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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스틱vs프라이팬, 직영매장을 택하는 차이

우정이 | 60호 (2010년 7월 Issue 1)

입구는 분명 메이시, 노드스트롬, 니만 마커스 백화점인데, 화장품 매장 카운터 뒤에 서 있는 판매 직원들은 백화점 직원이 아니다. 화장품 매장의 향수 판매원이나 스킨케어 상담 직원들은 대형 백화점의 공간을 임대해 자사 제품을 판매하는 화장품 업체의 직원들이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런 방식의 판매 모델은 화장품 판매에 주로 활용된다. 미국 화장품 산업에서는 백화점이 화장품을 직접 판매하지 않고, 유명 화장품 브랜드에 알짜배기 공간을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다. 이렇게 제조업체가 유통점 공간을 임대해 직접 매장을 운영하는 ‘매장 내 매장(Store-within-a Store·SS)’ 모델에 대해 미국 펜실베이니이아대 와튼 경영대학원이 연구에 나섰다. <저널 오브 마케팅(Journal of Marketing Rearch)>의 최근 호에 실린 ‘매장 내 매장’ 논문에서 Z. 존 장 와튼 경영대학원의 마케팅 교수와 킨슈크 제라스 카네기 멜론 경영대학원 교수는 매장 내 매장 모델이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모두에 이익을 줄 수 있는 조건과 경제적 이점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했다.
 
연구진은 제품 형태와 서비스 제공 비용 및 유통 산업의 전체 경쟁구도 등 해당 유통 방식의 다양한 요소를 검증하기 위한 이론적인 모델을 만들었다. 매장 내 매장 모델은 전체 유통업체에서 가격 경쟁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유통 시장의 경쟁이 격화돼 있을 때 이런 역할은 경쟁구도에서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LG 중국 법인의 최고경영진이 와튼 경영대학원을 방문하면서 잠깐 짬을 내 미국의대형 가전 체인인 베스트 바이를 둘러본 걸 계기로 매장 내 매장 모델에 관심을 갖게 됐다. LG 중국 법인의 최고경영진은 미국에서 가전업체들이 베스트 바이에서 왜 직영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그의 말을 듣고 장 교수와 제라스 교수도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과 중국의 유통 모델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매장 내 매장 모델이 특정 상황에서는 활용도가 높지만 다른 상황에선 그렇지 않고, 이 주제에 대해 이론적 연구가 행해진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장 교수와 제라스 교수는 어떤 조건일 때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매장 내 매장 모델을 선택하는 게 최선인지, 또 어떤 상황에서 유통업체가 도매상을 중간에 두고 제조업체로부터 제품을 구매해서 직접 판매하는 게 좋은지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논문은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관계를 3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매장 내 매장 유형과 기존 유통 모델이 가장 적합한 상황을 분석했다.
 
논문에서 기존 유통 모델은 ‘유통업체 재판매(Retailer-Resell·RR)’, 즉 RR 모델로 표시됐다. 이는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로부터 상품을 도매 구입하는 모델이다. 이렇게 되면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판매 수익을 분배하기 때문에 소비자의 최종 구매가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논문에서 SS 모델로 표시된 매장 내 매장 모델은 제조업체가 직접 매장을 운영하며 가격과 매장 서비스 등의 부문에서 다른 제조업체와 경쟁한다. 그러나 유통업체에 지불해야 할 마진을 추가로 책정할 필요가 없어 가격을 더 낮출 수 있다. 따라서 제조업체 매출은 증가하고 순익도 늘어난다. 미국 화장품 업계에서 많이 이용되는 SS 모델은 백화점에 가장 적합하다. 제조업체의 장사가 잘 되면 높은 임대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출 증가폭이 크기 때문에 가격이 낮아도 최종 수익은 더 높은 이상적 결과가 나온다”고 제라스 교수는 설명했다.
 
