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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 휴맥스 운영 혁신

운영 부실로 하루에 공장 9번 멈췄던 휴맥스 프로세스 혁신 기반으로 매출 1조 돌파하다

이방실 | 135호 (2013년 8월 Issue 2)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소연(서강대 사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디지털 셋톱박스 전문 업체인 휴맥스는 지난 2010년 매출액 1조 원(연결 재무제표 기준)을 돌파한벤처 1세대기업이다. 사업 초창기부터 해외 시장을 겨냥한 결과, 현재 전 세계 80여 개 국에휴맥스라는 고유 브랜드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심지어 북한에도 필립스를 통해 휴맥스 제품이 들어갈 정도다. 1989 2, 서울대 제어계측과 박사과정을 갓 졸업한 변대규 대표가 대학원 동료 및 후배 6명과 함께 서울시 봉천동 낙성대 입구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창업(옛 건인시스템)한 지 21년 만에 이룬 결과다. 1990년대 벤처 붐을 주도했던 1세대 벤처기업 중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기업 자체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눈부신 성과다.

 

지금은 어엿한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휴맥스지만 그간 수차례 위기도 많았다. 사업 초기 2년간 공들여 개발한 장비는 시장성이 없어 그대로 폐기 처분해야 했다. 우연찮게 노래방 기계에 자막을 넣어주는 기술로 돈을 벌어 셋톱박스 개발에 나섰지만 수출 대상 방송국이던 유럽의 대형 방송사가 합병당해 하루아침에 시장을 잃은 적도 있다. 철저하게 기술력에 집중하고 해외시장 공략에 매진해 1997년 이후 승승장구하나 싶더니 곧이어 성장 정체의 벽에 갇혀버렸다. 2001년 이후 내리 4년간 매출액 3000억 원대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쳤다. 2001년 무려 1000억 원이 넘던 영업이익은 2004 42억 원으로 곤두박질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휴맥스는 혁신실을 설치하고 전사적인 프로세스 개선에 나서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성장 정체의 늪에서 빠져 나와 1조 벤처기업의 신화를 이룩했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의 도약을 위한성장통을 성공적으로 극복해 낸 휴맥스의 운영 혁신 사례에 대해 DBR이 집중 분석했다.

 

혁신만 전담하는 조직을 세우다

 

“바빠 죽겠는데 또 무슨 혁신이야?”

 

2004 12월 휴맥스에 혁신실이 생겼을 때 대부분 직원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당시 회사는 4년째 계속된 매출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다. 특히 계속 추락해가는 영업이익을 높이기 위해 여러 비용절감 프로젝트를 추진하다 보니 직원들, 특히 개발자들의 스트레스와 피로도는 극도로 높아져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예 혁신만 전담하는 조직을 만든다고 하니, 쓸데없이 가외 업무만 늘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가뜩이나 일도 많아 힘든 마당에 프로그램을 짜고 제품을 개발할 인력을 한 사람이라도 충원해주지는 못할 망정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혁신을 추진하겠다며 전담 인원을 4명이나 배치한 회사의 결정에 못마땅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변대규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무엇이든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선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오직 그것만 맡아 고민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혁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휴맥스는 1997 142억 원에 불과했던 매출액(개별 재무제표 기준) 1998 284억 원, 1999 541억 원, 2000 1426억 원, 2001 3151억 원을 기록하는 등 해마다 약 두 배 이상씩 가파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몸집이 커진 것에 비해 내부 운영 수준은 사업 초창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자재 결품, 생산 계획 변경, 생산 도중 불량 발생 등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공장이 멈춰 섰다. 자재를 잘못 발주해 재고 과잉이 되기 다반사였다. 장부에 기록된 부품 재고는 1000개인데 실제로는 100개밖에 없어 기계가 돌아가려는 찰나 생산 계획을 바꾸는 일도 허다했다. 누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은 어떤지, 제때 납품은 가능한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창업 초기에 가졌던 열정과 패기만으로는 조직을 운영하기 힘들 정도로 회사가 커졌지만 그에 걸맞은 내부 시스템을 체계화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들이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회사 전반적으로 퍼져 있는 안이한 대처 의식이었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걸 모두가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일이 터지면바빠서 그랬다는 핑계가 통했다. , 실수를 해 놓고도바빠서 그만…”이라고 하면그래, 바빠서 그랬으니 어쩔 수 없지라며 양해해 줬다. 회사는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도 자신의 실수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당장 자신의 코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바빴기 때문에 업무 방식의 체계적 개선을 통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다행히 매출이 워낙 좋아 수십억 원의 손실쯤은 쉽게 묻혀졌다. 혁신실을 설치한 이듬해인 2005년엔마의 벽 3000억 원대 매출액을 돌파해 6495억 원의 매출액(연결 재무제표 기준)을 올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시장이 호황을 이뤘기 때문이었다. 내부 비효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 당시 한 해 불용 재고로 버리는 돈만 100억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시장 매출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회사는 재기 불능 상태로 치달을 수도 있다는 게 변 대표의 판단이었다. 매출로 비효율의 비용을 충당하며 영업이익을 깎아먹던 시절, 운영의 효율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에 따라 장차 회사의 운명이 갈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혁신만 전담할 부서를 따로 설치한 배경이기도 했다.

