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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ing Breakthrough Products

고객경험을 혁신하는 기술적 통찰력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 | 106호 (2012년 6월 Issue 1)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1년 10월 호에 실린 로베르토 베르간티의 글 ‘Designing Breakthrough Products’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2012 Harvard Business School Publishing Corp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얻는 일은 점차 쉬워지고 있다. 인터넷으로 가능해진 협업과 점점 가속되고 있는 열린 혁신 덕분에 우리는 아이디어와 솔루션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이제는 넘쳐나는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혁신 책임자들이 마주한 최대 고민거리다. 신기술을 가장 먼저 이용하는 것 자체보다는 신기술로 열린 미개척 시장의 잠재력을 먼저 파악하는 일이 훨씬 중요해졌다.
 
후자의 위업을 달성한 유명 기업으로 닌텐도(Nintendo), 애플(Apple), 스와치(Swatch)가 있다. 이들 세 기업은 모두 기술을 활용해서 시장 내 상품의 의미를 파격적으로 변화시켰다. 다시 말해 고객이 상품을 구매하는 이유, 상품을 사용하는 방식 자체를 완전히 바꿔 버린 것이다.닌텐도는 MEMS(mycro-electro-mechanical systems·미세 전자기계 시스템) 기술을 응용한 가속센서(accelerometer)로 가상 세계에 대한 수동적 몰입에서 신체의 능동적 움직임을 통한 오락으로 전자 게임의 개념을 바꿨다. 애플은 아이팟(iPod)과 아이튠즈(iTunes)를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구매해 자신만의 재생 목록을 만들도록 했고 음반 산업을 위협하던 저작권 침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스와치는 저렴한 쿼츠(quartz) 기술을 응용해서 단순히 시간을 보기 위한 도구에서 저렴한 패션 액세서리로 시계를 진화시켰다. 이들 기업은 해당 상품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신기술을 도입한 당사자가 아니었다(아이팟은 MP3플레이어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4년 후인 2001년 첫 출시됐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는 방식으로 기술을 활용해서 수익성 높은 사업 모델을 완성시켰다.
 
이런 상품을 만들어 낸 전략을 기술적 통찰력(technology epiphanies)이라 부르겠다. 통찰력을 의미하는 ‘epiphany’는 ‘사물의 본질적 성질이나 의미를 인지’하는 것으로 대개 창의성이 뛰어난 외톨이 천재가 순간의 직관에 따라 얻는 영감 정도로 생각돼 왔다. 그러나 이 글에서 기술적 통찰력은 드물게 찾아오는 ‘유레카(eureka)’의 결과가 아니다. 공급자나 기업이 자사 상품에 신기술을 접합시켜 체계적으로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환자에게 편안한 의료 환경을 제공하는 필립스전자(Philips Electronics)의 ‘앰비언트 익스피리언스(Ambient Experience for Healthcare·AEH)’가 대표적인 예다. 필립스전자는 환자가 전산화단층영상진단(CT)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검사를 받을 때 느끼는 불안감을 완화하기 위해 혁신적인 의료 환경을 구현했다. 이들은 의례적인 혁신 절차를 따라 기술을 적용하는 대신 완전히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창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를 위해 전혀 연관이 없는 광범위한 분야의 전문가를 소집해 팀을 구성하고 다양한 기술을 통합해서 아이디어를 새로운 상품으로 만드는 법을 논의하며 사용자 및 고객과 함께 시제품을 만들었다. ‘사람 중심의 의료 환경’ AEH를 요구한 건 환자나 병원이 아니었지만 일단 경험한 이들은 필립스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의료 환경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통찰력을 얻기 위한 필립스의 노력
 
새롭게 개발된 기술과 만났을 때 대부분 기업은 혁신의 개념을 협소하게 정의한다. 신기술로 구기술을 대신하는 ‘기술 교체’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은 과거 기술보다 고객의 현재 요구를 잘 만족시키는가”를 묻는다. 그러나 기술적 통찰력을 추구하는 기업은 다른 각도에서 질문을 한다. 이들은 “신기술을 이용해 지금의 상품보다 더 의미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현재의 요구를 넘어서 고객이 해당 제품을 사야 하는 새로운 이유를 제공하는가”를 묻는다.
 
필립스는 1990년대 초반 기술적 통찰력을 통한 변신을 시작했고 2001년부터 관련 전략에 체계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다. 당시 필립스의 경영진은 회사가 내부에서 개발했거나 외부에서 도입한 다양한 신기술의 잠재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화를 시작했다. 이들은 기술개발 그룹 및 사업부를 지원하는 디자인팀에 해당 문제를 해결하라고 주문했다. 새로운 임무를 안게 된 필립스 디자인은 새롭게 부상하는 기술을 활용해서 소비자 가전과 조명, 의료시장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20여 개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얻은 성과 중 하나가 바로 AEH다. “AEH는 32억7000만 유로(46억3000만 달러)에 달하는 필립스의 의료 영상 사업을 강화시켰고 보다 높은 가격을 내세워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다”고 디자인 사업을 총괄하는 토마스 반 엘자커(Thomas van Elzakker) 총매니저는 말했다.
 
