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 스틸 다이슨 수석 디자인 엔지니어
Article at a Glance – 혁신
날개 없는 선풍기로 유명한 영국 가전업체 다이슨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구분하지 않는다.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이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이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장 좋은 성능을 얻기 위한 외적 형태가 그들의 디자인이다.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떤 아름다움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제품이 아닌 프로젝트별로 직원들이 모였다 흩어지게끔 하거나 정해진 계획표 없이 관심 있는 기술을 갖고 놀 수 있도록 하는 조직 구조는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다이슨만의 특징이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장은빈(연세대 사회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전기를 이용한 최초의 선풍기가 개발된 것은 1882년이다. 이후 1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날개가 돌아가면서 바람이 만들어지는 선풍기의 기본 구조는 단 한번도 변하지 않았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겼고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던 고정관념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돌아가는 날개가 없는데도 바람이 나오고, 심지어 기존 선풍기보다 더 세며, 소음과 위험이 획기적으로 감소한 이 제품에 전 세계 소비자가 열광했다. 둥글고 심플한 디자인도 큰 호응을 얻었다.
날개 없는 선풍기를 비롯해 종이봉투 없는 청소기, 소리 없는 헤어드라이어 등 기존 제품이 가진 불편하고 위험한 점을 아예 제거해버리는 과감성을 지속적으로 선보이면서 다이슨은 ‘혁신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유럽 청소기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후 미국 시장으로 건너간 다이슨은 3년 만에 진공청소기의 원조인 미국 후버(Hoover)를 제치고 판매금액 기준 1위를 차지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The Times)>는 ‘비틀즈가 40년 전 미국을 휩쓴 이래 처음으로 영국 제품이 미국을 정복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다이슨에 디자인은 ‘최대의 기능을 이끌어 내기 위해 필수 불가결하게 존재하는 외적 형태’다. 디자인 자체만으로 의미나 목적을 지니기보다는 목표로 하는 어떤 기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듬고 개선해 궁극적으로 완성한 형태가 곧 디자인이다. 창업자 제임스 다이슨은 “외형보다 기능을 우선시한다”고 공공연하게 강조한다. 이런 맥락이라면 디자인 따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기능 위주의 못생긴 기계가 만들어질 법도 하지만 다이슨의 제품들은 디자인 면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오히려 꼭 필요한 기능만 남기고 그 외의 것들을 축소하거나 과감하게 배제해버린다는 점에서 간결함과 단순성을 극대화한 아름다움으로 높은 점수를 받는다.
특히 다이슨은 ‘디자인과 기술은 하나다’라는 모토 아래 디자인팀과 엔지니어팀을 통합해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구분하지 않고 ‘디자인 엔지니어’라는 독특한 직책을 둔다. 이런 조직구조는 기능을 최우선으로 하면서도 기능과 디자인이 같은 방향을 향해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한다. 매트 스틸(Matt Steel) 수석 디자인 엔지니어를 만나 다이슨의 디자인 철학을 들었다.
영국 브루넬대(Brunel University)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다이슨에 입사해 디자인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현재 다이슨의 핵심기술 중 하나인 다이슨 디지털 모터(DDM) 개발을 담당하고 있다.
다이슨은 디자인보다 성능을 우선한다는 원칙으로 알려져 있다. 이 원칙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원하는 기능을 얻기 위해 기계를 만들다보면 자연스럽게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형태를 발견하게 된다. 제품의 모든 부분은 그렇게 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everything has a reason for the way it looks). 다이슨 제품 중에 아무 역할이 없는데 단지 예뻐 보이기 위해 존재하는 부분이란 없다. 군더더기가 없다는 의미다. 어떤 부분이든 뭔가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또는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존재한다.
기능이 우선시되는 제품에서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대표적인 예가 비행기다. 비행기는 외형적인 모양보다 좋은 성능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와, 멋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비행기가 그렇게 생긴 것은 최고의 속도를 내면서도 안전을 유지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그런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다. 다이슨에도 그런 철학이 적용된다. 우리는 제품이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집에서 사용하던 가전제품이 고장 나거나 새로 산 제품을 사용해봤더니 매우 불편하다면 아무리 보기에 좋아도 구석에 치워두거나 창고에 처박아 둘 가능성이 높다. 다이슨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에 주목하는 이유다.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구분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이슨에서는 엔지니어가 곧 디자이너다. 원하는 기능을 향해 집중해서 돌진하다보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가장 적합한 디자인이 만들어진다. 전체 직원 중 3분의 1 이상인 1800명 정도가 디자인 엔지니어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2015년쯤에는 2000명 이상의 직원들이 디자인 엔지니어로 일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에는 디자인 부서와 엔지니어링 부서가 별도로 존재한다. 예컨대 자동차회사에서 엔지니어링, 즉 개발 부서 사람들은 차체나 기어, 엔진 등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일에 주력한다. 자동차의 곡선이나 헤드라이트의 위치, 앞뒤 창의 크기와 모양 등 외형적인 면을 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개발 부서에서 “이런 기능을 위해서는 이런 모양이 나와야 한다”고 한다거나 디자인 부서에서 “이런 디자인을 위해서는 기능을 이렇게 배치해야 한다”고 한다면 둘 사이에 마찰이나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어느 하나를 위해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일도 생긴다. 우리는 그렇게 일하지 않는다. 원하는 기능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가장 잘 작동하는 모양을 생각한다. 이것이 디자인이다. 그리고 이것은 디자인 작업에서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극도의 단순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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