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과거는 경영자들에게 큰 통찰을 줍니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인류의 과거 행동양식을 분석해 직관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용성 휴잇어소시엇츠 상무가 비즈니스에 응용할 수 있는 선조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우리는 TV를 통해 대조적인 삶의 모습을 본다. 얼마 전 ‘아마존의 눈물’ 다큐멘터리가 20%에 가까운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원시림이 보존된 아마존 풍광도 볼거리였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시선을 끌었다. 특히, 조에족의 행복한 모습은 이기심과 계급화가 자리잡기 전 원시공동체의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반면 지극히 인공적인 삶을 사는 모습도 TV에서 볼 수 있다. 가상 신혼부부의 일상을 관찰하는 설정의 ‘우리 결혼했어요’를 보고 있노라면, 출연자가 느끼는 애틋한 감정도 연출인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현대인의 건조한 일상은 감정을 자극하는 대중매체의 프로그램으로 채워지고 있다.
하지만 인공적이든 원초적이든 TV는 인간의 감성을 적극 활용해 소비자(시청자)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반면 비즈니스 세계는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냉철한 이성이 활성화된 비즈니스 세계에서 감성이란 움직임을 예측하기 어려운 ‘코끼리’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최근 감성에 대한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며 성과를 높이는 조직들이 발견되고 있다. 과연 이들이 인간의 감성을 어떻게 재발견하고 활용하는지 알아보자.
이성적 사회에서 질식하는 감성
주변의 자연도 통제할 능력이 없었던 과거에 인류는 거대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영매(靈媒)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영매들은 트랜스(Trance) 상태에서 자연의 신비와 지혜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동시에 원시공동체는 나이 든 장로에게서 과거로부터 축적한 지식과 지혜를 구했다. 장로의 축적된 지혜와 영매의 감수성은 이성과 감성의 균형잡인 사용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지식과 기술로 자연을 통제하기 시작하자, 영매들의 예언은 농업기술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감수성보다는 합리성, 창의성보다는 분석력이 주도적인 사고력으로 인정받게 됐다. 이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영매들은 호기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일부는 예술 활동을 전업으로 삼기도 했는데, 이들은 대체로 ‘2류 시민’의 위상을 벗어날 수 없었다.
서구사회에 계몽주의와 산업화가 자리잡으면서, 감성은 이성을 보조하는 보조적 역할 또는 이성을 방해하는 동물적 특성 정도로 취급받았다. 산업화가 한창인 19세기에 인류는 생산성 향상을 위한 무한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과학적 관리기법의 도입으로 자본사회는 극단적인 생산성 경쟁으로 직원들을 내몰았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는 20세기 초 인간에 대한 자본사회의 시선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비즈니스의 시각은 1930년대에 뜻밖의 발견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당시 통신제조업체인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은 호손 공장에서 조명과 생산성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엘튼 메이요에게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당시 메이요 연구팀은 조명을 밝게 하면 생산성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따라서 웨스턴 일렉트릭의 용역을 받은 연구팀은 당연히 조명을 낮추면 생산성이 낮아지리라 가정했다. 하지만 조명이 어두워져도 생산성은 증가했다. 의아하게 여긴 연구자들이 조명을 다양하게 변화시켰는데, 생산성은 예상과 달리 변화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이랬다. 연구팀이 지목한 생산조 직원들은 연구팀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리더를 중심으로 단합하자 주변환경에 구애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생산성을 높인 것이었다. 생산조 직원들이 연구과정에서 긍정적 자극을 받은 것도 한몫 했다. ‘호손 효과(Hawthorne Effect)’로 알려진 이 연구결과로 노동자는 기계 부품이 아니라 감정과 의지를 지닌 인격체라는 사실을 재발견하게 됐다. 또 인간의 감성적 측면과 생산성의 상관 관계가 높기 때문에 현장 실무자의 감성 논리와 관리자의 비용 및 효율 논리가 충돌하면 문제의 불씨를 낳을 수도 있다고 예상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렇게 발견한 인간의 가치는 1940년대 전쟁의 포화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피터 드러커는 정보화 사회와 지식노동자의 삶을 예견하면서 사람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부가가치는 정보의 가공과 생산과정에서 발생할 것이며, 지식노동자는 육체노동자와 달리 생산의 주체성을 인정받을 것이라는 그의 통찰은 지금 돌아봐도 경이로울 뿐이다. 드러커의 주장대로 지식노동자의 업무는 결국 두뇌 속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지식노동자는 스스로 자기관리를 통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지식노동의 부상으로 인간의 전인격적인 재조명이 시작됐고, 감성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이는 지식노동자의 생산성이 감정 상태에 따라 크게 차이 나기 때문이었다.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을 간신히 해낼 때 생산성은 크게 달라진다. 지식노동의 생산성이 열정에 비례한다고 깨닫자, 비즈니스 세계는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간의 감성에 호기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감성 활용
피터 드러커가 1960년대에 지식노동의 특성에 대해 논했지만, 지식노동자의 가치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1990년대 이르러서야 비로소 시작됐다.
대니얼 골먼은 1995년 자신의 저서를 통해 감성을 다루는 능력이 지능의 일부며,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이 리더십의 중요한 항목이라고 주장했다. 감성을 이성의 보완적 장치 정도로 여기던 서구의 전통적 사고에서 볼 때, 감성도 지능이라는 개념은 신선하고 파격적이었다.
그는 감성지능을 감성상태를 파악, 조절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특히 리더십의 본질에 감성지능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대니얼 골먼의 감성지능 개념은,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을 위해 고민하던 비즈니스 세계에 희망을 제공하는 빛으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 비즈니스 세계는 지식노동자의 생산성이 리더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리더의 감성지능 개발에 열을 올렸다.
2000년대에 들어 지식노동자의 생산성 향상을 가능케 할 또 하나의 개념이 도입된다. 긍정심리학 계열의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교수가 행복추구의 방법으로 몰입(Flow)이라는 개념을 소개했다. 물질의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 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결국 경제적 약자는 행복해질 수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된 이 개념은 뜻밖에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환영받았다. 칙센트 미하이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몰두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도 잊는다는 사실에 관심을 뒀다. 동양에서는 이미 수천 년 전부터 ‘물아일체’라고 알려진 바로 그 심리상태다.
그는 서양의 과학자답게 다수의 실험대상자를 상대로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심리적 에너지를 쏟아 붓는 사람은 시공간적 감각을 상실하고 행복감을 느낀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언뜻 생각하면 이익 추구를 본질로 삼는 비즈니스 세계가 개인의 정신적 행복추구 방법론을 환영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칫하면, 노동자들이 안빈낙도의 삶을 추구함으로써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비즈니스 세계는 몰입이 가져오는 부수적 효과(side effect)인 역량 향상에 주목하고 몰입 개념을 적극 수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