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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겸의 Sports Review

스포츠 동아리 키워주니 애사심 저절로

김유겸 | 261호 (2018년 11월 Issue 2)
필자가 아는 분이 술자리에서 ‘조직에 충성’을 힘주어 설파하다가 함께 있던 후배들에게 살짝 비웃음을 산 적이 있었다. 다들 지금이 어느 땐데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를 하냐는 반응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애국심, 애사심, 충성심 같은 말을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따르고 전파해야 할 미덕이라는 생각이 드는가? 아마도 그 반대일 것이다. 과거 한국 사회는 국가와 기업의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했다. 이러한 강요가 지나쳤던 탓인지 전체를 중시하는 문화나 태도에 대해 많은 사람이 오히려 반감을 품게 됐다.

집단주의(Collectivism) 주입에 대한 반작용으로 개인의 자유와 가치를 중시하는 개인주의(Individualism)를 이상적인 가치로 여기는 경향이 생겼다. 개인주의는 삶의 동기를 불어넣고 개인의 발전을 촉진하는 등 여러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 다만 집단주의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높았던 만큼 이에 대한 거부감과 반작용도 강하다 보니 집단 가치는 철저히 외면하고 오로지 개인주의만을 추구하는 현상이 한국 사회에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개인주의에 대한 쏠림 때문에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타인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해지고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등 공동체 의식(Sense of community)이 빠르게 사라져 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 부재는 우리 사회에 수많은 문제를 가져온다. 한국 사회는 갈등사회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나를 우선시하다 보니 다른 사람 또는 집단과 이해관계가 다를 경우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나타나 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엠브레인에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서 ▲부유층과 빈곤층 갈등(65.1%) ▲갑과 을의 갈등(51.7%) ▲진보와 보수의 이념 갈등(39.2%) ▲세대 갈등(34%)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갈등(33.2%)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갈등의 공통 원인은 결국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갑의 횡포를 생각해 보자. 개인주의만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개인 이익을 최우선하는 것이 당연하며 심지어 바람직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남보다 우월한 지위에 오른 사람은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다수를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으며 그럴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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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21 Lessons for the 21st Century)’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철학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인류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 중 하나로 공동체 의식 결여를 꼽았다. 극단적 전체주의가 인류 역사상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 현생 인류의 가장 결정적 특징이자 장점은 대규모 협업(large-scale cooperation)이 가능한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하라리는 현생인류(Homo Sapiens)가 지난 1만 년간 생물학적으로 변한 것이 거의 없으며 개인 능력과 지식이 진보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말했다. 개인 차원으로 보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자연 속에서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았던 원시인들이 현대인보다 오히려 다재다능하며 강인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인류의 진보는 개인 차원의 발전이 아니라 사회적·문화적 진화를 통한 인류공동체의 발전이라는 것이다.

공동체 의식 결여는 한국 기업에도 심각한 문제다. 삼성은 세계적 기업이고 금전적 보수도 높으므로 뛰어난 인재들만 일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요즘 삼성에 근무하면서 ‘우리 회사’라고 느끼는 직원들이 얼마나 있을까. 언론매체 보도를 살펴보면 우리 회사라기보다는 사주 일가의 회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삼성뿐이 아니다. 어느 회사에서든 직장과 직장 동료들에 대한 공동체 의식은 구시대 유물이 됐다. 이런 가치를 강조했다가는 반감만 사기 딱 좋다. ‘도대체 왜 내가 회사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라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대한항공 대주주 일가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을 경영자 개인 소유물인 것처럼 마음대로 운영하고 직원들을 종처럼 대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그러다가 기업이 어려우면 구조조정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제일 먼저 직원부터 해고한다. 공동체 의식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러나 공동체 의식이 없는 기업은 조직이 아니며 정상적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조직행동학자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는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공동체 의식 결여를 꼽았으며 당장 경제 위기보다도 이것이 더 크고 심각한 문제라고 말했다. 공동체 의식 결여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가져오고 목표 상실, 구성원 간 불신 팽배, 개인과 조직 사기 저하, 이해 상충과 갈등 심화를 부추긴다. 조직은 많은 사람이 힘을 모아 공동 목표를 달성하고자 만든 것이다. 개인 위에 조직을 두고 조직에 대한 맹목적 충성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구성원이 건전한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지 않는 것은 더욱 큰 문제이며 함께 모여 일하려고 존재하는 조직의 기본 토대가 무너진 것이다. 과거 강압적 전체주의와 사주 일가의 제왕적 기업 운영 때문에 생긴 편견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렇지만 기업이 조직으로서 정상적 기능을 발휘하고 구성원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공동체 의식을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들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최근 여러 기업에서는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사내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하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려는 노력도 있었다. 페이스북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면 시간과 장소에 제약받지 않는 새로운 방식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만큼 온라인 공동체에 대한 강조는 매우 시의적절한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결국 피와 살로 이뤄진 존재다. 오프라인에서 친밀한 교류 없이는 의미 있는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도록 진화했다고 유발 하라리 교수는 말한다. 또 온라인 공동체의 한계를 지적하거나 SNS 중독 등으로 인한 오프라인 교류 기피와 부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연구도 많다. 실체가 있는 오프라인 활동을 통한 공동체 의식 함양이 절실한 상황이다.

진부하게 들릴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내 스포츠 활동 활성화가 그 어느 때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사원 스포츠 활동 참여, 회사가 지원하는 스포츠팀 운영 모두 도움이 된다. 한국에서 스포츠가 국가주의 또는 지역주의 도구로 악용된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는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 역사적으로 효과가 검증된, 장점이 많은 도구다.

