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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를 위한 시(詩)적 상상력

박완서 선생은 왜 봄꽃에 출석을 불렀을까?

황인원 | 154호 (2014년 6월 Issue 1)

Article at a Glance – 혁신, 인문학

아이들이 어른보다 기발한 생각을 더 많이, 더 쉽게 하는 이유

모든 사물을 자기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

시 창작의 또 다른 기법인의인화

사물이나 자연을 나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그 의미나 행동을 파악

의인화가 창조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

모든 사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사물 중 가장 우수하고

좋은 사물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편집자주

()는 기업 경영과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는 뻔히 보여도 보지 못하는, 혹은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알려주는 지혜와 통찰의 보고(寶庫)입니다. 현대 경영자에게 무한한 창조적 영감을 주는 시적 상상력의 원천을 소개합니다.

언젠가 TV를 보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출연해 자신이 쓴 이 동시를 읽고 있었다. 내용은 보시다시피 반찬들이 어린이의 입에 들어가기 위해 각자의 재주를 뽐내면서 어린이의 눈에 들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 동시를 듣고 있던 연예인들은 감탄을 했다. 어떻게 그렇게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기발하다고 생각한 그 내용은 사실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반찬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나 행동을 서술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은 모든 사물을 이처럼 자기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들이 어른보다도 기발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사물이나 자연을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런 사고 능력은 정답이 정해져 있는 교육을 받으면서 사라지고 만다.

 

어른이 돼도 이런 능력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시인들이다. 시인들은 자신이 쓰고자 하는 시적 대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관찰하는 데 익숙하다. 사람으로 만든다는 것은 곧 의인화한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시인들이 시를 쓰기 위한 관찰의 기초이자 생각의 기초가 시적 대상을 사람으로 만드는 의인화라는 얘기다.

 

의인화는 관찰의 기초이자 생각의 기초

, 그러면 이제부터 시인들의 시 창작 특급비밀의인화얘기를 해보자. 필자는 얼마 전 출간한 책 <감성의 끝에 서라>에서도 이 부분을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의 경우와 도종환 시인의 예를 들어 설명한 바 있다. 그 부분을 정리해서 잠깐 인용하겠다.

 

박완서 선생은 봄이 되면 마당에 나가 자신이 심어 놓은 봄꽃의 출석부를 만들어 꽃의 출석을 불렀다고 한다. “해당화, 산수유, 매화, 개나리, 진달래, 목련….” 이런 식으로 말이다. 노 소설가가 작은 종이를 들고 꽃 이름을 부르면서 여기저기 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선하지 않은가. 아름답게 보이려고 박완서 선생이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자연을 사람으로 만들면 이런 아름다움을 연출할 수도 있다.

 

더불어 도종환 시인의 대표작 중에는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가 있다.

외환고 부족으로 인해 IMF(국제통화기금) 지원을 받으면서 나라 경제가 곤두박질치던 시절, 당시 직장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로 뽑혔던 작품이다. 시인은 이 시를 창작하게 된 배경을 말한 적이 있다.

 

시인이 길을 가고 있었는데 문득 길 한쪽에 꽃이 한 무더기 피어 있었다. 그런데 그 꽃 중 하나가 코스모스처럼 생겼는데 아닌 것도 같고 해서저 꽃이 무슨 꽃일까하는 궁금증이 생겨 꽃으로 다가갔다. 마침 그때 바람이 살짝 불었는데 꽃이 휘청하면서 흔들렸다. 시인은 그 장면을 보고아니, 바람이 살짝 불었는데도 이렇게 흔들리네. 그러면 사는 동안 내내 엄청나게 흔들렸다는 거네. 힘들었겠다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잎사귀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비가 온 후 작은 바람에도 휘청하는 꽃이 물까지 달고 있었던 것이다. 이 고통을 이겨내야 꽃이 핀다고 생각했다.

 

보통 우리는 꽃이 흔들려도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물방울이 맺혀 있어도힘들겠구나, 고통을 이기고 있구나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인은 꽃을 사람으로 대하는 자세가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힘들겠다, 고통을 이기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것이 의인화를 통한 관찰과 사고다.

 

그렇다면 그동안 얘기했던 일체화와 의인화는 어떻게 다른가. 일체화는 내가 시적 대상인 사물이나 자연 속으로 직접 들어가거나 사물이나 자연을 나에게 가져와 현상 속에 숨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의인화는 사물이나 자연을 나 아닌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그 의미나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다. 내가 사물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사물을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꽃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시인은 사람이 흔들리는 것으로 여긴다. 흔들리면서 어떤 마음일까를 읽는다. 그러니, 힘들겠구나, 고통을 이기고 있구나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운동화를 의인화하면?

과연 이런 시인들이 사용하는 의인화 관찰과 사고가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 운동화를 생각해보자. , 운동화를 사람으로 만들고 사람의 생각을 집어넣어보자. 운동화가 무슨 말을 할까? “난 맨날 무거워 죽겠어. 내 주인은 너무 무거워. 그 무게로 나를 신고 다니는 거야. 과연 주인은 자신의 무게를 알기나 해? 내가 그 무게를 짊어지고 다녀야 한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 이러면서 불만을 토로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몇 가지 새로운 개념의 운동화를 생각할 수 있다. 체중을 알려주고 자신이 정해놓은 몸무게를 넘어가면삑삑하면서 경고음을 내는 이른바 다이어트 운동화, 또는 소리 나는 운동화를 생각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해보면 말하는 운동화가 돼 길을 안내하기도 하고, 발을 통해 건강을 체크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수시로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운동화도 가능하지 않을까.

