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천화동인(同人)괘: 혁신 원동력은 개방성

311호 (2020년 1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코로나19 이후 뉴노멀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통제 위주의 인력 관리를 자율적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이 혹시 딴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 사내 인터넷망을 켜놓고 통제하려 들면 뉴노멀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개방적 마인드를 가지고 이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주역 동인(同人)괘에서 말하고 있듯이 혁신은 폐쇄적인 기성 조직보다는 개방적인 동인 조직(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더 쉽게 일어난다. 조직원을 구속하려 들면 그들은 자객처럼 행동한다. 몰래, 가만히 상사의 눈치를 살피느라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들판에서 활활 타오르는 횃불처럼 자유롭게 둬야 개방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고, 그를 통해 혁신 기업의 전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심리적 우울감을 지칭하는 ‘코로나 블루(blue)’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더니 이제는 한 단계 더 넘어 코로나로 인한 분노와 절망을 지칭하는 ‘코로나 레드(red)’ ‘코로나 블랙(black)’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현상은 개개인에 그치지 않고 조직 전체에 파급되고 있다. 구성원 개개인의 우울감 지수가 높아지면서 조직의 건강성이 덩달아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이러한 사회적 스트레스가 종식되고 예전에 누리던 삶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예측은 부정적이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삶의 양식을 코로나19 이전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많은 사람의 생각이다. 코로나에 대응하느라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변했고, 그 변화가 이미 ‘뉴노멀’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조직 운용의 패러다임을 과거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코로나19가 몰고 온 언택트(untact) 시대에 조직의 뉴노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어떻게 조직을 운용해야 구성원들의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줄이고 분노와 좌절로부터 조직을 보호할 수 있을까? 주역의 지혜를 빌려보자.

주역 64괘 가운데 사람 인(人) 자가 괘 이름에 들어간 경우는 천화동인(同人)괘와 풍화가인(家人)괘 둘이다. 사람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것이 조직이므로 이 두 괘는 주역 64괘 가운데 조직의 원리를 다루는 대표적인 괘다.

조직 혁신의 원동력: 천화동인(同人)괘

먼저 천화동인괘는 하늘을 뜻하는 건괘(☰)가 위에 놓이고 불을 뜻하는 이괘(☲)가 아래에 놓이는 모양의 복합괘로 광활한 하늘 아래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장면을 형상화한 괘다. 괘 이름으로 쓰인 동인(同人)은 뜻이 같은 사람이란 의미다. 동학혁명 당시 동학교도들이 고부 들판에서 함께 치켜들었던 횃불을 떠올리면 천화동인괘에서 말하는 불과 동인의 의미를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동학이라는 이념에 뜻을 함께했던 사람들은 전봉준과 김개남의 지휘 아래 조직적으로 뭉쳤고, 농민을 수탈하는 데 혈안이 돼 있던 고부군수 조병갑을 응징하기 위해 횃불을 높이 들었다. 한마음 한뜻을 가졌기에 그들은 동인(同人) 집단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문학적 지향성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발간한 동인지(同人誌)라는 이름도 주역 천하동인괘에서 유래했다. 스포츠나 오락, 예술 등에 대한 취향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만든 동호회도 일종의 동인 조직이다.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을 공동으로 창업한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 컴퓨터의 기술적 영감을 얻은 곳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이라는 컴퓨터 동호회였다. 워즈니악은 이 동인 조직에서 컴퓨터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습득했으며 이 정보들은 애플 컴퓨터를 설계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줬다. 당시 워즈니악이 근무하던 직장은 휴렛팩커드(HP)였지만 그가 혁신의 영감을 얻은 조직은 HP라는 틀에 박힌 회사가 아니라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동인 조직이었다. HP는 워즈니악이 애플 컴퓨터에 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험해보기 위해 회사의 자원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했다. 워즈니악은 HP를 떠나 잡스와 함께 애플을 만들었고, 실리콘밸리의 영웅이 됐다.

동인 조직이 혁신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것은 조직 속에 담긴 개방성과 진취성 때문이다. 천화동인괘 괘사에서는 이러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동인우야 형 이섭대천(同人于野 亨 利涉大川)’
- 들에서 모이니 형통하다. 큰 강을 건너니 이롭다.

여기서 들(野)은 진입장벽이 없는 개방적 공간을 의미하고, 큰 강(大川)을 건넌다는 말은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는 진취적 마인드를 뜻한다.

동인괘 육이(六二) 효사에는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유념해야 할 또 다른 원리가 나온다.

‘동인우종 린(同人于宗 吝)’
- 조직을 종족에 한정시키면 인색해진다.

조직 운용을 종족(宗)에 한정한다는 것은 순혈주의, 조직 이기주의에 매몰돼 조직을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운용한다는 의미다. 조직을 협소한 틀에 가두면 혁신을 할 수 없다는 게 주역의 가르침이다.

HP는 편협한 우종(于宗)으로 워즈니악이라는 불세출의 천재를 잃었다. 반면 워즈니악은 안정된 직장을 과감하게 뛰쳐나와 애플이라는 신생 기업을 창업, 실리콘밸리를 정복했다. 물에 떠내려 갈 각오로 계곡(밸리)의 큰 강(大川)을 건넘으로써(涉) 자신의 삶과 세상을 이롭게(利) 한 것이다.

