. 셋째는 JAL 이용자를 위해서다. 만약 JAL이 도산하면 일본의 항공업계는 ANA(全日本空輸)의 독점체제가 돼 건전한 경쟁에 따른 소비자 이익이 훼손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능력이 JAL 재건에 미치지 못해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무급과 주 3∼4일 출근을 조건으로 제시했다. JAL 재생을 수락한 후 오히려 자신감마저 보였다. 자신의 거취를 걱정하는 연구회 제자들에게 “경영이란 어떤 것인지 보여주겠다. 두고 봐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아무리 경영의 신이라도 오점을 남길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는 JAL 회생에 실패하면 자신이 창업한 교세라, KDDI 직원의 명예도 훼손되기 때문에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나모리가 JAL 재건을 맡기로 하자 해외 컨설턴트들이 몰려왔다. 이들은 미국에서 도산한 항공회사를 재생한 경험이 풍부하니 JAL의 회생을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했다. 이나모리는 이들의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이들이 제시하는 회생 방법은 화려했지만 전혀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결국 교세라 출신 인사 2명과 자신의 경영철학, 아메바경영만으로 JAL 회생에 임했다. 그에게 다른 비법은 없었다. 50년간 현장에서 경험한 경영철학과 아메바 경영이 비법이라면 비법이었다. 세간에서는 이나모리가 고전적 방법만으로 관료적이고 거대한 부실기업을 회생시킬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가졌다. 이나모리는 파산부터 약 2년6개월이 지난 2012년 9월19일 사상 최단 기간에 JAL의 재상장에 성공했다. 그는 경영철학과 아메바경영을 JAL에 어떻게 적용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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