립스틱과 프라이팬의 차이
그러나 여기에는 변수가 있다. 브랜드의 대체 가능성(substitutability)이다. 화장품이나 의류는 소비자가 선호하는 특정 브랜드가 있고 다른 브랜드로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쉽게 다른 브랜드로 바꿀 가능성이 낮으면 SS 모델이 적합하다”고 자레스 교수는 말했다. “가령 샤넬 립스틱과 같은 브랜드 화장품은 다른 브랜드로 대체될 가능성이 낮다. 적어도 프라이팬보다는 낮다.”
 
논문에서는 미국 유통 매장에서 매장 내 매장을 운영하는 고급 의류 매장을 예로 들었다. 블루밍데일 백화점에선 랄프 로렌, 캘빈 클라인, DKNY, 케네스 콜 등이 직영 매장을 운영한다. 또 메이시로 이름을 바꾼 마샬 필드 백화점에선 루이비통, 토마스 핑크, BCBG, 질 샌더 등이 매장 내 매장을 운영한다. 니먼 마커스에선 아르마니와 구찌가, 노드스트롬에서는 샤넬과 클로에, 입센로랑이 매장 내 매장을 각각 운영한다.
 
그러나 브랜드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생활용품에서 유통업체들은 가격 책정 및 서비스를 직접 결정하기를 선호한다. “부엌용품이나 생활용품은 유통업체에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제조업체가 서로 경쟁한다. 유통업체는 도매가로 제품을 구매해서 소매가에 판매하는 모델을 따른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이 때 유통업체가 매장 내에서 해당 제품군(category)을 담당할 서비스 대표를 정하고, 브랜드 매장의 서비스 수준까지 결정한다”고도 말했다.

세 번째 방법은 연구진이 혼합 모델이라 부르는 ‘매장 내 유통업체 입점 모델(Retailer-Store-within-a-Store·RS)’이다. 앞서 말한 두 개 모델이 혼합된 방식으로 중저가 의류나 장난감 판매에서 주로 사용된다. 이 사례에선 같은 유통점 공간에 유통업체가 운영하는 RR 매장과 제조업체가 직영하는 SS 매장이 공존한다. “RS 모델에서는 SS 매장의 서비스 수준이 RR 매장보다 높다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논문에 따르면 “이는 RR 매장에서 유통업체가 얻는 수익률보다 SS 매장에서 제조업체가 가져가는 수익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서비스 수준에서도 SS 모델의 선택 여부는 브랜드 대체 가능성에 따라 달라졌다. “SS 모델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논문은 지적했다. 유통업체가 가져갈 이윤을 가격에 반영할 필요가 없고 상품이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다면, 서비스도 좋고 판매 가격과 수익률도 높아진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으면 서비스 수준이 낮고 판매가와 수익률도 낮아진다. “제품에 가격이 높은 서비스가 많이 포함될수록 SS 모델을 더 쉽게 볼 수 있다”고 제라스 교수는 설명했다. “화장품은 확실히 비용이 많이 드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반면, 용기나 프라이팬 등은 별다른 서비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했다.
 
논문에서는 매장 내 매장 운영이 유통매장의 전체 내점객수에 미치는 영향도 언급했다. 미국 소매 유통 채널에서 SS 모델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화장품 매장이 백화점 입구 가까이에 위치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제라스 교수는 설명했다. “더 많은 손님을 매장 안으로 끌어들인다면 SS 모델은 분명 매력적이다. 우리는 각각의 모델을 비교할 때 내점객수 증가 효과까지 함께 고려했다. SS 모델이 더 많은 손님을 끌어들인다면, 유통업체들은 당연히 더 많은 SS 모델을 시도할 것이다.”
 
논문에서는 SS 운영 여부를 결정할 때 유통점이 가지는 영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20년 동안 소수의 유통 업체가 미국 시장을 장악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2002년 자료에 따르면, 100여 개의 지점을 갖춘 소수 유통 체인의 소매판매 비중이 무려 43%에 달했다. 덕분에 유통업체들은 제조업체를 쥐락펴락하는 힘을 갖게 됐다.
 
