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묻고 신하가 답하다: 명종-양사언

내 잘못에 직언하는 사람을 곁에 둬야

303호 (2020년 8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명종이 “국가의 인재인 선비를 융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 말에 문인 양사언은 중국 황제의 고사를 예로 들어 인재를 극진히 대우하고 인재가 거침없이 자기 뜻을 밝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임금이 첫째, 원칙으로 인재를 이끌어야 하며, 둘째, 자신의 좋고 싫음을 아랫사람에게 내보여서는 안 되며, 셋째, 엄한 스승의 직언을 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오늘날 인재를 모으고자 하는 리더들이 곱씹어볼 만한 대목이다.



1546년, 이제 막 보위에 오른 명종은 전시(殿試)에서 이런 문제를 냈다. “선비의 기상은 나라의 근본 바탕이다. 선비가 융성한가, 쇠약한가에 따라서 국가의 흥망이 결정된다. … 우리나라는 선비의 기강을 중시하고 선비의 절개를 격려함으로써 그들의 기상을 배양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선비가 나약하고 구차스러워짐이 요즘보다 더 심한 때가 없다. 예의가 행해지지 않고, 염치가 없으며, 기개와 절개가 땅에 떨어지고 굽실대는 것이 풍조를 이뤘다. 선비가 이러하니 대체 나라는 누구를 의지해야 하겠는가?” 1

선비는 재야에서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출사해서는 관료이자 정치가로 활동한다. 국가 경영의 주축이 되는 인적 자원이라 할 수 있다. 옛말에 “나무가 서 있어도 말라 죽지 않는 것은 그 뿌리가 땅속 깊이 내려 있기 때문이고, 물이 흘러도 마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수원(水源)에서 솟아나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나라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나라의 인재가 마르지 않게 만들어주는 존재가 바로 선비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한 선비의 수준이 크게 낮아지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훗날 문인이자 서예가로 명성을 날린 양사언(楊士彦, 1517∼1584) 2 은 이렇게 답했다. “선비가 융성할 때는 사특한 것이 정의를 어지럽히지 못하고 그른 것이 올바른 것을 흐리게 하지 못하니 소인의 도가 소멸하고 군자의 도가 성대해질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다. 나라의 핵심 인재가 건강하면 자연히 그 나라도 건강하다. 인재가 능력에 더해 올바름을 추구하고 반성할 줄 알며 지혜와 기개가 있다면, 부정이나 불의는 자리하지 못할 것이다. 설령 잘못을 해도 이내 바로잡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인재가 넘쳐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선비의 기상을 드높이고 선비를 융성하게 만들려면 어떤 노력이 뒤따라야 할까? 양사언은 ‘한나라 고조가 노나라를 지날 때 공자의 사당에 제사를 지낸 일’ ‘동강에서 낚시질한 일’ ‘한나라 환제 때 당고지화(黨錮之禍)의 일’을 예로 들었다. 한 고조 유방은 황제로서는 처음으로 공자의 묘를 참배하고 공자에게 제사를 지냈다. 공자가 아무리 성인(聖人)이고 위대한 학자라고 하더라도 신하의 반열에 있던 사람이다. 법도대로라면 황제가 그 앞에 머리를 굽혀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유방은 공자에게 예를 표시함으로써 공자의 가르침을 계승하고 선비를 존중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다음으로 동강에서 낚시질한 일이란 후한 때 엄광이라는 선비가 광무제의 간곡한 권유를 사양하고 은거하며 낚시질로 여생을 보낸 것을 가리킨다. 광무제가 인재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우대했다는 의미와 함께, 황제의 요청도 뿌리칠 수 있는 선비의 기개를 상징한다. 마지막 ‘당고지화’는 부정적인 사례다. 후한 환제 때 이응, 진번 등 유학자와 태학생들이 환관의 전횡을 비판하자 환제가 이들을 체포해 처벌했고, 이 사건이 확대돼 유학자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 불의에 항거하고 바른 말을 한 선비들이 화를 당한 것이다.

