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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fore You Make That Big Decision

의사결정 전 선입견 체크리스트 12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 97호 (2012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2011년 6월 호에 실린 다니엘 카네만, 댄 로발로, 올리베에 시보니의 글 ‘Before You Make That Big Decision’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경영학 서적이 많이 쏟아져 나오는 덕분에 오늘날 많은 경영자들은 편향성(biases)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기존에 알고 있는 사실과 반대되는 증거는 무시하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정보의 일부분에만 지나치게 집중하는 정박의 오류(anchoring fallacy), 위험을 피하려다 지나치게 신중해지는 손실 회피 성향(loss aversion)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경험에 따르면 이와 같은 편향성에 대해 알게 된다고 해서 개인 및 조직의 의사결정이 개선되지는 않는다.
 
경영자들이 편향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고 해서 그것이 극복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어 전략을 짜는 과정을 밟아갈 수는 있다. 맥킨지는 1000여 개 주요 사업 투자를 검토한 결과 의사 결정 과정에서 편향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면 기업 수익이 7%포인트 상승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당 연구의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다면 <맥킨지 쿼털리> 2010년 3월 호 기사 ‘행동 전략 구상(The Case for Behavioral Strategy)’ 참조) 편향성을 줄이면 분명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본 기사에서는 경영진이 매일 내리는 의사 결정, 즉 다른 사람이 제출한 사업 시안을 검토하고 승인할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다음 단계로 넘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편견 없이 진행하는 방법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
 
대부분 경영자에게 제안서를 검토하는 일은 매우 간단해 보인다. 첫째, 주요 사실을 (해당 사안을 잘 아는 실무자에게 듣고) 빠르게 파악한다. 둘째, 제안서를 제출한 사람이 특정 사실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한다. 셋째, 자신의 경험과 지식, 이성을 활용해 제안서가 맞는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렇게 단순해 보이는 과정 곳곳에도 인지 편향에서 비롯된 의사결정의 왜곡 가능성이 존재한다. 기사에서도 논의되겠지만 경영자들이 스스로의 오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적절한 도구만 주어진다면 팀이 빠진 오류를 포착하고 이를 완화하는 한편 편향성의 덫을 피하고 그 피해를 줄이는 의사결정 과정을 조직 내에 수립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조직이 내리는 의사 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편향성 극복이 어려운 이유
 
우선 사람들이 왜 자신의 편향성을 인식하지 못하는지 살펴보자.
 
인지 과학 이론에 따르면 사고는 직관적 사고(intuitive thinking)와 성찰적 사고(reflective thinking)로 구분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두 사고 유형의 차이점을 밝혀내기 위해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가 진행됐다. 리처드 탈러(Richard Thaler)와 카스 선스테인(Cass Sunstein)은 그들의 저서 <넛지(Nudge)>에서 이것을 대중화했다.)
 
직관적 사고인 제1 사고체계(System One)에서 인상과 연상, 느낌, 의도, 행동 준비로 연결되는 과정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제1 사고체계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 세상의 이미지를 계속해서 보여주고 생각에 잠긴 채 걷는 순간에도 앞에 있는 장애물을 피하도록 돕는다. 양치질을 할 때나 친구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 테니스를 칠 때도 이 사고체계가 작동한다. 이때 우리는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의식적으로 집중하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찰적 사고인 제2 사고체계(System Two)에서는 사고가 천천히 주의 깊게, 의도적으로 이뤄진다. 세금 신고서를 작성할 때나 운전을 처음 배울 때 제2 모드가 작동한다. 이 두 사고체계는 항상 작동하고 있지만 제2 사고체계의 경우 평상시에는 뒤에서 모니터링만 하고 있다가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나 명백한 오류를 발견했을 때, 혹은 원칙에 입각한 사고가 필요할 때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제1 사고체계가 우리의 생각을 결정한다.
 
우리가 가진 시각 체계나 연상적 기억(제1 사고체계의 주요 요소)은 주변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일관된 해석을 내리도록 설계돼 있다.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은 ‘맥락(context)’에 대단히 민감하다. ‘bank’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자. <HBR>을 읽는 독자라면 ‘bank’를 보고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단어를 낚시 잡지 <필드 앤 스트림(Field & Stream)>에서 접한다면 ‘강둑’이라는 다른 의미로 파악할 것이다. 이처럼 ‘맥락’은 아주 복잡한 개념이다. 시각적 단서와 기억, 연상 작용과 함께 목표나 불안, 그리고 다른 요소들로 함께 구성된다. 제1 사고체계는 이같이 다양한 투입 요소를 고려해 하나의 맥락과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이에 맞지 않는 다른 대안은 억누른다.
 
