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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cond Economy

제2의 경제: 디지털이 가져온 또 다른 산업혁명

W. 브라이언 아서 | 97호 (2012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맥킨지쿼털리>에 실린 글 ‘The Second Economy’를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기 10년 전인 1850년 미국 경제의 규모는 이탈리아보다 조금 큰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40년 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국가로 성장한다. 40년 만에 그렇게 큰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철도 덕분이다. 철도는 동부와 서부, 내륙과 해안을 연결시켰고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했으며 철강산업과 제조업을 활성화했다. 철도는 미국 경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근본적인 변화는 드물지 않다. 60년에 한번씩은 새로운 기술이 탄생해 수십 년에 걸쳐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경제를 변모시킨다. 또 이런 변화는 새로운 사회적 계급을 탄생시키고 전혀 다른 비즈니스 세계를 만들어왔다. 이렇게 깊고 느리고 조용한 변화가 오늘날에도 일어날 수 있을까?
 
유전공학 또는 나노기술에서 그런 변화를 찾을 가능성이 있지만 그 시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필자는 정보기술 분야에서 컴퓨터, 소셜미디어, 전자상거래의 차원을 뛰어넘는 심층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본다. 과거 사람들 사이에서 수행되던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이제는 전자적인 방식으로 실행된다. 전에 볼 수 없었던 완전한 디지털 환경 속에서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거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특별히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오늘날 정보기술의 변화가 과거의 철도에 버금가는 중요하고도 극적인 혁신을 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변화는 디지털화된 제2의 경제를 조용히 만들어내고 있다.
 
두 가지 사례를 보자. 20년 전에 비행기에 탑승하려면 공항에서 카운터로 걸어가서 종이 항공권을 항공사 직원에게 제시해야 했다. 직원은 승객을 컴퓨터에 등록하고 편명을 알려주고 수하물을 체크인했다. 이 모든 일을 사람이 했다. 오늘날 우리는 공항에 들어가면 우선 기계부터 찾는다. 상용고객카드 또는 신용카드를 삽입하면 3∼4초 만에 탑승권, 영수증, 수하물 태그가 발급된다.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 3∼4초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카드가 삽입되는 순간 전적으로 기계들 사이에서만 이뤄지는 거대한 대화가 개시된다. 탑승객의 이름이 확인되면 컴퓨터는 탑승객의 등급을 항공사에 확인하고 과거의 비행 이력과 이름을 교통안전국(TSA1 ) 및 국가안보국에 확인한다. 다음으로는 탑승객의 좌석 선택, 상용고객 상태, 라운지 이용 자격을 확인한다. 이와 같은 전례 없는 무언의 대화는 여권 관리, 출입국 사무, 연결 노선 등의 과정에서 다수의 서버와 서버 간, 위성과 컴퓨터 간에 이뤄진다. 그리고 항공기의 정확한 하중 배분을 위해 기계는 탑승객의 수와 좌석 위치를 조정해 동체의 앞 또는 뒤에 너무 많은 무게가 집중되지 않도록 한다.
 
이러한 대규모의 복잡한 대화는 맨 처음 탑승객이 유발하지만 이후에는 서버, 스위치, 라우터, 기타 인터넷 및 통신 장비가 정보를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송수신하면서 원격으로 이뤄진다. 탑승객이 탑승권을 기계에서 발급 받을 때까지 걸리는 단 몇 초 동안에 이 모든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공급사슬관리(SCM)와 관련된 것이다. 20년 전에는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을 통해 중부 유럽으로 화물을 선적할 때 클립보드를 든 사람들이 입항을 등록하고 적하목록을 검토하고 서류작업을 하고 전화로 다른 사람들에게 행선지를 알려줬다. 그러나 오늘날은 RFID2 포털에서 정보를 스캔하고 디지털로 캡처하고 자동으로 전송하는 식으로 선적이 이뤄진다. RFID 포털은 선적인, 창고, 공급자, 경로상의 목적지와 전자 통신으로 경로를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최적화가 필요할 경우 경로를 재설정한다. 과거에는 사람의 손으로 하던 일을 이제는 원격지에 소재한 서버 간에 이뤄지는 일련의 대화를 통해서 처리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선진 국가의 모든 경제에서 실물 경제의 프로세스가 그대로 디지털 경제로 이전되고 있다. 실물 경제 프로세스가 디지털 경제 프로세스에 말을 걸면 다수의 서버와 다수의 지능 접점(노드) 간의 끊임 없는 대화를 통해 정보가 업데이트되고 질의, 점검 및 조정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실물 경제의 프로세스 및 인간에게 다시 연결된다. 디지털화된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통해 추가적인 활동이 전달, 집행, 유발되는 또 다른 경제, 즉 제2의 경제가 실물 경제를 따라 조용히 형성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2의 경제는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가?
 
