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고전 읽기

Theory Z - 일본식 경영의 비밀

67호 (2010년 10월 Issue 2)

 

 
편집자주 경영학이 본격적으로 학문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지 100년이 넘었습니다. 눈부시게 발전한 경영학은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 학문이자 현대인의 필수 교양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경영학 100년의 역사에서 길이 남을 고전들과 그 속에 담겨있는 저자들의 통찰력은 무엇인지 가톨릭대 경영학부 이동현 교수가 ‘경영고전읽기’에서 전해드립니다.
 
 
1970년대 미국의 산업계와 학계는 일본 기업 배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글로벌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것처럼 보였던 일본 기업들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서히 세계무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두 번에 걸친 오일 쇼크는 역설적으로 생산성과 품질을 앞세운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새롭게 부각되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당시 일본 기업의 성공을 바라보는 서구 경영자들의 시각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의 정치학자 찰머스 존슨(Chalmers Johnson)이 1982년 출간한 저서 <통상 산업성과 일본의 기적(MITI and the Japanese Miracle)>을 들 수 있다. 이 책은 일본의 눈부신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일본 정부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에서 찾고 있다. 존슨 교수는 1925∼1975년 일본 통상 산업성(Ministry of International Trade and Industry)이 주도한 산업 정책을 분석한 결과 이러한 결론을 내리고, 일본을 ‘발전지향적 국가(developmental stat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즉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화를 주도한 측면을 강조한 것인데, 이는 결국 자유방임주의에 기반을 둔 미국 정부의 소극적 역할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처럼 초기 서구 경영자들은 일본 기업의 성공을 기업 차원에서 이해하기보다는 일본 정부의 후원, 즉 ‘일본 주식회사’라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에서 벗어나 일본 기업의 성공을 미시적인 기업 차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런 시도를 주도한 1세대 학자가 바로 <Z이론(Theory Z)>이라는 고전을 쓴 윌리엄 오우치(William G. Ouchi) 교수였다. 오우치 교수는 일본계 미국인 3세로 하와이에서 태어났으며 스탠퍼드대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당시 미국 경영자들이 궁금해 했던 일본식 경영의 본질과, 과연 미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의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일본식 경영방식과 미국식 경영방식은 여러 측면에서 서로 다르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이 연구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사실은 고용, 평가 및 보상, 경력 관리, 통제 기구, 의사 결정, 책임 소재 등 여러 측면에서 미국식 모델과 일본식 모델이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 기업과 미국 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용기간에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종신고용을 택했고, 내부적으로는 연공서열을 통해 조직의 안정성을 중시했다. 물론 일본식 종신고용에는 분명 어두운 이면이 있었다. 일본의 대기업들이 종신고용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많은 수의 임시종업원을 고용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여성으로 전문직이나 관리직이 아닌 생산직이나 단순 사무직에 종사하면서 남성들의 직업 안정성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이러한 임시 인력들은 불황기에 즉시 해고됐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단기 이익을 중시하고 경영자들도 단기 이익에 의해 평가받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미국 경영자들은 탄력적인 인력 운영이 가능한 단기 고용을 선호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 기업의 노무직이나 사무직 종업원들의 이직률은 일본 제조업 연평균 이직률의 4∼6배에 이르는 높은 수준이었다. 심지어 경영진들의 이직률도 25%에 달했다. 그럼에도 종신고용제는 일본이라는 특이한 사회와 경제구조에서만 가능했기에 미국 기업들이 이를 도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미국 경영자들의 과제는 일본식 고용 시스템이 창출하는 종업원들의 회사에 대한 신뢰와 헌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일본 기업과 미국 기업은 평가 및 승진 제도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일본 기업은 완만한 승진 제도를 기본으로 삼았으며, 이는 장기적인 성과를 추구하는 데 적합했다. 일본 기업들은 장기 전략에 근거해 기업을 경영하고 있었고, 최고경영자들은 일반 주주들의 압력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또한 개개인에 대한 평가보다는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고취시키기 위해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중시했다. 일본 기업에서는 일정 기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공식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실 일본 기업의 종업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회사의 공식적인 평가나 보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동료들의 반응이나 평가에 더 민감했다.
 