제1 사고체계가 맥락을 구성하는 데 아주 능하고 우리가 그 진행과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제1 사고체계는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 제1 사고체계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대체로 정확하지만 예외가 있다. 그중 가장 많이 발생하고 연구된 사례가 바로 인지적 편향성(cognitive biases)이다. 인지적 편향은 너무 교묘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편향성이 작용했는지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다. 직관적 오류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이를 알아차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험을 쌓는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제2 사고체계를 사용해 어려운 문제와 씨름하다 결국 답을 찾아내지 못한 경우는 실패했다는 불편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한다.)
 
실수를 눈치 채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직관적 사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편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돼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 못한다. 있는지도 몰랐던 오류를 고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지적 편향성을 연구하는 경영 전문가들이 그다지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미리 알면 방어할 수 있다(forewarned is forearmed)”고 주장하지만 자신이 편향적 시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안다고 이것이 저절로 극복되는 건 아니다. 편향적 시각을 인정할 수는 있어도 이를 혼자 힘으로 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시각을 개인에서 집단으로, 의사결정자에서 의사결정 과정으로, 경영자에서 조직으로 옮길 때 희망이 있다. 기업 운영관리 연구자들이 여러 실험을 통해 발견했듯이 개인이 자신의 편향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해도 조직 차원에서는 편향성을 줄이거나 제거할 방법이 충분히 존재한다.
 
대부분 의사결정은 많은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는 충분히 가능하다. 의사결정권자 또한 다른 사람의 편향적 사고를 포착하는 데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의 직관을 통제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다른 사람의 오류투성이 직관에 우리의 이성적 사고를 적용해 그들의 판단력을 개선할 수는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의 제2 사고체계를 활용해 타인의 제1 사고체계가 만들어낸 오류를 집어낼 수 있다.)
 
경영자들이 부하 직원의 제안서를 검토하거나 최종 결정을 내릴 때 해야 하는 일도 바로 이것이다. 안전율(safety margin) 등을 더해 비용을 계산하는 등 기본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방식을 적용해 편향성을 규명하려는 시도도 많지만 대부분 의사결정자는 사업 제안서의 ‘내용’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안서 내용에만 집중하기보다 어떻게 해서 그 내용이 나왔는지 ‘과정’을 체계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해당 제안서를 제출한 직원들의 사고 과정에 영향을 미친 편향성의 존재를 밝혀낼 수 있다. 여기서 관건은 이들이 거쳐 간 의사결정 과정을 되짚어 올라가서 잘못된 직관적 사고 때문에 방향이 틀어진 순간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제부터 의사결정의 과정 평가를 어떻게 하는지 단계별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서로 다른 3가지 종류의 제안서를 검토하는 3명의 중역, 밥과 리사, 데비시의 사례(모두 가명임)를 함께 보자.
 
대대적 가격 인하.밥은 비즈니스 서비스 업체의 영업 부사장이다. 최근 지역 선임 부사장과 다른 동료들이 회사의 가격 구조를 대대적으로 점검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들은 지속할 수 없는 서비스 가격 때문에 입찰이 있을 때마다 경쟁업체에 계약을 뺏겼고 실적이 뛰어난 영업 직원들도 이탈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경우 엄청난 비용을 낭비할 위험이 있을뿐더러 자칫하다가는 출혈적 가격 경쟁이 시작될 수도 있다.
 
대규모 비용 지출.리사는 자본집약 제조업체의 최고재무관리자(CFO)다. 한 사업부의 생산 부사장이 생산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제안했다. 제안서에는 예상 매출, 시나리오별 투자 수익 분석 등 있을 만한 내용이 다 있었다. 그러나 투자의 규모가 너무 컸다. 게다가 해당 사업부는 이미 꽤 오랜 기간 손실을 기록하고 있었다.
 
