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현장경영

30호 (2009년 4월 Issue 1)

‘조선왕조실록’을 읽으며 감탄할 때가 종종 있다. 가장 취약한 처지에 놓여 있는 백성들에 대한 왕의 세심한 배려를 만날 때가 그렇다. 왕조 국가에서 국왕이 굳이 길가의 백성들을 찾아가 만나지 않아도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궁 안에서 책이나 읽고 도덕적 모범자로 ‘조용히’ 지내기를 바라는 신하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세종은 수시로 궁궐 밖으로 나가 굶주린 백성들이 없는지, 원통한 일을 겪는 사람은 없는지 살피곤 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만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民惟邦本 本固邦寧)”고 보았기 때문이다.(세종실록 05/07/03) “근심하고 탄식하는 소리가 영구히 끊어져 각기 살아가는 즐거움(生生之樂)을 이루도록” 하는 게 국왕 본연의 임무라고도 했다.(세종실록 05/07/03)
 
그러면 어떤 근거에서 그는 백성을 나라의 근본이라 하고, 백성들의 기쁨을 위해 국왕이 존재한다고 보았을까? 첫째, 그는 국왕이라는 자리는 백성이 필요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재위 13년(1431년) 그는 “백성들이 어떤 일을 하려다가 임금이 없어 혼란스러웠는데, 이 때문에 필연코 임금을 세워 다스리게 했다(民生有欲無主乃亂 必立君長而治之)”고 말했다.(세종실록 13/06/20) 백성이 혼란을 막기 위해 왕을 추대했다는 생각은 당시로서는 파천황(破天荒)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일관되게 “임금의 직책이란 하늘을 대신해 만물을 다스리는 것(人君之職 代天理物)”이라고 하여(세종실록 09/08/29) 노비나 감옥의 죄수, 버려진 아이처럼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인 자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곤 했다.
 
둘째, 세종은 백성을 하늘이 자신에게 돌보도록 보낸 ‘어린 자식(赤子)’과 같은 존재라고 봤다. 재위 27년(1445년)에 그는 노비를 함부로 대하는 주인들을 꾸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노비는 비록 천한 백성이나, 또한 ‘하늘이 낸 백성(天民)’ 아닌 자가 없다.(奴婢雖賤 莫非天民) 신하된 자로서 하늘이 낳은 백성을 부리는 것만도 족하다고 할 것인데, 어찌 제멋대로 형벌을 행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매우 옳지 않게 여긴다.”(세종실록 27/07/24) 하늘이 낸 백성을 함부로 대하면 하늘이 노여워한다며, 관리들은 마땅히 어린 자식을 대하듯 노비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게 세종의 생각이었다.
 
셋째, 세종은 “무릇 백성이란 지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실로 신명한(民至愚而神)” 존재라고 보았다.(세종실록 19/08/06) 백성들은 겉으로 볼 때, 그리고 한 명 한 명으로 보면 어리석어 보이나 그들을 잘 들여다보면,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세밀히 들어보면 실로 신령한 생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세종이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때로는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여염 백성들의 소리를 들으려고 애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백성을 억울하고 고통스럽게 만들면 곧 하늘이 노하며 그 순간 국왕의 정당성도 무너진다는 세종의 언행은, 정치가는 물론 많은 리더들의 수사(修辭)에 식상해버린 우리들에게 신선함과 놀라움을 준다. 식상한 수사 대신, 진정으로 ‘백성을 나라의 근본’으로 여기고 실천하는 리더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필자는 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에서 ‘정조(正祖)’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실록학교’ 등에서 세종·영조·정조의 리더십을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세종처럼: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정치가 정조> 등이 있으며, ‘경국대전의 정치학’ ‘다산의 군주론’ ‘서희의 협상 리더십’ 등 50여 편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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