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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리더십6

관용의 눈물이 진정 ‘불굴의 용기’다

김상근 | 65호 (2010년 9월 Issue 2)



편집자주 15∼17세기 약 300여 년간 이탈리아 피렌체 경제를 주름잡았던 메디치 가문은 르네상스의 탄생과 발전을 이끌어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를 연구해온 김상근 연세대 교수가 메디치 가문의 창조 경영 코드를 집중 분석합니다. 메디치 가문의 스토리는 창조 혁신을 추구하는 현대 경영자들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어느 재벌가의 초상 ()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손자 이재찬 씨가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의 가문에서 일어난 비극이라 모두에게 충격을 주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그 영광의 시간은 계속되고 있지만 휘황찬란한 리더 가문의 한 구석에는 고뇌와 절망의 시간을 홀로 버티던 외로운 영혼이 있었던 모양이다. 삼가 애도를 표한다.

한 조직이나 집단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인적인 희생을 감내해야 하기에 리더는 정말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성공한 CEO로서 승승장구한다 할지라도 그 이면에는 숨기고 싶은 아픈 희생이 있을 것이다. 성공 가도를 달리는 당신 때문에 아빠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당신의 사춘기 자녀가 지금 한숨을 몰아 쉴 수도 있고, 이사회 임원들과의 친교를 위해 주말마다 골프채를 잡을 때 당신의 아내는 고독과 함께 할 수도 있다.

직장 내 남성우월주의의 유리벽을 뚫겠다고 최초와 최연소의 타이틀을 차례로 거머쥐며 대기업에서 성공신화를 다시 쓰고 있는 여성 임원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자신은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물론 싱글이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연애나 결혼을 생각할 만큼 한가한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결혼이 행복과 동의어는 아니다. 하지만 그 여성 임원은 리더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의 일부분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리더는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땀과 눈물 없는 성공이 없듯이 개인적인 희생이 없는 리더도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한 리더는 내면의 세계를 성찰할 때 탄생하고, 자신이 리더가 됨으로써 초래되는 개인적 희생에 대한 냉정한 균형감각(Trade-off)을 가질 때 성장할 수 있다. 경영학의 리더십 이론은 자신의 개인적 장점을 경영 현장에서 최적화하는 방법을 주로 연구한다. 그러나 인문학적 성찰에 의하면, 리더는 우선 본인이 리더로서 감당해야 할 개인적 희생과 자신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리더는 많은 사람을 상대하는 공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사적 영역에서 개인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과다한 업무 상 스트레스 때문에 건강이 나빠질 수도 있고, 의무적인 폭탄주 때문에 당신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일 수 있으며, 늘상 시간의 압박에 쫓기기에 당신의 성격은 신경질적으로 변할 수 있다.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단행할 때 당신은 회사를 떠나는 부하 직원들의 처진 어깨와 그들을 맞이하는 가족들의 눈물을 지켜봐야 한다. 인간적으로 괴로운 일이다. 경영자에게는 커리어를 위협하는 중대한 위기가 1 년에 최소한 한 번은 찾아온다고 한다.1  이 불가피한 위기 앞에서 불면의 밤을 견디며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당신은 남들보다 더 튼튼한 강심장을 소유해야 한다.

그래서 리더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사적 영역의 손실을 감당하고 위기를 헤쳐나갈 용기가 없으면 아예 리더로 나서지 않는 게 좋다. 자신에게 초래될 희생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서 무리하게 리더의 자리에 오르면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한다. 당신의 가족을 외롭게 만들고, 당신의 직원들을 괴롭게 만들고, 당신의 고객들을 외면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고스란히 당신 몫으로 남는다. 즐겁지 않은 일을 하면서 웃어야 하고, 능력에 미치지 못하는 일을 맡아도 할 수 있는 척을 해야 한다. 한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고 많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따라서 리더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

피에로 데 메디치(1416∼1469)는 위대한 아버지의 큰 그림자 밑에서 태어난 메디치 가문의 후계자였다. 이탈리아의 국부(國父)로 불리며 피렌체 시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코시모 데 메디치의 맏아들이다. 피에로는 슬픈 표정으로 기억될 만한 인물이다. 너무 위대한 아버지(코시모)를 두었고, 아버지의 명성에 버금가는 아들(위대한 자 로렌초)을 두었기 때문에 완전한 샌드위치 세대의 리더에 불과했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를 다룰 때 피에로는 국부 코시모와 위대한 자 로렌초를 연결하는 혈통의 연결고리로만 소개한다. 아버지 코시모의 임종(1464) 후 약 5년 정도 밖에 더 살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이 가진 리더십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치 않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가 늘 병약(病弱)했고, 거의 모든 시간을 침대에 누워 환자처럼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메디치 가문의 고질병이었던 통풍(痛風)병에 걸린 중증환자였다.



피에로가 흘린 눈물
가수 김완선의피에로(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란 추억의 노래를 기억하시는지. 경쾌한 그 노래 가사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난, 항상 웃음 간직한 피에로. 파란 웃음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눈물.” 바로 코시모의 뒤를 이어 가문과 피렌체의 리더 자리에 올랐던 피에로의 마음일 것이다. 그는 아버지를 잘 둔 덕분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리더의 자리에 올랐다. 피렌체를 쥐락펴락하던 명문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거대한 재산과 기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 코시모는 언제나 붉은 색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피에로도 그런 빨간 모자를 눌러 쓴 위치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메디치 가문과 피렌체를 이끌어갈 만한 충분한 카리스마의 리더십을 가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침대에 누워서 모든 일을 처리해야 할 만큼 그의 몸은 날로 쇠약해져 갔다. 그는 침대에서 빨간 모자를 눌러쓴 채 누워있어야만 하는 불쌍한 피에로였다. 그렇다면 그는 시대가 요구했던 리더십을 어떻게 수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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