대규모 인수.다각화된 산업재 사업을 운영 중인 대기업 CEO 데비시는 사업 개발팀으로부터 인수 제안서를 받았다. 피인수 기업이 가진 제품 라인이 자사의 핵심 사업부를 보완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회사는 바로 직전까지도 여러 건의 인수를 진행하며 엄청난 비용을 지출했고 이 때문에 재정적 압박이 심해진 상황이었다.
 
3개의 사례는 철저히 의사결정자 개인의 시각에서 풀어가고 있지만 여기에서 설명된 방식을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 도입한다면 조직도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 개선은 자료 <조직의 의사결정 개선> 참조)
 
 
 
 
 
의사결정의 질 개선: 체크리스트
 
경영진이 결정 사항을 꼼꼼히 검토하도록 돕기 위해서 우리는 12개 질문으로 구성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사고의 오류를 파헤치기 위해, 다시 말해 해당 제안서를 제출한 팀의 인식적 편향성을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12개 질문은 의사결정자가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제안서 제출팀에 묻는 질문, 그리고 제안서를 평가하기 위한 질문 등 3개 그룹으로 구분된다.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인식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제안서를 제출한 팀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제안서를 검토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의사결정권자를 위한 질문
 
 1   특정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 때문에, 혹은 자신이나 팀의 이익을 추구하다 오류에 빠졌다고 의심할 이유가 있는가?
 
제안서를 만든 사람들에게 절대 직접적으로 해서는 안 될 질문이다. 이들의 성실함이나 양심을 의심한다는 인상을 풍기지 않고서 대화를 이끌어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서로 감정만 상하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문제는 의도적 기만이 아니다. 물론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대부분 자기기만이나 합리화로 오류가 발생한다. 자신의 의사결정은 ‘이익 추구’와 상관없다고 굳게 믿는 전문직(예컨대 의사들)도 자신의 이익을 증대하기 위한 편향적 사고를 한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밥의 경우, 경쟁업체를 누르기 위한 가격 인하는 영업팀의 판매 수수료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특히 마진이 아니라 매출에 기반해서 보너스가 책정될 경우)을 인식해야 한다. 데비시는 인수를 제안한 팀이 피인수 기업에 대한 운영권을 갖게 되는 건 아닌지, 그래서 ‘기업 제국’을 만들려는 야심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물론 모든 제안에는 특정 결과에 대한 선호가 작용한다. 따라서 결정권자들은 특정 의도로 오류가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이 아니라 그로 인한 위험이 상당한지 아닌지를 평가해야 한다. 특히, 특정 결과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거나 조직 내 권력 및 평판, 경력 등에서 이익을 많이 보는 집단이 제안서를 제출했을 때에는 아주 신중히 그 내용을 검토해야 한다. 또한 다른 대안이 온통 부정적이어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대안은 제안서 내용 하나밖에 없는 상황도 조심해야 한다. 이런 경우, 의사결정권자들은 지금 이 체크리스트에 있는 다른 질문들, 특히 낙관적 편향(optimistic biases)과 관련된 질문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2 제안서를 만든 사람들이 그 내용을 열렬히 지지하는가?
 
우리 모두는 감정적 반응(affect heuristic)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평가할 때에는 위험이나 비용을 최소화하고 혜택을 강조하게 된다. 자신이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반대로 행동한다. 특히 직원들이나 브랜드, 위치 등과 같이 감정적 요소와 관련된 결정을 내릴 때 이런 감정적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
 
이 질문 또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다행히 답을 하기는 어렵지 않다. 데비시는 사업 개발팀이 인수와 관련해서 중립적인 시각을 유지했는지 여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이 감정적으로 열렬히 인수를 지지한다면 제안서의 모든 내용을 특히 더 철저하게 검토하고 이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를 모든 형태의 선입견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3  팀 내에 이견은 없었나?
 
