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at a Glance정정용 감독은 올해 5월 말 폴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재기발랄한 Z세대를 이끌고 한국 남자 축구 사상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따냈다. 약체로 꼽혔던 한국 대표팀이 우승 후보들이 즐비한 ‘죽음의 조’에서 이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정정용 감독은 ‘삼촌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끊임없이 소통해 어린 선수들의 잠재력과 자신감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코치들에게 역할을 분담했다. 코치진의 전문성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이와 함께 상대에 대한 맞춤형 전술을 준비하고, 경기마다 상황에 맞는 과감한 결단으로 최적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편집자주 이 기사의 제작에는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 인턴연구원 조수경(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
드라마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야 극적이다. 이들 또한 그랬다. 바로 한국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이다. 올해 초만 해도 해외에선 U-20 한국 축구 대표팀을 약체로 꼽았다. 이강인(스페인 발렌시아)이라는 유망주가 있었지만 나머지 선수들은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또 다른 유럽파 정우영(독일 프라이부르크)이 소속팀 문제로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 합류하지 못하면서 최상의 팀조차 꾸리지 못했다.
대진표가 나오고 나서는 국내에서마저 “축구는 모른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우승 후보로 손꼽히는 아르헨티나, 포르투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한 조를 이루는 등 ‘죽음의 조’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대표팀은 포르투갈에 1-0으로 아쉽게 졌고, 남아공과 아르헨티나를 각각 1-0, 2-1로 꺾으며 조 2위로 16강에 진출했다.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16강 한일전이었다. 치열했던 경기는 후반 38분 오세훈의 헤딩 결승 골이 승부를 갈랐다.
대표팀의 질주는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세네갈과 8강전에서는 난타전 끝에 3-3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4강전에서는 남미 지역 예선 1위로 월드컵에 진출한 에콰도르(1-0)를 꺾었다. 이를 통해 역대 최고 성적인 1983년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현 U-20 월드컵) 4강을 뛰어넘었다. 아쉽게도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에 1-3으로 패했지만 대표팀은 FIFA 주관 대회에서 준우승이라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이뤄냈다.
결과가 나오고 언론에서 각종 분석 기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2골 4도움으로 대회 골든볼(MVP)을 받은 이강인보다 더 주목받은 이가 있었다. 바로 정정용 감독이다. 그는 한국 축구에서 비주류에 속했다. 청구고, 경일대를 거쳐 실업팀 이랜드에서 5년간 뛰다가 부상으로 29세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지도자로 전향한 뒤에도 지하철을 타면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지 않는 인물이었다.
단출한 이력을 가진 이 감독이 어린 선수들을 데리고 월드컵에서 준우승 신화를 썼다. 그야말로 ‘신데렐라 스토리’다. 대회 경기마다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상대에 따라 맞춤형 전술 전략을 펼쳐 호평이 쏟아졌다. 정정용 감독의 전략을 두고 ‘제갈용(제갈량+정정용)’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냥 어린 선수들도 아니었다. 이번 U-20 선수들은 1999∼2001년 출생한 ‘Z세대’로 구성돼 있었다.
1
이전 선수들과 세대가 달랐다.
많이 바뀌고 있지만 한국 축구계는 아직 권위적이고, 감독이 지시하면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 문화가 남아 있다. 지도자는 선수를 통제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스타일대로 움직이게 한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지적은 각종 대회마다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Z세대는 이러한 문화를 거부한다. 직설적이고 불합리한 것을 못 견딘다. 이 때문에 ‘정정용의 수평적 리더십’에 폭발적인 관심이 쏠렸다. 비결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대표팀 분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올해 6월2일 폴란드 루블린 근교 푸와비 훈련장. 월드컵 16강 한일전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회복 훈련을 하기 위해 모였다.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흐를 법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달랐다. 운동장에는 그간 운동장에서 금기시돼 왔던 걸그룹의 음악이 흘러나왔고, 족구를 하는 선수들의 앳된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어이∼ 정 감독!” 상대편 팀으로 간 이규혁 선수(1999년생)가 정정용 감독(1969년생)을 도발했다. 선을 넘나드는 장난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 순간 정정용 감독이 “그래도 감독인데 ‘리스펙트’ 좀 해줘라”며 웃어넘겼다.
최근 경기도 파주시 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만난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는데 사실 그때 내가 말려들었다. 말한 다음에 서브를 넣었는데 아웃됐다”고 말했다. 뒤끝은 없었냐는 질문에 “그럴 때마다 속으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3번 하고 잊는다”고 답했다.
정정용 감독은 “평소 리더십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소통과 신뢰, 팀워크, 전술 전략 등 비즈니스 리더들에게도 도움이 될 만한 리더십 요소에 대해 자신의 철학을 자신 있게 늘어놨다. 다음은 정정용 감독과의 일문일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