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에는 실패한 리더의 대명사로 이른바 ‘걸주(桀紂)’로 알려진 폭군들이 기록돼 있다. ‘걸’은 중국사 최초의 왕조로 기록돼 있는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으로, 백성들을 힘으로 억압하다 탕(湯) 임금에게 추방돼 죽은 폭군이다. ‘주’는 은(殷) 또는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이다. 두 사람은 각각 한 왕조의 제왕으로서 지고무상한 권력을 누렸지만, 그 권력을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고 백성을 괴롭히는 도구로만 사용해 결국 나라를 망쳤다. 특히 주 임금의 사례는 리더십의 변질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리더로서의 자질이 뛰어났던 주 임금
주 임금은 ‘폭정’의 대명사다. 백성들에게 지나친 세금을 부과하고 그 세금을 온갖 사치스러운 생활로 낭비했다. 이른바 ‘주지육림(酒池肉林)’은 바로 그의 방탕한 생활을 대변하는 성어다. 또 자신에 대해 비판하거나 등을 돌리는 백성과 제후들을 탄압하기 위해 불에 달군 쇠기둥 위를 걷게 하는 ‘포락(烙)’이라는 잔혹한 형벌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구후의 딸인 아내가 음탕한 짓을 싫어하자 화가 나서 그녀를 죽이고, 구후도 죽인 다음 그 시체로 포를 떠서 소금에 절일 정도였다.
그런데 ‘사기’의 기록(권3 ‘은본기’)에 따르면, 주 임금의 자질은 누구 못지않게 뛰어났다.
“주 임금은 타고난 바탕이 총명하고 말재주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일처리가 신속하며 힘이 남달라 맨손으로 맹수와 싸울 정도였다. 또한 지혜는 신하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였고, 말재주는 자신의 허물을 교묘하게 감출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신하들에게 과시해 천하에 그 명성을 높이려 했으며, 다른 사람은 모두 자기만 못하다고 여겼다.”
주 임금의 자질은 사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리더의 능력과 닮은 점이 많다. 총명하고, 일 잘하고, 사소한 실수 정도는 지식과 말로 얼마든지 감출 수 있으며, 자신의 능력을 주위에 알리는 데 능숙한 리더…. 전형적인 한국형 리더의 모습 아닌가? 리더의 이 같은 자질은 단점이라기보다는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자질을 어떤 방향으로 무엇을 위해 발휘해나갈 것인가에 있다.
리더십 변질의 원인
①팔로어십을 인정하지 않았다
팔로어십(followership)은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리더십은 팔로어십을 잘 이끌어내야 하며, 팔로어십은 그런 리더십을 사심 없이 따라야 한다. 이때 팔로어에게 요구되는 것은 리더가 나쁜 쪽으로 가려 할 때 솔직하게 충고할 줄 아는 자세다. 물론 리더는 이 충고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것이 리더십과 팔로어십의 조화다.
그런데 주 임금의 리더십을 들여다보면 팔로어십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물론, 팔로어십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잠재돼 있다. ‘사기’의 “지혜는 신하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였고, 말재주는 자신의 허물을 교묘하게 감출 수 있을 정도였다”는 부분에서 이를 알 수 있다. 또 자신의 재능에 대한 과시욕과 명성에의 집착,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무시 등도 언제든지 리더십을 망칠 수 있는 위험한 요소들이다.
②자기 절제력이 부족했다
사마천은 주 임금의 자질을 소개한 다음 “술과 여자를 지나치게 좋아했으며, 특히 여자를 좋아했다”고 기록했다. 축첩이 허용되던 시대에 여자를 좋아한다는 게 리더십의 성패에 결정적 요인이 될 수는 없다. 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한 주 임금의 자질에 술과 여자가 더해짐으로써 그의 리더십이 변질되고 실패할 확률은 더욱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주 임금의 친척이었던 기자(箕子)가 주 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주의 멸망을 예언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자는 주 임금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했으니 다음에는 옥으로 만든 술잔을 사용할 테고, 그 다음에는 산해진미가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먹고 마시는 데 신경을 쓰면서 호화 사치에 빠지면 부패하고 나태해져 결국 멸망에 이를 것이라는 예언이다(여기서 ‘사소한 것을 보고 드러날 것을 알았다’는 뜻의 유명한 고사성어 ‘견미지저[見微知著]’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