이견이 있었다면 이를 적절히 검토했는가? 대부분의 기업에서 제안서를 상사에게 제출할 경우 팀은 모두 동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안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한다. 정말로 모두 그 의견에 찬성했을 수도 있지만 팀장의 강요로 마지못해 이뤄진 의견 합일이거나 반대 의견이 다수에 묻혀 사라져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집단이나 갈등을 최소화해 하나의 주장이 모두의 지지를 받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팀원들의 이력이나 관점이 비슷한 경우 이런 집단 순응적 사고는 더욱 두드러진다. 리사의 경우 대대적 투자를 제안한 생산팀에서 어느 누구도 우려나 반대 의견을 내지 않았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팀 내 반대 의견이 없었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영진은 반대 의견이 의사결정 과정을 생산적으로 만드는 요소임을 인식하고 이를 촉진하는 문화를 만들어야지 반대를 갈등의 표시로 받아들여 억누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제출된 제안서를 지금 당장 검토해야 하는 경우 의사결정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다른 사업부 사람들에게 대안을 제시하라고 요구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그보다는 제안서를 제출한 팀원들 각자와 비공개적 만남을 통해 반대 의견이 없는지 조용히 물어보는 편이 낫다. 그리고 의사결정 과정에서 만장일치를 위해 자신의 의견을 접었던 사람들이 입을 연다면 주의 깊게 들을 가치가 있다.
 
 
의사결정권자가 제안서를 만든 팀에게 해야 할 질문
 
 4  상황에 대한 진단이 유사한 사례에 지나치게 영향받지는 않았는가?
 
많은 제안들은 과거의 성공 사례를 참고한다. 그리고 의사결정권자가 해당 제안서를 승인하면 그와 같은 성공이 되풀이된다고 독려한다. 데비시에게 인수를 제안했던 사업 개발팀은 이 방법을 사용했다. 이들은 최근에 진행됐던 성공적인 인수 사례를 근거 삼아 인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근거로 사용한 사례가 현재 제안된 인수와 공통점이 별로 없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 게다가 하나 또는 소수의 사례만 근거로 삼은 제안은 그만큼 오류에 빠지기가 쉽다.
 
예외적 성공 사례를 근거로 삼아 팀이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했을 가능성(일종의 현저성 편향(saliency bias))이 의심된다면 의사결정권자는 해당 팀에게 다른 대안적 해석을 요구해야 한다. 더 많은 근거 사례를 찾아보거나 두 사례 사이에 어떤 유사점이 존재하는지 보다 철저한 분석을 요구하는 것이다. (‘준거 집단 예측(reference class forecasting)’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BR> 2003년 7월 호 다니엘 카네만, 댄 로발로(Dan Lovallo) 공저 <성공 망상: 경영진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갉아먹는 낙관주의(Delusions of Success: How Optimism Undermines Executives’ Decisions)> 참조) 팀에게 더 많은 비교 집단을 찾아보라고 비공식적인 요구를 할 수도 있다. 데비시의 경우 지금 제안한 인수 계약과 유사한 최근 사례 5건을 더 연구하라고 요청할 수 있다.
 
 5   신뢰할 만한 대안을 검토했는가?
 
바람직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사실에 입각해 객관적 시각에서 다른 대안들을 엄격히 검토한다. 그러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경우 개인이나 집단은 하나의 그럴 듯한 가설을 만들고 그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선택적으로 찾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제안한 내용에 대해 적어도 2개 이상 대안을 제출하고 이들의 장단점을 설명하도록 하면 된다. 의사결정권자는 어떤 대안을 검토했는가, 그 대안을 어떤 단계에서 제외했는가, 주요 가설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찾았는가, 아니면 최종 제안을 확신하게 하는 증거만 찾았는가 등을 물어봐야 한다.
 
‘위험 요인 및 완화 조치’ 항목을 형식적으로만 포함하거나 타당성 없는 대안들을 제시해 해당 제안의 상대적인 매력도를 높이는 제안서도 있다. 이럴 때는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다양한 선택사항을 성실하게 검토해야 한다.
 
밥의 경우, 제안서를 검토하면서 영업팀이 제안과 관련된 여러 가지 불확실성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영업팀은 전면적 가격 인하 등 경쟁업체들의 대응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밥의 회사가 경쟁 우위를 가진 고객 시장에 대해 표적 마케팅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등 다른 대안을 고려하도록 해준다.
 
 
 
 
 
 6  1년 안에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어떤 정보가 필요한가,그리고 지금 정보를 더 얻을 수는 없는가?
 
경영진이 제안서를 검토할 때 맞닥뜨리는 문제는 ‘보이는 게 전부다(What You See Is All There Is)’는 WYSIATI 가정이다. 우리는 직관력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꽤 일관성 있는 이야기 얼개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논리상 허점을 메우기 위해 사이사이의 간극을 무시해 버린다. 예컨대 데비시는 인수 제안서 논리가 꽤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피인수 기업의 특허 포트폴리오 실사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신규 고객을 얻기 위한 인수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사안이지만 인수의 목적이 제품 라인 확대라면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었다.
 
