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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의사결정

메디치家를 아는가? 역사는 최고의 케이스스터디다!

박진원 | 86호 (2011년 8월 Issue 1)
 

 
스웨덴의 전설적인 팝 그룹 ABBA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어준 노래가 있다. 경쾌한 사랑노래이지만 나폴레옹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게 된 1815년의 워털루전투에서 제목을 따온 ‘Waterloo’ 란 곡이다. 이 곡의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My my, at Waterloo Napoleon did surrender
Oh yeah, and I have met my destiny in quite a similar way
The history book on the shelf
is always repeating itself.
나폴레옹은 워털루전투에서 항복을 했지
나도 거의 같은 식으로 사랑의 운명이 결정됐다네
책장에 진열돼 있는 역사책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지
 
단순한 팝송으로 흘려 듣기엔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가사다. 특히 “책장에 진열돼 있는 역사책은 언제나 반복되고 있지(History book on the shelf is always repeating itself)”란 구절이 압권이다. 역사는 반복되는데 나폴레옹이 워털루전투에서 졌듯이 나도 사랑에 항복하게 됐다는 내용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역사의 교훈으로 승화시킨 팝 아티스트의 재치 있는 가사에 감탄을 하게 된다. 나폴레옹의 패전과 자신의 사랑을 동급선상에 놓는 통 큰 해석을 한 ABBA의 이 명곡은 흥겨운 멜로디와 함께 도입부의 명가사로 내 머릿속에 콕 박혀 있다.
 
인문학과의 조우
내가 1980년대 말 대학에 재학 중일 때만해도 인문학에 몰두하는 친구들은 고뇌하는 청춘의 이상(理想)이었고 뭔가 따라 해야 할 것 같은 로망의 대상이었다. 철학적인 문제에 대해 밤 새워 토론하고, 문학작품의 의미를 찾기 위해 책이 닳도록 읽고, 존재론적 실존의 의미를 찾아 방황하며 시대의 아픔을 모두 짊어진 것 같던 청춘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문학과 철학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요즘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시를 읊조리고 철학을 논하는 사람이 결혼에 성공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까울 것이다. “너무 진지해서 싫어요. 저는 재미있는 사람이 좋아요”라는 시대의 흐름이 대세이기에 인문학적 삶은 홀대 받기 십상이다.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고, 맛집 데이트를 즐기며, 명품 쇼핑에 눈길을 두면서도 하루 빨리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목표를 놓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인문학은 별다른 의미 없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인문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비호감의 대상이 돼왔다.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학창시절, 우리가 배웠던 역사는 시대의 의미를 추구하거나 변화의 동력을 이해하는 인문학이 아니라 암기 과목으로 분류됐다. 시험을 앞두고 짧은 시간 안에 누가 더 많이 외우는지 시합하는, 그래서 역사하면 머릿속에 ‘1592년은 임진왜란’ ‘1876년은 강화도 조약’ 같은 단편적인 년도와 왕들의 업적들이 떠다닐 뿐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텔레비전 드라마 ‘동이’를 통해 정조를 알고 ‘태왕사신기’를 통해 광개토대왕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시청자들이 아는 것은 한효주와 배용준이 맡은 사극의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은 역사적 사실과 거리가 있다.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 시청자를 TV 앞으로 불러내야 하는 방송국 사람들은 역사적 사실보다 시청률을 올릴 수 있는 자극적인 소재를 선호한다. 덕분에 우리는 TV 사극 드라마로부터 잘못된 역사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위험해 보인다. 역사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으므로 재미있게 보면 그뿐, 몰라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믿는 것이 정말 문제다. 요즘 트렌드를 보면 연애할 때도, 취직할 때도, 결혼할 때도 역사란 필요 없는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인지 몇 해 전 대학입시에서 국사가 제외되는 일이 생겼고 한 기업의 면접시험에서는 맥아더 장군에 대해 물어보아도 그의 존재를 모르는 지원자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만큼 영어를 잘하면 우리 역사는 몰라도 되는 불행한 시대가 온 셈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회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구성원이 이공계와 상경계 출신이다. 그들에게 인문학 얘기는 당장 업무 수행에 별 필요가 없는 그저 옛날 이야기나 골치 아픈 철학 얘기로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현재 인문학은 우리에게 딴 세상 이야기다. 벽장 속의 이야기이고 화석처럼 굳어버린 죽은 이야기이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다. 학문의 역사로 보자면 내가 공부한 경영학은 인문학에 명함도 내밀 수 없을 만큼 일천한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역사는 몰라도 돈을 매니지먼트하는 방법은 알아야 하는 시대가 왔다. 많은 대학생들이 경영자를 꿈꾸고 기업에 취직하기를 원한다. 시인, 역사학자, 철학자를 꿈꾸는 학생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경영이나 기업 관련 책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주요 경영 관련 서적은 회사에서도 읽어볼 만한 책들로 추천돼 나눠주기도 하고 선물로도 많이 받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경영이나 기업 관련 책들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경영학 관련 도서들이 다루는 내용이란 대개 기업의 공통적인 고민에 대해 모법 답안을 주거나 경영자들이 늘 생각하고 있는 것을 알기 쉽게 정리해준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책들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지식을 효과적으로 잘 정리해서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경영 관련 책에 별 관심이 없다 해서 경영을 통달한 귀재나 도사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갈 길이 먼 경영자일 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누구나 다 생각해봤던 모범 답안이 나와 있는 책보다는 내가 가진 목표에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방법을 알려주는 책을 더 좋아한다.
 
얼마 전부터 심심치 않게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가 강조되고 있으면서도 인문학이 요즘처럼 조명을 받은 적도 없다는 역설적인 얘기를 하는 분도 봤다. 최근 역사강의를 듣는 기업경영자들이 늘고 있다. 나 역시 몇 해 전부터 관심을 갖고 역사 강의를 듣고 있다. 학창시절 외에는 별로 접하지 못했던 인문학과의 조우는 매우 반가우면서도 새로운 감동을 준다. 특히 문사철로 대변되는 인문학의 줄기 중에서도 역사는 문학과 철학에 비해 중년 남자들에게 친근하다.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상력과 섬세한 마음이 중요한데 그런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다. 문학 작품을 읽고 그 안에서 작가의 정신을 느끼는 것은 장시간의 훈련을 필요로 한다. 학창시절부터 이런 훈련이 안 된 중년 남자에게는 웬만한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솔직히 철학은 너무 접근하기 어렵다. 지금 사는 현실의 문제만으로도 머리는 이미 포화상태다. 그래서 굳이 철학을 공부하며 머리를 혹사시킬 이유가 없다고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일종의 자기 보호본능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역사는 남성들의 뿌리 찾기 본성과 시대를 풍미한 영웅들의 무용담과 전략이 펼쳐진 망망대해와 같아서 접근하는 데 일단 거부감이 없다. 그래서 나도 일단 역사공부로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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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원

    - 두산그룹 4대 경영자
    - 현 두산 산업차량 주식회사 대표이사 부사장
    - (재)플라톤 아카데미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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