 

 

 

중요한 건앞단품질이다

 

혁신실 전 직원은 조직 설립 후 약 1년간 사내에서 별다른 일을 벌이지 않고 학생처럼공부만 했다. 품질경영학 관련 책이란 책은 모조리 찾아 읽었다. 전문 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며 효율적인 오퍼레이션 원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공부한 내용을 1주일에 한 번씩 변대규 대표에게 보고했다. 단기 조급증에 사로잡혀 당장 무슨 아이템이든 잡아 전사적인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나서기보다는 먼저 개념부터 확실하게 잡는 게 순서라고 봤다. 혁신은 사람들의생각이 변화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잘못 접근해 조직원의 신뢰를 잃으면 두 번 다시 관심을 끌기 힘들다고 판단한 변대규 대표와 혁신실 직원들은 그렇게 2005년 한 해를 꼬박 공부하는 데 투자했다.

 

1년간의 공부 끝에 혁신실은 사람들의 일하는 방식을 효율적으로 바꾸기 위한 프로세스 혁신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2006년부터 프로세스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정형화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그림 1)

 

 

물론 혁신실이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휴맥스에는 NPG(New Product Generation)라는 표준 개발 프로세스가 있었다. 하지만 전사적으로 통일된 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각 사업부별로, 또 개발자들의 성향에 따라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일이 진행됐다. NPG 프로세스 단계별 명확한 역할과 책임(R&R·roles and responsibilities)을 명시해놓지 않아 일에 구멍이 생기거나 문제 발생 시 부서 간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례도 빈번했다. 품질 관리 기능도 열악했다. 품질 부서는 개발의 최종 단계에서 사후 승인을 하는 역할만 담당했을 뿐 개발 과정 도중에 일의 진척도를 점검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초기에 문제를 발견하기가 어려웠고 결국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일이 허다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혁신실은 우선 NPG 프로세스를 체계화하기 위해 현업 각 부서 담당자들을 11로 만나 각자 하는 일을 순서대로 자세히 설명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과의 개별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공통 분모를 추출해 정형화된 프로세스를 하나씩 만들어갔다. 중구난방으로 일하던 방식을 하나로 통일해 모든 개발자가 공통된 프로세스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이 과정에서 혁신실은 제품 개발의 진척 수준을 1)스테이지1(핵심 기능 완비 단계) 2)스테이지2(풀 기능 완비 단계) 3)스테이지3(안정적 구동 단계) 등 세 단계로 쪼갰다. 그리고 개발 조직과 품질 조직 담당자들이 함께 모여 각 단계에서 프로젝트별로 개발자가 해야 할 일과 테스터가 해야 할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완성 제품에 요구되는 사항과 향후 개발 일정, 검사 기준 및 방법론 등을 철저하게 공유하도록 했다.(그림 2)

 

