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최고 감동적인 순간으로 여자 핸드볼 경기를 꼽는다. 아시아 예선전에서도 천신만고 끝에 올라갔다. 준결승전에서는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결승행 티켓을 놓쳤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헝가리와의 동메달 결정전. 임영철 감독은 종료 1분을 남겨두고 작전 타임을 요청했다. 33대 28로 승패가 결정된 상황이었기에 모두가 의아해했다.
임 감독이 비장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 1분은 언니
들의 몫이다. 홍정호, 오성옥, 오영란… 너희들이 경기를 마무리해라.” 그는 다시는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는 노장 선수들을 출전시키기 위해 매너가 아닌 줄 알면서도 작전 타임을 썼다.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는 ‘언니들의 졸업식’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경기를 지켜보던 사람들도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라고 했다.
과거 임영철 감독은 혹독한 훈련과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으로 종종 용장(勇將)이나 맹장(猛將)이라 불렸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훈훈한 지도자’를 뜻하는 ‘훈장’이라는 수식어를 새로 달았다. 선수들을 훈련시킬 때는 호랑이처럼 무섭다. 하지만 해외 원정 때 음식 문제로 고생하는 선수들을 위해 직접 김치찌개를 끓이고, 10년 넘게 고락을 같이한 노장 선수들을 위해 생애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는 따뜻한 감독이 바로 그다. 임영철 감독은 “선수들에 대한 끝없는 신뢰가 없으면 지도력을 발휘할 수 없다”며 “선수들의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그 자체”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도자라면 믿고 기다려야
올림픽이 끝난 지 8개월이 넘었습니다만, 아직도 헝가리전의 감동적인 멘트를 언급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미리 준비하신 내용인가요
솔직히 며칠 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은퇴하는 선수들에게 무엇이든 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줄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우리 선수들, 정말 고생 많이 했습니다. 얼마나 힘든 훈련을 겪어왔는지 아마 상상도 못하실 겁니다.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라도 표현해야겠다 싶어 멘트를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저도 제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어요. 우리가 1, 2점 차로 박빙의 우위를 보이고 있거나 만에 하나 지고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자문해봤습니다. 많이 지고 있는 경기였다면 설사 제가 들어가라고 했어도 고참 선수들이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지는 경기에서 끝내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다행히 많이 이기고 있어 그런 걱정을 덜었습니다.
일단 선수를 발탁하면 강한 신뢰를 보이는 걸로 유명합니다. 유난히 신뢰를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는지요
제가 1983년부터 코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국내 경기에서 저희 팀에게 7m 드로 기회가 왔습니다. 감독님은 A 선수가 던지기를 원했지만, 제가 강력히 추천해 B 선수가 던졌죠. 그런데 골이 안 들어갔습니다. 조금 있다가 7m 드로 기회가 또 생겼습니다. 역시 제가 강력히 주장해 B 선수가 던졌는데 또 안 들어갔어요.(웃음) 그 선수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남자 핸드볼 팀이 금메달을 따는 데 큰 공을 세운 김재환 선수입니다.
당시 김 선수는 그다지 유명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그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어쩌다 한번 준 기회를 완벽하게 살리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고작 한두 번의 기회만 준 후, 그때 선수들이 못한다고 해서 다시는 기용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발탁한 선수를 믿는다면, 그 선수가 잠재력을 발휘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도 지도자의 임무입니다.
주전에 연연하지 않는다
지도자로서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01년 유럽에서 감독 생활을 하며 유럽의 선진 핸드볼을 가까이에서 접하게 됐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후, 몬테네그로의 부두치노스트 클럽에서 코치 제의가 들어왔죠. 그때 유럽 핸드볼의 실상과 훈련 방법들을 익히고 많은 참고 자료들을 갖고 와서 지금도 큰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사실 옛 유고 연방의 현실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몬테네그로에 갔는데, 가보니 정말 험악하더군요. 세르비아계와 무슬림의 긴장이 극에 달했습니다. 정치 얘기를 하다 의견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직접 목격했을 정도니까요. 사실상 치안 부재 상태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