주어진 데이터의 적절성을 검토하기 위해서 하버드 경영대학원 맥스 베이저만(Max Bazerman) 교수는 6번과 같은 질문을 할 것을 권유한다. 정보를 구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때로는 유용한 정보를 얻게 될 수도 있다.
 
특정 유형의 의사결정에 유용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체크리스트 또한 큰 도움이 된다. 데비시는 다양한 인수 제안서를 검토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기술 습득 혹은 신규 고객에 대한 접근권 확보 등 인수 목적에 맞는 필요 정보 목록을 만들 수 있다.
 
 7   수치의 정확한 출처를 아는가?
 
제안서 내용을 뒷받침하는 주요 수치를 자세히 검토하다 보면 ‘정박의 오류(anchoring bias)’ 존재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이때 해야 할 질문은 다음과 같다. 제안서에 포함된 수치들은 실제 집계된 수치인가, 아니면 추정치인가? 추정치라면 어떤 수치를 기준으로 조정됐는가? 기준이 되는 수치는 어디서 비롯됐는가?
 
사업 결정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정박의 오류는 3가지가 있다.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추측에 기반해 만들어진 초기 추정치가 끝까지 유지되며 아무도 그 정확성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리사에게 생산시설 투자를 제안했던 팀도 자본 투자 프로젝트의 핵심 비용 요소에 대해 추정치를 사용했다. 좀 더 자주 발생하는 두 번째 오류는 과거 수치에서 외삽법(extrapolation)을 통해 미래 추세를 예측하는 것이다. 데비시의 팀은 인수 대상 기업의 과거 매출 수치를 그대로 이어 매출 규모를 예상했다. 이 또한 일종의 정박 오류다. 과거의 매출 증가율이 미래에 그대로 반복될 것으로 장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의도적인 정박의 오류가 있다. 가격 협상을 할 때 구매자가 아주 낮은 가격선에서 시작하는 것과 같은 경우다. 어떤 곳을 시작점으로 삼아 닻을 내리면 그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정박의 오류다. 사람들은 언제든 벗어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재판관에게 주사위를 굴린 후 (모의) 판결을 내려 달라고 부탁한 실험이 있었다. 재판관들은 주사위가 판결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판결을 분석해 보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안서 내용이 초기 특정 내용을 기준 삼아 만들어졌고 기준 수치가 논리 전개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다면 제안서 제출팀에게 새로운 시각을 기준으로 추정치를 재검토하라고 요청해야 한다. 리사의 경우, 결재해야 하는 투자 예산 규모가 이전 프로젝트 비용을 기반으로 산출됐다면 제안서를 제출한 팀을 불러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계산한 추정치를 제시하며 팀의 검토를 요구해야 한다. 타 부서의 투자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선형적 모델에 입각해 계산된 수치나 경쟁업체 벤치마크를 통해 산출된 수치를 제시하는 것이다. 여기서 목표는 단순히 다른 수치를 계산하거나 벤치마크 대상이 된 경쟁기업의 관행을 그대로 모방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제안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내린 가정을 다른 시각에서 검토하도록 팀을 이끄는 것이 목적이다.
 
 8   후광 효과(halo effect)가 있었는가?
 
사건의 원인을 실제보다 더 단순하고 감정적으로 연결시킬 때 후광 효과가 발생한다. 필 로젠츠바이크(Phil Rosenzweig)가 저서 <헤일로 이펙트(The Halo Effect)>에서 설명하듯이 후광 효과는 기업의 성패를 최고경영진의 인성에서 찾도록 만든다. 데비시에게 인수를 제안한 팀은 인수 대상의 성공을 최고경영진과 연결해서 같은 경영진이 자리를 유지하는 한 지금과 같은 성과가 계속되리라는 생각을 하게 했을 수도 있다.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는 기업은 자주 이 후광 효과에 가려진다. 전문가로부터 ‘위대한’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들 기업의 관행이 모두 훌륭하다고 추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리사에게 자본 투자를 권유한 팀은 경기 주기가 다른 산업에 속한 선도 기업이 비슷한 투자를 실행했다고 설명하며 제안서의 근거로 삼았다. 제안서에 따르면 해당 회사는 생산시설의 투자를 2배로 확대했다. 그래서 경기가 반등했을 때 확장된 생산시설을 100% 활용하며 큰 성과를 거뒀다.
 
