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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배우는 경영

시작이 어려울수록 멀리 보는 지혜를

박영규 | 321호 (2021년 05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주역의 64괘 중 수뢰둔괘는 공동체 속에서 인간이 겪는 애환을 이야기하는 첫 번째 괘로, 그중 ‘둔(屯)’은 시작의 어려움을 뜻한다. 수뢰둔괘의 괘사와 효사에서는 시작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일러준다. 첫째, 리더십을 확고히 세워라. 둘째, 장기적인 관점으로 시장을 파악하라. 셋째, 자신의 몫을 내어주며 든든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라. 여행을 떠나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 역시 시작의 난관을 타개하는 주역의 지혜 중 하나다.



모든 시작은 어렵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시작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웅변한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애’ 하고 울음부터 터뜨리는 것도 시작이 힘들기 때문이다. 주역에서는 시작의 어려움을 ‘둔(屯)’으로 나타낸다. 주역 64괘 가운데 시간과 공간의 창조를 상징하는 중천건괘와 중지곤괘에 이어지는 세 번째 괘가 수뢰둔(屯)괘인데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의 애환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주역이 다루는 굽이굽이 인생길의 실질적인 스타트라인이라고 할 수 있다. 수뢰둔괘는 구름을 상징하는 감괘(☵)가 위에 놓이고 우레를 상징하는 진괘(☳)가 아래에 놓이는 복합괘인데, 짙은 먹구름 속에 우레가 갇힌 것처럼 일이 난관에 봉착한 모습을 상징한다.

그렇다고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발을 떼기가 힘들지만 강력한 의지와 리더십이 있으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다. 수뢰둔괘에 쓰인 둔(屯)자는 땅속에 있던 씨앗이 발아해서 머리를 삐죽이 내미는 형상으로 시작의 어려움을 상징하는 글자다. 여리고 여린 새싹이 두꺼운 지층을 뚫고 나오려면 여간한 노력과 고통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명의 엘랑비탈(생명의 비약)은 시작의 어려움을 돌파한 후 싹을 틔우고, 줄기를 뻗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리더십을 세워라

수뢰둔괘의 괘사와 효사에서는 시작의 어려움을 유형별로 설명한 후 그 타개책을 일러준다. 우선 시작 단계에서는 물용(勿用)을 강조한다. 시작 단계란 일을 새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이므로 모든 것이 매우 불확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나서지 말고 신중한 자세로 상황을 예의주시하라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수뢰둔괘 괘사에서는 ‘이건후(利建侯)’, 즉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고 조언한다. 제후를 세운다는 것은 확고한 리더십을 갖춘다는 의미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인 자연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인간들이 가장 먼저 리바이어던(강력한 통치자)를 세웠듯이 시작의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리더십 구축이다. 중심이 바로 서야 일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구난방이 돼 배가 산으로 가고 만다.

휴렛패커드(HP)의 창업자 빌 휴렛과 데이비드 패커드는 실리콘밸리의 창고에서 회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동전을 던져 누가 CEO가 될지를 정하는 것이었다.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해서였다. 동전 던지기에서 이긴 빌 휴렛이 CEO를 맡고, 거기서 진 데이비드 패커드는 COO(최고운영책임자)를 맡는 것으로 교통정리가 돼 리더십 문제를 해결했다. 그래서 회사 이름도 휴렛패커드가 됐다. 데이비드 패커드가 동전 던지기에서 이겼으면 회사 이름은 패커드휴렛이 됐을 것이고, CEO도 패커드가 맡았을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형제의 난으로 권력을 잡은 태종 이방원에게도 시작은 녹록지 않았다. 외척세력이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종은 흔들리는 민심을 바로 잡고 리더십을 확고하게 다지기 위해 천도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수도로 정했지만 피바람이 계속되자 정종은 개경으로 환도했다. 태종은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기는 것이 좋은지, 개경에 그대로 두는 것이 좋은지 두 가지 안건을 두고 동전을 던졌다. 수도를 옮기는 것이 좋다는 안건에 대해서는 2길1흉의 점괘가 나왔고,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는 안건에 대해서는 2흉1길의 점괘가 나왔다. 그래서 조선왕조의 수도는 다시 한양으로 결정됐다. 수도를 옮긴 후 태종은 의정부서사제로 운영되던 정부의 시스템을 육조직계제로 바꾸는 등의 제도 개혁을 통해 확고한 리더십을 구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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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규chamnet21@hanmail.net

    인문학자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주역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읽다』 『실리콘밸리로 간 노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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