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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경영

德將 니미츠 제독, 존중과 열정으로 강군 만들다

임용한 | 106호 (2012년 6월 Issue 1)



편집자주

전쟁은 역사가 만들어낸 비극입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의 극한 능력과 지혜를 시험하며 조직과 기술 발전을 가져온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전쟁과 한국사를 연구해온 임용한 박사가 전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리더십과 조직 운영, 인사 관리, 전략 등과 관련한 생생한 역사의 지혜를 만나기 바랍니다.

 

리더십의 대표적인 두 형태로 카리스마형과 덕장형을 꼽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은 이 두 리더십의 완벽한 모델에 의해 양분됐다. 미국 정부는 동경 159도를 기준으로 서쪽은 육군 원수인 더글라스 맥아더에게, 동쪽은 해군 제독인 체스터 니미츠에게 각각 지휘권을 맡겼다.

 

이렇게 된 이유는 미군의 독특한 군사제도 때문이었다. 흔히 군대를 육//공 삼군으로 분류하지만 미국 군대는 구조가 좀 다르다. 특히 해군은 우리가 아는 함선을 모는 해군, 공군에 해당하는 해군 항공대, 육군에 해당하는 해병대까지 소유해서 사실상 육해공군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덕분에 육군과 해군의 대립은 전설적이다. 육해군의 연합작전은 거의 두 나라 군대의 연합작전 수준이다. 지금도 암호체계가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태평양전쟁을 승리로 이끈 건 기적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물론 해군에서는 카리스마 덩어리인 맥아더와 달리 조용하면서도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준 니미츠 제독의 공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의 진실 여부를 떠나 두 사람이 정말 모든 점에서 달랐던 건 사실이다.

 

‘아메리칸 시저라는 별명이 딱 어울리는 맥아더는 시저도 무색할 정도로 강한 카리스마를 보유하고 있었다. 고집불통에다 자신을 신처럼 받들게 한다는 악소문이 쉴 새 없이 돌아다녔지만 그런 소문으로 선입견을 갖고 있던 이들조차도 일단 맥아더를 만나면 그를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흡입되곤 했다. 그 비결은 누구도 정확히 묘사하지 못했지만 하여간 맥아더에겐 신비스러운 능력이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을 논의할 때 해군 지휘관들은 거의 결사 수준으로 반대했다. 최종 회의에서 해군 측 인사들은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회의장에 들어섰다. 맥아더는 언제나 그렇듯 장황하고 군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가 많은 빅토리아 시대 풍의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글로 읽어 보면 지루할 나름인데 연설이 끝나자 해군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시작했다. 이걸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전형적인 덕장, 니미츠

맥아더의 동쪽에 있는 니미츠는 상관과 부하, 동료 모두에게서 신뢰와 존경을 받은 전형적인 덕장이었다. 그는 맥아더의 카리스마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친화력을 지녔다. 해군의 일인자였던 어네스트 킹 제독은 까다롭고 편협한 인물이었다. 그 성격 때문에 많은 실수를 했고 비판도 받는데 킹도 니미츠만은 진심으로 좋아하고 신뢰했다.

 

태평양의 지휘권이 분할됐을 때 맥아더는 노발대발했다. 양측 사령부는 사사건건 부딪혔고 각각 수백 명이 넘는 참모들은 출근하면 상대편을 비난하는 게 하루 일과였다. 그러자 니미츠는 사령부에서는 절대 공공연히 맥아더를 비판하지 못하도록 엄명을 내렸다. 그리고 자기 방에 맥아더 사진을 걸어 놨다. 니미츠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맥아더의 사진을 보고 적잖게 당황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출신배경과도 관련이 있다. 맥아더는 최고의 군인 명문가에서 태어났고 아내도 대부호였다. 물론 본인의 경력과 업적 역시 전설적이었다. 모든 것을 갖춘 그는 거리낄 게 없었다.