1970년대 초반에 CT, 1980년대 초반에 MRI가 도입된 이후 방사선 전문의들은 좀 더 뛰어난 영상을 보여주면서도 검사 시간과 비용을 낮춰줄 장비를 찾고 있었다. 그 결과 의료 영상 산업에서의 혁신은 주로 기술 대체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는 보다 발전된 형태의 장비가 연이어 등장했다. AEH가 도입되기 10년 전부터는 엑스레이 튜브가 한번 돌 때마다 CT 스캐너가 촬영하는 영상의 수가 16배 증가했고 엑스레이 튜브가 돌아가는 속도 또한 2배 빨라졌다. (이렇게 되면 환자가 움직여도 영상을 보전하는 능력이 개선된다.) 필립스 경영진은 필립스가 뛰어난 장비를 선보이는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2002년 이후 이런 면에서 차별화할 수 있는 여지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AEH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면서 필립스는 시장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찾은 셈이다.
 
의료 영상 촬영을 할 때 장비 안에 들어간 환자들은 불안함에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은 촬영 영상의 질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병원은 불안을 느끼는 환자, 특히 어린이들에게 진정제를 주사해 안정시켰고, 이는 촬영 과정의 위험을 높이는 한편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요인이 됐다.
 
AEH는 LED 디스플레이와 애니메이션 영상, 무선주파수식별(RFID) 센서, 음성 제어 시스템 등 기술을 활용해서 환자의 마음을 편안히 해줄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한다. 일례로 어린이 환자가 검사실에 들어오면 ‘수중 세계’ 혹은 ‘자연’ 등 테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 다음 아이는 RFID 센서가 장착된 작은 인형을 받는다. 그러면 아동 환자가 검사실에 들어섰을 때 RFID 센서에서 신호를 보내 선택 테마와 관련된 애니메이션과 조명, 사운드 등이 시작된다. 검사를 받는 동안 어린이 환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돕기 위한 장치다. 준비실에 가면 간호사는 주인공이 바다로 나간 애니메이션을 보여준다. 그리고 주인공이 바닷속 깊숙이 묻힌 보물을 찾기 위해 잠수를 하는 동안 숨을 참아야 한다고 어린이 환자에게 가르쳐 준다. 그 다음 검사를 받는 동안 주인공이 잠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환자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시간에 숨을 참고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방식은 단순히 환자 경험을 개선하는 수준을 넘어 많은 혜택을 가져왔다. CT 촬영을 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15∼20% 감소했다. 3세 미만 아동의 경우 CT 촬영을 위해 진정제를 투여하는 사례가 30∼40% 줄어들었다. 또한 환자가 노출되는 방사선량도 25%에서 50%가량 감소했다.
 
   기술적 통찰력의 힘
기술적 통찰력은 상품을 사용할 때 발생하는 고객 경험의 의미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킨다. 대표적인 두 사례를 설명한다.
 
1.
크게 성공을 거둔 닌텐도 위(Wii)가 출시되기 전까지만 해도 비디오 게임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경험은 가상 세계로의 수동적 몰입이 전부였다. 닌텐도가 MEMS 가속 센서를 응용해 컨트롤러의 이동 속도와 방향을 감지하는 게임기를 만들면서 비디오 게임은 실제 환경에서 몸을 움직이는 적극적 오락으로 변모했다.
 

2.
카시오(Casio)를 포함한 시계 제조업체는 저비용의 쿼츠 기술과 LED 또는 LCD 디스플레이를 결합해 기존 기계식 시계를 대체하는 싸고 정확한 시계를 만드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스와치는 정확하면서도 저렴한 시계를 패션 액세서리로 활용하는 데 기술을 사용했다.
 

 
기술보다 사람이다
 
기술적 통찰력을 발휘하면서 AEH가 시작됐다. 병원이 아닌 장비 제조업체가 환자의 불안함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환자에게 진정제를 투여하며 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요하는 방식 말고 다른 대안이 있다는 생각을 실현시킨 최초의 사례다. 또한 환자의 스트레스 강도가 치료 경험이 발생하는 환경에 크게 좌우되며 환경에는 검사 자체뿐 아니라 검사 전후의 상황 모두 포함된다는 사실을 인정한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필립스가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의료 시장에서 치료 환경을 생각하는 ‘앰비언트 기술’의 막강한 잠재력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필립스는 자사가 얻은 통찰력을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첨단 기술이 개발될 때마다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기술적 통찰력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기업들은 통상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조사하거나 이들의 상품 사용 행태를 면밀히 관찰하는 방식으로 고객의 필요를 분석한다. 이런 노력은 기존 제품을 개선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사용자가 해당 기술에 익숙하지 못할 경우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실제로 검사를 받는 환자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진정제 주사를 맞을 때의 아픔이었다. 이들은 애니메이션을 보며 마음을 안정시키면 주사가 필요 없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방사선 전문의 또한 병원의 진료 환경 변화가 임상적 성과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필립스 디자인은 기술을 통해 제공할 수 있으며 기존 상품보다 의미가 큰 새로운 비전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비전을 찾기 위한 첫 단추는 바로 적절한 전문가다. 같은 상황에서 상품을 사용하는 동일한 고객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며 해석할 줄 아는 해설가다. 이들은 조직 내부인일 수도 있고 학자나 연구자, 설계자, 혹은 다른 산업이나 보완 기술을 제공하는 협력업체 사람 등 외부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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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

    로베르토 베르간티(Roberto Verganti)

    - 이탈리아 밀라노 폴리테크니코 혁신 경영 전공 교수
    - 기업의 전략적 혁신을 돕는 컨설팅회사 프로젝트 사이언스(PROJECTSCIENCE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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