대략적인 추산에 불과하지만 디지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5년 이후 미국의 노동생산성(근로시간당 생산) 증가율은 매년 2.5∼3%선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러한 노동생산성의 향상이 정보기술을 활용한 결과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일부 경제 전문가는 표준지표를 적용할 경우 생산성 향상의 효과가 과소 평가된다고 말한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산성 향상분의 65∼100%는 디지털화 덕분이라고 평가될 만하다. 장기적으로 제2의 경제가 전체 경제 생산성을 매년 2.4% 정도 높인다고 가정해보자. 노동력을 불변의 상수로 잡을 경우 생산, 즉 경제성장률 역시 이 정도 비율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경제가 매년 2.4%씩 성장하면 30년 만에 2배가 된다. 2025년이면 제2의 경제는 1995년의 실물 경제 규모에 도달한다. 여기서 정확한 숫자인지 여부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제2의 경제가 실물 경제에 종속된 작은 규모의 존재가 아니라 앞으로 20∼30년 내에 실물 경제의 규모를 능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시나무의 뿌리 체계
 
제2의 경제를 묘사할 수 있는 형용사를 찾는다면 ‘광대하고’ ‘조용하며’ ‘연결돼 있고’ ‘전례가 없고’ ‘자동적’이라는 단어들을 꼽겠다. 제2의 경제는 원격으로 실행되고 글로벌하며 상시 가동되고 끊임없이 조정이 가능하다. 모든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동시 발생적이기도 하다. 또 필요할 경우 끊임없이 자신을 재설정한다는 의미에서 자기설정적이고 자기조직적, 자기설계적, 자기치유적이다.
 
이 형용사들은 생물학에나 어울려 보인다. 그런데 제2의 경제는 실제로 생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시나무가 자라고 있는 땅 1에이커를 파보면 땅 속으로 10마일에 걸쳐 뿌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하는데 제2의 경제는 이 사시나무의 뿌리와 같이 실물 경제의 표면 아래 가려져 있지만 상호 연결돼 있는 거대한 체계다.
 
제2의 경제의 뿌리 체계는 필요 시 새로 연결하거나 새로운 설정을 추가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시나무 체계보다 복잡하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 비유는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제2의 경제의 규모는 얼마나 될까? 대략적으로 계산해 봐도 약 20년 뒤면 디지털 경제는 실물 경제의 규모와 같아질 것이다.(‘제2의 경제는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가?’ 참조)
 
제2의 경제 혹은 디지털 경제가 유형의 상품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즉 호텔 방의 침대를 정리해주거나 아침에 마실 주스를 갖다 주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2의 경제는 전체 경제에서 큰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건축가의 건물 설계 지원, 매출과 재고 파악, 상품의 이동, 실물 및 금융거래 실행, 제조 설비 조작, 설계 관련 계산 수행, 고객용 청구서 발급, 환자 진단, 복강경 수술 시 지원 등의 영역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현상은 서서히 진행되고 있으며 완전히 실현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근본적인 변화의 과정에서 관련 산업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기업은 그 가능성으로부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낸다. 이 근본적인 변화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일본 등 모든 선진 경제에서 일어나고 있다.
 
 
경제의 신경계
 
와츠의 증기기관이 등장한 1760년대부터 1850년대까지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경제가 기계의 힘이라는 형태로 근육계를 발전시켰다면 지금은 신경계를 발전시키고 있는 중이다. 1990년께 컴퓨터들 간에는 본격적인 연계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때 개별 기계, 즉 서버는 뉴런이라는 신경 단위에 비유할 수 있고 서로 대화를 나누면서 적절한 반응을 유도하는 통신 경로와 연결점은 축색돌기와 시냅스(신경세포의 연접부)에 비유할 수 있다.
 
이를 산업혁명 이후 최대의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조심스럽게나마 ‘그렇다’고 대답하고 싶다. 어쩌면 산업혁명을 뛰어넘어 경제사에서 가장 큰 변화인지도 모른다. 이 변화에는 상한선도 없으며 끝도 없다. 필자는 공상과학, 특이성(singularity), 사이보그 따위를 논의 및 예측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다만 제2의 경제가 초래할 변화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21세기가 끝날 때까지 전쟁이나 역병만 없다면 전례 없이 지상의 지능적인 반응을 만들어내고 있는 지하 경제인 제2의 경제로부터 큰 변화가 초래될 것이다. 15년 뒤에는 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교통 흐름 속에서 다른 차와 소통하면서 부딪치지 않고 달리는 자동차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제2의 경제는 천천히, 조용히, 꾸준히, 전혀 다른 세상을 우리에게 만들어주고 있다.
 