여기서 리사는 당연히 해당 추론이 정당한지 점검해야 한다. 제안서를 제출한 팀은 사례를 들었던 다른 기업에 관해 구체적 정보를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그 기업의 전반적 평판을 바탕으로 그런 가정을 내린 건가? 투자가 정말 성공을 거두었다면 ‘시기가 좋았다’는 우연적 요소는 성공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나? 해당 기업의 당시 상황은 리사의 회사가 현재 처한 상황과 정말 유사한가?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어려운 질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잠깐 언급된 외부 기업의 사례를 철저히 분석하자고 나서는 일이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사가 언급된 성공 사례를 단순히 무시하려고 하면 어찌 됐든 그 제안서의 내용이 신빙성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뿌리치기 힘들게 된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간단히 시행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은 성공 사례와의 비교가 얼마나 적절한지 평가하고(“그 회사를 우리 회사에 비교할 수 있나?”) 성공적이지 못한 다른 사례도 함께 찾아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동종 업계 다른 기업 중 하강기에 있는 사업에 투자한 회사가 있나?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땠나?”).
 
 9   제안서를 제출한 사람들이 과거의 결정에 지나치게 얽매여있나?
 
기업이 매일 새 출발을 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걸어온 길, 그리고 거기에서 무엇을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기업이 미래 대신 과거의 시작점을 기준으로 삼아 선택안을 평가할 때 이는 오히려 올바른 판단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가장 저지르기 쉬운 오류는 바로 ‘매몰비용 오류(sunk-cost fallacy)’다. 새로운 투자를 고려할 때 비용이나 매출에 영향을 주지 않는 과거 투자 내용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그렇게 한다. 리사의 팀이 이미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산 라인의 증설을 고려한 것 또한 같은 오류다. 증설 규모가 크지 않다고 팀은 주장했지만 리사는 이제 막 취임하는 CEO의 입장에서 사안을 검토할 것을 팀에게 부탁해야 한다. 공장을 애초에 지은 사람이 내가 아니라면 굳이 생산시설 확대에 투자하려 할까?
 
 
 
 
 
제안서 평가를 위한 질문
 
10   기준 가정(base case)이 지나치게 낙관적이지는 않은가?
 
대부분의 제안은 예상치를 내세운다. 예상은 지나친 낙관주의에 취약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과신이다. 데비시의 팀은 인수 기업을 통합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일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는 자만심에 휘둘렸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과거에 성공한 전력이 많은 기업일수록 이런 오류에 취약하다. 따라서 데비시는 사업 개발팀이 연이은 성과에 지나치게 고무되지 않았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자주 발생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계획의 오류(planning fallacy)’다. 계획의 오류는 과거 유사한 프로젝트가 어땠는지를 무시하고 눈앞에 놓인 프로젝트에만 집중하는 ‘내부 시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세운 계획과 예상한 장애물만 포함시켜 회사의 미래를 점치려는 태도다. 반대로 ‘외부 시각’에 입각한 예측은 통계 수치를 기반으로 하고 다양한 문제 유형에서 일반화시킬 수 있는 요소만 뽑아 예측을 한다. 리사는 팀의 제안서를 검토할 때 이를 염두에 둬야 한다. 공장 증설에 걸리는 시간을 계산할 때 팀은 비슷한 프로젝트가 걸렸던 시간을 고려해 하향식(외부 시각) 비교를 실행했는가, 아니면 각 단계에서 필요한 시간을 추정한 뒤 이를 단순 합한 상향식(내부 시각) 방식을 통해 필요한 기간을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저질렀는가?
 
세 번째 오류는 경쟁업체가 해당 결정에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격 인하를 제안한 밥의 팀은 출혈적 가격 경쟁 가능성 등 경쟁업체의 반응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예측과 추정, 계획과 목표가 불가피하게 서로 엮이고 혼동되면 이와 같은 오류들이 더욱 악화된다. 예측은 정확해야 하는 반면 목표는 야심 차게 설정돼야 한다. 고위 경영진은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낙관적 편향성을 수정하는 일은 아주 어렵다. 팀에게 추정치를 수정하라고 요구하는 걸로는 충분치 않다. 의사결정권자 스스로 내부 시각에만 충실한 사람들에 맞서 외부 시각을 통해 내용을 조정해야 한다.
 