제라스 교수는 유통업체와 제조업체 간 관계를 검증한 학계 연구 대부분이 제품에 대해 소유권을 가진 제조업체가 관계의 우위에 있는 것처럼 가정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메이시 백화점과 월마트는 엄청난 고객을 확보한 대형 유통업체다. 따라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약 조건을 설정할 수 있다”고 제라스 교수는 말했다. “제조업체는 고객에게 접근하기 위해 유통업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 거래에서 우위를 점한 측은 유통업체다.”
 
쇼핑몰에 여러 유통업체가 함께 입점할 때 매장 내 매장을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 논문에서는 쇼핑몰 유통의 경쟁 구도를 점검하기 위한 모델을 함께 구축했고, 조건만 맞는다면 여기에도 매장 내 매장 방식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브랜드 대체 가능성이 낮다면 서로 다른 유통업체 간 경쟁이 완화돼 경쟁관계에 있는 유통업체들이 모두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논문은 설명했다. “그러나 브랜드와 매장의 대체 가능성이 둘 다 높을 때엔 그렇지 않다. 경쟁관계에 놓인 소매유통점들은 손해를 안 보려고 SS 모델을 선택하고, 그 결과 서로의 이익을 침해하는 ‘죄수의 딜레마’에 놓인다.”
 
장 교수는 소매유통점 간 경쟁이 미국에서 그리 심하지 않기 때문에 SS 모델은 유통점 간 경쟁이 치열한 아시아나 유럽에서 더 자주 활용된다고 말했다. “아시아 시장에서 소매 판매점은 특정 지역에 밀집할 때가 많다. 따라서 유통업체는 가격 경쟁에 대한 압력을 완화시키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이는 제조업체에 매장 공간을 임대하고 임대료를 받음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베스트 바이처럼 특정 제품부문을 독점하는 미국 소매 유통점들은 경쟁이 심하다고 불평할지 모른다. 그러나 매장 내 매장이 적다는 사실은 미국 소매 유통점 간 경쟁이 다른 지역보다 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장 교수는 설명했다.
 
연구진은 유통업체가 특정 제품군을 관리하기 위해 제조사 중 한 곳을 ‘제품군 내 캡틴(category captains)’으로 임명하는 방식은, 연구진이 구축한 3가지 유통 모델의 기본 기능을 제대로 살리고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경쟁 관계인 슈퍼마켓 체인들은 치약 제품 관리를 위해 P&G를 제품군 내 캡틴으로 임명해 가격 책정부터 재고 및 진열 관리 등 모든 부문을 맡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P&G라는 하나의 제조업체는 계약에 참여한 모든 유통업체를 대신해 거래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유통점 간 경쟁을 완화할 수 있다.
 
논문에서 마지막으로 조명한 모델은 최근 부상 중인 유통점 내 또 다른 유통업체의 입점이다. 화장품 판매업체 세포라(Sephora)는 JC 페니(JC Penny)에서 매장 내 매장을 운영 중이다. 장난감 백화점 FAO 슈워츠는 명품 백화점인 삭스 피프스 애버뉴에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유통 모델은 SS 모델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러나 논문은 유통점 내 또 다른 유통점 입점은 브랜드 교차판매의 실효성이나 특정 제품의 서비스 효율성 등에서 추가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문은 “유통점 내 다른 유통점이 입점하는 이유는 유통점 내 제조업체 직영 매장을 운영하는 이유와 상당히 다를 수 있다. 두 모델의 차별점 규명과 새로운 유통모델 논의는 향후 매력적 연구 분야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편집자주 이 글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MBA스쿨의 온라인 매거진 <Knowledge @ Wharton>에 실린 ‘The Economic Incentives of the ‘Store-within-a-Store’ Retail Model’을 전문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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