書中有訓

直言의 기술

128호 (2013년 5월 Issue 1)

 

 

편집자주

미술사와 문학 두 분야의 전문가인 고연희 박사가 옛 그림이 주는 지혜를 설명하는 코너畵中有訓(그림 속 교훈)’을 연재합니다. 옛 그림의 내면을 문학적으로 풍부하게 해설해주는 글을 통해 현인들의 지혜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황실 난간을 부러뜨린, 주운(朱雲)

주운이 황제에게 아뢴다. “상방참마검(尙方斬馬劍)을 빌려주십시오. 제가 간신의 머리를 베어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을 가르치겠습니다.” ‘상방참마검이란 한나라 황실 내의 관청 상방에서 제작되며 말을 벨 때 사용하는 무시무시한 칼이다. 황제가 흠칫 놀라 묻는다. “누구인가?” 주운은 답하기를장우(張禹)입니다.” 장우가 누구인가. 황제 성제(成帝)의 스승이요, 황제가 믿고 따르는 대신이다. 황제는 화가 치밀어 소리쳤다. “나의 면전에서 나의 스승에게 욕을 보이다니 저놈은 당장 죽어 마땅하다!” 신하들은 주운을 끌어내려했다. 그런데 주운은 직언을 그치지 않고 난간을 꼭 붙들고 버티느라 황실의 난간이 부러지고 말았다. 이후에 사람들이 부러진 난간을 수리하러 오자 황제는 그대로 두라고 했다. 주운의 용기와 공헌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 이야기는 한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한서(漢書)>의 인물열전 중주운편에 실려 전한다.

 

조선 후기 왕실자제들을 위한 교육용 그림책으로 추정되는 <예원합진(藝苑合珍)>주운절함(주운이 난간을 부러뜨리다)’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누가 그렸는지 명시되지 않았지만 18세기 전반기 화원화가의 솜씨다. 화가는 중국 한나라 황실을 상상으로 그렸다. 황제 뒤에 드리운 단폭 병풍에 물결이 가득 그려진 것이 인상적이다. 그림 속 주운은 부러진 붉은 난간을 붙들고 서있다. 죽기를 무릅쓴 정의로운 사나이 주운이 펼쳐낸 희대의 장관이다.

 

 

주운의직언

주운의 이야기는 멋진 영웅소설의 한 장면처럼 단순하고 성공적이다. 직언에 관련된 중국의 여타 고사들이 내포한 복잡한 현실성이 없다. 은나라 말에 간언을 고한 충신 비간은 심장이 도려내어지는 잔혹한 죽음을 당하였고, 주나라에 들어 충심의 직언을 고하던 왕자 백이와 숙제는 거절된 후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죽었다. 초나라 대부 굴원은 진심의 직언을 고하다가 추방당해 산천을 떠돌다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결했고, 사마천은 옳은 의견을 내다가 주변과 황제의 분노만 입어 거세(생식기가 잘림)의 형벌을 감수한 뒤 <사기> 저술에 몰두했다. 직언의 용기로 나섰다가 인생을 망치거나 몸을 크게 다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고사에 허다하다. 감언이설로 다복의 천수를 누린 간신들의 예는 더욱 많다. 아예 입을 꾹 다물고 나라 경영의 요구를 한사코 거절한 사람들이 오히려 존경받았다. 큰 공을 세운 뒤 조정에서 물러난 범려, 황제의 부름을 한사코 거절하고 어부로 생을 마친 엄자릉 등은 남다른 현자로 칭송됐다. 조정으로 들고 나거나 함부로 입을 여는 어려움의 이야기들 속에는 제 몸 하나를 보신(保身)하려는 개인적 처세 문제가 교묘하게 얽혀 있다.

 

베이징대의 철학교수 리쩌허우(李澤厚)는 이를 일러 도가의 생명존중사상과 유가의 치국평천하 의무의 상호보완으로 설명했지만 공리적·사회적 의무의 차원에서 논하자면 윤리의 논리는 단순하지 않다. 옛 분들은 주운과 같이 자신의 생명을 돌보지 않고 상관에게 나아가 올곧게 말하는 것을 일러직언(直言)’ 혹은직간(直諫)’이라 했고 직언·직간을 감행한 신하를 일러직신(直臣)’이라 했다. 직신은 충신의 높은 반열에 들었다. 조선의 많은 선비들은 주운의 이야기에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반성의 시를 지었다. 주운 같은 신하가 되고자 하는 자기표현의 방법이었는지, 실제의 바람이었는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혹 일부의 신하들은 조정에서 떡 버티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치지 않으면서저희는 난간이 부러지도록 물러서지 않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니 가소롭다. 정작 주운 같은 직신이 나오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황제의경청

주운 같은 신하가 나온다 하여도 황제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더욱 큰 문제다. 주운이 아무도 하지 못하는 직언을 감행했던 그 순간에 황제는 화가 치밀어 주운을 죽이라고 소리쳤다. 아랫사람이 간하는 말에 분노가 일면 윗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말이 마음에 들거든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지 염려하시고, 그 말이 마음에 거슬리거든 도리에 맞는가를 생각하십시오.”