외부 시각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리사의 경우 제안된 투자 계획과 비슷한 프로젝트 목록을 만들어 이들 프로젝트가 완료되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지 팀에게 물어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팀이 제안한 프로젝트에서 내부 정보가 제거된다. 때로는 중요해 보이는 정보일지라도 제거했을 때 추정이 더 정확해지기도 한다. 의사결정권자가 경쟁업체의 입장이 돼 생각을 해보는 방법도 있다. 경쟁 시나리오를 펼치는 ‘워 게임(war games)’은 제안서 조치에 대한 경쟁업체의 반응을 예상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다.
 
11   최악의 시나리오는 충분히 현실적인가?
 
기업 전략팀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해야 한다. 최소한 최고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만큼은 반드시 상정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최악의 시나리오가 정말 최악인 경우는 거의 없다. 따라서 의사결정권자는 다음을 질문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는 어떤 근거로 상정됐는가? 경쟁업체의 반응에 얼마나 민감한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경우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데비시가 검토 중인 인수 제안은 인수 대상 기업의 예상 매출에 따라 결정이 달라질 수 있다. 실사 보고서에 포함되는 예상 매출은 대부분 가파르고 직선적인 상승선을 따라 추산된다. 따라서 데비시는 팀에게 합병 리스크를 반영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도출하라고 지시를 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 경험하지 못한 리스크는 시나리오에 포함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는 심리학자 개리 클라인(Gary Klein)이 제안한 사전 문제 평가(pre-mortem)가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참가자들은 최악의 상황이 이미 발생했다고 가정하고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 상황까지 오게 됐는지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데비시의 팀은 인수사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피인수 기업 주요 경영자의 사임, 피인수 기업의 제품 라인에서 기술적 문제 발생, 통합 예산 부족 등의 시나리오를 구상해볼 수 있다. 이 방법은 그와 같은 위험을 완화하거나 제안서 내용을 재평가하는 데 도움이 된다.
 
12   제안서를 제출한 팀이 지나치게 조심스럽지는 않은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신중한 태도 또한 문제가 된다. 눈에 잘 띄지는 않지만 소극적 태도는 만성적인 성과 하락의 원인이 된다. 많은 경영진은 조직원들이 충분히 창의적이거나 야심 차지 않다고 불평한다.
 
이 문제는 2가지 이유로 해결이 쉽지 않다. 우선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한 당사자들은 손실을 회피하려는 경향(loss aversion)이 강하다. 위험한 결정을 내릴 때 이득을 얻으려 하기보다 손실을 피하려는 경향이 더 강하다는 뜻이다. 실패한 프로젝트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나 팀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당 가능한 위험 수준을 명시한 기업이 거의 없다는 사실 또한 관리자의 손실 회피 경향을 강하게 한다.
 
리사의 팀원들이 시설 투자의 대안이 되는 신기술 개발을 처음부터 제외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신기술 개발은 너무 위험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안서에서 제외됐다. 기술 개발 대안을 좀 더 자세히 검토하고 싶다면 리사는 팀원들을 안심시키거나 좀더 신뢰감이 가는 방식으로 책임 분담 의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새로운 모험을 할 때 사업 목적과 예산이 별도로 운영되는 독립적 하위 조직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사업 환경에서 발생하는 보수주의를 해결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운 과제다.
 
 
 
의사결정의 질을 통제하기 위한 절차
 
지금까지의 12개 질문은 다른 사람이 제출한 평가 자료에 의존해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의사결정권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각 질문을 하기에 적절한 때와 장소를 알아보고 각 질문을 의사결정 과정의 일부로 포함시키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체크리스트 사용이 필요한 때.체크리스트는 경영진이 별다른 검토 없이 승인하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결정에는 적합하지 않다. CFO인 리사는 부서의 일상적 운용 예산이 아니라 대규모 자본 지출이 필요할 때 체크리스트를 활용하려 할 것이다. 체크리스트 활용이 가장 적절한 분야는 중요하면서도 자주 반복돼서 공식 절차가 필요한 의사결정 부문이다. 예를 들어, R&D 프로젝트 승인이나 대규모 자본 지출 결정, 중간 규모의 기업 인수 등이 품질 통제가 가능한 의사결정이다.
 
