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매년 수학능력시험 일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진기한 광경들이 펼쳐진다. 각 기업의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비행기가 제시간에 뜨고 내리지 못하며, 주식시장도 늦게 열린다. 외국인 눈에는 기이해 보이지만 한국인은 누구라도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다. 수능이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차지하는지 모든 한국인이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대부분 학생들은 공부를 힘든 과업으로 여긴다. 특히 수학에 치를 떠는 학생이 수없이 많다. 수리 영역이 당락을 가르지만, 학생들이 없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과목도 수학이다. 이 어려운 수학 강의에서 뛰어난 실력으로 학생들을 사로잡은 스타 강사가 있다. ‘삽자루’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스타 강사 우형철(46세·비타에듀) 씨다. 그는 학생들에게 ‘개그콘서트보다 더 웃긴 강사’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의 구세주’로 불린다. 대학 졸업 후 20년 동안 수학 강의를 해온 그는 소위 ‘땡땡이’를 치거나 숙제를 제대로 해오지 않은 학생에게 삽자루를 휘둘러 유명해졌다.
비타에듀의 스타 인터넷 강사인 그는 2009년 강좌 매출로만 75억 원, 교재 매출로만 15억 원이 넘는 수입을 올렸다. 어떻게 동기부여를 했기에 이처럼 큰 매출을 올렸을까. 수학 공부를 지독히 싫어하는 대다수 학생들의 공부 열의를 북돋운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 그가 경기도 이천에 세운 ‘삽자루 기숙학교’를 찾았다.
수업 중 비속어나 10대들의 말투를 많이 쓰는 걸로 유명하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무작정 강요한다고 아이들이 공부를 하는 건 아닙니다. 학생은 저의 고객이고 저를 그들에게 팔려면 일단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어떤 사람인지, 이들과 소통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저는 강의와 교재 연구 시간만으로도 1분 1초가 모자라고, TV도 잘 안 보는 사람이지만 <개그콘서트>는 꼭 챙겨보고 매일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에 접속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고3 아닙니까. 그 학생들도 개그콘서트를 보는데 제가 바빠서 못 본다면 그야말로 핑계죠. 일단 학생들과 대화가 돼야 그들을 물가로 이끌던지, 마구간으로 이끌던지 할 거 아닙니까.
소위 디씨인사이드식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말투를 모르면 제 강의에 대해 학생들이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지, 강의 내용 중 불만이 무엇인지, 다른 강사들은 어떤 평가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어제 한 강의는 별로였지만 오늘은 괜찮았다 치죠. 학생들이 “선생님. 어제는 이런 점이 별로였지만, 오늘 강의는 아주 좋았습니다”라는 댓글을 적어놓을 줄 아십니까. 천만에요. “너님하. 어제 강의는 삽듣보(삽자루+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것)였는데 오늘 강의는 삽느님(삽자루+하느님)이네. 님 좀 짱인 듯. 우왕ㅋ굳ㅋ” 이렇게 써놓습니다. 디씨체 글쓰기는 어른들의 호불호를 떠나 이미 시대 흐름이고, 10대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 문화를 저급하다고만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죠. 만약 나무라고 싶다면 일단 이해부터 한 뒤에 나무라야지, 이해하지도 않으면서 나무라기만 한다면 영원히 아이들과 소통할 수 없습니다.
5년 전 한 라디오 방송에 나가 ‘안습’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요즘은 안습이라는 단어를 어른들도 많이 알지만 당시에는 학생들 중에서도 반은 알고 반은 몰랐어요. 방송이 나가자 학생들 반응이 폭발적이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학생들이 ‘삽자루가 소위 꼰대인 줄 알았더니 우리가 쓰는 최신 단어도 아네. 우리랑 좀 통하겠네’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누구인지를 이해해야, 학생들로부터 신뢰와 동질감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그 이후에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조언해야 말이 먹히죠. 그저 ‘공부해라. 그래야 좋은 대학 가고 인생 핀다’고 말하면 어떤 학생이 제 말을 듣겠습니까.