특히 스테이지1에서 스테이지2, 스테이지2에서 스테이지3로 넘어가는 각각의 중간 단계에서 품질 부서의 테스트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각 스테이지별로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 미리 정해진 수준을 맞추지 못하면 절대 다음 단계로 프로젝트가 진척되지 못하도록 했다. 이른바앞단 품질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프로세스 체계화를 위해 혁신실 직원들이 현업 부서 담당자들과 개별 면담을 한 결과, 어떤 사람은 10가지 중 하나라도 문제가 있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70% 정도만 완벽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미진한 부분을 채워나가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개발자들마다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혁신실은 앞단 품질 확보를 위해선시간이 없으니 일단 진행하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고치자는 식의 의견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제품 개발의 가장 앞단계에서부터 철저한 품질 검증을 추구해야 나중에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사태를 막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단 품질최우선 원칙은 중간 품질 검사가 극도로 어려운 소프트웨어 부문에도 여지없이 적용됐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업무는 최종적으로 소스코드(source code·기계 작동을 위한 명령어 코드를 추출해 내는 원천 프로그램)를 짜는 일이다. 소스코드의 한 줄 한 줄, 한 자 한 자가 셋톱박스의 기능을 만들어내는 핵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엄격하게 관리돼야 한다. 문제는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일이보이지 않아서.셋톱박스 한 대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소프트웨어 소스코드는 무려 수백만 줄에 이를 정도로 복잡하다. 큰 프로젝트의 경우 소프트웨어 개발자만 20명 이상 달라 붙어 1년 넘게 소스코드를 짜야 한다. 이렇게 복잡하다 보니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일의 진도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당사자가 아니면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정기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상시 체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게 소프트웨어지만, 역설적으로 그 특성상 품질 검사를 제대로 하기가 가장 어려운 것도 소프트웨어인 셈이다.

 

혁신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료들이 실시하는 코드 리뷰(code review)를 추진했다. 사실 소프트웨어 개발자에게 그들이 짜놓은 코드에 대해 다른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매우 민감한 일이다. 내 분신과도 같은 코드에 대해 누군가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심히 기분 나쁜 일인데 이런 중간 검사 결과가 자신의 인사고과에까지 반영될 경우 개발자들의 심리적 반발이 거셀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신실은 다른 부서의 고참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동료 개발자로 하여금 해당 프로젝트의 소스 코드를 검토해 보도록 한 후 그 결과를 혁신실에서 직접 수집해 개발자에게 피드백을 전달했다. , 중간 검토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에 대해 평가권자가 절대 알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안을 유지함으로써 코드리뷰의 목적은 문제의 조기 발견 및 수정을 위한 목적으로만 사용될 뿐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나갔다.1

 

혁신실은 이 밖에도 NPG 프로세스가 담당해야 할 영역도 앞뒤로 확장시켰다. , 개발부서와 품질부서에만 국한돼 있던 기존 NPG 프로세스를 마케팅부서와 생산부서로까지 연계시켰다. 우선 NPG 앞단 프로세스의 경우, 모든 프로젝트는 마케팅부서의공식적인 개발요청서가 있을 때에만 추진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과거엔 마케팅부서의 비공식적 요청을 받아 개발팀장도 모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개발자들이 종종 있었다. 제대로 절차를 밟아 정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거나 리스크가 크다는 이유로 팀장 몰래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개발자 개인에게 프로젝트를 부탁하는 게 마케팅부서의 오랜 관행이었던 것. 혁신실은 개발 의뢰 프로세스를 공식화함으로써 이 같은 자원의 비효율적 활용을 없앴다. 이와 함께 변대규 대표를 포함해 프로젝트 개발 책임자 및 마케팅 관련자들이 매주 한 번씩 모여 각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PSR(Project Status Review)를 진행했다. NPG 뒷단 프로세스의 경우사전 생산단계를 추가해 개발자들만 만들던 제품 샘플을 생산자들도 함께 만들도록 했다. 이로 인해 실제 대량 생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생산부서에서 사전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향후 발생 가능한 문제 소지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했다. 이처럼 혁신실이 NPG 프로세스를 고도화시키고 확대해 나가면서 부서 간 협업과 소통이 원활해지기 시작했다.

