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가… 맞나?”
여기는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 한복판이다. 좌우를 둘러보면 붉은 벽돌로 지은 빌라가 드문드문한 사이 페인트칠이 벗겨진 연노란색 담을 두른 구식 단독주택이 또 드문드문 앉아 있는 그런 주택가. 재개발 소문이 이십 년째 떠돌고 있지만 실상 한 번도 재개발 계획이 수립된 적은 없는 동네. 장맛비가 주룩주룩 퍼붓는 골목에 엷은 안개처럼 물방울이 흩날렸다.
산주의 앞에는 가파른 경사를 이용해 이층으로 올린 집이 있었다. 동네의 다른 집들과 다른 점이라면 칠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새하얀 벽 정도? 전체적으로 1990년대 초에 시간이 멈춘 어느 대학가라면 딱 떨어질 듯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하얀 벽에는 고풍스러운 램프가 달려 있었다. 램프 유리 갓 아래로 따스한 노란 빛이 비 내리는 골목에 파도처럼 번져 나오고 있지 않았다면 산주는 이 가게를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분명 여긴데….’
산주는 스마트폰에 띄운 지도와 눈앞의 나무 문을 번갈아 보다 손잡이를 돌렸다.
“우와….”
산주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잘 길든 다갈색 문을 열자 그 안은 온통 화려한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로만 지은 집에 발을 들인 느낌이었다. 집안은 벽도, 천장도 모두 체스판처럼 촘촘한 정사각형 색과 빛으로 이뤄져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난생처음 본 광경에 산주가 홀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옆에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허리 높이에 뚫린 벽 창 안에서 주인이 미소 짓고 있었다.
“여, 여기가 ‘내 손 안의 바다’ 맞나요?”
당황한 산주가 말을 더듬어도 주인은 인내심 가득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처음이신가요?”
“아, 네, 네. 친구한테 얘기를 듣고 왔어요.”
“아, 친구분한테서요.”
‘내 손 안의 바다’의 주인은 아래위로 검은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 하얀 컨버스 스니커즈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친구분은 어떤 바다를 담아 가셨죠?”
“그… 제가 이름을 듣긴 했는데 좀 어려워서요. 뭔가 파, 파스타 같은 이름이었는데요? 연두색 구름 같고… 창가에 두니까 얇은 지느러미를 가진 송사리 같은 게 그 구름 안을 돌아다니더라고요. 새끼손톱 반만 한 송사리 같은… 게요….”
자신을 잃은 산주의 목소리가 점차 흐려졌다. 그러나 주인은 그쯤이면 충분하다는 듯 빙그레 웃었다.
“아르비지아니따의 바다로군요.”
“아, 맞아요! 아르, 그거요!”
“이리 오세요.”
주인은 산주를 인도해 안쪽의 그늘진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을 따라가며 자세히 보니 체스판의 정사각형 같은 빛들은 모두 유리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인 정사각형 어항이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 어항은 아닐지도. 각 유리 블록 안에 든 것은 색색깔의 열대어나 수초가 아니라 다채로운 색과 명도로 빛을 투과시키는 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안에 든 건 전부 바다랍니다.”
가까이서 보니 그 안에 든 것은 전부 액체도 아니었다. 산주가 잘 아는 바다처럼 출렁이는 물로 보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산주의 친구가 보여준 것처럼 액체라기보다는 형태를 띠고 뭉쳐 있는 기체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또 점도가 너무 높아 양갱처럼 굳어 있는 듯 보이는 것도 있었다. 색깔과 빛도 다양했다. 완전히 투명하여 빈 것처럼 보이는 것부터 진홍색과 검은색이 마블링처럼 섞여 천천히 도는 것, 눈부신 흰색을 띠고 흔들리는 것, 샛노랗고 자욱한 것…. 이 모든 것이 다 바다라고 주인은 설명해주었다.
“외계 행성의 바다지요. 지구의 바다와 비교해보면 참 다르죠? 그래도 전부 바다랍니다.”
“이 바다들을 어떻게 다 여기 가지고 계신 거죠?”
아르비지아니따의 바다가 담긴 유리 블록 앞에 서서 산주가 또 감탄했다. 안쪽의 작은 방도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을 제외한 사면의 벽과 천장이 모두 유리 블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빛과 색으로 수놓아진 조각보 안을 걷는 기분이었다.
“하하, 다 방법이 있죠. 먹고살려면 다 방법이 있답니다.”
유리 블록 안에 담긴 아르비지아니따의 바다는 친구의 창가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뭉게뭉게 끝없이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면 보이는 끝없는 구름의 바다를 축소시켜 정사각형으로 잘라 놓으면 이런 모양이지 않을까?
“어… 그런데 여긴 송사리는 안 보이네요.”
송사리 같은 건 따로 사야 하는 걸까? 산주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질문했다. 산주의 옆에서 같이 허리를 굽혀 아르비지아니따의 바다를 들여다보던 주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시겠지만 외계 행성의 생명을 지구로 반입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 있어서요. 생태계 다양성 보존, 아시죠? 잘못해서 황소개구리 같은 게 들어오면 큰일 나겠죠. 여기 있는 건 전부 그 안의 생명은 고스란히 고향에 두고 온 바다의 조각들이랍니다. 애초부터 생명이 없는 바다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친구가 보여준 바다에서 송사리 같은 게 헤엄치는 걸 봤는데요?”
그러자 주인은 산주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방 밖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손에 들고 온 것은 뭐랄까… 책상 램프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다각도로 구부러지는 금속 대 끝에 검게 칠한 갓이 씌워져 있고 그 안에는 알전구가 달린 모양이 꼭 구식 책상 램프와 닮아 있었다.
“자,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