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단(周公旦)은 주(周)나라를 세운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은을 멸망시킨 무왕(武王)의 동생으로, 강태공과 더불어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이다. 그는 어린 조카인 성왕(成王)을 대신해 섭정을 했지만 재위를 찬탈하지 않고 성왕을 잘 보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무엇보다 현인에 대해 자신을 낮추고 예를 다하는 겸손함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은나라에 복속돼 있던 주나라가 점차 세력이 커져 은나라를 위협하게 된 것은 서백(西伯)이 된 희창(후에 문왕이 됨)의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정치와 병법 양면에서 수완을 발휘한 전설적인 인물 강태공도 바로 문왕의 군사(軍師)였다. 문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무왕은 즉위 11년 만에 동생인 주공 단, 강태공 등과 함께 은나라를 멸망시키지만(BC 1046년) 체제를 정비하지 못하고 곧 세상을 떠난다.
무왕의 뒤를 이어 어린 성왕이 즉위하자, 무왕의 동생인 주공 단이 섭정을 하게 된다. 주공 단은 세 동생이 은나라의 잔당과 손을 잡고 일으킨 대규모 반란을 진압함은 물론 봉건제를 실시해 주나라 왕실의 수비를 공고히 하고 예악과 법도를 제정해 700년 주왕조의 기초를 확립했다.
주공 단은 자신의 소임을 다하자 7년 후에 모든 권력을 성왕에게 깨끗하게 돌려준다. 주공 단과 성왕의 관계는 조선시대 단종과 세조의 관계와 유사하지만 권력에 대한 두 삼촌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주공 단은 왕위에 오르라는 주위의 권유를 물리치고 조카에게 권력을 이양했다. 공자는 이런 주공 단을 젊은 시절 자신의 이상형으로 추앙했고 유교의 성인으로 존숭했다.
주공 단은 국가를 경영할 때 현인을 모시는 것에 온 정성을 기울였으며 높은 예로써 선비를 맞았다. 제후 중에서도 으뜸인 자리에 있는 그였지만 인재를 위해서라면 자세를 낮추고 겸손했다.
‘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일목삼악발, 일반삼토포).’ 아들 백금을 노나라 봉지로 떠나보내면서 인재를 얻는 지혜를 강조하여 주공 단이 한 말이다. ‘한번 목욕할 때 세 번 머리를 거머쥐었고, 한 번 밥을 먹을 때 세 번 음식을 뱉어냈다’는 뜻이다. 그는 식사 중에 손님이 찾아오면 먹고 있던 음식을 다 먹고 난 후 만난 것이 아니라 입에 든 것을 뱉어내고 얼른 뛰어나갔다. 목욕할 때 누가 찾아오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거머쥔 채 반갑게 맞이했다. 인재를 아끼는 주공 단의 태도가 이러했기에 당대 천하의 인재들이 그에게로 모여들었다. 몸을 낮추는 자만이 능히 남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공자는 “가난하면서도 원망이 없기는 어렵고, 부유하면서 교만이 없기는 어렵다”고 했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CEO가 겸손해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위기와 고난을 몸소 극복했던 그의 성공 체험은 더더욱 자신을 오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교만한 CEO는 인재가 찾아오기는커녕 있던 인재도 달아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