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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

파리의 우울 - 보들레르, 걸인과 동등해지다

강신주 | 76호 (2011년 3월 Issue 1)

편집자주

21세기 초경쟁 시대에 인문학적 상상력이 경영의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DBR ‘CEO를 위한 인문고전 강독코너를 통해 동서고금의 고전에 담긴 핵심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사상과 지혜의 뿌리가 된 인문학 분야의 고전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구걸하는 사람들이 대도시의 풍경이 된 지 오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공중전화 부스나 안내판을 지나치듯이 그들을 스쳐지나가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구걸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가슴을 후비고 들어올 때가 있다. 그들의 눈은 외치는 것 같다. “같은 인간이면서 나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에게는 결단의 순간이 다가온다. 주머니를 뒤져서 동전 몇 푼이라도 그의 손에 쥐어주거나, 아니면 매몰차게 돌아선다. 적선을 통해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덜어낼 수 있다. 매몰차게 돌아서는 경우에도 자신의 양심을 달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읊조릴 수 있다. “거지에게 적선을 하면 안 돼.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그는 계속 구걸을 할 테니 말이야.”

구걸하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이 이 두 가지 밖에 없을까? 보들레르(Charles-Pierre Baudelaire, 1821-1867)는 제3의 행동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가 카바레에 들어서려고 할 때, 한 거지가 자신의 모자를 내게 내밀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잊을 수 없이 특별한 것이었다. 만일 정신이 물질을 움직이고 최면사의 눈이 포도들을 익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의 시선은 왕권을 붕괴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 바로 나는 거지에게 달려들었다. 단 한 번의 주먹질로 나는 그의 한 눈을 갈겼다. 눈은 순식간에 공처럼 커졌다. 그의 두 이를 부러뜨리는데 나는 내 손톱 하나를 부러뜨렸다. 태어날 때부터 연약하며 권투에도 거의 숙달이 되지 않아, 충분히 강하지 못함을 깨달은 나는 이 늙은이를 재빨리 때리기 위해, 한손으로는 그의 옷깃을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목을 움켜쥐고 벽에 대고 그의 머리를 힘차게 박기 시작했다. - <파리의 우울>

보들레르는 19세기 파리라는 대도시를 온몸으로 겪어낸 시인이다. 사실 생애 대부분을 파리에서 지냈던 보들레르이기에 그의 문학적 감수성은 파리와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풍경을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가 두 권의 위대한 걸작, <악의 꽃(Les Fleurs du Mal)>(1857년 출간)이란 운문시집과 <파리의 우울(Le Spleen de Paris)>(1869년 출간)이란 산문시집이다. ‘악의 꽃이란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대도시 파리는 그에게는 매춘부와 같은 곳이었다. 매력적이지만 돈이 없다면 안을 수 없는 매춘부처럼, 대도시 파리도 돈이 없을 때는 즐길 수 없는 곳이었다. 당연히 파리는 우울한 곳일 수밖에 없다. 돈이 있을 때 매력적인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우울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곳, 그곳이 바로 대도시다. 매춘부에게 다 털려버린 취객처럼 파리에서도 구걸하는 사람은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던 시인으로서 보들레르가 구걸하는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구걸하는 사람에게 값싼 동정을 하기보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엽기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마치 오갈 데 없는 개를 패듯 구걸하는 사람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다. 보들레르 본인이 육체적으로 건강했으며, 동시에 그가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했기 때문은 아니다. 사실 그는 선천적으로 병약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도 궁핍했던 사람이다. 왜 그는 구걸하는 사람에게 가혹 행위를 서슴지 않았던 것일까? 그는 동전 몇 푼으로 양심을 사려는 사람도 아니었다. 나아가 그는 거지를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을 걱정하는 척 하는 궤변가도 아니었다. 보들레르는 구걸하는 사람을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깨우고 싶었던 것이다.

갑자기, , 기적이여! , 자신의 이론의 훌륭함을 검토하는 철학자의 즐거움이여! 나는 이 낡아빠진 해골이 몸을 뒤척이며, 그처럼 묘하게 고장 난 기계에서 결코 가능하리라고 내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힘으로, 몸을 일으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 늙어빠진 불한당은 나에게좋은 징조로 생각되어지는 증오에 타는 시선을 보내며 나에게 달려들어 내 눈을 멍들게 하고 이를 네 개나 부러뜨렸다. … 나는 그에게 말했다. “선생, 당신은 나와 동등하오! 나와 나의 돈주머니를 나누는 영광을 베풀어주시오. 그리고 당신이 진정한 박애주의자라면 당신의 동료들에게도, 그들이 당신에게 동냥을 구걸하거든, 방금 내가 마음 아프게도 당신에게 시도한수고를 낳게 했던 이론을 적용시킬 것을 기억하시오.” - <파리의 우울>
나약한 보들레르로부터 일격을 받은 구걸하는 사람은 지금까지의 모든 우울과 절망의 아우라를 벗어던지게 된다. 용수철처럼 튀어오르며 그는 보들레르의 얼굴을 가격했다. 얼마나 보들레르의 행동에 모욕감을 느꼈는지, 분노한 그의 주먹은 보들레르의 눈을 멍들게 했고, 보들레르의 이를 네 개나 부러뜨렸다. 보들레르는 바로 이 놀라운 반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자. 처음 만났을 때 두 사람은 서로 불평등한 처지였다. 한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다고 추정되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 두 사람은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네가 돈이 조금 있다고 해서, 나를 이렇게 멸시할 수는 없어. 내가 그렇게도 만만해보이니?” 바로 이런 정신적 각성을 보들레르는 의도했다.

구걸하는 사람, 아니 이제는 보들레르와 마찬가지로 당당한 인격으로 깨어난 그에게 보들레르는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선생, 당신은 나와 등등하오!” 이어서 보들레르는 그에게 당장 필요한 돈을 받아줄 수 없냐고 간청한다. 이제 구걸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과 동등한 사람이니, 돈을 주는 것도 부탁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연세대 철학과에서장자철학에서의 소통의 논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출판기획사 문사철의 기획위원,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철학 VS 철학>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 <상처받지 않을 권리>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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