畵中有訓

西湖의 학이 늘 내게 돌아오듯…

193호 (2016년 1월 Issue 2)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양기성(梁箕星) <임포방학(林逋放鶴, 임포가 학을 풀어주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 종이에 채색, 33.5 x 29.4 cm, 일본 야마토분가칸

 

서호에 학이 날면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는 항주(杭州)라 한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천상에는 천당이 있고 지상에는 항주가 있다고 했다. 항주가 아름다운 이유는 사시사철 살랑살랑 잔물결이 흔들리는 호수, ‘서호(西湖)’가 있음이다. 조선시대 학자들은 서호의 풍경을 병풍으로 그려두고 감상했고, 그 풍광의 상상을 시로 읊었다. 우리 한강 마포 일대를서호라 부르면서 중국 서호의 근사한 운치를 누리고자 했다. 조선후기 학자 정약용(丁若鏞)서호는 항주의 눈썹()’이라 글을 지은 일도 유명하다.

 

항주 서호의 물결 위에 보트를 띄우면 운치가 넘칠 것이다. 실로 송나라의 학자 중에 서호를 좋아해 벼슬도 아니 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서호에 배를 띄우고 시를 지으며 늘그막까지 20년간 머물렀던 이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임포(林逋, 967∼1028). 소개하는 그림의 오른편 중앙으로 작은 배를 타고 오는 인물이 임포다. 이 그림이 실려 있는 시화첩 <예원합진>을 펼치면 그림의 옆면에 아래의 글이 명필가 윤순(尹淳)의 서체로 단정하게 적혀 있다. <세설신어>의 글을 옮긴 것이다.

 

임포가 고산(孤山)에 은거하면서 항상 학() 두 마리를 길렀는데, 이들을 풀어주면 구름 속으로 날아들어 오래 머물다가 다시 새장으로 돌아왔다. 임포는 늘 작은 배로 서호에 노닐었다. 손님이 왔는데 임포가 강에 머물고 있으면 동자가 문에 기대어 앉아 새장을 열어 학을 풀어주면, 한참 있다 임포가 반드시 작은 배를 노 저어 돌아왔다. 학이 날면 손님이 왔다는 뜻으로 여겼던 것이다.

 

임포는 서호의 고산에 머물렀다. 임포를서호처사라 혹은고산처사라 부르는 이유다. 임포는 그곳에서 매화를 키웠고 또한 학을 길렀다. 신기하게도 임포가 키운 학은 풀어주어도 날아올랐다가는 임포에게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임포에게 손님이 온 사실을 알려주는 심부름꾼 역할까지 했다. 동자가 새장을 열면 학은 서호 위로 날아올라 빙빙 돌고는 되돌아왔을테니 말이다. 서호 위로 학이 날면 임포는 배를 돌려 고산의 숙소로 돌아와 먼 걸음 온 손님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학이 돌아온다는 말은

 

학은 목과 다리가 가늘어 길고 자태가 우아하며 흰 몸체에 검은 깃의 어울려 그 모습이 말쑥하다. 정수리의 벼슬이 붉은 단정학(丹頂學)은 최고로 여겨졌다. 학은 고대로부터 신선계의 새로 일컬어졌다.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을 날았고, 신선이 된 뒤에 학으로 변신해 고향을 방문했다는 전설이 만들어졌다. 고구려 고분벽화 천장에 학을 타고 훨훨 나는 신선이 있고, 당나라 무덤 벽화에도 하늘을 나는 학이 그려져 있다. 신선계의 학은 깃털 빛이 변해 누런 황학(黃鶴), 푸른 청학(靑鶴), 검은 현학(玄鶴) 등이 된다고 믿어졌다. 조선시대 창덕궁 실내 벽화에 황학과 청학이 그려져서 왕실과 국가의 무궁한 번영을 기원하는 매체가 됐다. 중국의 황실에서나 조선시대 문인들의 정원에서 학을 키우는 문화는 전설적인 학의 속성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일이다. 조선후기 회화작품에서 정원에 학 한두 마리가 멋지게 서 있는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학을 키우는 양학(養鶴)의 실상을 알면 누구라도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조선후기 학자 홍만선(洪萬選)이 정리한 각종 동식물의 양육법을 보면 대개 야생의 새를 키우려면 그 알을 훔쳐다가 닭이 품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특히 학의 경우는 영양이 부족해 병들게 되면 쥐와 뱀을 먹여서 영양보충을 해줘야 한다니 고상하고 말쑥한 학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학이 날아 도망가지 못하도록 깃털을 잘라주어야 했다. 학이 정원의 나무 그늘을 걷는 신선계의 분위기를 만들려면 이러한 노력 없이는 불가하다는 말이다.