올림픽을 예로 들어보자. 올림픽이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열렸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올림픽 같은 행사가 열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실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림픽이 처음 열린 기원전 700년 전후 그리스에는 1000개가 넘는 도시국가가 난립하고 있었다. 당시의 인류가 지금보다 더 평화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 도시국가 사이의 정치 이해관계가 현재 전 세계 200여 개 국가 간의 그것보다 단순했던 것도 아니다. 역사 기록을 통해 추론해 보면 기원전 700년 전후엔 총인구의 15% 이상이 전쟁 등으로 다른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고 한다. 모든 가족에게 살해당한 구성원이 최소한 한 명씩 있었던 시대다. 현재 인류는 타인의 폭력에 의한 사망자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국가 간 전면전으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더욱 낮다. 즉,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친구 사이라기보다는 호시탐탐 상대 목을 노리는 살벌한 적대 관계였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폭력이 지배하는 고대 그리스 국제사회에서 올림픽 기간만큼은 적대 행위가 중단되고 각 나라 최고 전사들이 한곳에 모여 운동 경기에 참여했다는 것은 어떤 역사적 사건 못지않게 놀라운 일이다. 스포츠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고 화합을 끌어내는 데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 대학 스포츠는 스포츠팀이 소속 학생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이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필자가 교수로 재직했던 플로리다주립대는 아이비리그 학교도 아니고 미국에서 전국구 명문대도 아니다. 그런데 이 학교는 많은 스포츠팀을 가지고 있고 미식축구를 포함한 많은 종목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이 학교는 미식축구팀이 유명하다.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은 미식축구팀에 열광적인 성원을 보낸다. 이 학교 학생들의 가을 학기는 매주 토요일에 있는 미식축구팀 경기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날 때마다 미식축구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홈경기가 있는 날은 캠퍼스 주변에 모여 온종일 학우들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경기장에 가서 함께 목이 터지라고 응원한다. 가깝게는 2시간, 멀게는 10시간 이상 거리인 원정 경기는 함께 여행을 떠나는 기회다. 원정 경기를 직관할 수 없다면 동네 스포츠바에 모여서 경기장에 직접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학교에 입학함과 동시에 이렇게 스포츠를 중심으로 자주 모이고, 자기 학교 팀을 함께 응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생들끼리 동질감과 강한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미식축구팀에 대해 일체감(Identification)을 느끼고 애정을 가지다 보니 입학할 땐 명문대도 아닌 학교에 대해 아쉬움을 가졌던 학생들도 점차 학교에 대한 애정이 생기고 자부심을 느낀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엔 명문대가 극소수 아이비리그 학교나 전국구 주립대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과 지역주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자랑스러워하는, ‘운동을 잘하는 명문대’가 미국 전역에 아주 많다.

학교나 지역은 그렇다고 쳐도 스포츠가 기업이나 직장 공동체 의식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을 수도 있다. 오로지 단합을 목적으로 재미도 없고 피로만 쌓이는, 쉬는 날을 잡아먹는 체육대회나 등반대회를 떠올린다면 말이다. 미국 유력 일간지 보스턴글로브는 2016년 미국에 본부가 있는 2000여 개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근무 여건과 직무만족도 등을 조사해 가장 일하고 싶은 10개 회사를 선정했다. 보스턴글로브의 분석에 따르면 일하기 좋은 회사들은 직원들의 스포츠 활동이 활발하며 직원들끼리 동료의식(camaraderie)이 다른 회사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점점 더 많은 회사가 직장 내 스포츠 활동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지원을 늘리고 있다. 설문에 참여한 매사추세츠주에 있는 기술 컨설팅 중소기업 ALKU는 직장 내에 농구, 야구는 물론 비인기 스포츠 탁구, 크리켓까지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지원한다. 이러한 전 직원의 활발한 스포츠 참여가 직원들이 강한 유대감을 느끼고 회사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ALKU 직원들은 말했다. 또한 꿈의 직장으로 꼽히는 구글이 완벽한 스포츠 시설을 갖추고 스포츠 활동을 보장하는 것은 모두에게 잘 알려진 일이다.

이처럼 스포츠가 공동체 의식 함양에 검증된 효과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에선 기업의 스포츠팀 운영과 지원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구성원 공동체 의식도 급속히 약해져 가고 있다. 스포츠팀 운영도 해봤고, 사내 스포츠 동아리 지원도 다 해봤는데 별 볼 일 없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과연 그런가?

외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프로 스포츠팀을 운영, 지원하거나 기업 이미지 제고를 위해 스포츠팀을 운영한 기업들은 많았다. 하지만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고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스포츠팀을 운영한 기업은 많지 않았다. 목적이 달랐는데 효과가 있었을 리 없다. 공동체 의식 함양을 위한 사내 스포츠 활동 지원과 스포츠팀 운영, 식상한 방식 같지만 사실은 대부분 써본 적 없는 방법일 것이다. 한번 시도해보면 어떨까?

필자소개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
필자는 서울대 체육교육과 학사와 석사를 거쳐 플로리다대에서 스포츠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7년간 재직하며 종신교수직(tenure)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과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에 8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 김유겸 | -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등 국제 저명 학술지 편집위원
    - 대한농구협회 상임이사
    - 플로리다주립대 7년간 재직, 종신교수직(tenure)
    - Journal of Sport Management, Sport Marketing Quarterly, Sport Management Review, European Sport Management Quarterly 등 국제 저명 학술지 80여 편의 논문 발표
    ykim22@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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