 

 

 

 

‘월 단위에서주 단위업무 점검 속도를 4배로 높이다

 

‘앞단 품질확보 못지 않게 혁신실이 주안점을 뒀던 또 다른 목표가 있었다. 바로 업무의가시성확보였다. 스테이지별 사전 품질 체크 못지 않게 중요한 건 매일매일 일이 얼마만큼 진행돼 가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어야만 SCM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휴맥스는 2008년 하반기부터 생산 계획과 실제 생산, 판매 실적을 1주일 단위로 점검하는 프로세스 혁신에 나섰다.(그림 3)

 

주 단위 프로세스는 한 달에 한 번씩 판매와 생산을 조율하던 기존 체계에 비해 무려 4배나 속도를 높이는 대대적인 개선 작업이었다. , 모든 부서가 요일별 데드라인에 맞춰 1주일 단위로 업무를 상시 점검하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예를 들어, 월요일엔 전 세계 각지의 11개 판매법인이 해당 주간(차주부터 향후 16주간)의 예상 수요 정보 입력을 마쳐야 하고, 화요일엔 이 데이터를 기초로 본사 수요관리팀에서 차주의 수요 계획을 확정한다. 구매 부문과 제조 부문은 이 정보를 토대로 목요일까지 생산 계획을 확정한다. 그러면 목요일과 금요일에 걸쳐 그에 연계된 자재 이동 계획 등 세부 계획을 세워 실행에 옮긴다.

 

이렇게 요일별로 시간표를 정해놓은 이유는 생산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전에는 시장 수요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하에 해외 법인들이 본사 공장에 수시로 수요 계획 변동을 요청했다. 하지만 11개 법인들이 일주일 내내 시도 때도 없이 생산 변경 요청을 하다 보니 전체 시스템의 효율은 떨어지게 됐다. , 부분 최적화만 이뤄질 뿐 전체 최적화는 저해되는 결과를 낳고 있었던 것. 혁신실은 수요 변경 요청을 하더라도 일주일에 딱 하루에만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 이에 따라 생산 관련 부서는 일주일간 계획에 대한 변동 걱정 없이 정해진 목표 달성을 위해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변대규 대표를 포함해 판매, 생산, 구매 부서 담당자들은 주 단위 업무 프로세스에 맞춰 매주 한 번씩 S&OP(Sales & Operations Planning) 회의를 열고 장차 16주간의 자재 구매 및 물류, 생산 계획을 검토해 확정했다. 한 주가 끝나고 다음 주가 되면 이전 주에 세운 계획과 대비해 얼마나 목표를 준수했는지를 검토했다. 그리고 각 판매 법인에서 새롭게 입력한 정보를 바탕으로 다시금 생산 물량을 조율해 새로운 16주간의 계획을 확정 짓는 의사결정을 반복했다.

 

처음 혁신실에서 매주 계획과 실적을 점검하는 프로세스를 확립하겠다고 하자융통성이 너무 없는 것 아니냐” “회사가 경직돼 가고 있다등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어차피 매출 목표는 월말 기준으로 체크하고 고객사 역시 월 단위로 움직이는데 왜 굳이 일주일마다 재고 관리를 해야 하냐며 불만이 컸다. 어차피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지나면 없어질 재고이고 이번 주에 안 팔려도 월말이 되면 다 팔릴 텐데 주마다 일일이 매출과 재고, 자재 관리 상황을 파악해 보고하라는 건 업무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혁신실에선 SCM의 기본인정물일치(靜物一致·정보와 화물의 흐름을 일치시킴)’를 실현하려면 업무 사이클을 월 단위에서 주 단위로 바꿔서 4배 정도 빠르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상시 점검 체계를 갖추다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화물의 흐름이 잘 드러나게 돼 전반적으로 업무의 가시성이 높아지고, 그 결과 장기적으로 회사의 생존 능력을 높일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적극 설득해 나갔다.

 

달성률보다 중요한 건 준수율이다

 

혁신실은 또한 일련의 혁신 활동 결과물을 평가하기 위해 KPI 지표 개선 작업에도 착수했다. 2008년 이전까지 휴맥스는 계획 대비 실제 달성 실적을 체크하는달성률을 성과 측정 지표로 삼았다. 이때 관심을 두는 건총량뿐으로 세부 모델별 실적은 체크하지 않았다. , 모델 구분 없이 총 1만 대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잡고 실제로 9000대를 생산했다면 90%, 11000대를 생산했다면 110%가 각각 달성률이 된다.

