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ble Management

무의식과 페르소나, 방탄소년단이
그림자 투쟁에서 이긴 비결

291호 (2020년 2월 Issue 2)

Article at a Glance
방탄소년단은 큰 성공을 거둔 후 자아의 분열을 경험했다. 월드 스타로 떠오른 후 그들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갈수록 높아졌고, 그 기대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에는 이러한 고민과 갈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 갈등과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과 해법도 담겨 있다. 방탄소년단은 자아에 대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 속 그림자와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깨우쳤다. 그림자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그림자에 담겨 있는 선악의 양면을 모두 응시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데카르트는 코기토(cogito, 라틴어로 ‘나는 생각한다’)를 인간의 원점이라고 봤다.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한다 해도 의식의 주체인 ‘나’라는 존재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고 믿었다. 프로이트는 이 믿음을 뒤집었다. 의식을 조종하는 더 깊은 심연의 힘이 있으므로 의식이 원점이라는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형체가 없고 의식할 수도 없지만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이 실체를 프로이트는 무의식이라고 칭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원천을 성적인 욕망이라고 단정했다. 인간의 정신은 이 욕망을 가두는 지하 감옥이며, 문명은 이 욕망을 억압한 대가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렇다고 인간이 이 욕망을 언제나 성공적으로 가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욕망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의식의 경계가 느슨해지면 그 틈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수면 상태에서 이 욕망이 튀어나오면 꿈이 되고, 깨어 있는 상태에서 튀어나오면 신경증이 된다. 그런데 이 욕망은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는다. 언제나 가면을 쓴 채 등장한다. 무의식은 위장술로 의식의 눈을 따돌리고 자신의 욕망을 실현한다.


“압축과 변형, 전이(轉移)라는 가면을 쓴 무의식은 의식의 주의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교묘하게 자신의 소원을 성취한다. 그것이 꿈이다.”
- 『꿈의 해석』 프로이트


깨어 있을 때도 사람들은 꿈을 꾼다. 그리고 꿈속에서처럼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칼 구스타프 융은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쓰고 있는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융은 한때 프로이트의 후계자로 통했지만 모든 것을 성적 억압으로 연결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에 반대하면서 둘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하지만 융은 사람의 정신세계에 무의식이라는 심층이 존재한다는 프로이트의 이론마저 부정하지는 않았다.

융에 따르면 무의식이라는 내면세계는 그림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그림자는 어둡고, 불안하고, 때로는 파괴적이다. 그림자를 접한 자아는 실망한다. ‘내가 왜 이 모양이지’ 하면서 회피하고 도망가려 한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현명한 방법은 맞서 싸우는 것이다. 융은 이를 그림자투쟁이라고 부른다. 그림자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냉철하게 그림자를 응시해야 한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그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림자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부정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도 있다. 악을 자아의 또 다른 측면으로 받아들이고 정신세계 안에서 선과 악이 하나 되게 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그림자 안에 있는 자아의 본질을 냉철하게 들여다봐라. 그 속에 있는 선악 모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파괴적 욕망을 창조적 욕망으로 바꿔라.”
- 『인간과 상징』 칼 구스타프 융

융은 이러한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고 부른다. 인간은 내면세계에서 꿈틀대는 욕망인 그림자와 싸우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인격을 완성해 나간다.

『장자』는 철학책인 동시에 심리학책이다. 구만리 창공을 나는 대붕도 마음의 조화고, 꿈에서 장자가 나비로 변하는 꿈도 마음의 조화다. 장자도 프로이트와 융처럼 마음속에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존재한다고 봤다.



“잠들어 있을 때는 혼(魂)들이 뒤섞여 꿈을 꾸고, 깨어 있을 때는 몸의 감각이 열려 사물과 접촉한다. 접촉하는 것마다 뒤엉켜 날마다 마음과 갈등을 일으키며 싸운다. 일이심투(日以心鬪). 겉으로는 부드러운 척하면서 간교하고, 뛰어난 말재주 속에 함정을 숨기고 있으며, 속마음을 깊이 감춰 드러내지 않는다.”
-『장자』 ‘제물론’편

그러면서 장자는 인간을 움직이는 파괴적인 욕망을 회궤휼괴(恢恑憰怪)라고 표현한다. 괴상망측하다는 뜻이다. 네 글자 모두에 마음 심(忄)자가 들어간 것은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욕망들이 모두 마음의 조화임을 나타낸다. 장자에 따르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진군(眞君)이라고 불리는 마음의 주재자가 있어 이러한 욕망을 극복하게 해준다. 진군의 도움을 받아 욕망을 창조적으로 극복한 인간은 성심(成心)에 이른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은 집단 무의식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융은 동양의 신화와 노장사상을 깊이 들여다봤다. 태을금화종지(太乙金華宗旨)라는 도가의 경전에 대한 심리학적 해설서를 직접 쓰기도 했다. 여기서 융은 노장사상에서 말하는 도(道)를 무의식과 같은 개념으로 풀이했다. 『장자』에 나오는 진군(眞君)은 융이 말하는 진정한 자아(self)와 맥이 닿고, 성심(成心)은 개성화, 즉 자아실현에 대응한다.

장자는 성심의 과정에서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인간의 눈으로 속단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인간세’편에 나오는 다음 우화를 보자.