 

체스터 니미츠 해군 제독
반면에 니미츠는 텍사스의 시골 여관집 아들이었다. 서부 영화에나 나올법 한 그런 여관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다녀야 할 정도로 가난했다. 미국도 전문직은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는 경우가 많다. 군인은 특히 그렇다. 니미츠가 해사에 간 이유도 바다를 동경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육사를 지원했는데 미국은 사관학교에 가려면 상원의원의 추천이 필요하다. 그런데 텍사스는 군인 명문가를 많이 배출한 지역이라 그에게 돌아올 TO가 없었다. 하지만 워낙 육군을 선호하는 덕에 해사는 자리가 충분했다.

 

든든한 배경이 없는 니미츠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우수한 성적을 거둬야 했다. 인간관계도 최대한 베풀고 적을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화가 나도 남 앞에서 비방하는 법이 없었다. 그도 인간인지라 참을 수 없을 때가 많았지만 오직 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만 속을 털어놓았다. 그때도 비밀문서에 등급을 붙이듯이 비방의 정도에 따라 등급을 매겼다. 니미츠가 죽자 부인은 1급 비밀 수준의 편지는 모조리 태워버렸다.

 

그런데 니미츠처럼 덕과 인화를 중시하는 리더의 경우 부하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는 쉽지만 아랫사람을 쥐어짜서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수가 있다. 전시가 아닌 평소에는 더 힘들다. 군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부대관리, 검열, 사격 시합, 운동시합의 성과가 다 지휘관의 능력평가에 반영되는데 군대라는 곳이 기업과 달라 이윤을 추구하는 곳도 아니다 보니 인덕만으로는 부하 장병들에게 동기유발을 시키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니미츠는 이 일을 충분히 해냈다.

 

 

부하 장병들의 동기 유발 및 적성 계발을 유도

1934년 니미츠는 순양함 오거스타 호의 함장이 됐다. 함선은 낡고 지저분했으며 장교들은 거의 전원이 해상근무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배치 지역도 머나먼 중국이었다. 군기는 빠져 있었고 사기는 축 처져 있었다. 그러나 1년도 지나지 않아 오거스타 호는 말끔하게 변했고 검열, 포술 경연대회, 순양함끼리 벌이는 모든 운동경기에서 일등을 했다. 1년 만에 트로피가 너무 많아서 장식장을 새로 짜야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오거스타 호에서 근무했던 한 장교는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일등이었고 장교부터 최하급 사병, 요리사까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일했다.”

 

니미츠는 동기유발을 위해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소위에게는 중위의 임무를, 중위에게는 대위의 임무를 맡기는 식으로 자기 상관의 임무를 훈련시켰다. 원래 함정은 독특한 근무여건상 업무분담과 한계가 철저하고 대단히 엄하다. 갑판 아래에서 근무하는 수병이 상갑판으로 가는 데도 엄격한 규정이 있을 정도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조직이 그렇듯이 상급자는 하급자가 자신을 대체하거나 쫓아오는 걸 싫어하고 불안해한다. 이런 방식은 자칫 조직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단결력을 저해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니미츠는 상급자가 하급자를 교육해 그가 성장하면 상급자에게 더 좋은 자리를 알선해 주고 하급자는 승진시키는 방식으로 모두에게 존경을 받았다. 심지어는너희들은 모두 미래의 함장이라며 함장의 임무까지도 간간이 연습시켰다.

