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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d Management

세종대왕과 링컨 대통령의 포용

정현천 | 66호 (2010년 10월 Issue 1)

 

 
포용의 의미는 너그러운 품성이나 자선적 행동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목적지향적이고 사실(fact)을 중시하는 전략적 행동양식으로 파악해야 한다. 태평성대보다는 지속적으로 환경이 변하고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에 포용이 더욱 필요하다.
 
포용은 한 번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승리를 얻고 그 승리를 오랫동안 지키고자 할 때 진정한 빛을 발한다. 그런 포용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지만 역사적인 인물 가운데서는 세종대왕과 링컨 대통령의 사례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볼 수 있다.
 
세종대왕의 사실(fact)에 입각한 포용
우리는 세종대왕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학자나 전문가들은 세종대왕에 대해 연구를 하면 할수록 그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고 얘기한다. 세종대왕은 온화한 듯 하면서 강경했고, 강경한 듯 하면서 온화했다. 신하들과 토론을 자주 하며, 때로는 버릇 없고 고집스러운 주장까지 다 들어주었지만, 본인이 한 번 세운 의견은 쉽게 물리는 법이 없었다.
 
세종대왕 시절의 유명한 대신들이나 학자들 가운데 꼬투리를 잡자면 잡히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영의정 유정현은 아주 인색한 고리대금업자였고, 집현전 대제학을 지낸 변계량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아내를 버리고 다시 장가들기를 수차례나 반복했다. 최고의 정승으로 꼽히는 황희는 역적의 아내를 숨겨 두고 간통을 저지른 것으로 탄핵을 받았으며, 폐세자된 양녕대군을 비호해서 세종의 등극을 위협했다. 10여 년간 이조판서를 지낸 허조는 지나치게 깐깐해 다른 신하들의 기피대상이었고, 청백리로 유명한 정승 맹사성은 태조 이성계의 라이벌이었던 최영의 외손자였다. 최고의 과학자인 장영실은 귀화한 중국인과 기생 사이에서 난 자식이었으며, 북방개척의 선봉장으로서 정승의 반열에 오른 최윤덕은 어린 시절 천민의 손에서 자라 학문을 제대로 익히지 못했다. 세종대왕은 이렇게 다양한 출신 배경과 여러 가지 결함을 가진 인재들을 모아 단점들을 가다듬고 장점들이 충분히 발휘되도록 함으로써 국가를 경영한 지휘자였다.
 
그 중에서도 뇌물사건으로 사형을 받을 형편에 놓인 병조판서 조말생에 대한 세종의 태도는 그의 인재 활용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말생은 태종의 비서실장 격인 지신사를 지내고 태종과 사돈까지 맺은 당시 최고의 인재였다. 세종 즉위 후 8년 동안 병조판서 직에서 군정에 관한 업무를 총괄했으며, 명나라와의 외교관계에서도 노련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 조말생이 노비 24명을 부당하게 증여 받은 비리사건으로 탄핵을 받았다. 당시 노비 24명의 재산 가치는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뇌물 수량의 10배 가까이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사헌부에서는 조말생을 당장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했지만, 세종대왕은 직첩을 빼앗고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그 후 세종은 조말생을 함길도 관찰사에 제수하여 명나라와 여진족과의 사이에서 복잡한 정세를 헤쳐나가도록 했다. 조말생의 청렴성을 끈질기게 문제 삼은 사간원 관리들의 상소에 대해 세종대왕이 내린 답은 “그대들의 말을 참으로 아름답게 여긴다. 그러나 말생을 보낸 뒤에야 함길도 백성을 구제할 수 있기 때문에 윤허하지 않는다”였다.
 
청렴성이 능력에 앞서는 공직자로서의 제1조건인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세종대왕이 오늘날의 대통령이었다면 조말생 같은 사람을 공복으로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인재의 풀이 좁고, 개국 초기의 내외적인 어려움이 극심했던 당시의 상황은 오늘날과는 분명히 달랐다. 함길도의 문제를 중요하게 여겨 오랫동안 숙고하던 세종대왕은 조말생 외에 그 일을 맡길 만한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공을 세운 조말생은 그 후 기회를 틈타 과거의 죄가 모함에 의한 것이므로 사면해달라는 청을 했지만 세종대왕은 이를 묵살했다. 또 높은 명예직은 주었지만 끝내 정승의 반열에 오르게 하지는 않았다. 조말생이 저지른 죄를 믿지 않았거나 그를 편애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죄에도 불구하고 쓸 일이 있었기에 그를 기용했고, 그가 발휘한 능력과 공적에 대해서는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지만 그가 저지른 죄를 덮고 가릴 정도로 넘치게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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