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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교수의 경영 거장 탐구

‘결정적 순간’과 기업 장수의 비결

신동엽 | 69호 (2010년 11월 Issue 2)

기업, 개인, 국가를 막론하고 초미의 관심사 중 하나는 오래 생존하는 것, 즉 장수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 통계를 보면 기업이 오랜 기간 생존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자료 출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부분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특히 80%에 가까운 기업들이 창업 후 30년 이내에 사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잠깐 반짝하다 사라지지 않고 오랜 기간 생존하는 100년 기업, 200년 기업이 되려면 무엇이 중요할까?

가장 단순하고 직관적인 대답은 높은 성과를 창출하면 될 것이라는 답변이다. 이 방법은 매우 단순하고 논란의 여지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성과와 생존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오래 생존하는 장수 기업은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우량 기업일까? 반대로 묻는다면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은 오래 생존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개인 수준에 적용한다면 높은 성과를 창출해서 좋은 인사고과점수를 받은 사람이 궁극적으로 높은 직위로 승진하는 것일까? 높은 성과는 항상 높은 생존 확률로 연결될까? 엄밀한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혀 예상 밖으로 성과와 생존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

거시 조직이론(Organization Theory) 연구에서 1970년대 후반 마이클 해넌(Michael Hannan) 교수 등에 의해 조직생태학(Organizational Ecology)이 등장한 이래 대부분의 실증 연구들이 예측하고자 한 결과 변수는 성과가 아닌 생존이었다. 조직의 생존 여부는 매우 객관적으로 정확한 지표인 반면, 성과는 매우 복잡하고 불분명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조직의 의사결정과 행동, 그리고 형태 등의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 측면에서도, 성과 추구 동기보다 생존 추구 동기가 훨씬 크다는 증거들이 속출한 것도 한 이유였다.

조직 성과의 모호성

조직의 성과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한 개념이다. 예를 들면, 가장 대표적 기업 성과 지표인 수익성(profitability)만 보더라도 ROA(자산이익률), ROS(매출액이익률), ROI(투자수익률), ROE(자기자본이익률) 등 그 종류가 엄청나다. 이외에도 기업 성과를 측정하는 방법에는 성장성, 효율성, 효과성, 품질신뢰성, 혁신성 등 무수한 지표들이 있다. 이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의사결정이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주주, 경영자, 종업원, 채권자, 소비자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 집단들은 자신들의 관점과 이해관계에 따라 각기 다른 성과를 중요시한다. 이런 이유에서 예일 대학의 거시 조직이론의 거장 찰스 퍼로(Charles Perrow) 교수는단순히 높은 성과를 창출했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반드시누구 입장에서의(for whom)’ 성과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양한 성과들은 심지어 서로 충돌할 때도 많다. 거시 조직이론의 거장 제임스 마치(James G. March) 교수의탐색과 활용(exploration and exploitation)’은 바로 장기 성과와 단기 성과 간의 충돌을 의미한다. 즉 단기 성과를 올리려면 불확실성과 실패 위험이 높은 장기 투자를 피하고 현재 가지고 있는 기존 역량과 사업을 최대한 활용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장기 성과가 필연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반대로 장기 성과를 높이기 위해 새로운 사업이나 역량을 미래지향적으로 탐색하게 되면 불확실성과 리스크 때문에 단기 성과는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볼 때, 기업의 성과를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리인이론(Agency Theory)에 따르면 겉으로 드러나는 조직 성과는 경영진에 의해 상당 부분 조정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엔론 사태와 같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심각한 기업윤리 문제를 야기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만을 뜻하는 건 아니다. 만일 보상이 보너스 등 단기 성과에 의해 결정된다면, CEO는 기업의 단기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장기 투자를 줄일 수 있다. 반대로 스톡옵션 등과 같이 장기 성과에 따라 보상이 결정된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장기 투자를 할 것이다. 즉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 지표만으로 그 기업의 성과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란 매우 어렵다.

여기에 비해 기업의 생사 여부를 뜻하는 사멸(mortality)은 매우 명확하고 객관적이다. 현대 거시 조직이론에서 모호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성과보다는 생존 여부에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다. 이미 1930년대와 1940년에 체스터 바나드(Chester I. Barnard)와 필립 셀즈닉(Philip Selznick) 등 초기 거시 조직이론가들은 조직들이 실제로 추구하는 것은 성과보다는 생존(survival)이라고 주장했다

성과와 생존의 모호한 관계

그렇다면 기업의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일까? 수익성 등의 성과가 높을수록 생존 가능성도 높아지는 게 아닐까? 고도로 발전된 통계적 방법론을 사용해 분석한 수많은 거시 조직이론 연구들에 따르면, 전혀 예상 밖으로 성과와 생존 사이에는 그렇게 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성과와 생존이 통계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뜻밖의 놀라운 연구 결과도 많이 나왔다.