워즈니악이 HP에 남아서 몰래 회사의 자원을 활용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려 했다면 결과가 어땠을까? 보안이 비교적 허술하던 1970년대 초반이라 충분히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역에 따르면 결과가 좋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구삼(九三) 효사의 원문을 보자.

‘복융우망 승기고릉 삼세불흥(伏戎于莽 升基高陵 三歲不興)’
- 무기를 우거진 숲에 숨기고 높은 언덕에 오른다. 3년의 세월이 흘러도 흥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무기를 숲에 감추고 언덕에 오르는 것은 자객의 행동 양태다. 품속에 칼을 숨긴 채 궁궐에 잠입한 후 존현각의 높은 지붕에 올라 정조의 목숨을 노리던 자객을 떠올리면 이 효사에 담긴 의미가 쉽게 와 닿는다. 워즈니악도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애플 컴퓨터의 회로도와 부품들을 캐비닛 속에 감춰뒀다가 남들이 퇴근한 후 회사에 몰래 나와 실험을 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더라면 심리적 압박감과 불안감 때문에 제대로 된 실험을 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고 자객들이 정조의 암살에 실패했듯 워즈니악도 결국 실패하고 말았을 것이다. 효사의 말미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3년의 세월을 투자해도 애플 컴퓨터를 완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공격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 주역의 조언이다. 동인괘 구사(九四) 효사의 원문을 보자.

‘승기용 불극 공 길(乘其墉 弗克 攻 吉)’
- 담에 오르고자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한다. 공격하면 길하다.

담을 타고 넘어가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자객처럼 행동하면 실패하고 정공법으로 나가야 성공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워즈니악은 주역의 조언대로 했다. HP에 남아 자객처럼 행동하지 않고 과감하게 사표를 던진 후 애플을 창업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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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집콕 생활의 비결: 풍화가인괘

조직의 원리를 다루고 있는 두 번째 괘인 풍화가인괘에서는 슬기로운 ‘집콕’ 생활의 비결을 일러준다. 풍화가인괘는 바람을 뜻하는 손괘(☴)가 위에 놓이고 불을 뜻하는 이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 괘로 안방에서 피우는 화롯불처럼 따뜻한 온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장면을 형상화한 괘다. 화롯불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집이라는 동일한 공간에서 거주하는 가족들이다. 괘의 이름을 가인(家人)이라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집 가(家) 자 자체에 그런 의미가 내포돼 있다. 원래 한 울타리 밑에서 사람들이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에서 유래한 글자가 집 가 자다.

동인괘에서 말하는 조직은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2차 집단이고 가인괘에서 말하는 조직은 한솥밥을 먹고 사는 식구들로 구성된 1차 집단이다. 가인 조직의 가장 큰 원리는 안식이다. 집은 밖에서 노동으로 시달린 식구들이 돌아와 편히 쉬는 공간이다. 가인괘 초구(初九) 효사에서는 그 원리를 이렇게 표현한다.

‘한유가 회망(閑有家 悔亡)’
- 집에 한가로움이 있으면 후회를 잊는다.

한가로울 한(閑) 자는 문 안에 나무 목자가 있는 모양이다. 집 안의 뜰에 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그 아래서 여유롭게 쉬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집은 구성원들에게 휴식과 안식을 주는 조직이고 가인 조직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바로 안식이다. 설사 일국의 왕이라 해도 집에 들어오면 가족의 일원이다. 대통령도, 재벌그룹의 회장도 예외일 수 없다. 사회적으로 잘나가는 사람들이 가인 조직의 일원으로 삶의 여유로움을 누린다고 흉을 보거나 시비를 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가인괘 구오(九五) 효사의 원문에서는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왕가1 유가 물휼 길(王假有家 勿恤 吉)’
- 왕이 여유를 가지고 가정을 이룬다. 흉볼 일이 아니다. 길하다.

언택트 시대, 조직의 뉴노멀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온라인 결재나 회의가 일상화되면서 일을 하는 지리적 공간은 예전처럼 중요하지 않게 됐다. 코로나가 종식돼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결재를 하고,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해서 업무의 효율성이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들이 경험적으로 입증되면서 언택트 네트워크가 조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인괘에서 말하듯이 집콕을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삶의 양식을 그에 맞춰 변화시켜 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인식 변화다. 뉴노멀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통제 위주의 인력 관리를 자율적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재택근무하는 직원들이 혹시 딴짓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기 위해 사내 인터넷망을 켜놓고 통제하려 들면 뉴노멀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개방적 마인드를 가지고 이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일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 업무시간에 게임을 하든, 책을 보든, 아이와 함께 놀든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주역 동인괘에서 말하고 있듯이 혁신은 폐쇄적인 기성 조직보다는 개방적인 동인 조직에서 더 쉽게 일어난다.

조직원을 구속하려 들면 그들은 자객처럼 행동한다. 몰래, 가만히 상사의 눈치를 살피느라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기가 어려워진다. 들판에서 활활 타오르는 횃불처럼 자유롭게 둬야 개방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고, 그를 통해 혁신 기업의 전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집콕을 한다고 혁신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천재들은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창고에 콕 처박혀 혁신을 꿈꿨고, 마침내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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