 

하지만 이런 총량 관리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게 혁신실의 판단이었다. 모델별로 얼마나 계획에 맞게 생산이 됐는지를 알아야 효율적인 SCM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지역에 들어가는 셋톱박스라도 어떤 모델의 제품이냐에 따라 그에 필요한 부품과 자재는 각기 달라진다. 만약 A모델을 많이 생산해서 B모델의 부족량을 채웠다면 A모델에 들어간 자재는 어딘가 과잉이 있었다거나 기계를 놀릴 수 없어서 미리 생산했다는 뜻이다. 모델별로 구분해 따로 실적을 점검하지 않으면 생산관리의 효율성을 높이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혁신실의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총량이 아니라 세부 모델별로 실적을 계산하고 그 생산량에 맞춰 가중치를 두는 방식으로 성과 측정 지표를 개선했다.

 

혁신실은 또한 목표 대비 실적치를 단순히 대비시키는달성률이 아니라 세분된 목표에 실적치가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를 따지는준수율을 성과 지표로 삼았다. 이는 초과 생산한 물량도 거꾸로 깎는다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600개를 계획했을 때 1000개를 생산했다면 달성률은 167%가 되지만 준수율은 60%로 잡는 식이다. 이렇게 지표를 바꾼 것은 SCM의 핵심이 정해진 계획에 따라 차질 없이 실행되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과 지표를 바꿔놓고 보니 과거엔 보이지 않았던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2008년경 제품 총량을 기준으로 한 생산실적 달성률은 90% 이상으로, 심지어 100%를 초과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모델별 실적을 따로 잡아 계획 대비 목표 달성의 정확도를 고려한 준수율을 따져 보니 고작 50% 수준에 불과했다. 새롭게 적용한 평가 지표에 따라 실적을 재평가한 결과를 보자 굳이 번거롭게 KPI 지표를 바꿀 필요가 있겠냐고 불만을 갖고 있던 직원들의 목소리도 쑥 들어갔다. 모두들이 정도로 형편없을 줄은 몰랐다며 문제 의식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총량’ 중심 지표에 묻혀 수년간 간과됐던 비효율은 모델별 준수율로 성과 지표를 바꾸면서 서서히 사라져갔다. 계획은 무조건 크게 잡은 후 잘되면 좋고 안 되면 말자는 식의 태도가 없어지고 S&OP를 통해 1주일마다 계획을 상시 점검해 실행하는 프로세스가 자리를 잡아갔기 때문이다. 조직원들은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서부터 신중을 기했고 실제 실행 단계에서는 각 모델별로 목표한 바를 최대한 맞춰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결과 2012년 준수율은 90% 수준으로 2008년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아졌다.(그림 4) 재고 비용과 물류 비용도 크게 줄었다. 2008년에 비해 불용 재고는 2011년 기준으로 80%, 물류 비용은 20%가 각각 줄어들었다. 반면 매출액은 2005 6000억 원대, 2006 7000억 원대, 2009 8000억 원대를 넘어 2010 1조 원대까지 돌파함으로써 2000년대 초반 겪었던 매출액 정체 현상을 완전히 극복했다. 2011년엔 유럽 경기 불황과 일본 대지진 등의 여파로 수익성이 높은 유럽과 일본에서의 셋톱박스 판매가 부진을 겪으며 매출액이 1조 원대 아래로 떨어지긴 했지만 이듬해 다시 회복했다.

 

휴맥스는 향후 차세대 셋톱박스로 주목받는 홈게이트웨이서버(HGS·Home Gateway Server)를 통해 글로벌 시장 공략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HGS는 셋톱박스에 게이트웨이를 내장해 방송뿐 아니라 유·무선 인터넷은 물론 인터넷 전화까지 구현할 수 있게 해주는 방송통신 융합 장비다. 네트워크 기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이종 기기 간 콘텐츠를 공유하는 ‘N-스크린을 가능케 하는 셋톱박스라고 할 수 있다.