이는 비단 기업 조직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다. 좀더 미시적 수준에서 각 개인이 조직 내에서 장기간 생존하며 높은 직위로 승진하느냐의 여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의 패턴이 나타난다. ‘거의 무작위적 경력발전(Almost Random Career)’이라는 제목의 거시 조직이론 논문에서 제임스 마치 교수는 30여 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미국 위스콘신주 교육조직 종사자들의 경력을 실증 연구했다. 그 결과 최고위직으로의 궁극적인 승진여부는 그 이전까지의 성과, 즉 인사고과에서의 평가결과와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경력발전이거의 무작위적으로 전개된 셈이다.

그런데 마치 교수는 이 논문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그것은 논문 제목을 그냥무작위적 경력발전으로 부르지 않고거의 무작위적 경력발전이라고 부른 이유다. 마치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최종 승진 여부를 평소의 성과가 예측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최종 승진 여부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 일상적으로 상존하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기회나 위기 같은결정적 순간(critical events)’을 무사히 넘기는지 여부다. 예를 들면, 개인 경력의 경우에는 경력발전 과정에서의 주요 시점마다의 승격시험 등과 같은 자격심사에서 통과하지 못하면 당연히 장기적 생존과 고위직으로의 승진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마치 교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일단 이런 결정적 순간마다의 자격심사 등 일종의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과정(screening)만 무사히 통과하면 구체적 점수나 순위 등과 같은 성과의 고하는 이후의 생존과 승진 여부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결정적 순간이론과 특정 시기의 중요성

마치 교수의 연구 결과는 기업과 같은 조직 자체의 생존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가진다. 즉 평상시의 일상적 성과가 장기 생존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으며, 기업의 장기 생존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간헐적으로 발생하는결정적 순간(critical moment)’에 기업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다.

이런 주장은 1940년대에 이미 거시 조직이론의 초기 제도이론(Old Institutionalism) 주창자인 필립 셀즈닉 교수에 의해 제기됐다. 결정적 순간은 조직의 운명이 불연속적으로 급격하게 변동할 가능성이 높은 비일상적이며 특수한 시기를 말한다. 결정적 순간은 일반적으로 흔히 사용되는 용어인위기(crisis)’와는 다른 개념으로서 기회와 위기 모두를 포함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면, 위기는 결정적 순간을 효과적으로 잘 넘기기 못했을 때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결정적 순간을 잘 넘긴 기업들은 생존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었던 고비를 경험했더라도 위기가 표면화되지는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결정적 순간의 유형은 환경의 불연속적(discontinuous) 변화로 발생하는 외부 위협이다. 급격한 환경변화로 자신의 기존 강점이나 핵심 역량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돼버리는 순간,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기업 내부의 질적 건전성에 상관없이 모든 기업들이 생존위기에 빠지는 순간, 어떻게 생존을 확보해내느냐도 중요하다.

결정적 순간의 개념은 위기 가능성을 초래하는 부정적인 시기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어떤 기업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도 결정적 순간의 중요한 유형 중 하나다. 전세계 자동차 기업들은 1900년대 초에 2차 산업혁명의 성숙으로 자동차의 수요가 폭증했다. 그러나 전통적 장인생산방식에 여전히 의존하는 생산시스템의 비효율성 때문에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시기가 일시적으로 존재했다. 어떤 자동차회사라도 저가 자동차를 대량으로 공급만 할 수 있으면 전세계 시장을 독점할 것이 확실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기업들은 이 결정적 순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반면, 포드사는 컨베이어벨트 기반의 조립라인 시스템을 중심으로 하는 포디즘으로 이 짧은 결정적 순간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그 결과 한때 전세계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대기업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결정적 순간이 외부의 기회나 위협에서만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래리 그레이너(Larry Greiner) 교수에 따르면 모든 조직은 창립돼서 점차 성장해가는 동안 중간중간 일련의 결정적 순간들을 맞게 되는데, 이 순간들을 어떻게 넘기느냐가 지속적 생존과 성장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사업 초기에는 소수 구성원들의 창의성과 창업가 정신이 가장 중요한 생존과 성과의 기반으로 작용하다. 그러나 기업이 일정 규모 이상 성장하면 특정 개인들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체계적 경영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이 오게 된다. 대다수의 벤처 기업들은 이런 고비를 효과적으로 넘기지 못해 장기 생존에 실패한다는 게 그레이너 교수의 주장이다.

