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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Case Study: 마이다스아이티의 성공전략

사람 키우는 게 경영의 진짜 목표

이유종 | 133호 (2013년 7월 Issue 2)

 

 

편집자주

※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박 별(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두바이에 세워진 세계 최고층 건물인 부르즈 칼리파와 상하이 CCTV 본사, 인천대교, 베이징올림픽 주경기장…. 이 건축물들은 마이다스아이티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로 설계됐다. 마이다스아이티는 구조물과 기계를 설계할 때 안전성을 미리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다. 건축물은 바람과 지진, 온도, 폭발, 진동, 충격 등을 고려해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설계하기 전에 안전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마이다스아이티는 1989년 포스코의 사내 벤처기업으로 출발했고 2000 9월 독립했다. 자본금은 15억 원. 첫해 매출액은 15597만 원, 당기순이익은 49343만 원을 기록했다. 2012년 매출액 5558173만 원에 당기순이익 1176123만 원을 냈다. 해외 실적까지 더하면 매출액은 777억 원으로 늘어난다.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다. 매년 30%에 가까운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현재 건축과 토목, 지반 등 3개 분야 구조설계 소프트웨어에서 국내 시장의 9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해외 시장의 성적표도 화려하다. 마이다스아이티의 제품은 100여 개 국가 1만여 개의 프로젝트에 사용됐다. 미국의 에이콤, 제이콥스, PB, 영국의 오브아럽, 휴슨 등 세계 100대 엔지니어링 회사 중 50%가 마이다스아이티의 고객이다. 마이다스아이티의 소프트웨어인 Midas Civil(토목 구조해석 소프트웨어) Midas Building(빌딩설계 자동화 소프트웨어)은 중국에서 각각 시장점유율 1위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본 시장에서도 Midas Gen(건축 구조해석 소프트웨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엔지니어의 불편함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

이형우 대표는 부산대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그는 1986 1월 대우조선(현 대우조선해양㈜) 입사한 뒤 플랜트설계부 등에 근무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처음에는 설계업무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설계도면의 숫자를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자동으로 계산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대우중공업의 노사분규가 심각해서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자 이 대표는 1989 10월 포항 소재의 포스코엔지니어링(현 포스코건설)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표는 포스코엔지니어링에서 구조물 설계 업무를 담당했다. 포스코엔지니어링은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가진 미국 업체에서 개발한 구조해석 프로그램을 사용했다. 이 프로그램은 건설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데는 좋았으나 엔지니어의 입장에서 보면 불편한 점이 많았다. 사용방법이 어려워서 소프트웨어를 익히는 데 시간도 많이 걸렸다. 또 해외 프로그램인 탓에 의문점이 생기면 2∼3주가 지나서야 겨우 해결방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다시 해석해서 업무에 적용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이 대표는 구입한 프로그램의 불편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기능을 보완한 소규모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다.

 

프로그램 개발이 어느 정도 진척됐을 때 우연히 실력을 보여줄 기회가 찾아왔다. 1991년 당시 대리였던 이 대표의 업무는 용광로 설계의 구조 안전성을 재검토하는 것이었다. 일본 굴지의 철강엔지니어링 회사인 I사에서 보낸 기본설계를 기본으로 설계도를 보다 자세하게 바꾸는 업무를 담당했다. I사는 포스코의 용광로 부대시설을 지지하는 4개의 대형 기둥 구조물을 재사용할 수 없으니 용광로 교체시점에 다시 제작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교체 비용은 막대하게 들어가기 때문에 포스코엔지니어링은 부담을 크게 느꼈다. 이 대표는 전혀 다른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자신이 만든 소프트웨어로 안전성을 검토한 결과 일부만 보강해도 충분히 구조물을 계속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 포스코엔지니어링은 이 대표가 속했던 신생조직의 결론을 쉽게 신뢰할 수 없었다. 그래서 I사 기술팀과 마이다스팀은 대면해서 논쟁을 이어갔다. 일본 측은 이 대표가 만든 소프트웨어를 검토한 결과 자신들이 일부 계산에서 실수한 사실을 발견했다. 이 사실은 사내에서한국의 기술력이 일본을 이겼다는 소문이 나돌게 했다. 이후 이 대표는 자신감을 갖고 사내뿐만 아니라 건설업체들이 두루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진했다.

 

1996 11월 국내 첫 구조해석 소프트웨어인마이다스 젠이 출시됐다. 시판 6개월 만에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 당시 국내에서는 D사가 해외 구조해석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I사가 하드웨어 판매와 유통을 거의 독점하던 상황이었다.

