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로 본 트렌드: 『젊은 날의 초상』

요즘 젊은이의 방황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258호 (2018년 10월 Issue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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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디셀러가 못 된 베스트셀러,
『젊은 날의 초상』
1989년 11월 대학생 670명을 대상으로 한 ‘대학생 독서실태 조사 연구’에서 응답자들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으로 『어린 왕자』 『데미안』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죄와 벌』 『노인과 바다』 등을 꼽았다. 외국 작가와 외국 작품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인 가운데 한국 작가의 책으로는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이 10위권 안에 꼽혔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위에서 꼽힌 책 대부분은 필독서로 빈번하게 추천되고 있다. 그런데 유독 낯설게 보이는 책이 바로 『젊은 날의 초상』이다. 왜 그럴까? 헤르만 헤세,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등 외국 작가들이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는 데 비해 작가 이문열이 오늘날까지 엇갈리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한 가지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작가의 곡절과 관계없이 스테디셀러로 살아남았다. 작가 개인에 대한 호불호를 차치하더라도 『젊은 날의 초상』이 예전과 같은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젊은이의 방황’은 근대의 산물
사실 ‘젊은이의 좌절과 방황’이라는 이야기 자체는 유서 깊은 히트 상품이다. 이 이야기는 아무리 다양해 보여도 결국에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닌 젊은이가 삶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현실과 대결하면서 성숙해간다.

그렇다면 젊은이는 왜 방황하는 걸까? 이 방황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오늘날의 형태로 정립해 내놓은 최초의 소설 장르가 바로 ‘교양소설(Bildungsroman)’이다. 그런데 교양소설의 역사는 의외로 짧다. 교양소설의 원형으로는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50여 년에 걸쳐 쓴 『빌헬름 마이스터』라는 작품이 꼽힌다. 이 작품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 ‘빌헬름’은 ‘수업 시대’와 ‘편력 시대’를 거치며 다양한 인간군상과 사회상을 접하고 인생 경험을 쌓은 끝에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지금으로부터 약 190년 정도 전에 완성된 이 빌헬름의 이야기가 바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젊은이의 방황’ 이야기의 원형이다.

다시 말해 이런 식으로 젊은이가 방황하는 것은 괴테의 시대 전까지는 그리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젊은이의 좌절과 방황이라는 주제 자체를 떠받치는 토대는 근대사회라는 시스템이다. 신분, 지위, 부, 사회적 의무와 역할이 출신에 따라 주어지는 중세사회와 달리 근대에는 원칙적으로 이 모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주어진다. 근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누구나 노력한다면 자기 마음에 드는 성공의 사다리를 골라 오를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믿음으로부터 모든 면에서 성숙해진 장년기가 아닌 미숙하고 혼란스러운 청년기가 ‘황금기’라는 새로운 비전이 나왔다.

왜 젊은 날이 ‘인생의 황금기’일까? 자기 미래를 결정할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이 황금기에 왜 방황하는 것일까? 이 선택의 과정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미래를 제 손으로 결정해야 하는 이 무거운 고통에 대한 공감이 ‘젊은이의 방황’을 계속해서 쓰고 또 읽을 원동력을 제공한다. 괴테 이래로 ‘젊은이의 방황’이 대중문화의 스테디셀러가 된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급격히 바뀐 젊은이의 초상
젊은이의 좌절과 방황은 근대 이후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가 겪는 공통의 통과의례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젊은 날, 그 자녀 세대의 젊은 날, 손자 세대의 젊은 날…. 모두가 부정형의 미래를 앞둔 희망차고 불안한 ‘젊은 날’들을 겪는다. 『젊은 날의 초상』은 이처럼 근대 이후 보편화한 고통을 다뤘다는 점에서 분명 스테디셀러로 남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세대 간의 공감대를 만들면서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공통된 경험은 오히려 세대 간 불화를 불거지게 하는 원인이 된 것 같다. 경험의 외양은 비슷하지만 오늘날의 젊은이와 1980년대의 젊은이가 다르고, 오늘날 젊은이가 해야 할 선택이 1980년대 젊은이의 선택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차이가 애초에 『젊은 날의 초상』을 베스트셀러로 만들고, 1980년대만의 베스트셀러로 남게 한 결정적 원인이다.

『젊은 날의 초상』의 주인공 ‘나’의 연대기를 시간순으로 읽어보면 이렇다. 고등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나’는 방랑하다가 하나뿐인 형의 도움으로 어렵게 대학에 진학한다. 그렇게 애써서 들어간 대학에서 ‘나’는 공부는 안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자퇴서를 써버린다. 대학을 자퇴하고 나서는 시골 술집에서 머슴처럼 일하다가 자살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위해 다시 훌쩍 떠난다. 하지만 ‘나’는 무사히 안 죽고 돌아와 지금은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거느린 중산층이 됐다.

이 젊은 ‘나’가 겪는 방황은 철저하게 1960년대적인 방황이다. 1960년을 기준으로 대학생은 10만8000여 명에 불과한, 명실상부한 사회 엘리트 계층이다. 대학생 신분증이 나머지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증명, 지성인이라는 증명으로 통용되던 이 시절, 이들이 대결하는 현실이란 오늘날 대학생이 대결하는 현실과는 굉장히 다를 수밖에 없다. 지성인으로서 마주하는 선택, 즉 진보, 예술, 진리로 대표되는 정신적 가치에 대한 추구냐, 속물 같은 세상과 타협해서 타락하느냐가 ‘나’ 앞에 놓인 일대의 선택이었다. 이 고뇌는 냉소와 자기비하가 섞인 나르시시즘적 자기과시로 점철된 ‘나’, 속물근성에 대한 경멸과 은근한 갈망이 뒤섞인 ‘나’를 세상과 불화하는 영웅적 주인공처럼 보이게 한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는 문제가 마치 햄릿처럼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처럼 다뤄지는 이 소설을 오늘날 젊은 독자들이 읽는다면 웬 ‘진지충’이냐며 ‘극혐’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겠다.