 

 

임포의 학이 날아다니는 것은 날개를 자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임포는 학을 놓아주었으나 학은 임포에게 되돌아왔다. 학이 돌아온다는 말은 여러 가지 놀라운 의미를 수반한다. 적어도 임포는 완벽하게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였음을 말해주고 학과 맺는 어떤 관계를 말해준다.

 

기심(機心)이 없어야

 

옛 문인들은 누구라도 국가에서 주관하는 과거시험을 통과하고 관료가 돼 가문을 빛내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꿈을 이루고자 했다. 그런데 그들이 남긴 시문을 보면 그 주제로은거가 주를 이루니 아이러니해 보인다. ‘은거는 숨어사는 것이며 관료로서의 현실을 초월해 세상을 잊고 사는 것이다. 대개 은거의 공간은 산수 혹은 강호로 표현되는 비현실적 공간이다. 말하자면 관료로 살면서 관료의 정치적 의도와 행동에서 벗어난 삶을 소망했다고 할 수 있다. 벼슬을 내려놓기는 어려웠기에 은거에의 소망은 대개 시문이나 그림에서 많이 표현됐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은거를 완벽하게 해주는 자세는 기심(機心)이 없는 것이다. 기심이란 무언가를 의도하는 마음이며 일종의 욕심이다. 사람이 처세(處世)하며 기심이 없기란 불가능하다. <열자(列子)>에 갈매기와 놀았다는 한 남자는 그렇지 않았다. 남자는 바닷가에서 갈매기와 항상 놀았다. 다만 남자의 아버지가 갈매기 고기를 먹고자 해 남자가 갈매기 한 마리 붙잡아오겠노라 약속한 후로 곁에 오는 갈매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고 한다. 남자에게 기심이 생긴 것을 갈매기가 느꼈기 때문이다.

 

임포의 학들은 풀어줘도 되돌아온다. 그림을 보면 배가 뜬 서호 위로 학이 날고 있다. 임포의 새장으로 돌아갈 몸짓이다. 학이 임포를 떠나지 않은 것은 임포의 기심 없음, 임포의 맑은 인격을 증명한다.

 

누가 나에게 돌아올 것인가

 

사람들이 임포를 일러매처학자(梅妻鶴子)’라는 재미있는 호칭을 붙여줬다는 일화가 <송사(宋史)>에 전해진다. 매화꽃을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노란 뜻이다. 가족은 멀리 갔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니 과연 임포의 학은 임포의 자식쯤 된다는 비유가 그럴 듯하다. 다만 여기서 생각할 것이 있다. <예원합진>이라는 조선왕실 그림책에 임포와 학의 그림을 그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남효온(南孝溫), 이황(李滉) 등 대학자들의 문집에서 조선말기 여러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임포가 은거하는 그림을 감상한 시문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민화류 인물도에도 임포를 그린 화면이 적지 않다.

 

오로지 매화와 학이 재산이었던 임포는 외롭고 가난한 선비였고, 벼슬도 없고 다복한 가정도 없는 궁색한 인생의 소유자였건만, 사람들은 임포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말할 수 없는 풍요로움을 느꼈고 그의 놀라운 능력과 행복을 감지할 수 있었다. 너울너울 멋진 날갯짓으로 돌아오는 학의 존재가 거의 모든 사람에게 불가능해서만이 아니다. 가족이 나에게 돌아오듯, 학이 임포에게 돌아오듯 나에게 돌아올 멋진 이가 누구인가. 이해타산과 속임수가 없었던 투명한 관계로 오래 맺은 사람이 있다면, 온전한 신뢰를 유지한 이가 있다면, 무엇보다 이러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려 깊은 내면과 덕()을 갖춘 나 자신이 있었다면, 누군가는 나에게 항상 돌아오리라. 학이항상()’ 임포에게 돌아오듯 나에게 돌아올 사람. 옛 사람들도 임포의 학 그림을 보면서 부지불식 간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고연희 서울대 연구교수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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