평가 시행 주체. 앞서 말했듯이 의사결정의 질 통제를 위해서는 의사결정권자와 제안서를 제출한 팀 사이에 업무의 분리가 확실해야 한다. 많은 경우, 경영진은 명시 혹은 비명시적으로 팀의 제안서에 영향을 준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직원들로 팀을 구성하거나 선호하는 방향을 미리 알려주거나 제안서 작성 단계에서 자신의 의견을 앞서 전달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에는 의사결정권자가 제안서 제출팀에 소속된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더 이상 제안서를 심사할 자격을 갖지 못한다. 그 자신의 편향성이 제안서 작성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의사결정과 실행 단계가 중첩됐다면 업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예를 들어, 의사결정을 내리지도 않았는데 여러 행동 조치가 이행되기 시작했다면 최종 결정을 내리는 중역이 이미 자신의 의견을 내고 그것이 제안서에 반영됐다는 뜻이다.
 
규율 이행.마지막으로 경영진은 체크리스트를 체계적으로 이행해야 한다. 이를 반기지 않는 기업 문화도 분명 있다. 아툴 가완디(Atul Gawande)가 <체크! 체크리스트(The Checklist Manifesto)>에서 지적했듯이 체크리스트 항목들은 모두 당연하고 새로울 게 없어 보이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따로 분리해서 부분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개발한 수술안전수칙 체크리스트(Surgical Safety Checklist)를 도입한 의사들은 환자의 약물 알레르기 등 단순 사실 확인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체크리스트 항목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점검했을 때에만 수술 합병증 및 사망이 획기적으로 감축될 수 있다. 체크리스트를 온전히 활용하기 위해서는 천재적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엄격히 준수하기만 하면 된다. 부분적 활용은 오히려 재난을 초래할지도 모른다.
 
비용 및 편익.의사결정의 질을 통제하기 위한 노력은 가치 있는 투자일까? 항상 시간에 쫓기는 경영진은 행동이 지연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의사결정 통제를 위한 노력에 특별한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기업도 많지 않다.
 
그러나 밥과 리사, 데비시는 의사결정 통제를 위해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심각한 문제를 피할 수 있었다. 가격 인하 조치가 사업 수익성을 저해하고 가격 전쟁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한 밥은 영업팀의 강력한 요구에 맞섰고 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팀에게 대안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고 결국에는 성공적인 마케팅 계획을 도출했다. 리사는 초기 매몰 비용을 정당화하기 위한 투자 제안을 거절했다. 이후 리사의 팀은 경쟁에서 크게 앞서 나갈 신기술 개발 투자를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데비시는 추가 실사를 통해 인수 가격이 대폭 낮아진 후에야 인수 제안을 승인했다.
 
경영진이 의사결정의 질을 통제하려 할 때 관건은 시간이나 비용이 아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능력이 뛰어나며 훌륭한 목적을 가진 경영자라 하더라도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 천재적 개인이 아니라 기강이 제대로 잡힌 의사결정 과정만이 훌륭한 전략의 열쇠라는 사실을 조직은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꽃피울 수 있게 하는 개방적 토론 문화를 갖춘다면 기업은 더욱 훌륭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다니엘 카네만, 댄 로발로, 올리베에 시보니
 
번역 |우정이 woo.jungyi@gmail.com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은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정책 대학원 선임 교수이며 컨설팅 기업 ‘더 그레이티스트 굿(The Greatest Good)’ 파트너이자 구겐하임 파트너스(Guggenheim Partners)의 컨설턴트로 활동 중이다. 에이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함께 진행한 인지적 편향 연구로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댄 로발로(Dan Lovallo, dan.lovallo@syndey.edu.au)는 시드니대 경영전략 교수이며 컨설팅 기업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mpany)의 선임 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리비에 시보니(Olivier Sibony, olivier_sibony@mckinsey.com)는 맥킨지앤컴퍼니 파리 사무소 이사다.
  •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 -프린스턴대 우드로 윌슨 공공국제정책 대학원 선임 교수
    - 컨설팅 기업 ‘더 그레이티스트 굿(The Greatest Good)’ 파트너
    - 구겐하임 파트너스(Guggenheim Partners)의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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