장석(匠石)이라는 목수가 제자를 데리고 제나라를 향해 가고 있었다. 곡원이라는 지방을 지날 즈음, 장석은 사당에 심어진 상수리나무를 봤다. 나무는 그 크기가 수천 마리의 소를 그늘에 가릴 수 있을 정도였다. 나무를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지만 장석은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갔다. 제자가 장석에게 물었다. “제가 도끼를 잡고 선생님을 따라다닌 이래로 재목이 이토록 훌륭한 나무는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쳐다보지도 않고 가시니 무슨 까닭이십니까?” 이에 장석이 말했다. “그만둬라. 그 나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쓸모없는 잡목이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관이나 궤를 만들면 빨리 썩고, 그릇을 만들면 빨리 부서지고, 대문이나 방문을 만들면 나무 진액이 흘러나오고, 기둥을 만들면 종벌레가 생기니 이 나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쓸 만한 데가 없기 때문에 장수를 누리는 것이다.”

밤에 잠을 자는데 상수리나무가 장석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너는 무엇에다 나를 비교하려 하는가? 배나무, 귤나무, 유자나무에 나를 비교하려는가? 이 나무들이 열매를 맺으면 사람들이 와서 열매를 따니 이로써 참지 못할 모욕을 당한다. 어디 그뿐인가? 큰 가지는 꺾이고 작은 가지는 찢겨지니, 이것은 그 잘난 능력으로 자신의 삶을 괴롭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천수를 마치지 못하고 도중에 요절하니 세상의 모든 사물이 이와 같다. 나는 오랜 세월 쓸모없음을 추구해왔다.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비로소 지금 나의 모습을 얻었으니,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쓸모다. 내가 만약 쓸모가 있었더라면 이처럼 큰 나무가 될 수 있었겠느냐? 너와 나는 모두 매 한 가지의 사물인데 어찌하여 네 기준으로 나를 평가한단 말이냐?”

- 『장자』 ‘인간세’편

장석은 겉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의식을 상징하고, 장석의 꿈에 나타난 상수리나무는 인간의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 영혼의 소리를 상징한다. 장석은 속세의 기준으로 사물의 유용성과 인간의 쓰임새를 판단한 반면 상수리나무는 진아(眞我), 즉 참된 자아의 기준에서 그것을 판단하고 있다. 융은 스위스 바젤대에서 의학을 전공했다. 진로를 고민하던 융은 정신과를 택했다. 그 이유를 융은 영혼의 떨림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탄소년단에게도 그러한 영혼의 떨림이 있었다. 그들은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소리를 들었다. 방탄소년단의 초기 작품들은 그 부름에 응답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큰 성공을 거둔 후 자아의 분열을 경험했다. 월드 스타로 떠 오른 후 그들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갈수록 높아졌고, 그 기대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심적인 부담으로 작용했다. ‘영혼의 지도: 페르소나’에는 이러한 고민과 갈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 갈등과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나가고 있는지에 대한 성찰과 해법도 담겨 있다.



“MAP OF THE SOUL : Persona … 근데 갈수록 말이 많아. 누군 달리라고 누군 멈춰서라 해. 내 그림자, 나는 망설임이라 쓰고 불렀네. 걘 그게 되고 나서 망설인 적이 없었네. 무대 아래든 아님 조명 아래든 자꾸 나타나 아지랑이처럼 자꾸 날 노려보네 … 이게 내 영혼의 지도. Dear Myself, 너는 절대로 너의 온도를 잃지 마 … 가끔은 위선적이어도 위악적이어도 이게 내가 걸어두고 싶은 내 방향의 척도, 내가 되고 싶은 나, 사람들이 원하는 나, 내가 사랑하는 나 … 지금도 매분 매 순간 살아 숨 쉬는 Persona, who the hell am I, I just wanna go, I just wanna fly….”

방탄소년단은 자아에 대한 성찰을 통해 그림자와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깨우쳤다. 그림자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않고 그림자에 담겨 있는 선악의 양면을 모두 응시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페르소나를 벗어던지는 대신 그것을 지혜로운 가면으로 만들었다.

『장자』 ‘어부’편에 나오는 어느 사나이처럼 그들이 그림자로부터 무작정 도망치려고만 했다면 탈진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림자와의 싸움에서 흔히 저지르기 쉬운 잘못 가운데 또 하나는 그림자를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융은 이를 투사(投射)라고 말한다. 못난 남편은 아내에게, 못난 상사는 직원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투사한다. 융에 의하면 이러한 행태는 정신병원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다. 방탄소년단은 자신의 그림자를 타인에게, 세상에, 팬들에게 투사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끌어안았다. 어두운 욕망이 마음을 흔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속의 그림자를 차분하게 지켜보고 그림자가 던지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면 방탄소년단의 페르소나가 묘약이 될 수도 있다. “Listen to Persona!”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필자는 서울대 사회교육학과와 동 대학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중앙대에서 정치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승강기대 총장과 한서대 대우 교수, 중부대 초빙 교수 등을 지냈다. 동서양의 고전을 현대적 감각과 트렌드에 맞게 재해석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에 『다시, 논어』 『욕심이 차오를 때 노자를 만나다』 『존재의 제자리 찾기; 청춘을 위한 현상학 강의』 『그리스, 인문학의 옴파로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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