이상 한 고조, 광무제, 환제의 조치는 국가 경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고조와 광무제의 경우 황제가 직접 인재 육성과 학문 진흥에 관심을 갖고 선비를 우대하니 자연스럽게 그 시대에는 인재가 넘쳐났다. 그 덕분에 좋은 정책이 나오고 정치도 안정되면서 국가가 번영하게 된다. 이에 반해 환제의 시대에는 인재들이 침묵하거나 아예 조정을 탈출해 숨어버렸다. 국정이 문란해진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중국 황제들의 이야기긴 하지만 오늘날 각 조직도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리더가 인재를 극진하게 예우하고, 인재가 리더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는 조직에는 좋은 인재가 몰릴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인재를 소모품으로 여기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내쳐버리는 조직에는 좋은 인재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인재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조직의 성패까지 좌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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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와 같은 사실은 대부분의 리더가 익히 알고 있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리더 본인이 태만한 탓도 있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사언은 몇 가지를 제안한다. 우선, “임금으로서 원칙을 가지고 인재를 이끌어야 한다”. 인재를 무조건 잘 대우해준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상황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해서도 안 된다. 기준과 원칙에 입각해 인재를 대해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인재도 리더를 신뢰할 것이다. 두 번째는 “임금이 좋고 싫어하는 것을 아랫사람에게 내보여서는 안 된다”. 윗사람이 특정한 것을 좋아하거나 선호하면 아랫사람도 이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아부하기 위해서, 혹은 눈치를 보느라 다른 선택지를 고르지 못한다. 당연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다. 아랫사람의 속마음, 솔직한 생각을 듣기 위해서라도 리더는 자신의 호오(好惡)를 먼저 드러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로 양사언은 “임금에게도 엄한 스승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군주가 스승을 깍듯이 모시고 가르침을 따르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 스승을 존경하고 배움에 힘쓰게 된다. 이 말은 임금이 어려워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임금은 나라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다.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며 제멋대로 행동하기 쉽다. 지혜와 경험이 부족한 데도 자신은 다 안다며 자만하기도 한다. 이런 임금을 긴장시키고 반성하게 만들며 적절하면서도 깊이 있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임금은 적어도 잘못된 방향으로는 빠지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임금을 바로잡아주는 조언은 보통 듣기 싫은 말인 경우가 많다. 스승을 존경하고 어려워해야 그런 듣기 싫은 말도 수용할 수가 있다.

이런 양사언의 제언은 비단 임금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꼭 스승이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직속 상사나 친한 선배여도 좋고 친구, 아니 후배나 아랫사람이어도 좋다. 내가 잘못했을 때 나에게 직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좋은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사람, 믿고 존중해서 그의 말이라면 반드시 귀 기울이게 되는 사람, 존경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곁에 둬야 한다. 이런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좋은 인재가 알아서 먼저 찾아온다는 것이 양사언의 생각이다.

이 밖에도 양사언은 ‘선비를 발굴하고 육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배움에 힘쓸 것’ ‘현자(賢者)를 얻어 교육을 담당하게 할 것’ ‘뛰어나고 어진 사람을 등용해 보좌를 맡길 것’ ‘선비를 적재적소에 배치함에 있어서 품계에 구애받지 말고, 근무한 세월을 따지지 말 것’ ‘끝없는 용기와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 굳게 지켜 나갈 것’ 등을 주장했다. 이 모든 주장을 종합하면 인재가 일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인재가 존중받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리더가 관성에 물들고 나태함에 젖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비의 기상이 융성’해지기 위해서는 선비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임금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이 양사언이 전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김준태 성균관대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 akademie@skku.edu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동 대학 유교문화연구소, 유학대학 연구교수를 거치며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리더십과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현실 정치에서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군주와 재상들에 집중해 다수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논어와 조선왕조실록』『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등이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26호 The Rise of Resale 2021년 08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