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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정의 대명사 주 임금의 ‘남 탓’

김영수 | 32호 (2009년 5월 Issue 1)
‘사기’에는 실패한 리더의 대명사로 이른바 ‘걸주(桀紂)’로 알려진 폭군들이 기록돼 있다. ‘걸’은 중국사 최초의 왕조로 기록돼 있는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으로, 백성들을 힘으로 억압하다 탕(湯) 임금에게 추방돼 죽은 폭군이다. ‘주’는 은(殷) 또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이다. 두 사람은 각각 한 왕조의 제왕으로서 지고무상한 권력을 누렸지만, 그 권력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백성을 괴롭히는 도구로만 사용해 결국 나라를 망쳤다. 특히 주 임금의 사례는 리더십의 변질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리더로서의 자질이 뛰어났던 주 임금
주 임금은 ‘폭정’의 대명사다. 백성들에게 지나친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금을 온갖 사치스러운 생활로 낭비했다. 이른바 ‘주지육림(酒池肉林)’은 바로 그의 방탕한 생활을 대변하는 성어다. 또 자신에 대해 비판하거나 등을 돌리는 백성과 제후들을 탄압하기 위해 불에 달군 쇠기둥 위를 걷게 하는 ‘포락(烙)’이라는 잔혹한 형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구후의 딸인 아내가 음탕한 짓을 싫어하자 화가 나서 그녀를 죽이고, 구후도 죽인 다음 그 시체로 포를 떠서 소금에 절일 정도였다.
 
그런데 ‘사기’의 기록(권3 ‘은본기’)에 따르면, 주 임금의 자질은 누구 못지않게 뛰어났다.
 
“주 임금은 타고난 바탕이 총명하고 말재주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일처리가 신속하며 힘이 남달라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정도였다. 또한 지혜는 신하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였고, 말재주는 자신의 허물을 교묘하게 감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신하들에게 과시해 천하에 그 명성을 높이려 했으며,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만 못하다고 여겼다.”
 
주 임금의 자질은 사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더의 능력과 닮은 점이 많다. 총명하고, 일 잘하고, 사소한 실수 정도는 지식과 말로 얼마든지 감출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주위에 알리는 데 능숙한 리더…. 전형적인 한국형 리더의 모습 아닌가? 리더의 이 같은 자질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자질을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위해 발휘해나갈 것인가에 있다.
 
리더십 변질의 원인
①팔로어십을 인정하지 않았다
팔로어십(followership)은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리더십은 팔로어십을 잘 이끌어내야 하며, 팔로어십은 그런 리더십을 사심 없이 따라야 한다. 이때 팔로어에게 요구되는 것은 리더가 나쁜 쪽으로 가려 할 때 솔직하게 충고할 줄 아는 자세다. 물론 리더는 이 충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리더십과 팔로어십의 조화다.
 
그런데 주 임금의 리더십을 들여다보면 팔로어십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팔로어십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잠재돼 있다. ‘사기’의 “지혜는 신하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였고, 말재주는 자신의 허물을 교묘하게 감출 수 있을 정도였다”는 부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또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과시욕과 명성에의 집착,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시 등도 언제든지 리더십을 망칠 수 있는 위험한 요소들이다.
 
②자기 절제력이 부족했다
사마천은 주 임금의 자질을 소개한 다음 “술과 여자를 지나치게 좋아했으며, 특히 여자를 좋아했다”고 기록했다. 축첩이 허용되던 시대에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리더십의 성패에 결정적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한 주 임금의 자질에 술과 여자가 더해짐으로써 그의 리더십이 변질되고 실패할 확률은 더욱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주 임금의 친척이었던 기자(箕子)가 주 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주의 멸망을 예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자는 주 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했으니 다음에는 옥으로 만든 술잔을 사용할 테고, 그 다음에는 산해진미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데 신경을 쓰면서 호화 사치에 빠지면 부패하고 나태해져 결국 멸망에 이를 것이라는 예언이다(여기서 ‘사소한 것을 보고 드러날 것을 알았다’는 뜻의 유명한 고사성어 ‘견미지저[見微知著]’가 나왔다).
 
③자기 잘못을 인정할 줄 몰랐다
주 임금은 남의 충고가 필요 없을 정도로 총명했다. 사소한 잘못은 얼마든지 말재주로 변명할 수 있었다. 적절한 자기 절제와 수양의 능력만 있었다면 그는 대단히 뛰어난 리더로 남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처절하게 실패했을 뿐 아니라 나라를 망국(亡國)으로 이끌었다.
 
여기에 자기 말이라면 개처럼 따르는 측근, 즉 간신들까지 요직에 임명함으로써 그의 패망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이 과정에서 주 임금의 잘못에 대해 직언하고 충고하는 충직한 인재들이 많이 탄압받았다.

한 예로, 드러나지 않게 덕행을 베풀면서 인심을 얻어가던 주 문왕이 여러 제후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 한숨을 쉬자 간신 숭후호가 이를 고자질했다. 그러자 주 임금은 문왕을 유리성이라는 곳에 감금했다. 문왕은 미녀와 보물 등을 바쳐 간신히 풀려난 다음, 서쪽 땅을 바치며 잔혹한 포락형의 폐지를 건의해 제후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러나 주 임금은 미녀와 재물에 혹해 문왕의 능력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주 임금은 강력한 경쟁 상대인 문왕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다. 오히려 아부에 능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만 급급했던 비중(費中)과, 남을 비방하고 은 왕실과 제후들을 이간질하던 오래(惡來)라는 간신들을 측근으로 중용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결국 주 임금은 제후들과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문왕과 그의 아들 무왕의 공격을 받아 패배한다. 그런데도 주 임금은 죽는 순간까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을 무너뜨린 문왕을 진작 죽이지 못한 게 한이라며 자살로 삶을 마쳤다.
 
주 임금처럼 죽어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은 잘못을 지적받으면 자신의 행위가 타당했는지 되돌아보지 않고, 모든 잘못을 환경 탓으로 돌리며 온갖 변명거리를 찾아 자신을 변호한다. 반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환경을 탓하기보다는 자신에게서 잘못의 원인을 찾으며, 변명거리를 찾는 대신 실제 행동으로 잘못을 고치려는 리더는 성공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
 
실패한 리더십은 성공을 위한 쓰디쓴 처방약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지나간 역사의 약방에서 처방전을 받아 병을 예방해야지, 지금의 약방에서 처방전을 받으려 할 때는 이미 실패한 다음이다. 그런데도 굳이 꾸역꾸역 실패의 길로 가는 리더들이 너무 많다. 주 임금 못지않게 총명한 자질을 갖춘 수준급 리더들이 말이다. 백성들이 그 처방전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힘이 든다. 역사가 때로는 비명을 지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필자는 고대 한·중 관계사를 전공하고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년 동안 사마천의 ‘사기’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으며, 2002년 외국인 최초로 중국 사마천학회의 정식 회원이 됐다. 저서로 <난세에 답하다> <사기의 인간경영법> <역사의 등불 사마천, 피로 쓴 사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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