 

이 대표는 마이다스젠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는 상황이었으나 대기업의 복잡한 의사결정과 인재채용방식 등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의사결정 단계가 매우 복잡했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도스 방식의 소프트웨어를 윈도 버전으로 바꾸려면 추가 연구와 투자가 필요했다. 또 소프트웨어개발팀에게는 새로운 인력이 재빠르게 투입돼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포스코엔지니어링은 새로운 인재를 뽑을 때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학력과 나이, 영어성적 등 기본적인 스펙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협력사에서 핵심인재를 찾았으나 채용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마이다스개발팀은 1999 5월 마이다스센터라는 독립조직으로 바뀌었다가 이 사장의 거듭된 요구로 2000 9월 포스코에서 독립했다. 포스코엔니지어링은 마이다스아이티가 사내 벤처기업으로 잔류하기를 바랐으나 이 대표가 끈질기게 요구했고 결국 분리됐다. 이 대표는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팀은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인재가 필요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속성상 스펙을 아예 무시할 수 없었다. 또 기존 조직에서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었다. 새로 개발된 소프트웨어도 제대로 보급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창업이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일본 1위 업체와 함께 시장 공략

포스코엔지니어링에서 독립했으나 상황이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제품의 수요가 꾸준하게 늘어나는 상황이었으나 구조해석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의 구조설계자와 전문기술자로 한정돼 있었다. 당시 국내 시장 규모는 10억 원에 미치지도 못했다. 좁은 고객층을 대상으로 성장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또 선진국의 핵심 프로그래밍 기술을 계속해서 따라가는 것도 엄청난 도전이었다. 해외로 눈을 돌렸다. 마이다스아이티는 분사 이후 도스 방식의 소프트웨어를 윈도 방식으로 수준을 높였다. 가상 시뮬레이션 기능도 이미 탑재시켰다. 마이다스아이티의 소프트웨어는 컴퓨터상으로 건물을 지어서 가상의 태풍과 지진을 일으키고 물건도 올려놓아서 안전성을 점검한다. 그래야 기둥의 폭을 얼마나 넓게 해야 하며 철근을 어느 정도 넣어야 하는지 파악할 수 있다. 당시 해외 제품들은 이런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먼저 일본 시장을 겨냥했다.

 

일본의 경우 지진에 대비한 건물의 안전성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제품의 사용량이 많았다. 2000년대 초 일본 건축계는 일본 업체가 개발한 구조설계 프로그램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다. 또 무명에 가까운 한국 기업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선입견도 갖고 있었다. 진입장벽은 높았다. 그렇다고 해서 마이다스아이티의 자본력이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이 대표는 고심 끝에 우회전략을 사용했다. 일본의 1위 업체를 마이다스아이티의 대리점으로 활용해 시장을 공략하는 방법을 구상했다.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였다. 게다가 당시 일본 건설용 소프트웨어 1위 업체인 KKE(Kozo Keikaku Engineering)의 제품은 시뮬레이션 기능도 구현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마이다스는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KKE를 찾았다. KKE는 제품 자체에 대해서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세부 조건에서 협상이 진전되지 못했다. 마이다스가 요구한 최소판매 4000만 엔 보장 등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마이다스는 이에 굴하지 않고 2위 업체를 찾았다. 하지만 역시 조건 문제 등으로 대리점 계약을 맺지 못했다. 마이다스는 후발 업체와 협의를 진행하면 오히려 선발업체를 코너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4위 업체의 젊은 사장이 마이다스와의 협상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적극적이었다. 젊은 사장은 자신들의 판매 역량에 마이다스아이티의 제품을 합치면 일본 시장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같은 소식은 KKE에도 흘러들어갔고 시장 주도권을 빼앗길지 모른다고 판단한 KKE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마이다스아이티는 KKE와의 재협상에선 더 강한 조건을 제시했다. ‘KKE의 소프트웨어를 마이다스아이티의 소프트웨어로 교체하는 프로모션을 1년간 실시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고 초기 최소 판매 금액 4000만 엔도 보장해달라고 요구했다. 4위 업체와의 계약이 성사 직전이라는 상황을 의식한 KKE는 마이다스아이티의 조건을 받아들였다. 결국 계약이 성사됐고 KKE의 본격적인 영업 덕분에 마이다스아이티의 제품은 이듬해 일본 시장 1위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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