1960년대 젊은이의 방황을 그린 이 소설이 1980년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사실은, 뒤집어 말하자면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대학생의 ‘젊은 날’은 비교적 동질적이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학생만을 기준으로 보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는 특권적 사회 계층으로서의 대학생의 지위가 확고했던 시기다. 이 시기 대학생 수는 1960년 10만여 명에서 1985년 136만여 명까지 아주 가파르게 불어났지만 경제적 성장에 힘입어 대졸자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웃도는 시기였기에 대학생의 특권적 지위는 비교적 안정되게 유지됐다. 즉 대학 졸업장을 따면 중산층으로의 진입이 거의 보장됐다는 말이다. 바로 이러한 안정성에 기대 1980년대 대학생들까지 1960년대 ‘나’의 방황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다. 대학 시절은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명실공히 엘리트로 인정받은 내가 앞으로 삶의 향방을 결정할 가치에 대해, 그리고 지성인으로서의 존재 양식과 의미에 대해 몰두하고 고민할 수 있는 황금 같은 여유와 실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후 대학생 수는 1990년이 되자 158만여 명으로 늘더니 1995년 221만여 명, 2000년 313만여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대졸자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다 못해 웃돌게 되면서 특권적 사회 계층으로서의 대학생의 지위도 사라졌고 과거 대학생들이 보냈던 “한때는 아픔이요, 시련이었으되 이제는 다만 애틋함이요, 그리움일 뿐인, 아, 그 기쁜 우리 젊은 날”도 함께 사라져갔다. 『젊은 날의 초상』에 열광하는 세대는 재생산되지 못했고, 이 소설의 성공도 그와 함께 멈췄다. 『젊은 날의 초상』 3부작 중 첫 번째로 『그해 겨울』이 나왔던 1979년 당시 이 소설을 강의했던 어느 교수의 회고에 따르면 소설을 함께 읽은 대학생들은 ‘안일하게 현실과 타협해 온 자신의 나약한 문제의식을 부끄러워’ 하기도 했고, ‘현실의 위압과 고통을 인내함으로써 드디어 극복되는 과정을 보며 감동했다’고도 한다. 과연 2018년의 젊은이들이 여기에 공감할 수 있을까.

미래 젊은이의 초상은?
대학 진학률이 70%에 육박하는 지금도 대학생으로 대표되는 젊은이의 방황 자체는 계속되고 있다. ‘젊은이의 방황’이라는 상품이 여전히 스테디셀러인 이유다. 사회로 진입하기 전 젊은 시절이 이후의 미래를 결정하는 황금기라는 사실은 ‘빌헬름’의 시대 이후로 변한 적이 없다. 하지만 그 선택과 방황의 내용은 ‘젊은이’의 지위 변동과 함께 다양하게 변화한다. 시대에 따라 급격하게 사회, 경제,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는 오늘날, 같은 나이라 하더라도 세대별로 삶은 완전히 다르게 경험된다. 2005년 방영됐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난 노처녀라고 온갖 질타를 받았던 김삼순은 겨우 서른 살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여성 평균 초혼 연령이 30세다. 우리는 10년 만에도 이처럼 강산이 변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 하물며 30년으로 계산되는 세대 간의 차이는 어떨까?

한 시대의 베스트셀러에 멈추고 만 『젊은 날의 초상』의 운명은 같은 현상도 다르게 볼 줄 아는 민감한 감수성을 주문한다. ‘젊은이의 방황’처럼 보편적인 그릇만 두고 보면, 나도 겪어봤으니 다 안다는 식으로, 내 경험을 곧바로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경험으로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그릇에 담기는 경험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뀐다. 과거의 젊은이와 지금의 젊은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에도 그랬으니 지금도 그럴 것이다, 혹은 그래야 한다’와 같이 일반화하는 사고는 기업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만연해 있다. 이런 조직은 새로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결코 환영받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세대가 전부 자기만의 ‘젊은이의 방황’을 경험했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로 표현된 내용은 다 달랐다. 1980년대 『젊은 날의 초상』이 있었다면, 1990년대에는 영화 ‘비트’, 2000년대에는 드라마 ‘학교’ 시리즈가 있었다. 아마 2018년 현재 ‘젊은이의 방황’을 가장 잘 표현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네이버 웹툰 ‘복학왕’ 정도가 아닐까? 오늘날 혹은 미래 젊은이들의 방황을 이해하는 섬세한 감수성이 새로운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필자소개 이경림 서울대 국문과 박사 plumkr@daum.net
필자는 서울대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을 공부했다. 신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문화와 문학 연구가 만났을 때 의미가 뚜렷해지는 지점에서 한국 소설사를 읽는 새로운 계보를 구성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국민대, 홍익대 등에서 강의했으며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한국 근대문학 자료 실태 조사 연구, 국립한국문학관 자료 수집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 연구 등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상아탑 너머에서 연구의 결실을 나누는 방식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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