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주존(Pages Jaunes)은 프랑스 최고의 종이 전화번호부 생산업체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큰 위기를 맞게 됐다. 2009년 장-피에르 레미가 이 회사의 신임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했을 때 이 회사는 매년 10% 이상의 매출 감소를 겪고 있었다. 결국 이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디지털 검색 세상에 신속하게 적응해야만 했다. 문제는 직원들의 반발이었다. 2009년 당시 빠주존은 여전히 프랑스에서 신뢰받는 브랜드였고, 광고주들과의 사이도 돈독했으며, 디지털 분야 매출은 일부에 불과했다. 긴 역사를 자랑하는 이 기업은 1997년부터 2002년 사이 닷컴 버블 때도 굳건히 업계
1위 자리를 지켜낸 경험이 있었다. 이 때문에 기존 직원들은 모바일 시대가 도래했음에도 기업의 경쟁력은 여전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에 레미 사장은 직원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원대한 목표를 담은 확고한 트랜스포메이션 비전을 발표했다. 그는 디지털이 곧 미래이며, 종이 전화번호부는 곧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임을 역설했다. 그리고 빠주존의 역할을 전화번호부 생산이 아닌 ‘중소기업들을 지역 고객들과 연계해주는 것’으로 재정의했다. 이와 함께 그는 빠주존의 사업 구조를 변화시키고 30% 미만인 디지털 관련 매출을 향후 5년 내 75%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명확한 비전과 숫자로 제시된 목표로 인해 직원들의 반발은 줄어들었고 빠주존은 디지털 비전 발표 4년 만에 목표의 대부분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 속도가 과거 어느 때보다 빨라지면서 빠주존처럼 디지털 전환을 제대로 해내는지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하지만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대부분의 기업들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디지털 전환을 시도하기 때문에 소셜미디어, 빅데이터, 인공지능(AI), 3D프린팅 등 디지털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중요하다. 실제 매출액 5억 달러 이상의 기업 391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디지털 역량이 높고 리더십이 뛰어난 기업의 매출은 업계 평균보다 9%, 이익률은 20% 높았다. 반면 디지털 역량이 부족하고 리더십도 떨어지는 기업의 매출은 평균보다 -4%, 이익률은 -26%로 부진했다.
책은 디지털 소양을 갖고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제대로 적용해 성공한 기업들을 ‘디지털 마스터’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들 기업이 어떻게 디지털 역량을 갖출 수 있었는지 분석했다. 저자들은 수년간 다양한 산업군에 속하는 수백 개 기업과 해당 기업의 임원들을 인터뷰해 그 답을 찾아냈다.
디지털 마스터가 다른 기업과 차별화되는 점은 기술을 기술 그 자체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비즈니스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다. 즉 고객 경험, 운영 프로세스, 비즈니스 모델의 3가지 측면에서 해당 기술이 도입됐을 때 비즈니스 환경을 얼마나 변화시키는지를 보고 투자를 결정한다. 일례로 브랜드 노후화를 고민하던 버버리는 디지털로 고객경험을 혁신하며 젊은 고객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고, 디지털로 주문 프로세스를 혁신한 아시안페인트는 인도를 넘어 아시아로 뻗어 나갔다.
이 책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강력한 리더십 역량 구축에 필요한 요소로 비전, 전사적인 참여, 거버넌스와 함께 기술 리더십 역량을 꼽는다. 특히 IT 담당 임원과 경영진 간의 강력한 관계를 뜻하는 기술 리더십은 디지털 스킬을 향상시키고, 강력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필요한 디지털 역량이 무엇이고,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다면 그 다음은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책은 디지털 마스터들의 사례를 바탕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나침반을 제공한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로 떠올랐다.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선진국 문턱에 다다른 한국에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오는 변화의 의미는 더 클 수밖에 없다. 미국 MIT 슬론스쿨에서 MBA와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한 저자는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의 전략을 해도(海圖)에 빗대 설명한다. 육지의 길은 대부분 정해져 있지만 바다의 길은 훨씬 많은 변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해도가 중요하다는 것. 저자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기업 경영활동에 해도는 필수라고 주장하며 이상적인 모습에 이르는 해도를 계속 그려나가는 힘을 ‘전략력’이라고 일컫는다.
2017년 디지털 마케팅 3대 트렌드는 빅데이터, 콘텐츠 마케팅, 마케팅 자동화다. 이 중 가장 생소한 분야인 마케팅 자동화는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해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말한다. 불특정 다수에게 연관성 없는 광고를 쏟아내는 마케팅 방식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사람들은 이제 무엇이든 스마트폰으로 검색부터 하고 SNS를 통해 관련 정보를 찾은 후 구매하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 구매 가능성이 있는 고객은 물론 불만을 가지고 있는 고객의 정보까지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은 단순 개론서가 아니라 활용서라는 점이 특징이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