 

낯선 임무에 실수를 해도 화를 내거나 질책하지 않았다. 단지 부하에게 왜 실수를 했는가를 분석하게 하고 그 분석이 옳으면맞아, 그것을 명심하게라고 말하는 게 전부였다. 경험을 자기 것으로 하고 한 단계 성장했는가만 체크했다. 훈련은 쉴 새가 없었고니미츠식 접근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배를 몰면서 한계상황을 경험하곤 했지만 모두가 더욱 흥미를 가지고 몰입했다. 한번은 니미츠식 접근을 하다가 실수를 해서 배가 충돌할 뻔한 적이 있었다. 니미츠는 갑판 담당 대위에게 이렇게 물었다. “대위, 내가 잘못한 게 뭔가?” 대위는함장님이 너무 자신만만해서 방심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니미츠는 즉시 동의하고 이렇게 물었다. “자네가 함장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부하들 한 명 한 명의 개성을 면밀하게 파악해서 취미와 적성을 살릴 수 있는 보직을 맡기거나 나중을 위해 그 분야를 공부하도록 배려했다. 가족과 떨어져 먼 중국에 와 있다고 낙심해 있는 장교들에게 이 기회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동양 전문가가 되라고 독려했다. 말로만 하지 않고 중국을 공부하는 세미나를 열었는데 본인이 섭외를 해서 미국 영사와 중국 교육부, 재무부 장관까지 강사로 초빙했다. 부하들에게 강력한 동기유발 효과를 불러일으킨 건 물론이다. 1930년대 중국은 치안이 상당히 불안하던 시대였음에도 장병들은 휴가를 얻으면 중국을 연구하겠다고 내지로 여행을 떠났다. 일부 장교는 만주, 하얼빈에 한국까지 방문했다.

 

덕장형 리더는 無骨好人 아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관용과 격려로 대했다고 해서 니미츠가 모든 사람을 인정한 건 아니다. 카리스마형 리더와 덕장형 리더를 비교할 때 흔히 일어나는 오해는 카리스마형은 부하들을 가혹하게 다그치고 덕장형은 인정하고 다독인다는 생각이다. 얼핏 보면 사실 같기도 하지만 이는 리더를 리더십의 본질에서가 아니라 아랫사람의 호불호라는 관점에서 보기에 발생하는 착각이다.

 

어떤 형태의 리더든 리더십의 본질과 목적은 조직을 최고의 상태로 인도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고의 인재로 조직을 채우고, 조직원을 최고의 인재로 육성해야 하며, 이를 따르지 못하는 조직원은 도태시켜야 한다. 이 원칙은 불변이다. 양자의 차이는 무능한 참모를 아무 말 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그에게 무슨 말을 할지 2∼3일을 고민하느냐, 혹은 즉시 교체하느냐, 아니면 어느 정도 기간을 뒀다가 교체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니미츠는 부하들을 공평과 관용으로 대했지만 절대로 무골호인(無骨好人)은 아니었다. 그가 진심으로 좋아한 부하는 맥아더와 똑같이 자기 일에 열정을 가지고 몰입하는 장교였다.

 

역시 오거스타 호에서의 일화다. 사병, 특히 해병들은 곧잘 사고를 쳤다. 선상재판이 열리면 니미츠가 판사가 되고 직속상관이 검사 겸 변호인이 된다. 직속상관은 거의 선처를 요구했고 덕장 니미츠는 웃으면서 그 말을 들어줬다. 이런 식의 훈훈한 선상재판은 거의 관행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해병이 보초시간에 졸다가 걸렸다. 상관은 새로 부임한 중위였는데 그는 니미츠의 관행을 무참히 깨뜨렸다. “경계근무 중에 조는 놈은 해병이 아닙니다. 난 이런 ×××와 함께 근무할 수 없습니다. 당장 쫓아내 주십시오!” 니미츠는 이 장교에게 매료됐고 그의 후원자가 됐다. 그 해병이 나중에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에서 해병대의 전설이 된 풀러 대령이다.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yhkmyy@hanmail.net

필자는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과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 등 다수의 책과 논문을 저술했다.

 

  • 임용한 임용한 | - (현) KJ인문경영연구원 대표
    -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
    - 『조선국왕 이야기』, 『전쟁의 역사』, 『조선전기 관리등용제도 연구』, 『조선전기 수령제와 지방통치』저술
    yhkmy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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