 

황당하다 싶은가. 이번에는 건물을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살아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하는 움직임이 있다. 숨쉬고,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건물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건물이 숨쉬고,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건물이니 이동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제자리에서 사람이 몸을 좌우로 운동하듯 움직이는 것은 가능하다.

 

사람이 숨을 쉰다는 것은 좋은 공기를 몸 안으로 빨아들이고 몸 안에 있는 나쁜 공기를 뱉어내는 것이다. 그러면 건물이 스스로 좋은 공기를 건물 안으로 빨아들이고, 건물 안의 나쁜 공기는 밖으로 배출하는 기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자동 공기 정화장치가 그것 아니겠는가. 주인이 외출에서 돌아오고 있으면 건물이 그것을 보고, 우리 주인 돌아오는 구나. 문 열어야겠다하고 자동 인식 시스템을 갖춰 알아서 문을 열어주고, 주인이 외출하다가문 좀 닫아라’ 하고 말하면 그 말에 따라 자동으로 문이 닫히는 시스템을 갖춘 건물을 만들 수 있다.

 

영국의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2007 4월에 이 같은 시스템을 예고한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새로운 무선의 기계가 사람뿐 아니라 수많은 사물과 연결돼 우리 주변에 말없이 존재했던 사물이 말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조만간 사물과 인간, 기계와 인간, 기계와 기계의 대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이른바사물인터넷(IoT)’의 시대를 뜻한다. 7년이 지난 지금, 이런 시스템은 우리 생활 속에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사물을 의인화해 살아 있게 하면 이처럼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도 가능하다.

 

건물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우리가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건물 외벽도 옷을 갈아입는다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계절에 따라, 온도 변화에 따라 건물 외벽 색깔이 저절로 바뀌는 건물도 나올 수 있다. 시멘트 회사에서 특강을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실제 계절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시멘트가 이미 개발됐다고 한다. 아직 실용화되지 못하는 이유는 비용이 많이 들어 비용을 줄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물을 사람으로 만들면 이렇게 모든 아이디어를 쉽고 빠르게 얻어낼 수 있다. 의인화가 창조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모든 사물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사물 중 가장 우수하고 좋은 사물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아니겠는가. 간혹 그게 뭐 아이디어가 되겠나 싶지만 실제 우리 주변의 사물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색다른 창조 아이디어로 이어질 수 있다.

 

스위치 온은 ‘Don’t eat’

전기 스위치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작동시켜 보면 어떨까. 어떤 사람이 전기 스위치를 고용했다. 코를 만지는 순간 스위치는 전선의 전기를 끌어들이는 일을 시작한다. 한참을 움직이다 보면 배가 고파진다. 고용주는 전기 스위치에게 밥을 사줘야 한다. 밥을 사주려면 돈이 들어간다. 고용주에게 한 사람 식사비밖에 없다면 스위치를 작동시킴과 동시에 고용주는 밥을 굶어야 한다. 그래서 스위치를(on)’시킴과 동시에 ‘Don’t eat’이 된다. 스위치를 내림과 동시에 ‘eat’이 된다. 미국 금융위기 때 미국인들이 갑자기 자신이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전기를 절약하기 위해 이처럼 스위치에다 ‘Don’t eat’과 같은 말을 붙여 놓았다고 한다. 전기 스위치의 온이 ‘Don’t eat’이라는 또 하나의 단어로 의미가 바뀌어 다가올 수 있었던 까닭은 사물을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에 따른 연상 작용을 활용한 덕분이다.

 

이 시를 보자. 신문이 벤치에 앉아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능한 일인가. 신문은 사물이니 오라고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시인은 오라고 한단다. 그러면 신문은 왜 시인에게 오라고 손짓을 할까. 벤치로 앉아서 자신을, 자신의 몸에 담긴 세상을, 시대를 읽으라는 게 그 이유다. 그래서 신문의 말을 알아듣고 신문을 펼쳐 세상을 읽는다. 이때 은행잎들이 자꾸 신문 위로 떨어져 앞을 가린다. 글씨를 가려 세상을 읽을 수 없게 하면서 말을 한다. 뭐라고 말을 하는가. “지금 읽을 건 가을이라는 계절과 자연이야하는 것이다.

 

시에서는 이처럼 신문이나 은행잎이 사람처럼 말을 하고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사물이나 자연과 함께 섞여서 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마음인지를 알면 시대를 읽을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는 통찰도 가능해진다. 어찌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황인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moonk0306@naver.com

필자는 성균관대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일보와 경향신문 기자와 경기대 국문과 교수를 거쳐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시 전공자와 경영학자가 함께 만나 창조 시대를 이끄는 문학경영학회를 만드는 게 꿈이다. 저서로 <시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시 한 줄에서 통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감성의 끝에 서라(공저)> 등이 있다.

  • 황인원 | - (현) 문학경영연구원 대표 및 원장
    - (전) 중앙일보/경향신문 기자
    - (전) 경기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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