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단기적으로 애들 관심을 끌려고 일부러 욕을 많이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전혀 아닙니다. 70분짜리 강의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도 70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보기 힘든데 70분 동안 재미없는 수학 강의를 들으려면 얼마나 지겹겠습니까.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70분 내내 이를 유지시키려면 재미와 반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제 신조는 학생들의 돈은 뺏어도 시간은 뺏지 말자는 겁니다. 1분 1초가 급한 학생들에게 쓸데없는 내용을 가르치거나 점수 향상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건 죄죠. 시간을 뺏지 않으려면 강의 시간 중에 학생들의 몰입도를 최대한 끌어올려야 하고, 강의가 끝나도 수학 공부를 하고 싶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재미만 추구하면 아이들이 하루 이틀은 좋아할지 몰라도 결국 강의를 안 듣습니다.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성적 향상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면서도 그들을 재미있게 해주려면 반전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프라인 강의 때 항상 틀린 답을 말하는 학생을 미리 점찍어놓고 일부러 수업 중에 그 학생에게 답을 물어봅니다. 그 학생이 틀린 답을 내놓으면 ‘그거 아닌데’라고 하지 않고 ‘아주 지랄을 하세요’라고 합니다. 이게 반전입니다. 이 짧은 시간의 웃음이 집중력이 떨어진 아이들을 다시 집중하게 만들어줍니다. 70분 동안 학생들을 웃고 울리고 감동시키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까지 들게 하려면 수많은 경험, 치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드라마 작가, 감독, 스태프, 배우 역할까지 다 제가 해야 한다는 뜻이죠.
중요한 건 체벌이나 욕이 아니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겁니다. 일단 학생들에게 ‘저 사람은 그래도 된다’는 인정을 받는 게 중요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애착이 있고, 자신들을 위해 제가 고생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좋은 수업 내용만으로는 100% 동기부여를 하기 힘듭니다. 학생들의 절박함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삶의 목표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더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기성 세대가 10대들을 이해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 서울대를 졸업하셨는데 처음 강사 일을 시작할 때 공부 못 하는 학생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안 됐습니다. 어떻게 이런 걸 모를 수가 있나 한심하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그런데 공부 못 하는 아이들을 많이 가르쳐보니 애들 성적이 안 오르는 게 애들 잘못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잘못이더군요. 초창기 강사 시절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대부분 학교와 집에서 모두 내놓은 문제아들이었습니다. 이런 학생에게 동기부여는 사치입니다. 그냥 좋은 말을 해서는 절대로 공부 안 합니다. 그래서 전 아이들을 때렸습니다. 닿는 면적이 넓어서 별로 아프지는 않지만, 엄청난 소리가 나기 때문에 맞는 사람이나 지켜보는 친구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 데 최고인 삽자루를 썼죠. 채찍을 쓴 겁니다. 채찍을 쓰니 일단 학생을 책상 앞에 앉힐 수 있었고, 꼴찌도 쉽게 탈피했죠.
하지만 어느 순간 채찍에 한계가 옵니다. 이때 당근이 필요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이 닌텐도와 아이팟에 열광하듯 당시 청소년들에게는 게스 청바지가 최고 히트 아이템이었습니다. 시험 잘 보면 게스 청바지를 사준다니까 수학의 ‘수’자도 모르는 학생들이 미친 듯이 수학 공부에 매달리더군요. 당근의 효과가 나타난 거죠. 요즘에는 오프라인 강의를 할 때 개강 때부터 종강 때까지 하루도 결석을 안 하고 숙제도 안 빼먹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다리타기를 해서 3명에게 노트북을 사줍니다. 옆 자리 친구가 노트북을 받는 걸 보면 학생들의 눈에 불이 나죠.
그런데 당근으로도 부족한 시점이 또 옵니다. 당근만 가지고선 스스로 공부에 재미를 느끼고, 옆에서 누가 뜯어말려도 본인이 좋아서 공부를 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기는 힘들거든요. 이때 필요한 게 비전입니다. “너 나한테 올 때 대학 가기도 힘든 수리영역 7등급이었지? 다 수포자라고 놀렸지만 벌써 3등급까지 왔잖아. 이제 한두 등급 높이는 건 일도 아냐. 누가 뭐래도 너는 명문대를 갈 수 있어”라는 식으로 비전을 제시해야죠. 꼴찌에게 처음부터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는 식으로 동기를 부여할 수는 없습니다. 채찍과 당근으로 먼저 능력을 만들어준 다음 비전을 갖게 해줘야 합니다. 언제, 어떤 단계에서 채찍, 당근, 비전을 내밀어야 효과가 최고인지 아는 방법은 여러 등급 아이들을 골고루 가르치면서 각 수준에 맞는 교육 방법을 체득하는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