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고슴도치가 체온을 나누기 위해 서로 너무 가까이 가면 가시에 찔린다. 반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추위를 견디기 힘들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쓴 우화에 나오는 전형적인 딜레마(Dilemma) 상황이다. 아프리카 초원의 초식동물이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풀을 뜯어 먹으면 사자나 치타의 먹이가 되기 쉽다. 그렇다고 고개를 들고 육식동물이 어느 쪽에서 오는지 계속 감시만 하면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딜레마는 대체 가능한 복수의 선택안이 있을 때 어떤 것을 취하더라도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에 이르는 상황을 말한다.
창조와 혁신 이끄는 딜레마
사실 인생은 딜레마의 연속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데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을 걱정해야 하고, 먹지 않자니 큰 즐거움을 포기하는 셈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데, 공부하는 시간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친구들과 적당히 어울리지 않으면 외톨이가 되기 쉽고, 외톨이가 되면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기 때문에 결국 공부도 잘 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이와 같은 딜레마 상황을 매일 맞닥뜨리며 살고 있다. 이런 딜레마에서 멋지게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필자의 친구 중에 좋은 예가 있다. 그 친구는 법률가의 꿈을 갖고 고시공부를 했는데 여러 번 실패했다. 그에게는 오랫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가 있었다. 여자친구의 입장을 생각하면 결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결혼을 하면 가족을 부양해야 하기에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취직을 해야 했다. 법률가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시공부를 계속하려면 결혼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두 가지를 다 포기하지 않는 제3의 길을 선택했다. 그때까지 공부했던 법률지식으로 당시로서 수월하게 합격할 자신이 있던 다른 전문분야의 시험을 봤다. 자격증을 얻어 가족을 부양할 정도의 돈을 벌 수 있게 된 그는 결혼 후에도 시간을 쪼개 고시공부를 했다. 결국 그 친구는 사법고시에 합격했고 최초로 해당 전문분야 출신의 변호사가 됐다.
이 사례에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딜레마란 인생을 비탄에 빠뜨리고 황폐하게 만드는 원인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창조와 혁신을 이끌어내는 바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딜레마를 해결한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가 딜레마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 상황을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점에서 보고 서로 상충되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트레이드오프의 가장 전형적인 경우는 경제운용에서 실업률을 떨어뜨리면 물가가 상승하고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실업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어느 한 쪽의 정치적 중요도가 중요해지면 다른 쪽을 희생시키는 상황이다. 물가와 실업률을 둘 다 잡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술을 발전시켜 공급을 늘리고 새로운 산업을 부흥시키는 것이다.
5 Forces Analysis를 통한 산업구조분석으로 유명한 하버드비즈니스스쿨(HBS)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원가절감을 통한 낮은 가격과 모든 수단을 동원한 차별화 가운데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론은 기업의 혁신을 가장 중요한 경쟁력의 요인으로 본 슘페터의 지지자들에 의해 동태적인 환경의 변화를 무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에 의해 산업의 지형도가 달라지는 경우 대처할 수 없다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과거에는 적과 동지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 했다. 입장을 분명하게 정하지 않으면 어느 쪽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하고 생존을 위협 받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Co-petition이라는 용어도 있듯이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상호발전을 모색하는 세상이다. 트레이드오프 관계에 있는 둘 이상의 목표를 동시에 잡으려는 노력과 시도가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차원의 발전을 이뤄낸다.
딜레마를 뛰어넘어라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경영자들은 숱한 딜레마와 마주한다. 변지석 홍익대 교수의 책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경영의 딜레마>에 보면 숱한 사례가 열거돼 있다. 경쟁할 것인가, 제휴할 것인가? 시장을 선도할 것인가, 뒤따라 갈 것인가? 부품을 자체 생산할 것인가, 외부에서 구매할 것인가? 종업원들에게 스트레스를 줄 것인가, 만족감을 줄 것인가? 권한을 위임할 것인가, 통제할 것인가? 소품종화할 것인가, 다품종화할 것인가? 경영계획을 치밀하게 짤 것인가, 임기응변적 대응을 할 것인가?
각각의 선택안은 장점과 한계점을 모두 지니고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얻는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많다. 변 교수가 내리고 있는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 부단히 변화해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경영기법이라도 상황이 바뀌면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급변하는 환경에서는 가장 알맞은 전략을 선택하려는 노력보다 전략의 유연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둘째, 상반되는 전략을 동시에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많은 경영 구루들이 이와 비슷한 충고를 하고 있다. 존 스토퍼드와 찰스 바덴 풀러의 기업쇄신에 관한 연구논문에 따르면 성공적인 조직이 되려면 계획적인 동시에 유연해야 하고, 세분화하는 동시에 통합해야 하며, 여러 틈새시장을 충족시키면서도 대량판매자의 위치를 잃지 않아야 한다. 또 지속적으로 신기술을 도입해야 하지만 직원들은 각자 맡은 업무분야에서 숙련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조직은 상반되는 개념 중 하나를 고집하기보다 둘을 융화시킬 수 있는 유연성과 통합능력을 길러야 한다. 영국의 경영학자 찰스 핸디는 <역설을 넘어서 미래를 이해하기(The Age of Paradox)>에서 “기업은 상반된 것들 사이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려 하기보다 그것들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HBS의 석좌교수인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이 쓴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는 “기업들은 고객의 욕구가 이해되고 있는 기존의 시장을 대상으로 존속적 기술을 통해 단기적으로 기업을 강하게 만드는 전략을 계속 추구하되, 궁극적으로는 기존 시장의 엄청난 변화로 기업의 몰락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파괴적 기술에 대해서도 적정한 자원을 집중하는 파괴적 혁신전략을 써야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톰 피터스와 낸시 오스틴은 <액설런트 리더십(A Passion for Excellence)>에서 “액설런트 리더들은 엄격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자신의 가치체계와 관련된 것은 으뜸으로 여겨 타협하지 않지만, 동시에 부하의 일을 진정으로 여겨 염려하고 존중한다”고 말했다. 뛰어난 리더들은 조직 내에서 비전을 제시하고 낙관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불편한 진실을 감추지 않는다. 기존의 구성원들을 존중하고 계속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동시에 외부로부터의 인재 수혈을 도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