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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을 부르는 10가지 판단의 덫

민재형 | 46호 (2009년 12월 Issue 1)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마지막 구절이다.
 
우리 모두는 매일 어떠한 사안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경험한다. 개인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국가 중대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제한된 시간 내에 어떠한 대안을 선택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을 겪는다.
 
올바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의사결정의 행태적 접근 방식(behavioral approach)과 체계적 접근 방식(systematic approach)이 통합돼야 한다. 즉, 의사결정은 기술(art)과 과학(science)의 합성체로 인식돼야 한다. 의사결정을 기술과 과학의 합성체로 볼 때 이 2가지는 상호보완 관계에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친다면 절름발이 의사결정이 될 수밖에 없다.

 

 
2가지 접근 방식
의사결정(decision making)이란 단순히 어떠한 행동을 하겠다는 정신적인 의지에 그치지 않는다. 이러한 의지에 따라 자원을 실제로 배분하는 행동지향적인 사고(actional thought)를 뜻한다. 의사결정은 자원 배분을 실제로 수반하기 때문에 의사결정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이전 상황으로 되돌려놓는다고 해도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의사결정의 접근 방식은 크게 기술적인 접근 방식(descriptive approach)과 규범적인 접근 방식(normative approach)으로 나눌 수 있다. 기술적인 접근 방식이란 ‘현실에서 인간은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룬다.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 인지심리학(cognitive psychology), 행동경제학(beha-vioral economics) 등의 분야가 이러한 접근 방식을 연구한다.
 
반면 규범적인 의사결정이란 ‘의사결정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를 다루며,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과학적 의사결정을 위한 제반 학문 분야, 예를 들어 경영과학(management science), 의사결정이론(decision theory) 등이 이런 접근을 위한 것이다.
 
인간은 완전한 이성과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기보다는 제한된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을 가진 존재다. 인간의 행동은 부분적으로만 합리적이고, 다른 행동에 있어서는 감성적이고 비이성적인 면이 있다. 따라서 인간은 규범적 의사결정이 추구하는 최적해(optimal solution)보다는 인간이 가진 인지적 한계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만족해(satisficing solution)1)에서 해(解)의 탐색을 마치게 된다. 즉, 인간은 인지적 한계, 가용한 정보의 질과 양의 한계, 시간과 비용의 한계 등으로 인해 완전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다.
 
인간은 2가지 사고 시스템을 갖고 있다. 하나는 직관적이며(intuitive) 자연반사적인(auto-matic) 사고 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사려 깊고(reflective) 이성적인(rational) 사고 시스템이다.2) 전자는 생각(thinking)보다 반사적인 행동을 순간적으로 유도하고, 후자는 생각을 동반하는 행동을 천천히 유도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모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은 직관적인 사고 체계를 이용하는 것이고, 외국어를 느리게 구사하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 체계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직관적 사고 체계는 훈련과 반복을 통하여 체화될 수 있고, 후자는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향상될 수 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완전한 정보처리 능력으로 인해 의사결정을 위해 처리해야 할 정보량이 방대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필요로 할 때 이른바 휴리스틱(heuristics)이라는 판단의 지름길을 택하게 된다. 휴리스틱이란 인간의 직관적 사고 체계에서 사용하는 판단 방법으로 인간의 일상생활에서부터 조직의 중요한 의사결정 문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휴리스틱은 복잡한 문제 상황을 단순화시켜 인간의 정신적 부담을 줄여주고, 제한된 시간 안에 신속한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적 장점이 있는 반면, 인간의 판단을 잘못으로 이끌게 하는 많은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휴리스틱의 잘못된 사용으로 여러 가지 판단의 오류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휴리스틱과 판단 착오
휴리스틱이란 신속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해주고 때론 놀랄 만큼 정확한 판단으로 이끄는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잘못 쓰면 체계적이며 예측가능한 판단 착오(systematic and predictable biases)의 원인이 된다. 휴리스틱과 판단 착오의 몇 가지 예를 살펴보자.
 
1)대표성(representativeness)
인간의 마음속에는 어떤 집단을 특징지려는 고정관념(stereotype)이 있다. 대표성이란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어떤 집단의 이미지나 고정 관념이 집단 전체를 대표하는 전형적 특징이라고 보고, 어떤 사물이 특정 집단에 속할 가능성을 판단할 때 사용되는 휴리스틱이다. 즉, 어떤 사물이 갖고 있는 정보를 그 집단의 전형적 특징과 비교하고 얼마나 유사한지를 평가한다. 둘 사이에 유사성이 많다고 인식하면 어떤 사물이 그 집단에 속할 가능성을 높게 판단한다. 관련성이 없거나 불충분한 정보가 주어졌을 때에도 이에 비중을 두고 판단하여 사전 확률(base rate, prior probability)을 무시하는 오류를 저지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영업과장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할 때, 경력이나 능력으로 보면 당연히 A라는 여성 대리가 그 자리로 가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여성이 그 직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보일 때가 있다. 즉, 그들의 머릿속에는 여성이 해야 하는 일과 영업과장의 직무가 서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은 영업과장이라는 자리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선입견과는 달리 그 여성 대리는 누구보다도 영업과장이라는 직책을 잘 수행할 수도 있다. 이처럼 대표성 휴리스틱은 우리 사회에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는데, 지역, 남녀, 학력에 대한 차별 등이 대표성 휴리스틱으로 인해 발생한 폐해다.
 
전문가조차도 대표성 휴리스틱의 함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와인 전문가들에게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을 시음하고, 각각의 맛에 대해 기술하도록 했다. 이들은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에 대해 흔히 알려져 있는 전형적 특징을 써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전문가들이 시음한 레드와인은 화이트와인에 무색무취한 붉은 색소를 탄, 사실은 무늬만 레드와인인 화이트 와인이었다는 점이다. 전문가조차 붉은 색깔이 갖는 이미지에 현혹돼 화이트와인의 특징을 기술하기보다는 레드와인의 전형적 특징을 써내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2)회상 용이성(availability)
회상 용이성이란 인간이 기억으로부터 쉽고, 신속하고, 생생하게 회상할 수 있는 정보에 보다 큰 비중을 두고 판단하는 휴리스틱이다. 이는 때때로 정확한 판단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가장 가용한 정보가 가장 관련성 있는 정보라는 편견을 심어줘 특정 사건이 일어날 빈도(또는 확률)에 대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비자들은 광고에서 자주 접했거나 최근 접한 제품을 사는 경향이 있다. 제품의 기능이 다른 제품보다 떨어지는데도 기억의 생생함 때문에 구매하게 된다. 언론매체를 통해 자주 접하는 흉악 범죄나 특정 질병의 사망 빈도수는 과대평가되는 반면, 덜 기사화되는 사건의 발생 확률은 과소평가된다. 언론매체를 통해 차별적으로 전달되는 정보가 대중의 지각에 영향을 미치고, 판단 착오를 일으킬 수 있다.
 
회상 용이성 휴리스틱의 함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판단을 위한 정보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 해당 문제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이를 종합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 머릿속에서 가장 처음 떠오르는 정보가 잘못된 판단을 유도할 수 있는 정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결정을 확인시켜줄 수 있는 과거의 유사한 사건만을 무의식적으로 회상하곤 하는데, 이렇게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들은 모든 반박 논리를 잠재운다. 이런 생각들은 일반적으로 최근에 접한 정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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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재형jaemin@sogang.ac.kr

    - (현)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
    - 영국 캠브리지대(The British Chevening Scholar) 객원 교수 역임
    - 미국 스탠퍼드대 객원 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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