결정적 순간 CEO 리더십

결정적 순간 이론은 평소에 어떤 성과를 창출하느냐보다 가끔씩 발생하는 비일상적이고 짧은 시기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느냐가 기업의 장수 여부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셀즈닉 교수는 바로 이런 결정적 순간이 조직학습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라고 주장한다. 그는결정적 고비를 넘기는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과 지식, 노하우, 역량 등이 쌓여서 그 조직만의 독특한 역량(distinctive competence)이 형성된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기업의 장기 생존을 원하는 경영자들은 수익성처럼 눈 앞의 단기 성과에만 근시안적으로 함몰돼서는 안 된다. 결정적 순간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적 자원과 역량을 장기적 관점에서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거시 조직이론의 거장들은 결정적 순간에 대비한 자원과 역량으로 극도의 조직유연성, 여유자원(slack)과 의도적 비효율성(DBR 51 74∼77도요타 위기와 효율성 지상주의의 한계’), 예상 못했지만 급박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의 신속한 실행력, 임기응변력, 짧은 순간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고신뢰조직(DBR 57 80∼82악보도 지휘자도 없지만… 21C 조직, 재즈 즉흥 연주 배워라’) 등을 제시해 왔다. 이 가운데에서도 다음 두 가지가 특히 핵심적이다.

첫째, CEO를 포함한 경영진들의 외부 환경 인식 오류를 줄여야 한다. 외부로부터 발생하는 결정적 순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환경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칼 와익(Karl E. Weick) 미시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많은 조직들이 이와 같은 노력에서 실패하는 이유로 CEO와 경영진들의 환경인식 오류를 들었다. 와익 교수에 따르면, 경영자들은 실제로 자기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객관적환경에 대응하기보다는 그 자신이 주관적으로 중요하다고 믿는인식된환경에 대응한다. 이 두 환경 간에 괴리가 커지면, 치명적 위기나 결정적 기회를 초래할 환경변화를 놓치게 된다. 경영자들의 환경인식은 특히 각자의 배경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기술 분야 출신의 경영자는 기술환경 변화에는 민감하게 대응하지만 재무나 시장환경의 변화는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재무 출신 경영자는 기술이나 시장의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최고경영진을 서로 다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하고 이들이 CEO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도록 개방적 조직문화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둘째, ‘성공의 덫(success trap)’, ‘훈련된 무능함(trained incapacity)’ 등 조직 내부의 전통적 강점에서 발생하는 경직성을 극복해야 한다. (DBR 27 80∼81근시안적 학습과 성공의 덫’, DBR 53 80∼82최악의 승진 인사 만드는 역량의 덫’) 조직의 성장 단계마다 결정적 순간에 맞게 되는 도전과 핵심 과제의 본질은 각각 다르다. 따라서, 한 가지의 동일한 역량이나 자원, 전략만으로 모든 결정적 순간들을 다 적절하게 대응할 수는 없다. 각 결정적 순간의 본질에 적합한 새로운 역량과 자원,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직들은 그 이전 단계의 결정적 순간 대응에서 성공적으로 성과를 발휘했던 역량과 자원, 전략을 자신의 강점으로 인식해 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 결과 전혀 다른 새로운 결정적 순간에 대한 대응에 실패해 갑자기 붕괴하는 성공의 덫혹은훈련된 무능함에 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흔히 당연시되는 경구인위기일수록 강점에 선택과 집중하라는 태도가 오히려 독이 된다. 결정적 순간의 본질과 대응 방식 간의 부적합성을 더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결정적 순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통한 조직의 장기 생존은 CEO 리더십의 영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CEO는 우선 자기 자신이나 특정 소수의 편향된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개방적 관점에서 환경변화의 본질을 적기에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또한 자기 조직의 과거 성공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장기적 기업 생명주기 관점에서 결정적 순간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해 그에 적절한 대응 방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셀즈닉 교수는 결정적 순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통해 조직의 장기 생존을 확보해내는 CEO의 역할을 경영관리적 리더십과 구분해제도적 리더십(institutional leadership)’이라고 불렀다. 당장 눈앞의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는 근시안적 CEO는 결과적으로 조직의 장기 생존을 위협하게 된다. CEO의 역할은 다양하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조직 장기 생존의 수호자(guardian of long-term survival)’ 역할이다. 모든 CEO는 이런 관점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보아야 한다.

필자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예일대에서 조직 이론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직 이론 분야의 세계 최고 학술지 등 저명한 저널에 다수의 논문을 실었다.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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