 

황제를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중국고대의 재상 이윤(伊尹)의 말이다. 성현 공자(孔子)도 비슷한 말을 했다. 듣기 싫은 말이라도 옳거든 고치라고. 여러 사람의 위에 선 자는 그가 듣는 말이 그의 마음에 꼭 맞을 때, 혹은 몹시 거슬릴 때 반드시 신중한 판단을 취해야 한다. 황제가 분노하여 죽이라고 소리치는데도 황제의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난간을 붙들고 늠름하게 맞서는 인물은 천년 역사 속에 주운뿐이기 때문이다.

 

일개 소신(小臣) 주운이 대신(大臣)을 공격하고도 충신이 돼 칭송을 듣게 된 역사가 만들어지고 주운이 영웅적인 사나이로 기억되는 이야기는 주운의 말을 알아들고 존중했던 한나라 황제의 공적이다. 주운 같은 존재를 바라는 상관이라면 훌륭하다 할 수 있다. 정조(正祖)가 아직 세자이던 시절, 주운을 그린절함도를 보고 느낌이 있어후인들은 두려울 줄 알지라. 그가 남긴 공적이 천추역사에 그림으로 전해진다네라고 시를 지었다. 그러나 정조가 학자들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자신의 생각으로 고집을 부린 것이 그의 통치에 드러나는 가장 커다란 하자로 남았다. 부하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상관, 아이의 말을 제대로 들을 줄 아는 부모, 학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선생님이 되기란 쉽지 않다. 사실상절함도는 지도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림이었다.

 

두보의 시, 통탄과 감개

<예원합진>주운절함이 그려진 책의 왼쪽 면에는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의 시() ‘절함행(折檻行)’ 전편이 적혀 있다. <한서>의 일화를 옮기지 않고 두보의 시로 이 이야기를 소개한 것은 이야기의 교훈을 두보의 시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두보의 시 4구절 중 끝 2구절이 다음과 같다.

 

천 년에 드문 사람이 주운이라, 부러진 난간이 헛되이 높고 높구나. 누공은 말 없고 송공은 말하지. 황제가 직신을 받아들인 것을 항상 기억한다고.

 

천 년(千年)이란 시간은 한나라의 주운으로부터 당나라의 두보에 이르는 시간이 아니라 역사를 망라하는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부러진 난간이 높고 높은데 헛되고 고독하다니, 사람들은 주운을 우러를 뿐 그처럼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실상, 시인 두보는 당나라 조정의 신하들에 대한 통탄의 마음을 이처럼 표현했다. 누공과 송공의 이야기는 해설이 구구하지만 이 구절로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신하가 아닌 황제다. 직신을 수용했던 한나라 황제 선제의 수용력이 역사 속에 새롭고 놀랍기 때문이다.

 

주운절함의 이야기는 근대기 이전에 널리 인용되고 활용됐다. ‘주운절함도혹은절함도라 불린 그림이 중국의 황실과 조선의 왕실에서 끊임없이 그려졌다. 용기 있고 정의로운 부하와 지혜롭고 신중한 상관은 상보적 존재다. 객관적 정의를 규명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달콤한 덕담이 아니라 쓰고 바른 말이 통하는 관계 속에서 공리의 정의가 규명되고 조직이 경영돼야 한다. 이 그림의 환상은 어려움과 가능성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고연희 이화여대 강사 lotus126@daum.net

필자는 한국한문학과 한국미술사로 각각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이화여대 한국문화연구원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시카고대 동아시아미술연구소의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화여대, 홍익대, 연세대, 덕성여대 등에서 강의했다. 조선시대 회화문화에 대한 문화사상적 접근으로 옛 시각문화의 풍부한 내면을 해석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조선후기 산수기행예술 연구> <조선시대 산수화, 필묵의 정신사> <꽃과 새, 선비의 마음> <그림, 문학에 취하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 등의 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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