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조를 통해 본 리더십

정조의 사면령, ‘만인공평’ 꿈꿨지만..

241호 (2018년 1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정조는 누구보다 ‘공평함’을 앞세우던 왕이었다. 세자 책봉식이 열렸을 때 국가적 경사를 맞아 벼슬아치들의 품계를 올려주거나 가벼운 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사면해준 일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얻는 사람이 있으면 잃는 사람이 있는 법. 모두에게 공평함을 꿈꿨지만 현실적으로 해당 조치들은 공평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정조가 시행한 사면령 등은 오히려 더욱 치열한 당쟁으로 이어지고 만다. 단발성 이벤트보다는 합리적인 수혜가 가능하게끔 메커니즘을 정비해야 하는 이유다.

1800년(정조24) 2월2일, 궁궐에서는 훗날 순조가 되는 세자의 책봉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국가적인 큰 행사였기 때문에 고관대작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모두 모여 이 광경을 지켜봤다. 정조는 이 경사스러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왕세자 책봉례의 축하교서를 발표했다.

“본월 2일 새벽 이전을 기하여 사형수 이하의 잡범들은 모두 죄를 면제하고, 관직에 있는 자들은 각각 한 자급씩 올려주며, 이미 품계가 찼을 경우는 그를 대신하는 친척 1인에게 한 자급을 올려주도록 하라.”

조선시대에는 왕세자 책봉처럼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기념이 될 만한 행사를 하고 그 경사스러운 일을 전 국민과 함께하기 위해 전교를 선포하며 사면령을 내리기도 하고, 신료들에게 품계를 올려주기도 했다. 정조가 위와 같은 명을 내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정조는 이를 준비하면서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은 자신의 포부를 밝히며 당부했다.

“이번 왕세자 책봉은 국민 모두가 축하할 만한 경사다. 행사 자체는 매우 간소하게 진행할 것이다. 국가 운명을 영원토록 공고히 할 수 있는 기본은 실제로 백성들을 화합하게 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를 통해 서울과 지방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균등하고 실질적인 혜택을 베풀고 싶다. 경들이 그 방법을 강구해 보라!”

영의정 이병모가 묵은 환곡을 탕감해주는 방법이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정조는 환곡 탕감은 실질적인 혜택이 되기에 부족한 점이 있다며 반대했다. 서울 주민에게는 부역문제가 더 큰 걱정이고, 지방 주민에게는 세금 문제가 더 큰 걱정인 만큼 환곡 탕감은 피부에 와 닿는 이벤트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대신들과의 논의 끝에 정조는 이렇게 결정했다.

‘국가 경사 때마다 해오던 전례에 따라 관료들은 나이 70, 일반 양반은 나이 80인 자로서 당상관 품계에 이르지 못한 자에게 모두 한 품계씩 올려준다. 각 도의 묵은 환상곡 30만 섬과 공인(貢人)들의 묵은 유재(遺在) 1만 섬, 그리고 시전 상인들은 부역 3개월, 반인(泮人)들은 30일씩을 모두 탕감한다. 또 군전(軍錢)·결전(結錢)·승역(僧役)·세전(稅錢)·공전(貢錢)도 수량을 나눠 감면해 줌으로써 온 국민에게 복을 내리는 뜻을 표하고 이어 국가에 바라고 있는 여정에 보답하도록 하라.’

이런 조치를 내리면서 정조가 가장 주안점을 두었던 부분은 ‘공평한’ 혜택이었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이런 조치들이 과연 온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됐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환곡 탕감이든, 세금 탕감이든, 부역 감면이든 이런 식의 탕감은 환곡을 쓰고 열심히 갚은 사람이나 세금을 꼬박꼬박 납부한 사람, 부역의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사람에게 불공평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양반이나 관료의 품계를 올려준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사회에 관료는 넘쳐났다. 품계 높은 사람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품계를 올려주고 더 이상 올라갈 품계가 없는 사람에게는 ‘대가(代加)’라고 해서 아들이나 사위, 동생, 조카 등 친족의 품계를 대신 올려주도록 했다.

각종 정책을 시행했음에도 아직 혜택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고민한 끝에 추가로 시행한 것이 역모사건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단행한 사면령이다. 역모사건이 터지면 처벌이 가혹했는데 정조는 주모자급이 아닌 공모자급의 사람들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이 조치에는 ‘혜택을 골고루’라는 의도 외에 ‘당쟁 완화’라는 목표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이 조치는 오히려 정조에 대한 지지도를 떨어뜨리고 당쟁을 심화했다. 사면령을 통해 풀려난 사람들 사이에 경계가 심해졌고 상대 당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당쟁은 오히려 치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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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전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굉장히 아름다운 목표를 세우고 진심으로 고민하며 노력했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목표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된 점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적 관계에서 상당수 인간은 소금 장수와 우산 장수처럼 대립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두 가지 방법으로는 전체를 만족시킬 수 없고 어떤 정책이든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정책으로 인위적인 특혜를 주거나 억지 균형을 맞추기보다는 인간관계에서 합리적인 메커니즘이 작동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조직 운영에서도 일방의 억울함을 들어주거나 기계적으로 포상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이 합리적인 문제를 제시하고 타협안과 대안을 만들어가는 메커니즘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기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조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케이스를 상정하고 각 사람에게 맞는 방식의 맞춤형 포상 제도를 만들어낸 노력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렇지만 일방적이고 기계적인 포상은 오히려 균형을 왜곡한다. 포상 차원에서 마련된 규정이 부서 간 혹은 조직원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할 수 있고 서로의 묵인하에 따먹는 과자로 전락해 최초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도 있다. 연구 분야나 카운슬링, 컨설팅 등 계수화된 수치나 일방적인 실적주의, 특정 기준만으로 평가하기 힘든 분야도 많다.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대사회 리더들은 정조보다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박사(한국사학) 학위를 받았다. 학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을 지냈고 덕성여대 연구교수로 활동했다. 저서로 『영조어제해제6』이 있으며 역사와 경영을 접목하는 연구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동아비즈니스리뷰 348호 The New Chapter, Web 3.0 2022년 07월 Issue 1 목차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