 
제2 경제의 어두운 면
 
거의 모든 변화에는 어두운 이면이 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일자리에 미칠 악영향이다. 한 해에 생산성이 2.4% 상승한다는 것은 동일한 수의 사람들이 생산량을 2.4% 더 늘리거나 2.4% 더 적은 수의 사람들이 동일한 양을 생산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이 두 가지가 모두 일어나고 있다. 즉 경제 내에서는 노동자 1명이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 동시에 국가 차원에서 노동자의 수는 감소하고 있다. 오늘날 항공사 데스크에 필요한 직원의 수는 과거에 비해 더 적다. 아직도 수하물을 받아서 벨트 위에 올리는 물리적인 일은 사람이 해야 하지만 많은 업무는 감지,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지적 반응의 디지털 세계 속으로 이미 빨려 들어갔다. 실물의 일자리가 제2의 경제로 사라지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그 영향은 현재 많이 알려진 인도와 중국으로 흡수되는 일자리로 인한 영향보다 더 클 것이다.
 
과거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세기 초 농업이 기계화되면서 농장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고 수십 년 뒤에는 제조업이 기계화되면서 공장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줄었다. 오늘날은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한 비즈니스 프로세스가 기계화되면서 필요한 사람들의 수가 감소해 일자리 감축 압력을 가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오늘날은 제도사, 전화 교환수, 타자수 또는 부기원의 수가 줄었다. 이들이 하던 일의 많은 부분이 오늘날은 디지털 방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판단력과 인간 간의 상호작용이 필요한 경찰, 교사, 간호사 등의 직업은 여전히 건재하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모든 다운사이징의 가장 큰 원인은 많은 일자리가 제2의 경제 속으로 사라져 다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2008∼2009년의 심각한 경기침체로부터 벗어나고 있는데도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지 않는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서 얻을 수 있는 더 큰 교훈이 있다. 제2의 경제는 21세기 또는 그 이후에도 성장의 견인차가 돼 번영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지만 일자리를 제공하지는 않으므로 번영이 찾아온다 해도 많은 사람이 그 과실을 누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앞으로의 경제의 극복 과제는 번영의 창출이 아니라 분배가 될 것이다. 지난 수세기 동안 전통적으로 서구에서는 일자리를 통해 부가 분배됐고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다. 농장의 일자리가 없어진 다음에는 제조업의 일자리가 생겨났고 제조업의 일자리가 없어진 다음에는 서비스업의 일자리가 생겨났다. 그러나 디지털 변환이 일어나면서는 전체 일자리가 줄어들기만 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러나 사회 시스템은 분명히 새롭게 적응할 것이다. 경제의 새로운 부분이 활성화되면서 과거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당 노동시간을 줄이고 휴일을 늘려서 더 많은 사람이 일할 수 있고 일자리 창출을 국가에서 보조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향후 20∼30년 내에 일자리 및 생산성 창출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후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
 
케인스는 1930년 ‘우리의 후대를 위한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유명한 소논문을 썼다. 그의 손자손녀 세대에 해당하는 오늘날 이 글을 읽으면 그 정확성에 놀란다. 케인스는 “앞으로 100년 뒤 선진국의 생활 수준은 지금보다 4∼8배 향상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기술로 인한 실업’을 정확히 경고했다. 당시 사람들은 공장에 기계와 로봇이 많아져 노동자들이 점진적으로 기계 및 로봇으로 대체되는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오늘날 정교한 기계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개별적 자동화보다는 집단적 자동화가 주류다. 확장에 한계가 없는 자동화되고 신경계와 지능을 갖춘 제2의 경제는 실물 경제의 아래에 있다.
 
조용히 형성되고 있는 광대하고 상호 연결돼 있으며 생산성이 매우 높은 제2의 경제는 새로운 경제의 세계를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이 세계에서 어떻게 헤쳐나가고 적응하고 그로부터 이익을 얻고 그 이익을 나눌 것인지는 상당 부분 우리에게 달려 있다.
 
W. 브라이언 아서
 
W. 브라이언 아서(W. Brian Arthur)는 팰로앨토리서치센터(PARC) 내 인텔리전트 시스템 연구소(Intelligent Systems Lab)의 방문연구원이며 샌터페이 인스티튜트의 겸임교수로 경제학자, 기술사상가이자 복잡성 과학 분야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경제의 수익률 상승 및 경로 의존성 (Increasing Returns and Path Dependence in the Economy), University of Michigan Press, 1994년 12월>, <기술의 본질과 발전(The Nature of Technology: What It Is and How It Evolves), Free Press, 2009년 8월> 등이 있다.
  • W. 브라이언 아서 | -팰로앨토리서치센터(PARC) 내 인텔리전트 시스템 연구소(Intelligent Systems Lab)의 방문연구원.
    -샌터페이 인스티튜트의 겸임교수로 경제학자, 기술사상가이자 복잡성 과학 분야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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