한편 이직률이 높은 미국 기업에서는 철저한 능력 평가를 기반으로 승진도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중간 관리층의 자리가 비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사람도 바로 승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빠른 승진과 이동이 보편화돼 있어 3년 동안 승진하지 못한 사람은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경영학석사(MBA) 출신이 대량 배출된 것도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데 일조했다. 1980년에만 4만5000명의 MBA 출신자가 기업에 취직했고, 이들은 자신의 능력과 학력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에 최대한 빨리 승진해 최고의 자리에 오를 것을 기대했다. 만약 그 기대가 깨지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직장을 옮겼다. MBA 학위 소지자들은 대략 10년 동안 세 차례 정도 직장을 옮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식 모델과 미국식 모델은 의사결정에서도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일본 기업은 참여적인 집단 의사결정을 선호했다. 일본 기업에서는 의사결정을 내릴 때 그 결정에 영향을 받는 많은 사람들을 결정에 참여하게 한다. 일본 기업들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세부적인 내용을 전달하고 그 결정을 철저하게 실행하겠다는 합의를 유도하는 것을 의사결정 자체보다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일본 기업의 이런 의사결정 방식에는 의도적으로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려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이같이 책임을 미루는 단점도 있지만, 책임을 분산시킴으로써 의사결정이나 문제해결 과정에 많은 사람들을 참여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컸다. 결국 일본 기업들은 개인에 의한 독단적인 방법이 아닌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한 집단 의사결정 과정을 거침으로써 전체가 합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조화를 추구하는 집단주의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게 됐다.
 
반면 미국 기업에서는 업무가 비교적 명확하게 분담됐고, 덕분에 책임소재도 명확했다. 하지만 어느 한 사람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회사 전체가 영향을 받을 위험이 상존했다. 그리고 어떤 의사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지를 담당자 밖에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의사소통이나 정보가 단절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었다.
 
이처럼 오우치 교수는 기업 경영의 주요 요소들에 대해 일본 기업과 미국 기업의 특성을 비교하면서 두 시스템의 강점과 약점을 체계적으로 추출해낼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양국의 사회 문화적 구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일본식 경영방식을 미국 기업에 이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깨려고 노력했다. 일본식 경영방식도 충분히 미국 기업에 접목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식 기업조직인 A형 조직과 일본식 기업조직인 J형 조직의 장점을 통합해서 새로운 경쟁력을 창출할 수 있는 Z형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Z형 조직의 핵심은 구성원들의 동기를 유발시키는 인사관리와 조직관리 방식이다.’
 
오우치 교수는 일본의 종신고용을 그대로 미국 기업에 접목시킬 수는 없지만 장기고용을 확대할 수 있고, 보다 많은 구성원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집단적 의사결정을 도입한다면 충분히 미국 기업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일본식 경영의 장점을 흡수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실제 오우치 교수가 조사한 48개 기업 중 미국 내 일본 회사에 근무한 경영자들에 따르면, 그들은 과거 미국 기업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가족과 같은 소속감이나 일체감을 일본계 기업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는 점을 밝히기도 했다.
 
오우치 교수의 Z이론은 1970년대부터 본격화된 일본식 경영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서로, 단기보다는 장기, 개인보다는 집단, 부분보다는 전체를 강조하는 일본식 경영의 특징을 잘 밝혀내 후에 이루어진 일본 기업에 대한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비롯된 경영방식이 기업의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융합될 수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최초의 연구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Z이론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다양한 지역에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오늘날의 경영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글로벌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특성, 즉 K형 조직에 대한 연구도 이제 본격화할 시기가 되지 않았을까.
 
이동현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dhlee67@catholic.ac.kr
 
필자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듀크대 경영대학원 방문 교수로 연구 활동을 벌였다. <MBA 명강의> <경영의 교양을 읽는다: 고전편, 현대편> <깨달음이 있는 경영> <초우량 기업의 조건>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경영학 지식을 다양한 조직에 확산하는 일에 역량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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