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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의 지식경영

200년 전 엑셀 원리 활용한 茶山

정민 | 13호 (2008년 7월 Issue 2)
사람은 생각을 잘해야 한다. 우리는 생각이 경쟁력인 시대에 살고 있다. 좀 더 창의적인 아이디어, 한층 더 합리적인 생각, 더 인간적인 마인드로 무장해야 경영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조직이 살아나며 개인의 업무 능력이 신장된다. 하지만 창의적인 것을 엉뚱한 것과 혼동하거나 합리적인 것을 과학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인간적인 것을 좋고 좋지 않은 것과 구분하지 못하면 오히려 이러한 생각이 문제를 뒤엉키게 한다.
 
필요한 생각이 필요할 때 바로 떠오르면 좋은데, 이것이 뜻대로 안 되니 문제다. 생각의 힘은 하루아침에 신장되는 법이 없다. 생각은 힘이 세다. 그러나 힘은 기르지 않으면 생기지 않는다. 힘 있는 생각을 하려면 먼저 생각의 힘을 길러야 한다. 옛 사람 중에 생각을 잘 경영해서 힘 있는 삶을 산 사람을 하나 꼽으라면 서슴없이 다산 정약용 선생을 꼽겠다.
 
엑셀’ SW 원리 이용한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은 18년 강진 유배 생활 동안 500권에 가까운 책을 썼다. 한 달에 한 권 이상으로 써낸 것이다. 언뜻 불가능해 보이는 경이로운 성과 뒤에는 오로지 핵심을 장악하고, 과정을 효율화하는 생각의 힘이 있었다. 다산의 모든 작업은 핵심가치의 장악에서 시작되고 끝이 났다. 핵심가치를 장악하지 않고서는 그는 어떤 작업에도 손대지 않았다. 반대로 핵심가치를 장악하고 나면 동시에 10여 가지 일도 뒤엉킴 없이 척척 진행시켜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마무리 지었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 식목 사업을 마무리 짓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지난 7년간 인근 8개 고을에서 나무를 심었다. 이제 논공행상을 하련다. 심은 나무가 모두 몇 그루냐? 어느 고을이 나무를 가장 많이 심었는가?” 하지만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관련 공문을 실어오게 하니 소가 끄는 수레 하나에 차고도 넘쳤다. 나무를 심을 때마다 각 고을에서 올라온 공문이었다. 정조가 다산에게 말했다. “네가 좀 정리해 다오. 대신 분량이 책 한 권을 넘으면 안 된다.”
 
다산은 이 작업의 핵심가치를 먼저 물었다. 모두 몇 그루인가? 어느 고을이 가장 많이 심었는가? 질문은 단 이 두 가지다. 이 밖에 나무 종류별 숫자 파악도 중요하겠지만, 일단 이 작업에서는 아니다. 이후 다산의 작업 과정은 이랬다. 먼저 아전을 시켜 공문을 고을별로 분류했다. 여덟 덩어리 묶음이 나왔다. 다시 묶음마다 날짜순으로 정리했다. 정리가 끝나자 연도별로 작은 묶음을 구분했다.
 
다산은 아전에게 고을별로 빈 도표가 그려진 종이를 내준다. 세로 칸은 날짜를 적고, 가로 칸은 나무 종류를 적었다. 공문 한 장을 보고 빈칸을 채우고, 그 다음 장을 보고 그 다음 칸을 채웠다. 1년 단위로 집계를 냈다. 잠깐 만에 지금의 엑셀 작업하듯 고을별로 여덟 장의 집계표가 나왔다. 다시 다산은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세로 칸은 연도를 적고, 가로 칸은 고을 이름을 적었다. 앞서 만든 집계표를 연도별·고을별로 옮겨 적으니 수레 한 대분의 공문서가 한 장의 표로 정리되어 나왔다. 다산은 달랑 그 표 한 장을 들고 정조에게 보고했다. 정조가 말했다. “책 한 권 이내로 하라 했더니 종이 한 장으로 정리했구나. 기특하다.” 그리고 표의 결과에 따라 논공행상을 했다. 불과 23일 만에 모든 작업을 마쳤다.

핵심가치를 먼저 파악하라
다산의 전체 작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그 과정과 절차가 예외 없이 똑같다. 먼저 작업의 핵심가치를 파악하는 일이 먼저다. 이 일을 왜, 무엇 때문에 하는가? 구체적으로 얻으려는 결과가 무엇인가? 이 두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으면 결코 작업에 착수하지 않았다.
 
정조가 ‘기기도설’이라는 서양 기계를 그림으로 그린 책을 주고 거중기를 만들라고 했을 때도 다산은 먼저 그림을 확대해 그려놓고 분석을 시작했다. 핵심가치는 기계장치를 이용해 무거운 돌을 쉽게 들어 노동력 낭비를 막고 경비를 절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분석해 보니 서양의 기계는 모두 구리쇠로 톱니를 깎은 기어장치를 통해 동력이 전달되는 구조였다. 공인에게 물어보니 당시 우리 기술력으로 그러한 기어장치 제작은 어림도 없었다.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산은 핵심가치를 되물었다. 기어가 안 되면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 문제는 무거운 돌을 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도르래를 열 개나 연동시켜 작동되는 완전한 조선식 거중기 개발에 성공했다. 화성 축조가 끝난 뒤 정조가 다산을 불러 말했다. “너 때문에 경비 4만 냥을 절감했다. 고맙다.” 실제 다산이 만든 거중기는 서양은 물론 중국에서조차 그 비슷한 것을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인 것이었다.
 
천연두 관련 정보를 정리한 ‘마과회통’, 속담을 분류한 ‘이담속찬’, 목민관의 행동지침을 갈래지은 ‘목민심서’ 등 그의 모든 작업은 항상 핵심가치 파악, 자료 분석, 목차 정리, 카드 작업, 정보 재배치 순으로 이뤄졌다. 이렇게 정리된 자료는 일목요연해서 언제나 누구든지 필요한 정보를 꺼내 유용하게 쓸 수 있게 돼 있다. 다산의 경쟁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왜 하는가? 목표는 무엇인가? 어디에 쓰는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 질문을 앞세워 작업의 핵심가치를 장악하고 공략 목표를 정확하게 설정하되 실제의 쓰임새를 놓치지 않는다면 못할 일이 없고 안 될 일도 없다.
 
문제에서 문제를 알면 문제될 것이 없다
보통 사람들은 윗사람이 일을 시키면 왜 시키는지 따져 보지도 않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한다.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도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활용하지 않고 늘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 그러면서 일이 많다고 투덜대고, 쓸데없는 일을 시킨다고 불평한다.
 
문제는 문제 자체에 있지 않고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데 있다. 문제에서 문제를 알면 문제될 것이 없다. 질문을 장악하고, 문제를 손아귀에 넣으면 문제가 술술 풀린다. 어떤 문제가 닥쳐도 당황할 일이 없다. 새로운 문제 앞에 늘 허둥대다가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조직이 있고, 문제를 예견하고 문제를 앞질러 가는 조직이 있다. 후자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산 선생의 지식경영 노하우를 벤치마킹하라고 권하겠다.
 
필자는 한양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동대학원에서 고전문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미쳐야 미친다>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 <한시 미학 산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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