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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육계(苦肉計)’ 고통을 참고 살을 도려내다

박재희 | 27호 (2009년 2월 Issue 2)
올해의 화두를 하나 꼽으라면 ‘고육계(苦肉計)’가 될 것 같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경제 환경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고(苦)는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육(肉)은 자신의 육신을 뜻한다. 고육계는 비록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생존을 위해선 서슴지 않고 내 육신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말이다.
 
벌써 은행권은 건설업계와 조선업계를 필두로 고육계를 시도하고 있다. 스스로 살을 떼어내는 고육책(苦肉策)을 마련하지 않으면 돈줄을 끊어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칼을 빼들었다. 대상 기업의 리더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아프지만 환부를 도려내야 하는 비상사태에 돌입했다. 아끼는 직원들을 회사 사정으로 해고해야 하는 아픔까지 감수해야 한다. 비록 정리해고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술적 측면에서 보면 이것도 고육계의 생존 전술이다. 영국의 한 등산가가 바위에 낀 자신의 팔목을 스스로 자르고 생존에 성공한 사례나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포기하고 생존하는 것도 당장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을 위한 고육계다.
 
이 병법은 원래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를 입혀 상대방을 안심시킨 뒤 기회를 엿보다가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전술로 사용되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상대방의 신용을 얻어 안심시킨 뒤 내가 원하는 정보를 믿게 하는 전술이다.
 
적벽대전 승리 이끈 손권의 ‘고육책’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군대와 대치하던 오나라 손권은 자신의 부하 황개(黃蓋)를 고육계로 이용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만든다. 손자(孫子)와 오자서(伍子胥) 역시 요리(要離)라는 인물을 천거하여 고육계를 세운다. 자객으로 자청한 요리가 자신의 처자식을 일부러 처형해 상대방을 속이고 목적을 이룬 이야기는 고육계의 가장 고전적인 예로 인용된다.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어 기분 좋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생존이라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고 조직의 생존을 위해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지도자의 결단에서는 비장함을 넘어 성스러움까지 엿보인다. 아픔을 견뎌내고 자신이 거느리는 직원들을 반드시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버릴 줄 아는 지도자가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조직의 생존(保國)과 조직원의 생존(保民)이 그만큼 소중하기에 모든 비난을 감수하고 고육계를 선택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사람을 자르는 것이 고육계가 아니다. 원가를 절감하고, 비용을 줄이고, 조직의 누수 되는 곳을 찾아 과감하게 잘라내는 것이 고육계다.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이 지금까지 조직의 발전과 번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사업에 전념할 수 있는 용기도 고육계의 일환이다. 평소 함께하던 사람을 자르는 것은 최후에 해야 할 고육계의 단계다. 고통은 기쁨이다. 아프지만 잘라내는 수술이 있어야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듯이 고통이 심해져 극에 다다르면 또 다른 기쁨이 찾아온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버릴 수 있어야 진정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고육계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희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는 고통스럽지만 참고 견뎌낼 줄 아는 사람만이 고육계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이다. 응형무궁(應形無窮)이라! 무궁한 상황의 변화에 적절히 대응해 자기 모습을 변화하라는 말이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전쟁터의 화두다. 심하게 아파본 자만이 살아날 수 있다는 고육계가 더욱 절실한 한 해가 될 듯하다.
  • 박재희 박재희 | - (현) 포스코 전략대학 석좌교수
    - 중국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교수
    -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taoy2k@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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