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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오경 총론

仁의 고향 한국, 이제 유학에서 미래를 찾자

이기동 | 109호 (2012년 7월 Issue 2)




1.
인문학이란?
최근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기이한 현상 중의 하나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꼽을 수 있다. 대학들은 사회인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좌를 운영하느라 분주하고, 출판사들은 인문학에 관한 책들을 출판하느라 바쁘다.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사람들이 그간 물질적 가치를 향해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정신적 가치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정신적 가치를 잃어버리면 마음이 황폐해진다. 뿌리가 망가지면 잎과 가지가 일시에 시들어버리듯 마음이 황폐해지면 사람들의 삶이 전반적으로 위기 국면을 맞이한다. 오늘날 서구의 경제위기를 시발점으로 하여 전 세계에 불어닥치고 있는 총체적 위기는 사람들이 마음을 챙기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다시 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인문학이 바로 마음을 챙기는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인문학이란 대부분 서구의 물질주의를 바탕으로 성립된 것이기 때문에 마음을 챙기는 학문이라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오히려 실망이 더 커진다. 그러면 마음을 챙긴다는 것은 무슨 말이며 마음 챙기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인문학이란 어떤 학문일까?
 
마음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진심(眞心), 양심(良心), 공심(公心), 욕심(慾心), 도심(道心), 사심(私心), 사심(邪心) 등등 수도 없이 많다. 이런 마음들을 가꾸고 챙기는 것이 다 마음 챙기기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 중에서 진심(眞心), 양심(良心), 공심(公心), 도심(道心) 등을 챙기는 것만이 마음 챙기기에 해당한다. 이런 마음은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마음이라고 한다. 우리는 한마음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외국인들은 쓰지 않는다. 이 한마음이란 말에는 한국인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한마음을 중시했고 이 한마음을 챙겨왔다. 우리가 싸울 때 흔히 하는 말 중에 “이놈아. 네가 인간인가? 제발 인간 좀 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외국인들에게 하면 큰 일이 날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그들은 바로 거울을 꺼내 얼굴을 보고는 “내 얼굴이 너에게는 원숭이로 보이느냐”라고 하면서 거칠게 항의할 것이다. 심지어는 총알이 날아올 정도의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이 말을 하는 것은 얼굴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을 가졌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이때 말하는 인간의 마음이 바로 한마음이다. 한마음을 가지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다. 사람이 짐승으로 살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고 그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동굴에 들어가, 햇빛을 보지 않고, 마늘과 쑥을 먹으며, 한마음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로 곰이 동굴에 들어가 인간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곰이란 곰처럼 돼 버린 인간을 말한다.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한마음을 챙겨왔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때는 불교를 통해서 한마음을 챙겼고 조선시대 때는 유학을 통해서 한마음을 챙겼다. 한마음은 모두의 마음이기 때문에 한마음을 챙길수록 사람들은 모두 하나가 된다. 모두 하나가 되는 마음은 따뜻하다. 모두 하나가 되면 ‘나’와 ‘너’가 ‘우리’로 바뀐다. 한국인들의 마음이 따뜻한 것은 이 때문이고, 한국인들이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늘날 한류문화의 붐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한국인의 따뜻한 마음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때에는 차가운 마음을 가진 냉철한 사람이 유리하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경쟁력이 약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후진성을 면치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오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 황폐해져 심각한 문제가 생기고 난 뒤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은 차가워진 마음을 달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문화 예술이 각광을 받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사람들이 인문학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인문학의 핵심은 이 한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그런데 한마음을 잘 챙기는 사람들이 한국인이기 때문에 오늘날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인문학은 한국학으로 귀결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인들은 좋은 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문제점도 또한 많이 가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정리를 잘하지 못하고 마무리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창의력이 왕성하고 아이디어가 뛰어나지만 그것을 정리해 실용화하는 능력은 떨어진다. 창의력이나 아이디어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지만 정리하는 일은 몸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등한한다. 한국인들이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인의 한마음도 한국인의 손으로 정리되지 못했다. 대신 이웃 나라 중국의 공자에 의해 정리됐다. 공자 사상의 핵심은 인()이다. 인은 공자가 만들어낸 사상이 아니다. 우리 조상들이 가지고 있던 한마음을 정리한 것이다. 유학은 중국에서 만들어져서 한국에 수입된 것이 아니다. 원래 우리의 것이 중국으로 흘러들어가 공자의 손에 의해 정리됐다가 다시 우리에게로 돌아온 우리의 사상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찻잔 문화와도 같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용하는 찻잔은 그 제조법이 일본에서 들어왔다. 그러나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임진왜란 때 건너간 우리의 도공들에게서 비롯됐다. 우리의 도공들에게서 비롯된 우리의 문화가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정리된 뒤에 되돌아온 것이 오늘날 우리들의 찻잔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찻잔 문화가 그냥 그대로 우리의 것은 아니다.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의 방식으로 변질되고 포장된 일본의 문화다. 일본의 찻잔 문화에 포장돼 있는 일본의 요소를 걷어내고 난 뒤에 남는 원형, 그것이 우리의 찻잔 문화다. 한국인과 유학의 관계도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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