 

휴맥스는 일찍이 2001년 국내 레지덴셜게이트웨이(Residential Gateway) 기업인 엠엠씨테크놀로지에 지분 투자를 한 데 이어 지난해 HGS 개발력을 강화하기 위해 추가 지분을 인수, 엠엠씨테크놀로지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가정 내 다양한 기기를 홈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이를 외부 액세스 망과 연동해주는 레지덴셜게이트웨이 기술을 토대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HGS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휴맥스는 올해부터 북미 위성사업자들을 대상으로 HGS를 공급하고 있다. 연내에는 미국 내 최대 케이블방송 사업자인 컴캐스트에도 관련 제품을 공급한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휴맥스는 지난 1월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CES 2013’에서 미국 최대 케이블방송 사업자인 컴캐스트의 차세대 방송 서비스를 지원하는 셋톱박스를 시연하기도 했다. 이 밖에 휴맥스는 올해 안에 독일, 호주 리테일 시장에 이어 내년엔 남미 케이블 방송용 HGS 제품을 공급할 계획이다.

 

 

 

휴맥스의 운영 혁신 성공 요인

 

“직원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동료들의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서로 간의 업무 관계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었다. 회사는 수익 지향적이라기보다 매출 지향적이었다. 몇몇 부서의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장기적 계획 부재로 인해 생긴 단기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전체적인 사업 구상이 없었고 계획을 세웠어도 끝까지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기업 성장을 방해하는 10가지 증상>에서 에릭 플램홀츠 UCLA 앤더슨 경영대학원 교수와 이본 랜들 매니지먼트시스템컨설팅 부회장이 언급한성장통(growing pains)’의 대표적 증상이다. 마치 2000년대 초반 휴맥스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것과 같은 지적이다.

 

휴맥스는 사업 초창기부터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한 결과 1997년 이후 고속 성장을 구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기업 성장에 걸맞은 역량과 인프라를 갖추지 못해 플램홀츠 교수가 지적한 성장통의 징후들을 앓았다. 무언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걸 누구나 인식하고 있었지만바쁘다는 핑계로 다들 지나쳐 버렸다. 하루에 9번씩 공장이 멈춰 설 정도로 생산 관리가 엉망이었지만시장 호황의 우산 속에 숨어 당장의 매출액을 올리는 데 급급했다. 정말로 진실된 정보를 따로 공유하는 비공식 회의가 생겨났을 정도로 조직원 간 불신의 골도 깊었다.

 

휴맥스는 이러한 성장통에 부닥쳤을 때 대증 치료가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나섰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혁신만 전담할 조직을 만들었고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이때 당장의 성과를 내려고 조급해하기보다는 무려 1년이라는 준비 기간을 거쳐 휴맥스가 나아가야 할 혁신의 방향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조직원들의 의식과 행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 각 부서의 핵심인력들을 일일이 만나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정립했고 각 부서마다 담당해야 할 책무를 세세하게 규정함으로써 업무 관계를 명확히 설정했다. “일단 진행하고 나중에 문제가 되면 고치자는 관행도 없앴다. , 개발 단계마다 갖춰야 할 요소를 100% 갖추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함으로써앞단 품질확보에 주력했다. 객관적인 플래닝 시스템의 개발을 주도함으로써 구성원들 간 투명하고 활발한 의사소통이 일어날 수 있는 인프라도 구축했다. 무엇보다 PSR, S&OP처럼 계획을 세운 후 1주일마다 이를 상시 모니터링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확립했다.

 

또한 휴맥스는 전반적인 업무 프로세스의가시성을 높임으로써 혁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측정할 수 없는 것은 관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무언가를 제대로 측정하려면 일단 눈에 보여야 한다. 소프트웨어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측정하기도, 관리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휴맥스는 인사 평가와 관계 없는 동료들이 소프트웨어 소스 코드를 점검하는 방식 등을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를 잡았다. 성과 측정 지표 역시 달성률이 아닌 준수율을 도입함으로써 이전에는 파악하기 힘들었던 세부 모델별 생산, 판매 실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결국 SCM의 진일보를 의미했고 이 같은 운영혁신의 결과 휴맥스는 벤처 1세대 기업 가운데 매우 드물게 창업한 지 21년 만에 매출액 1조 원을 넘는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용훈 휴맥스 혁신실장 yhlee@humaxdigital.com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 이방실 이방실 | - (현)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기자 (MBA/공학박사)
    - 전 올리버와이만 컨설턴트 (어소시에이트)
    -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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