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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영감은 고객에게서 온다

김용진 | 40호 (2009년 9월 Issue 1)
와인을 마시지 못하게 해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본 테마파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프랑스 파리 근교의 테마파크인 유로디즈니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미국의 월트디즈니는 1992년 39%의 지분을 투자해 유로디즈니를 설립했다.
 
유로디즈니는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와 일본의 도쿄 근교 디즈니랜드와 유사한 형태의 미국화된 테마파크로 기획됐다. 야심 차게 첫발을 내디뎠지만, 출범 6개월 만에 3400만 달러의 손실을 냈다. 50만 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했던 개장 첫날 5만 명만이 이곳을 찾았고, 개장 첫해인 1992년 방문객은 당초 예상(1100만 명)의 80%가 조금 넘는 900만 명에 불과했다. 더구나 프랑스인 방문객은 전체 방문객의 30%에 불과했다. 반면 이 기간 동안에도 수많은 유럽인들이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를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로디즈니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아이즈너가 “우리가 프랑스에 창조한 것은 미국 전체를 통틀어 가장 큰 외국에 대한 투자다. 조만간 우리는 큰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지만, 결과는 이처럼 참담했다.
 
유럽인들이 유로디즈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지리적으로 가까운 유로디즈니보다 훨씬 먼 거리에 있는 미국 플로리다의 디즈니월드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유럽인들이 ‘유로디즈니는 미국 상업 문화의 유럽 침탈’이라고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 내에서는 유로디즈니가 개장하기도 전에 “미국의 가족형 놀이공원이 프랑스의 개인주의적인 문화적 전통을 위협할 것”이라며 강력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실제로 기자회견장에서 아이즈너에게 썩은 계란을 던지는 일까지 벌어졌다.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인들은 유로디즈니가 세운 몇 가지 원칙과 놀이공원 운영 시스템 때문에 유로디즈니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디즈니는 종업원들이 콧수염이나 구레나룻, 꽁지머리 등을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이는 유럽인에게는 아주 친숙한 차림새였다. 유로디즈니 내의 단 하나밖에 없는 프랑스 식당에서 와인을 마시는 것도 금지했다. 와인이 없는 프랑스, 얼마나 엄청난 변화인지 한번 상상해보라. 또한 유로디즈니는 놀이공원 곳곳에 야구를 상징하는 핫도그 카트를 배치했는데, 이 카트의 모양은 축구를 좋아하는 프랑스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이처럼 미국의 디즈니월드나 미국화된 일본의 디즈니랜드에서 사용되는 많은 규칙과 시스템들을 그대로 유로디즈니에 이식하려 한 행동이 프랑스인 등 유럽인들의 분노를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놀이공원의 명칭에 ‘유로(EURO)’를 사용한 것도 패착이었다. 유럽의 다양한 국가와 민족들을 하나의 개체인 ‘유럽인’으로 인식해, 각국 또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문화적 차이를 수용하는 데 실패했다. 월트디즈니사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반영하려는 노력 없이 미국의 제품에 약간의 표준적 변화만 곁들여 유럽에 판매하려다 결국 쓴잔을 들어야 했다.
 
뼈아픈 실패를 거울삼아 월트디즈니는 1994년 10월 ‘유로디즈니’의 명칭을 ‘디즈니 리조트 파리’로 바꾸고 과감히 경영진을 교체했다. 덕분에 1995년부터는 성공적인 비지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성공은 프랑스 고객과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해 시스템을 갖추고, 프랑스어와 문화를 보존하려고 노력하면서 얻은 결과다. 유로디즈니 시절에는 영어가 일반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으나, 디즈니 리조트 파리로 바뀐 뒤에는 프랑스어가 중시됐다. 돈과 물질적 성공을 중시하는 미국적 가치보다 프랑스 문화에서 강조하는 친근함, 협동, 낮은 스트레스 수준, 그룹 의사결정 등의 가치가 우선시됐다. 디즈니는 고객들의 문화적 기대 욕구 등을 충족시키기 위해 놀이공원 곳곳에 고객 의견함을 설치하고, 고객 면담을 실시하는 등 고객에게 한 발 더 다가서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도입했다. 이 과정에서 23명의 미국 출신 고위 경영자들은 유럽 출신으로 교체됐다.
 
유로디즈니의 사례는 많은 기업, 특히 상당히 성공한 대기업조차 새로운 사업이나 서비스에서 왜 실패하는지에 대한 답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1990년대부터 많은 기업들이 ‘고객 지향적 서비스’ 또는 ‘고객 지향적 제품’이라는 용어들을 자주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공급자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고객들이 어떻게 제품이나 서비스를 활용하는지 적극적으로 탐구해 개선안을 찾는 데 실패했음을 뜻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객을 중심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판단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웅변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실패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안으로부터 바깥으로의 혁신’, 즉 기존에 갖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자원, 역량을 중심으로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만들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유로디즈니의 예에서 보듯, 이러한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아주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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